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의미 부여

조회 수 3265 추천 수 0 2011.02.16 20:19:00

사람이 열심히 움직이고 신나서 살려면 의미 부여란게 필요하다. 물론 수렵 채집이나 농경처럼 나와 내 식구들을 직접적으로 먹이는 일에 종사하다 보면 그런 것이 절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 다단해지면서 먹고 자고 입는 문제를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통해 해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런 이들 중에서 당장 돈을 받아 먹고 자고 입는 문제가 해결되는 사람들도 있고, 당장 돈은 안 되지만 장래의 전망이나 그 일 자체의 의미를 생각하며 견디는 이들도 있다. 당장 돈을 받는 이들은 자신의 먹고 자고 입는 문제를 해결하는 그 일의 의미를 일차적으론 긍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이라도 자신이 실제로 하는 일이 별다른 의미가 없는 일이라 생각하면 우울해질 수도 있다. 적어도 더 열심히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한편 당장 돈이 안 되는 일을 하는 이들은 먼저 이 일이 나중에는 생계문제를 해결해 줄거라는 확신을 지녀야 계속 일을 할 수 있다. 한편으론 그것과 별개로 자신이 굳이 이렇게 초기비용을 투자해도 답이 안 나올 수 있는 불안한 일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답을 찾아야 한다.


물론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한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에게라도, 그 욕망은 자신의 노력을 최대치까지 끌어내는 동기는 못 될 수 있다. 수렵 채집을 하며 살 때 인간은 초과근무(?)를 해서 사냥감을 쌓아두어 봤자 쓸 곳이 없었기 때문에 무리한 일을 즐기는 성격을 계발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축적할 수 있는 돈이 흘러다니는 사회에서 무리한 노력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므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조차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 돈에 대한 욕망과는 다른 동기를 부여하려 한다. 의미 부여를 스팀팩처럼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 돈이 안 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이들에게도 의미 부여는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재무설계 회사의 팀장으로 일하는 형과 얘기를 하다가 그가 팀원의 '멘탈'을 끌어올리는 법에 대해 듣게 되었다. 열정적으로 고객을 찾으려 하지 않고 일없이 앉아 있는 팀원을 불현듯 불러 "나하고 어디 같이 좀 가자."고 말한다. 그를 태우고 가는 곳은 대학병원 응급실이다. 물론 그곳은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곳이다. 피투성이 환자들이 실려오는 것이 보인다. 그때 그가 팀원에게 말한다. "분명히 1시간 내로 머리를 산발하고 정신 잃은 아줌마가 달려올거다."


확률적으로 그런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게 되어 있다. 아이가 온다면 더 좋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툭, 한마디를 던진다. "너 저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 같냐?" 그리고 팀원은 아무말도 못하고 진지해진다. 그는 같이 진지해지기 보다는 잠시 "저 아저씨는 대기업 부장 정도로 되어 보이고, 혼자 벌겠네. 어쩌면 3년 전에 2억 정도 대출을 끼고 집을 샀을 수도 있지. 이제 와이프와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와 같은 류의 수다를 떤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머뭇머뭇 말을 못 여는 팀원을 향해 이어지는 마지막 멘트. "니가 하는 일이 저 아이의 미래를 지켜주는 일이야."


보험업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에 대해 닭살돋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누구나 자신의 일에 대해 심중 한구석에서는 저런 식의 포장을 한다. 그런 포장없이, "나처럼 잘난 녀석이 이런 곳에서 구르는 것은 정말 인류에게 낭비야!!"라고 투덜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의 내면이 의미 부여를 하는 이들의 것보다 덜 황폐할 것 같지는 않다.


내게는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대사들보다는 그 상황 설정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꼭 팀원의 멘탈을 상승/유지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형은 그곳에 가끔 간다고 했다. 그곳은 팀원에게 했던 말들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오늘의 내 삶에 대한 의미 부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물론 글쓰는 사람들의 상당수도 의미 부여에 종사한다. 내가 속한 직능, 정파, 혹은 추구하는 가치를 위한 갖가지 행위들에 의미 부여를 한다. 어떤 글쟁이들은 <로도스도 전기>에서 용 사냥을 하거나 다른 집단(party)와 싸울 때 노래를 불러 사기를 고양시키는 음유시인들을 닮았다. 어쩌면 그런 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의미 부여를 하기가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엔 의미 부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무수한 의미 부여들 사이의 구멍들을 탐색하며 다른 것을 바라보려는 이들도 있다.


