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이전 글에 대한 변명

조회 수 7930 추천 수 0 2011.03.14 10:45:00

2011/03/09 - [문화/생활] - '음모론 시대'의 이면


아크로란 곳에서 제 글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는데요.
http://theacro.com/zbxe/free 며칠 동안 대여섯개의 글이 올라오고 덧글 토론이 이어지길래 저도 한마디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회원가입이 없이는 글을 올릴 수가 없는 사이트다 보니 그냥 제 블로그에 올려야 겠더라구요.


애초에 저곳에서는 제 글이, 스켑티컬레프트의 말러리안이란 분이 '장자연 편지는 대국민 사기극'인 것 같다고 주장하면서 제 글을 링크한 상황에서 전해졌기 때문에, 처음에는 말러리안 님의 견해와 제 견해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리퍼러로그에 찍힌 말러리안 님의 코멘트를 보고 글의 일부를 수정하기도 했었는데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후로는 어떤 분이 제 글의 논지를 옹호하기도 하여, 글의 요지 자체는 받아들여지는 반면, "단순한 얘기를 길게 늘여썼다." "그런 근거로 조선일보를 편드는 것은 옳지 않다." "사태의 본질을 잘못 파악했다."와 같은 얘기들이 오가고 있는 형편인 것 같습니다.


제가 글팔아서 돈도 받는 경우가 있는 사람이다 보니 '글을 잘 쓰지 못했다.'란 지적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수용해야 마땅하지요. 게다가 저는 정치적으로 소수파의 처지에 있고, 심지어 그 소수파 블럭에서 형성된 편견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특정한 사안에 대해 제가 쓰는 글들은 '내가 지금부터 주장하는 바를 생각도 해보지 않았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는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글을 쓸 경우 글쓰기엔 더 세심할 수밖에 없는데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스스로가 동의하는 전제 위에 놓인 주장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부드럽게 수용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주장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할 경우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일일이 전제들을 적어놓을 경우엔 복잡하거나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글재주가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에 대한 압박을 엄청나게 받게 되었고 그것을 수용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최근의 제 글들은 그런 노력의 산물이긴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글을 그렇게 쓴다는 건 굉장한 '품'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에, 제가 모든 글쓰기에 대해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거죠. 이를테면 저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체벌금지 조치가 그렇게 타당한 정책행위가 아니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 A4 7페이지 가량의 글을 써야만 했습니다. http://hook.hani.co.kr/archives/16294 제 글을 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체벌금지 조치에 동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며, 심지어 저조차도 원론적으로는 체벌금지에 동의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뉴라이트 성향 이영훈 교수의 2004년 위안부 발언이 문제될 것이 없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A4 8페이지 가량을 써야만 했습니다. http://yhhan.tistory.com/1305 뒷글은 시의성이 떨어져 그냥 블로그에 올리긴 했습니다만, 이제 저는 이 정도 품을 들인 글이 아니면 매체에 잘 송고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에 반해 이번에 문제가 된 <'음모론 시대'의 이면>이란 글은 처음부터 제 고민에 제가 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다수의 독자를 고려하기보다는 제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상 이런 종류의 글들이 종종 올라오는 것은 자연스러울 일일 텐데, 이렇게 한정된 독자를 대상으로 한 글이 어느 순간 다른 게시판에 링크되어서 여러 사람이 반응하게 되는 것도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 점에 유감은 없어요.


다만 거기에 민주당 지지자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은데, 그런 글보다 훨씬 더 품을 들인 <안티조선 운동사>와 같은 책에도 좀 관심을 보여주셨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진빠'로 소문난 제가 진중권의 역할에 치우치지 않고, 강준만의 사회참여 글쓰기에 대한 가장 세심한 평가를 담은 책을 출간했는데 거기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2002년 진강논쟁의 헤묵은(?) 원한을 들먹이는 분들을 보면 좀 아쉽습니다. 하긴 저도 최근의 선거연합 논쟁을 보며 진강논쟁을 현재 시점으로 반추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긴 합니다.


어떤 분들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근거로 조선일보가 가해자임을 낙인찍고, 마녀사냥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정도로 요약하면 충분할 글을 왜 그렇게 길게 늘여쓰며 조선일보 사설을 옹호한다는 얘기는 구태여 왜 하느냐, 그런 점에서 네 글은 낙제점이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논술고사를 비유로 설명하시니 저도 같은 비유를 들어볼께요.


