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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당대회와 그 정치평론가들

조회 수 5498 추천 수 0 2011.03.31 18:19:37


지난 3월 27일 일요일 진보신당 당대회가 열렸다. 당대회에 올라온 안건 중 특히 <2011년 당 종합실천계획 확정의 건 중 ‘Ⅱ.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종합실천계획[안]’>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진보신당의 당 진로에 대한 여러 가지 입장들을 편의상 '통합파'와 '독자파'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전국위원회에서 제출된 이 안건에 대해 독자파 쪽에서 여러 부분에 대한 수정안을 제출했다는 것이 사태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독자파들로서도 예측할 수 없었던 결과, 제출된 모든 수정안이 통과되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조승수 당 대표의 편지'가 대의원들의 반발을 불러와 중간파들이 독자파의 주장에 동의하는 쏠림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통합파는 독자파의 수정안 발의가 1) 전국위원회에서 안건을 합의할 당시 부결된 수정안을 그대로 제출했다는 점에서 패권적이라고, 2)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과의 합당 논의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비타협적 순혈주의를 보여준다고 비판한다. 두 번째 비판논점은 진보정당에 관심을 지닌 많은 정치평론가들이 공유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가령 조국의 경우 페이스북에서 "진보신당 대의원 대회에서 '연립정부'를 변형된 수혈론으로 규정하고 민주노동당의 패권주의와 대북관 수정을 요구하는 안이 채택되었다."며 이는 "경청해야 할 주장이며 공감하는 부분도 있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현상황에서 독자노선은 패착"이라며 "이제 조승수 대표의 지도력은 타격을 받았고,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혁신을 추구하는 세력도 갑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진보신당이 두 개로 갈라지지 않으려면, 상반기 내에 비상전당대회를 열고 새로운 지도력과 노선을 택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중권 역시 트위터에서 “정당이 무슨 사회주의 동호회인지, 아니면 좌익 보이스카웃 캠핑인지, 아니면 틴에이저 소셜리스트 카페인지,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그냥 하던 대로 하자, 그래 놓고 그걸 승리라고 자화자찬하고 자축들 하고 앉았으니...휴...”라며 특유의 독설을 내뿜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말하는 지식인들이 진보신당 당대회 안건이나 애초의 원안 및 통과된 수정안의 내용은 쳐다보고 코멘트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조국은 기껏해야 몇몇 뉴스 기사나 봤을 듯하고, 진중권은 거기에 덧붙여 (혹은 그것도 안 읽고) 조국의 코멘트까지 (혹은 겨우 그것 정도나) 본 게 아닐까 한다. 물론 이 추측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딱히 그들의 처지는 나아지지 않는데, 그들의 무성의한 코멘트는 설령 그들이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보았다 하더라도 기껏 자신들이 기획하는 향후 정국에 맞추어 진보신당 내 움직임을 평가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먼저 당일 통과된 수정안을 원안과 구별해서 올려보도록 하자. 이미 말했듯이 이 안건은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관한 것이다. 독자파란 사람들도 현재의 진보신당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데엔 동의하고 있다. 통합파vs독자파의 구도라는 것은 대략 '민주노동당과의 합당에 대한 태도'를 논점으로 구별되어 있고, 여기에 국민참여당 문제 등까지 끼면 훨씬 더 복잡해진다. 또 민주노동당과 구별되는 진보정당의 존속을 주장하는 '독자파'라도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선거연합에는 대개 찬성하는 입장이란 점에서, 독자파 역시 소위 '야권연합'에 완전히 적대적이라 볼 수는 없다. 


그날 통과된 수정안은 이러하다.


<원안>
1-4. 2012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일각에서는 야권 단일정당 건설을 주장하는 ‘제3지대 백지신당론’, ‘빅텐트론’ 등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변형된 수혈론에 다름 아니다.

<수정동의안>
1-4. 2012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일각에서는 야권 단일정당 건설을 주장하는 ‘제3지대 백지신당론’, ‘빅텐트론’ 등과 민주당 및 국참당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과의 ‘연립정부론’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변형된 수혈론에 다름 아니며, 새로운 진보정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니다.