어쩌다보니 종종 그런 종류의 인식을 소환하는 글들을 쓰게 되었다. 이런 일은 어쩌면 본성상 인간의 우울한 성향을 이끌어내기에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남들의 의미 부여의 맹점을 짚고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할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어떤 대의가, 혹은 어떤 진리에의 강박이 그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스스로에게 필요한'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과 너무 자주 부딪혀야 하기 때문에 결국엔 그런 추상적인 가치조차 스스로 믿지 못한다.


종종 군대에서 보급병으로 있으면서 취사반에 식량을 들고 오고 병사들에게 후식을 불출하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물론 모든 종류의 즉각적인 의미 부여가 그렇듯, 그 일도 거시적인 맥락에서 곰곰히 따져보면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 부대는 그 위치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거나, 그 정도 인력이 그곳에 필요하지 않았다거나. 하지만 최소한 '사수'가 종종 부대 어느 곳을 삽으로 파고 묻어버리던 컵라면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병사들에게 나눠줬을 때, 물건이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시행한 여러가지 내 사소한 정책들이 성과를 거두었을 때, 나는 내 인생의 어느 때보다도 기뻤던 것 같다. 물론 상황이 개선되자 상황이 충분히 더 개선되지 못했다고 항의를 하는 이들도 나타났지만, 그건 인류 역사에 흔히 있었던 일이다.


요즘은 꿈에서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이 그리 악몽처럼 여겨지지가 않는다. 문득 나도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 봐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을 했다. 유치환은 사막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주변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많은 사막들이 있으니 말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01 '타블로의 딜레마'에 빠진 조선일보 [26] 하뉴녕 2011-03-15 3715
1300 안티조선 운동사 2쇄 수정 사안 [7] 하뉴녕 2011-03-15 18189
1299 이전 글에 대한 변명 [32] 하뉴녕 2011-03-14 7930
1298 '음모론 시대'의 이면 [32] 하뉴녕 2011-03-09 4015
1297 안티조선 운동사 해설강의 1강 (11. 3. 7 두리반) [8] 하뉴녕 2011-03-07 3335
1296 동아일보의 문제 [9] 하뉴녕 2011-02-28 5560
1295 진보신당의 쩌는 위엄 [29] 하뉴녕 2011-02-23 6270
1294 [경향신문] 인도 축구대표팀의 로망 [2] 하뉴녕 2011-02-19 3006
» 의미 부여 [25] 하뉴녕 2011-02-16 3265
1292 박가분에게 다시 답함 [19] 하뉴녕 2011-02-15 7960
1291 박가분에게 답함 [15] [1] 하뉴녕 2011-02-15 6096
1290 진보신당, 생존의 방법은 없는가? [113] [1] 하뉴녕 2011-02-13 9433
1289 박가분의 최장집주의 비판과 진보정당 운동론에 대한 논평 [15] [1] 하뉴녕 2011-02-11 14950
1288 이영훈은 종군위안부가 '자발적 성매매'라고 주장했던가? [88] [1] 하뉴녕 2011-02-07 11090
1287 키워질의 진화심리학적 기원 [2] 하뉴녕 2011-02-05 3374
1286 평양성 : 다시 돌아온 코미디 현실풍자 사극 file [17] 하뉴녕 2011-01-31 3879
1285 한국 보수와 진보의 판타지 [28] [2] 하뉴녕 2011-01-26 5079
1284 <안티조선 운동사>, 닫는글 : 다시 언론 운동을 꿈꾸며 [1] 하뉴녕 2011-01-20 8304
1283 그 과학자의 독백에 대해 [9] 하뉴녕 2011-01-19 5794
1282 정치평론에서의 초월적 논증 [40] [1] 하뉴녕 2011-01-15 6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