어떤 학생이 쓴 논술답안을 평가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전제해야 할 것은 그 학생이 받아든 문제가 무엇이었냐는 겁니다. 그 학생의 글 속에 여러가지 사안이 어지러이 반영되어 있다면, 그건 아마도 그 학생이 받아든 제시문에 그런 요소가 들어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학생은 주어진 제시문과 문제 안에서 답해야 하는 반면, 우리는 그 제시문과 문제를 스스로 택해 글을 쓴다는 차이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글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 글의 필자가 어떤 문제의식 하에 글을 썼으며 (문제) 어떤 주장과 맥락들에 대해서 반응했는가 (제시문) 일 겁니다. 이를테면 "네 글이 논술문이라면 빨간펜을 죽죽 그었어야 할 거다."라는 말에 대해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님처럼 논술첨삭하면 당장 짤려요."가 될 수도 있는 거죠.


물론 적어도 대중작가에게 '좋은 글'이란 그 '문제'를 독자들에게 명료하게 드러내고, '제시문'을 읽지 않은 이들도 맥락을 따라올 수 있도록 충실하게 설명하는 것이겠지요. 논란이 된다는 건 제 글이 그런 부분에서 미흡하다는 것일 테고, 그 점에 대해서는 당연히 변명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모든 글을 그 '좋은 글'로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선 이미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이 경우 품을 엄청 들인 글이 아닌 글은 블로그에도 올리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없고 고민없는 글들도 무수하게 올라오는 이 블로고스피어에서 저에 대해서만 그런 검열장치(스스로 부여한 것일지라도)가 작동하는 것을 납득할 생각이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오해'를 감당하면서 그런 종류의 글쓰기를 지속할 생각입니다. 


감당하는 건 제 문제이긴 합니다만 토론을 하는 분들이 제가 집어든 '문제'와 '제시문'이 무엇이었는지를 추측하지 못한 건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쩌면 제가 접하는 견해들이 그분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견해들이 아니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제가 하는 고민들이 그분들에겐 해본 적이 없었던 종류의 것인지도 모르겠구요. 하지만 그것들을 캐치하지 못하는 일들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해도, 본인들이 생각하지 않았거나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던 맥락이 포함된 글에 대해 쉽게 재단하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제 글은 '장자연 사건'에 대해 논평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자연'이란 이름으로 트래픽을 낚아채려는 수많은 언론기사와 네티즌들의 논평 속에 끼지 않고 저는 다른 얘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사건 이름을 이렇게 붙이는 데에도 조심스러운데요. 세상을 떠난 피해자의 이름으로 사건을 호명하는데에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된 제 글을 봐도 제가 그분의 이름을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상황에서 딱 한번 (그것도 '사건'으로 부르지 않는 방식으로) 부르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받아 안은 문제는 "사람들이 어떤 타당하지 않은 근거로 내 정치적 적대자를 공격하고 있을 때 나(그리고 그 정치적 적대자를 평소에 비판하는 사람들)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장자연 사건'에 대해 논평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저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논평하고 있었을 겁니다.


1) 이번에 공개된 '자필 편지'의 진실여부
2) '자필 편지'가 진실이라면, 그 안에 적힌 주장들을 어느 정도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 여부
3) '자필 편지'가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법정증거로 채택할 수 있는지 여부
4) '리스트'란 것이 존재할 경우 그것을 공개하고 유포하는 것이 법적/윤리적으로 어떤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점  


하지만 저는 1), 2), 3)은 모두 생략하고 4)에 대한 얘기를 정치운동을 하는 주체의 윤리성과 결부시켰습니다. 그리고 이게 '문제'라면, 이 문제에 결부된 제시문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지요.


제시문 1 음모론과 매체 관련
1) 트위터를 하는 어떤 사람들은 '쟈스민 혁명'이 페이스북 때문에 생겼다고 주장한다.
2) 트위터를 하는 어떤 사람들은 1)의 견해가 아랍 민중들의 주체적 역량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3) 보수언론과 그 지지자들은 인터넷이 음모론의 온상이기 때문에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4) 인터넷 실명제를 반대하는 많은 개혁/진보 지식인들은 인터넷과 음모론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가령 문화평론가 이택광은 타진요에 대한 MBC의 보도에서 인터넷을 공격하고픈 보수진영의 정치적 의도를 추론하면서, '인터넷은 공론장'이고 음모론은 고래로부터 있어왔기 때문에 양자를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
5) 진중권은 디 워 사태 당시의 네티즌들을 혹독하게 비판했지만 촛불시위 당시의 '광우병 괴담'에 대해선 문제삼지 않고 촛불시위의 다른 논점들을 부각시켰다. 변희재는 정반대로, 후자에 대해선 인터넷 문화의 문제로 취급하면서 전자에 대해선 인터넷에서 창발된 집단지성의 힘이라 극찬했다.
- 위 견해들을 검토하고 인터넷이란 매체와 정치적 저항이란 움직임을 연결지을 수 있는지, 인터넷이란 매체와 음모론을 연결지을 수 있는지, 연결지을 수 있거나 없다면 그 양상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견해를 삽입할 것. 
 