<원안>
4-4. 단,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1년 9월 전후 시기까지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진보정치세력간에 진보대연합을 중심으로 2012년 총선을 함께 치러냄을 통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수정동의안>
4-4. 단,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1년 9월 전후 시기까지 모든 진보정치세력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합의하는 세력들과 함께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한다. 그리고 진보정치세력간에 진보대연합을 중심으로 2012년 총선을 함께 치러냄을 통해 진보정치세력의 단결과 승리를 위해 노력한다.


<원안>
6-3. 새로운 진보정당은 북한의 핵 개발 문제, 3대 세습 문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포로가 된 남한과 낡은 국가사회주의의 틀에 갇힌 북한의 양 체제를 지양하는 진보적 통일을 지향하며, 그 출발점으로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한다.

<수정 동의안>
6-3. 새로운 진보정당은 북한의 핵 개발과 3대 세습에 반대하며,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포로가 된 남한과 낡은 국가사회주의의 틀에 갇힌 북한의 양 체제를 지양하는 진보적 통일을 지향하며, 그 출발점으로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한다.


<원안>
9-1. 당은 진보정치의 혁신 속에서 광범위한 진보세력이 함께하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건설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를 위해 당 대회에서 전국위 산하에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설치한다.

<수정동의안 >
9-1. 당은 진보정치의 혁신 속에서 광범위한 진보세력이 함께하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건설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를 위해 당 대회에서 전국위 산하에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설치한다. 추진위원회는 추진 과정 및 향후 계획을 전국위원회에 회기마다 보고하여 승인 받는다.  


[원안]
-. 전국위 산하의 새진보정당 추진위의 위원은 대표단 추천 3인, 전국위원 추천 2인, 홈페이지 등 당원 추천 2인 등의 추천을 각각 받음.
-. 새진보정당 추진위의 위원은 위와 같이 각 단위별로 추천을 받아 당대표가 위원장을 포함해 위원들을 임면하여 총 7인 내외로 구성함.

[수정안]
-. 전국위 산하의 새진보정당 추진위의 위원은 대표단 추천 3인, 전국위원 추천 2인, 홈페이지 등 당원 추천 2인 등의 추천을 각각 받음.
-. 새진보정당 추진위의 위원은 위와 같이 각 단위별로 추천을 받아 당대표가 임면하여 총 7인 내외로 구성하고 위원장은 전국위원회에서 인준함.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안건이 진보신당 바깥의 사람들은 관심도 없을 절차적인 문제란 걸 생각하면, 이 수정안이 원안과 차이가 나는 부분은 세 가지다. 하나는 수정안이 연립정부론에 대한 명백한 반대를 표명했다는 것, 특정한 시기까지 중요한 쟁점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면 맹목적인 진보대통합이 성사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새 진보정당의 당론으로 종래 북한 핵개발과 3대세습에 대한 '비판'을 명시했던 것을 '반대'로 수위를 높였다는 것이다. 


당연히 수정안의 통과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논의에 '적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민주노동당이 북한 3대세습과 핵개발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못할 거라는 점에서 그러하고, 전국위원회 차원에서 합의된 수정안을 독자파가 한 번 쳐내는 모양새를 만들어 민주노동당 측에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이게 야권연대를 어그러뜨리거나 진보신당 혼자서 말라 죽을 택한 결정이냐 하면 그건 또 전혀 다른 얘기다. 수정안은 진보통합론이나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대한 반대를 함의하고 있지 않으며, 더더구나 선거연합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연립정부론에 대한 반대가 진보정당에나 의미를 지니지 현재의 야권 선거연대의 측면에서 큰 이슈는 아니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를테면 민주당이 정말로 군소정당들에게 정부 내각을 개방하려고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란 말인가? 이건 민주당이 원하는 안도 아니다. 사실인즉 연립정부론은 대통령제에서 실현되기도 힘들고, 또 정체성이 다른 진보정당의 경우 설령 두세 군데 입각을 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파국적 결말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은 사안으로, 일부 정치평론가들과 민주당 내 몇몇 개혁파 정치인들이 진보정당들이 선거에서 포기한 '몫'을 대체하기 위해 제시한 '가상의 몫'에 지나지 않는다. 그 가상의 몫이 우리의 정체성과 맞지 않아 폐기하겠다는데 정치평론가들이 시비를 걸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국민참여당을 민주당과 함께 신자유주의 정당으로 규명한 것이 문제가 될까? 하긴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참여당, 노동당, 진보신당의 '3당합당'론을 주장한 진중권에게는 문제가 될 것이다.

