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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조선일보의 자존심

조회 수 4261 추천 수 0 2010.11.04 09:26:20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삼성 비자금' 문제를 폭로할 결심을 굳혔을 당시 검사 지인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그 지인은 "조선일보나 KBS에서 한달 정도 집중 보도를 해준다면 검찰에서도 수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KBS는 그렇다치고 어째서 조선일보였을까? 중앙일보가 사실상 삼성그룹 계열사나 다름없고 동아일보 사주일가가 삼성 사주일가와 혼맥으로 얽힌 실정에서 그나마 삼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언론이 조선일보였다는 게 김용철의 설명이다. 조선일보를 '절대악'으로 상정하다 그 타켓을 '삼성'으로 바꾼 사람들에겐 곧잘 이해가 안 갈 이런 가설의 심증을 굳히는 물증이 하나 등장했다. 11월 3일자 조선일보의 삼성 비판 사설이 그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 삼성 직원이 방송사 취재 보고 왜 들여다봤나



조선일보 사설은 같은 소재로 쓰여진
한겨레 사설에 비해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고 있는 정황이 엿보인다. 더구나 전날 이건희 전 회장의 발언을 민망하게 칭찬한 사설을 게재한 걸 생각해보면 삼성에 대한 투철한 비판의식은 없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한 번만 더 돌려 생각해보면 조선일보 사설은 삼성의 MBC 내부정보 유출 의혹에 대한 보수언론의 유일한 비판사설이다. 이 문제에 대해 사설에서 직접 삼성을 비판하는 스탠스를 취한 것은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밖에 없다. 11월 4일자 사설까지 검토해봐도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등에선 이 문제에 관한 사설이 보이지 않는다.


조선일보가 삼성을 비판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그건 비판할 만한 일이었다,"는 하나마나한 얘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경우 "왜 그럼 (한겨레를 제외한) 다른 언론들은 비판하지 않은 것일까?"라는 의문이 당연지사 따라나온다. 그리고 신문기업의 광고종속성과 광고시장에서 재벌의 영향력 따위의 경제적 유인들을 설명하게 될 것이다. 물론 조선일보가 일개 경제신문에 비해 그런 물적조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란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건 조선일보의 삼성비판 사설을 설명하는데 필요한 조건일 뿐, 그것을 설명하는데 충분한 조건은 아니다.


이 사건 뒤엔 인간사의 중요한 (그렇다고 여겨지는) 사건 뒤의 이면이 흔히 그렇듯 자잘한 계기와 사소한 감정충돌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에 이 정도의 사설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는 '사실'은 남는다. 그리고 최근의 편집기조를 들여다보면 이 '사실'은 결코 우발적인 일은 아니다. 조선일보는 G20 행사 등 정부의 핵심적인 정책에는 가장 잘 보조를 맞추는 언론 중 하나이지만, 어떤 건수에서는 가장 비판적인 언론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총리실 민간인 사찰 수사 도중 불거져나온 청와대 대포폰 의혹을 가지고 정부와 검찰을 잘 물고 늘어지는 신문 중 하나도 조선일보다.


조중동 중에서 정부 비판의 수위로 본다면 조선 >> 중앙 >> 동아일 것이고 (비판 담론이 거의 존재하지는 않지만) 삼성에서 자유로운 정도를 판별해 본다 해도 조선 >> 동아 >> 중앙일 것이다. 조선일보의 편집기조는 가령 G20의 효용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을 표명하지만 그렇다고 제기된 의혹에 대해 정부를 조선일보만큼 강하게 비판하지는 않는 중도성향 한국일보의 '온건한 편집'과 가장 대비된다. 말하자면 조선일보는 정치적/정책적 사안에서는 한나라당 정부와 보조를 맞추면서도 선을 넘은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할 말은 하겠다는 포지션을 가진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다시 조선일보의 삼성 비판의 심리를 살펴보면 문제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다. 조선일보는 삼성의 오너 경영에도 동의하고, "삼성이 한국을 먹여살린다."와 같은 명제에도 적극 찬동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삼성이 자신들을 통제/관리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견디지 못한다. MBC가 그런 대상이었다면 조선일보 역시 그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가 그들에게도 있을 법하다. "우리는 삼성을 지지하는 것일 뿐 시다바리냐 졸은 아니지 않느냐."고 생각할 법하다. 물론 조선일보는 (만일 누군가가 이 문제를 가지고 취재를 한다면) 겉으로는 이런 계산을 내세우지 않고 "그저 우리의 원칙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라 말할 것이다. 그 말도 맞지만 조선일보가 삼성 비판 사설을 쓰면서 튕길 수 있는 주판알은 다 튕겨봤다고 보는 쪽이 합리적일 것이다. 지금의 조선일보는 삼성에 비해 물론 '약자'이지만, 적어도 먼저 꼬리를 내리고 그 관계를 곧바로 승인해버리지는 않는, '강자' 앞에서 '강자'인 척은 하는 그런 '약자'다.


조금 서글퍼지는 시점이다. 왜냐하면 이런 맥락에서 조선일보를 칭찬할 때, 어떤 미사여구를 덧붙인다 해도 그 핵심은 "(권력화된 언론을 지향하고, 그 권력을 공정하지 못한 방식으로 휘두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조선일보는 적어도 '언론'이고자 한다."는 것일 테니 말이다. 조선일보가 추구하는 권력은 적어도 언론의 권력이다. 대기업이 던져준 광고 부스러기를 받아먹으며 지배계급의 하위파트너에 만족하는 나팔수들의 위치는 아니다. 안티조선 운동이 줄곧 비판해왔던 조선일보의 권력지향적 속성이 역설적으로 조선일보를 이 시대에 (보수-극우 블럭에서) 가장 언론다운 언론으로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기득권 세력'이란 것이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외부자들에게 벽을 쌓고 한 사회를 통치할 거란 환상을 가진다. 물론 그런 환상에도 진실의 일단은 있다. 그러나 영화 <부당거래>가 적절히 드러내듯이, 권력을 가진 이들은 본시 자신의 이권을 추구하는데에 다툼을 주저하지 않고 그런 다툼을 위해 '명분'을 동원한다. 더러워 보이지만 실은 이런 싸움이야말로 민주주의가 권력분립을 통해 인민에게 주권을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물론 인민에게 '주권의 반환'은 언제나 미래의 희망으로 유예된 오지 않을 사태다. 하지만 그들의 다툼 속에서 우리가 숨쉴 틈이라도 가지게 되는 것이 또한 진실 아니겠는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특히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우리에게 심각했던 문제는 '적'들이 김대중(후에는 노무현)에 대해 너무 똘똘 뭉쳐 그런 분열을 기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세 차례에 걸친 신문전쟁으로 서로를 물어뜯던 보수언론들은 신문시장의 사양기에 대한 위기의식과 '개혁정권'에 대한 공포로 손을 잡고 지난 십 년간 강고한 블럭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시민사회 진영이 "실은 그들의 뒤에 '삼성'이 있었다."며 새로운 '적'을 호명하자 여기에도 작은 균열이 생겨났다. 우리가 삼성을 왕초라 불렀을 때 조선일보가 그 왕초에 대해 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것은 "삼성이 한국을 통치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거둔 최초의 성과인지도 모른다. 이 불씨가 모닥불이라도 될지 그냥 꺼지고 말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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