제시문 2 음모론의 성격
1) 어떤 사람들은 음모론을 펼치는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비판하거나 병리적인 존재로 취급한다.
2) 어떤 사람들은 음모론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를 정치권력이 정보를 은폐하는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3) 김규항은 디워 사태 당시 네티즌들의 충무로에 대한 과도한 비판이 평론가들의 '선빵'에서 연유한 것이므로 대중은 무죄라고 주장했다.
4) 타진요 사태 당시 타진요들은 단지 타블로가 초기 의혹제기 단계에서 정보를 소극적으로 공개했다는 이유로 그가 진실을 은폐한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기득권세력을 옹호하는 거대한 흑막이 있다고 확신했다.
5) 천안함 사태 초기에 조선일보의 물수제비 어뢰론과 진보언론들의 피로파괴/기뢰 가설 등 온갖 가설이 난무했는데, 이는 초기 정부의 설명이 미흡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형성된 가설들은 정부의 설명이 보충된 다음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았고 그 가설들은 '정부의 공식적인 설명'에 대해 그것이 날조된 스토리를 제시하는 음모론과 결합했다.  
6) 조선일보는 경찰이 장자연씨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하지 않아 뜬소문이 난무하고 있다며 철저한 수사 및 진상규명을 주장한다.



제시문 3 인터넷의 '장자연 리스트' 유포 
1) 네티즌들은 SBS 보도 이후 2년 전에 유포된 '장자연 리스트'를 다시 유포하면서 관련자(?)의 이름과 사진을 올리고 있다. 이 게시물들은 삭제당하면서도 꾸준히 올라온다. 게시물을 올리는 네티즌들은 자신들이 기득권세력의 범죄를 은폐하려는 정부의 탄압에 맞서 진실을 알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2) 이 '리스트'가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실존하는지, 장자연씨 본인의 기록이 맞는지, 기록이 맞다 해도 그 기록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 등은 이 시점에선 미지수다. 굳이 법리적으로 따지자면 이 리스트의 유포는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심증으로 따지더라도 이 리스트들이 전씨가 소장하고 있는 편지의 '리스트'와 완전히 일치할 가능성은 (전씨가 소장하고 있는 리스트의 진실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희박하다.
3) 네티즌들은 그 리스트에 입각하여 '조선일보 관련설'을 확신한다.
4) 조선일보는 2년전 수사에서 장자연씨 편지에 나왔던 '조선일보 사장'은 정황증거상 '스포츠조선 전 사장'임이 명백함에도 일부 언론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조선일보 사장 등이 포함된...'으로 시작되는 보도를 일삼고 있다고 비판한다. 
5) '리스트'를 유포하는 네티즌들이 많지 않았다면 조선일보가 위와 같은 사설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음모론의 유포자들의 공로(?)도 있다. 그러나 리스트의 유포 자체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6) 보도에 따르면, 진중권과 박경철 등 수십 명의 지식인들이 '장자연 리스트 공개 및 철저한 재수사'를 촉구했다고 한다.


어떤 분은 철저한 재수사를 촉구하는 조선일보의 입장과 '리스트'를 공개하는 네티즌들의 입장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질문하셨는데 아마도 그 사이엔 범죄자로 인지되는 어떤 사람을 고발하는 것과 그 사람을 (아직 명확한 증거는 없음에도) 직접 린치하는 것 수준의 차이가 있을 겁니다. 또 어떤 분은 제가 디 워 사태 당시 진중권의 입장에 치우쳐서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는데 오히려 맥락을 따져보면 저는 진중권의 견해에 찬성하기보다는 의구심을 표하는 쪽이죠. (보도 기사만 봤을 따름이지 진중권이 이 사건에 대해 정확히 어떻게 말했는지는 잘 몰라요.) 어떻게 진중권의 견해에 의구심을 표하는 얘기를 해도 진빠질로 둔갑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전 모르겠어요. 아마 과거의 포지션을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한 낙인 효과라는 거겠죠.