(진중권은 본인의 주장이 '3당합당론'이 아니라고 설명하는데, 그의 주장이 '3당합당론'을 함의하지 않는다면, 진보신당 당대회 수정안도 그 내용 자체로는 '진보신당 독자 존속'을 함의하지 않는다. 따라서 본인이 본인의 주장을 현실정치적으로 요약한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적어도 다른 사건을 요약하는 그의 자세도 부적절함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진중권의 비난은 진보신당 독자존속을 넘어 사회주의 운운으로 나아가고 있기에 그의 칼럼을 '3당합당론'으로 적절하게 요약한 것보다 훨씬 심한 비약을 수반하지만, 이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자.)


수정안 1의 제안 설명을 보면, "민주당과 국참당은 한미FTA와 관련하여서도 지난 정권에서 추진했던 한미FTA는 올바른 정책이었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야권 단일정당 건설을 반대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을 포함하는 ‘연립정부론’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명시하여야만 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참여당이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참여당은 참여정부 시절 진보진영과 정부의 주된 갈등사안이었던 한미FTA와 비정규직 보호법 문제에 대해 민주당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이 당론을 바꾸어 참여당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야당이 스스로 해산하고 민주당으로 포섭되면 안 될 이유가 뭔지 참으로 궁금하다. 
 

북한 3대세습과 핵개발에 대한 반대 선언은 또 어떠한가. 이것이 잘못이라고 얘기하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루트를 받아야 한다.


1) 여러가지 측면에서 볼 때, 북한 3대세습과 핵개발에 대한 '반대' 선언은 경솔한 일이고, 새롭게 건설되는 진보정당의 당론으로 적절하지 않다.
2) 이 문제에 관한 민주노동당의 당론은 원칙적으로, 그리고 대중적으로 용인될 만한 수준에 있으며 통합대상으로서의 이들의 관점이 존중되어야 한다.
3) 따라서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꿈꾼다는 진보신당이 이러한 당론을 채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과연 조국과 진중권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쩄든 통합을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을 변화시키는 것은 포기하고 만만한 진보신당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술취한 분들의 심기를 살피라고 삿대질하는 것일까? 적어도 진중권은 이미 진보신당을 탈당한 입장에서도  민주노동당이 세습문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이정희 대표의 입장 표명의 논리적 모순을 꼬집었던 것으로 안다. 공당이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을 권리를 내세울 수 없다는 그의 이정희 비판이 합당하다면, 그는 새로운 진보정당은 '사당'이 되어 대중들의 질문에 침묵해야 한다고 믿는 것일까?


적어도 '국민'과 '대중'의 명령을 논거로 진보신당에게 민주노동당으로의 통합을 명령하는 저 정치평론가들은 당신들이 믿고 따르는(??) 그 대중이란 사람들이 북한 3대세습과 핵개발에 명백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진보정당을 원하는지, 아니면 이 부분에 대해서 두루뭉술하게 '비판'이란 단어로 넘어가는 진보정당을 원하는지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수정안 3의 제안 설명도 '대중'을 호명한다. "새로운 진보정당건설을 위한 대상은 단지 민주노동당만이 아닙니다. 민주노동당 외에 여러 주체들이 있고 이를 지켜보는 대중들이 있습니다. (...) 그동안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당의 차별성은 보여 주지 못해 왔습니다. 진보정당이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북한의 핵개발과 3대 세습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고 더 나아가 진보정당이 지향하는 사회가 북한식 사회주의가 아닌가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국가(한국 정부)는 다른 국가(북한)가 문제가 있다고 반대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정당(진보정당)은 달라야 합니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계 구축을 위한 실질적인 대화는 우선 각자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에서 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명한 입장을 바탕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의 실현을 위해 어렵고 고단한 과정이지만 쉼 없이 수행해 나가는 것이 진보정당의 의무이자 사명입니다."


