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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출간

조회 수 4580 추천 수 0 2011.04.18 12:10:54

여러분들이 <안티조선 운동사>를 구입하지 않고 우물쭈물 하시는 사이에 공저가 하나 더 나왔습니다. 3인 공저이구요. 경향신문 2030콘서트란을 같이 쓰는 최태섭 님과 스타리그 팬덤에서 'pain'이란 아이디로 유명한 김정근 님과 함께 쓴 책입니다. 


무슨 책인지에 대한 설명은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저자이신 엄기호 선생님의 추천사를 공개하면서 대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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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안 고픈 소크라테스는 불가능한가?

 
달빛요정 만루홈런님과 최고은씨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청년노동의 현실에 대한 조명탄이었다. 창의성이니 열정이니 청춘이니 하는 화려한 말 뒤에 감추어져 있던 추악한 현실이 대낮보다 더 밝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영화에서부터 만화 문화생에 이르기까지, 홍대 앞에서 배를 굶어가며 자기 음악세계를 추구하는 뮤지션에서부터 돈 안 되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청년들은 그들의 죽음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봤다. 그리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것을 왜 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에 이 궁극적인 질문에 대해 내놓는 답은 간단하다. 네가 원한 일이잖아. 그렇다. 청춘은 쫄쫄 굶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노동을 단순한 밥벌이 수단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자아를 실현하고 야망을 성취하는 도전으로 여겨야한다. 열정은 청춘만이 가지고 있는 땔감이며, 창의성은 청춘의 기관차이다. 창의적이 되라, 그리고 열정을 쏟아 부어라. 쫀쫀하게 돈 따위에 연연하지마라. 네 시작은 미약하지만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그러나 이에 대해 달빛요정님은 이렇게 대꾸하였다. ‘도토리 싫어, 라면도 싫어, 다람쥐 반찬 싫어, 고기반찬 좋아.’


여기 이제 20대와 작별을 고하는 3명의 젊은 작가들이 작정을 하고 달라붙어 청년들에게 들씌워져 있는 이 열정과 창의 노동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이들은 파티쉐부터 프로 게이머들, 그리고 네일 아티스트와 고시생들까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같은 나이 또래 ‘동료’들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기록하였다. 세상을 뒤집어엎겠다는 혁명적 꿈도 아니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겠다는 ‘소박한’ 꿈이 어떻게 처참하게 착취당하고 있는지를 폭로한다. 자본주의는 청춘들에게 ‘꿈’을 꾸라고 강요하고, 그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노동을 거의 공짜에 다름없는 가격으로 착취한다. 꿈은 자본주의가 청춘에 깔아놓은 가장 잔인한 덫이다.


문제는 이들 모두가 자신이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로 계속 사는 것을 꿈꾸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비록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라고 달짝지근하게 약속하는 그 미래, 그 미래에서 이들이 바라는 것은 ‘장인’이고 ‘사장님’이다. 그런데 노동자라니. 그것이야말로 이들이 가장 거부하는 이름이다. 아니, 자본주의가 거부하여야한다고 이들에게 속삭이는 이름이다. 너를 노동자라고 생각하지마. 곧 너는 사장이 될꺼야. 이 책의 작은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늘에서 사장님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세상을 살고 있다.


노동하는 이가 자신의 현실 모습인 노동자를 거부하고 부정한다. 그것은 노동자를 통해서는 생존은 할 수 있을지언정 자아실현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되더라도 최소한 장인이 되어야하고, 장인이 된 다음 자기 숍을 차려야하며, 자기 숍을 차린 다음에 그 공간은 자신의 왕국이 된다. 그래서 책에 등장하는 네일아티스트인 은주는 현재 자기가 일하고 있는 공간에서 그들을 분할하고 착취하는 ‘인센티브’ 제도에 대해서 저항하기 보다는 자신이 사장이 된 다음에 제도를 바꿀 것을 꿈꾼다.