또 어떤 분은 음모론을 비판하는 제가 경찰 수사의 미래와 네티즌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음모론'을 쓰는 자기 모순을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시는데 경찰수사의 결말에 대한 예측은 음모론적 가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편지의 증거능력에 대한 의구심에도 가능하죠. (이전 글에도 링크했지만 이 기사를 참조하세요.  이 기사 ) 또 '음모론적 설명'이 하나의 가설로 제시되는 것과 '진실 그 자체'로 지시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이를테면 요즘 조선일보가 정부를 맹공하고 있고 SBS가 친정부적이기 때문에 조선일보를 엿먹이려고 이런 일을 벌였다는 식의 해석도 하나의 가설로서는 충분히 가능하겠죠. (별로 신뢰하지는 않아요. 세상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렇게 바라볼 수도 있는 것과 그걸 '진실'로 받아들이고 SBS 관련보도를 친정부적이라고 규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되겠죠. 또 제가 정보가 부족해서 이런 식으로만 글을 썼다는 지적도 있는데, 사실 이런 경우엔 뭔가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말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만 쓰는게 현명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기가 들은 '고급정보'가 있다고 인터넷에서 의기양양하게 떠드는 태도는 또 얼마나 우스운가요. 그런 것 없어도 판단할 수 있는 부분까지 판단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을 명령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태도겠죠.


조선일보의 편을 든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제가 그 글의 말미에 조선일보의 사설에 동의한다고 썼기 때문에 별로 할 말은 없어요. 그러나 전체적인 조선일보의 역할에 대해서가 아니라 특정사안에 대해 조선일보의 편을 드는 것은 대체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요. 조선일보는 맞는 말을 하는 경우가 없는 건가요. 이를테면 조선일보가 강만수의 산업은행장 임명을 두고 쓴 무지막지한 정권 비판 사설에 '찬성'하면 안 되는 걸까요.


사실 최근 조선일보 보도 중에선 참 재미있는 것이 많은데 우리가 '조선일보는 최악'이라는 프레임에 사로잡혀 그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이에 대해 저는 지금까지 몇 편의 글을 쓰기도 했죠.( 대표적인 것으로, 2010/11/04 - [정치/언론] - 조선일보의 자존심 ) 이런 일을 하다가 보면 조선일보 편을 든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나올 줄도 예측은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두달 전에 <안티조선 운동사>라는 책을 낸 사람에 대한 공격치곤 좀 치졸하지 않은가, 싶네요. 물론 그들이 제가 누군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모르면 모르기 때문에라도 조심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부족한 글에 대한 긴 변명은 여기까지 할께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01 '타블로의 딜레마'에 빠진 조선일보 [26] 하뉴녕 2011-03-15 3715
1300 안티조선 운동사 2쇄 수정 사안 [7] 하뉴녕 2011-03-15 18185
» 이전 글에 대한 변명 [32] 하뉴녕 2011-03-14 7930
1298 '음모론 시대'의 이면 [32] 하뉴녕 2011-03-09 4015
1297 안티조선 운동사 해설강의 1강 (11. 3. 7 두리반) [8] 하뉴녕 2011-03-07 3335
1296 동아일보의 문제 [9] 하뉴녕 2011-02-28 5560
1295 진보신당의 쩌는 위엄 [29] 하뉴녕 2011-02-23 6270
1294 [경향신문] 인도 축구대표팀의 로망 [2] 하뉴녕 2011-02-19 3006
1293 의미 부여 [25] 하뉴녕 2011-02-16 3265
1292 박가분에게 다시 답함 [19] 하뉴녕 2011-02-15 7953
1291 박가분에게 답함 [15] [1] 하뉴녕 2011-02-15 6096
1290 진보신당, 생존의 방법은 없는가? [113] [1] 하뉴녕 2011-02-13 9433
1289 박가분의 최장집주의 비판과 진보정당 운동론에 대한 논평 [15] [1] 하뉴녕 2011-02-11 14950
1288 이영훈은 종군위안부가 '자발적 성매매'라고 주장했던가? [88] [1] 하뉴녕 2011-02-07 11090
1287 키워질의 진화심리학적 기원 [2] 하뉴녕 2011-02-05 3374
1286 평양성 : 다시 돌아온 코미디 현실풍자 사극 file [17] 하뉴녕 2011-01-31 3879
1285 한국 보수와 진보의 판타지 [28] [2] 하뉴녕 2011-01-26 5079
1284 <안티조선 운동사>, 닫는글 : 다시 언론 운동을 꿈꾸며 [1] 하뉴녕 2011-01-20 8304
1283 그 과학자의 독백에 대해 [9] 하뉴녕 2011-01-19 5794
1282 정치평론에서의 초월적 논증 [40] [1] 하뉴녕 2011-01-15 6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