물론 나는 국민이나 대중을 시도 때도 없이 호출하는 것을, 더구나 그들의 '명령'을 자의적으로 추출해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체 어느 쪽 '대중'의 명령이 올바르다는 판단을 넘어, 저 정치평론가들의 요구가 철저히 이중적이고 자기편의적이란 점은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조국은 비상당대회 운운하고 있는데, 막 당대회가 끝난 시점에 비상당대회를 요구하는 거야 말로 내 마음에 안 드는 결론이 나왔다면 재론해야 한다는 패권적 행태가 아니겠는가. 물론 당이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고 파행적 상황이 오면 비상당대회를 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겠으나, 정말이지 '비상당대회'를 적극적으로 요구할 의사도 없는 사람이 외부에서 "비상당대회 없으면 파행된다."고 엄포를 주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다.


진중권은 당대회 안건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사회주의 운운하고 있는데, 이 당대회의 안건내용이 사회주의 정당인지 사민주의 정당인지 표결내리는 상황이었다면 그나마 그 주장이 맥락을 가졌겠다. 사민주의 정당을 독자존속시키려는 노력을 극좌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과 동치시키는 이 어법은 과거 노무현 지지자들이 민주노동당에 대해 늘상 쓰던 것이다. 그 '고장난 축음기'들의 맹점을 통렬하게 지적하던 진중권이 스스로 그런 입장에 서게 된 것은 몹시 황당한 일이다. 사람의 생각이 바뀔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바뀌었다면 적어도 자신의 진보신당 지지, 더 나아가 과거 '비판적 지지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욕설'이 '오류'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오류 인정까진 아니더라도 성찰은 해볼 수 있을 듯한데, 진중권은 과거의 자신도 현재의 자신도 성찰하지 않은 채 트위터의 독설이 기사화되는 것이나 즐기는 게으른 정치평론가가 되고 말았다.  


정치평론가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진보신당 내 통합파들이 선거 결과에 당혹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렇게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독자파라 불리는 사람들도 전국위원회에서 확정되어 제출된 원안에 대해 '대략 만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위에서 보다시피, 원안 역시 진보정당의 정체성의 훼손이나 맹목적인 진보대통합을 용인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통합파들은 독자파들이 이미 합의된 사안에 대해서 치밀하게 계획하여 정치적으로 비열한 술수를 써서 자신들의 뒷통수를 때렸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한편으로 독자파들이 자신들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마추어적으로 수정안을 밀어붙여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발생시켰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두 비판은 양립불가능하지만, 굳이 사태를 판단한다면 전자보다는 후자가 현실에 가깝다. 


독자파는 지금껏 '권력을 쥔' 통합파를 비판해 왔지만 이번 당 대회에 이르러 그들 스스로 당을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시험대에 오르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준비되어 있지 않기에, 새로운 대표단을 구성하자는 식의 더욱 강도높은 정치적 요구로 나가지 못하고, 예기치 않게 깨져버린 당내 균형을 어떻게 복원시킬지에 대해 전전긍긍하는 듯하다.


독자파가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하여 어떻게든 2012년 이후에도 진보정당 운동이 존속하게 될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길에 별다른 전망이 안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3당통합이나 연립정부가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의 길이라고 우기는 것은 그 암울한 현실에 대한 대응방책이 아니라 그것을 회피하고 안락사의 수면제를 먹는 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마 이 길을 이탈하거나 한 세대의 한 운동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볼 수는 있을 것이다. 혹은 집단 이탈을 통해 더 깔끔하게 정리되는 길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런 점에선 진보정당 운동의 실패 내지 파산을 전제로 하고 시작하는 주대환의 '민주당 결집론'이 저 우왕좌왕보다는 더 깔끔하다. 


사실 진중권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조국의 경우 진보정당 운동이 망하니 마니 그딴 것엔 관심이 없을 것 같다.(그가 말하는 '진보'의 외연이 '진보정당'이라고 말할 때의 '진보'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에) 그의 경우 그저 야권연대의 성사를 위해 진보신당을 번제물로 바쳐 불쏘시개로 만드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진보신당의 지향이나 존속 따위는 전혀 문제될 것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목적에 비추어 봐도, 그러니까 2012년 선거연대를 위해 진보신당-민주노동당 통합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지나치고 쓸데없는 곳에 힘 빼는 한심한 행동에 불과하다. 다음 글에서는 이 지점에 대해 논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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