배고프더라도 모두가 시인이 되기를 강요하고 그 삶을 갈망하는 사회, 사실 이것은 이미 서구에서는 68년 이후 폭발적으로 분출된 청년들의 요구였다. 적어도 서구사회에서 먹고 사는 문제는 전후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를 통하여 해결하였던 자본주의는 국민 모두를 배부른 돼지로 만들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코제브는 이런 인간의 미래를 미국의 대중소비사회에서 만났다. 노동자들은 주말이면 대형마트로 차를 몰고 나가 식품이며 가전제품을 산더미처럼 사고 미친듯이 소비하였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을 꿈꾸기 보다는 자기 앞에 있는 상품, 오로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만족하는 ‘동물’들이었다. 그래서 코제브가 미국에서 만난 인간의 미래는 ‘동물’이었다.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고 다만 욕구만을 가지고 있는, 그래서 ‘불만’이 인생의 동력이 아니라 ‘만족’이 삶의 동력이 된 존재, 그것이 바로 동물이 아니던가?


68혁명은 이에 대한 반기였다. 왜 우리가 동물처럼 살아야하는가. 프랑스 68혁명의 교과서라고 불리우는 <일상생활의 혁명>을 쓴 라울 바네겜은 "우리는 '굶어죽지 않는다는 보장'이 '지겨워 죽을 위험'과 교환되는 세계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생존의 풍요로움이 곧 삶의 빈곤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집단적 생존의 문명은 개인적 삶의 죽은 시간들을 증가시키기만 하였다. 사람들은 소비를 통하여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으며 모든 욕망을 해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소비 사회는 소비와 스펙터클에 갇힌,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감금하는 시스템이었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불만에 대한 자본의 화답이었다. 노동자가 되어 자기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오로지 소비로서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것에서 벗어나 모두가 노동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는 사회를 만들자. 이 글에 등장하는 수많은 청년들이 바라는 것처럼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 하고 싶은 일에서 장인이 되자. 장인은 예술가이지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니다. 장인은 자신의 생산품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사람이지 노동자처럼 자기가 만든 물건에서 소외되어버리는 존재가 아니다. 자기 숍을 가진, 자기 이름을 걸고 리그를 펼치는 프로게이머들처럼 자, 이제 우리 모두 장인이 되자. 여기서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노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착취하기 위해 내건 슬로건을 만나게 된다. 바로 노동의 미학화이다.


미학화된 노동을 실천하는 존재, 그들이 바로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아닌가? 이 글에 등장하는 청년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듣는 그 이야기. 네가 원한 일이잖아. 바로 그것이 네가 원해서 하는 일이기에 비록 배는 좀 고프더라도 당당해야하고 기뻐해야한다. 그럴수록 더 창의적이 되고 열정을 바쳐야한다. 비록 지금 세상이 알아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인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지시켜야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일화로 이야기한다면 자신이 나태해지는 것 같으면 병원 응급실에 가서라도 정신을 각성시켜야한다. 그것이 배부른 돼지이기를 거부하고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로 작정한 ‘예술가’들이 걸어야하는 운명이다.


그러나 이 책은 고발한다. 배고픈 돼지이기를 거부한 소크라테스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배고픈 돼지의 삶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신자유주의가 유토피아처럼 아름답게 약속한 그 미학적인 세상은 배고픈 돼지들이 울부짖는 지옥이었다. 도토리가 아니라 고기반찬을 달라고 노래했던 달빛요정처럼. 일하는 사람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악덕기업주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진보정당과 시민단체의 현실처럼. 밤새 야근을 하고 코피를 쏟더라도 탓해야하는 것은 노동구조가 아니라 약해빠진 자신의 ‘간’인 것처럼.


아마 이 책을 읽고 부모는 자식에게 ‘엄마는 다 준비가 되어 있어. 괜찮아. 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면 된다고 생각해. 하고 싶은 일이 뭐야?’ 이 따위의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자식에게 그렇게 자아를 실현하며 열정을 바치며 사는 것이 배가 고프더라도 훌륭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자식을 굶겨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테니 말이다. 배부른 돼지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배고프더라도 소크라테스로 살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그건 그냥 배고픈 돼지였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런 교훈을 얻는다. 여전히 문제의 핵심은 노동구조라는 것을. 그것이 배불렀던 돼지와 배고픈 돼지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이 청년들의 미래가 적어도 배는 고프지 않은 소크라테스가 될 수 있게 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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