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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마지막 순간

조회 수 5679 추천 수 0 2011.03.23 19:05:37

진중권 : 불임 진보에 관하여


한 줄 요약. "앞문의 늑대를 뒷문의 호랑이를 불러와 제어한다."


대충 요즘 나도는 말들을 요약하자면 이렇게 되는 것 같다.


이상이 : 민주당이 유럽식 복지국가를 추구한다면, 하나로 합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진중권 : 국참당이 유럽식 복지국가를 추구한다면, 함께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전건이 올바르다면 말이다. 가령 내가 혁명주의자는 아닌데, 한국 사회가 좀 더 왼쪽으로 가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한나라당이 유럽식 복지국가를 추구할 때,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더구나 "...추구한다면,"이라는 조건문은 어느 순간 "...추구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라는 당위명제로 바뀌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즉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을 견인하기 위해,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견해의 밑바닥에 깔린 전제는 민주당 밖에서 혹은 통합없이 진보정당이 정체성을 가지고 존속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럴수도 있다. 멀쩡하게 데이터를 가지고 얘기하던 사람들이 이 영역에만 넘어오면 "진보정당의 독자존속이 가능할리가 없다." vs "민주당의 좌향좌가 가능할리가 없다." 수준의 말싸움으로 퇴화하는게 안쓰럽지만 말이다. ( 2011/01/15 - [정치/메타-비평] - 정치평론에서의 초월적 논증 )
그런데 나는 그 이전에 정체성에 관한 합의라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무슨 말 하는지 보고 싶으면 대충 이런 글들을 참조.
2011/02/23 - [정치/조소] - 진보신당의 쩌는 위엄
2011/02/13 - [정치/정당] - 진보신당, 생존의 방법은 없는가?
'통합파 민노당원'이 쓴 다음의 글도 볼만하다.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던 것을 쉽고 평이하게 정리했다. - 그가 내글을 봤을 거라는 얘기는 아니고. 조성주 : 통합, 지지하나 떨림도 설렘도 없다 )


시간이 없어 쓰지 못하는 포스트로 <개혁당, 마지막 순간>이란 제목의 구상이 있다. 열린우리당이 탄생하면서 몰락의 길로 들어선 개혁당에 대해, 나는 민주노동당원인 당시에도 안타깝게 생각했고 훗날 당시의 상황에 대해 당시의 구성원들에 대해 취재할 기회도 있었다.


그때 인터뷰에 응했던 사람 중 하나는 막 국회의원이 된 유시민이 개혁당을 해산하고 열린우리당에 재입당하자는 안건을 올렸을 때 그를 따라 열린우리당으로 갔던 사람이었다. '개혁당 실험'을 접은게 아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심정적으로는 (개혁당) 사수파에 가까웠다. 하지만 당시에 열린우리당으로의 합류를 주장한 사람들이 훨씬 신망이 있고 능력있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사수파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신망이 있고 능력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의견이 나뉘어서 일부는 사수파를 지지했다면 더 고민했을 거다. 어쩌면 사수파를 택했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런 사람들이 모두들 열린우리당으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내가 뭘 선택할 수 있었겠나."


나는 인터뷰하는 입장에서 그의 말에 반박하거나 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엔 이 말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자신이 소속한 정당의 진로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대세'나 견해를 찬성하는 이들의 인적구성을 보고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신망 있고 능력있어 보인다고 믿었던 그 사람들이 정치지형도를 판독하는 탁월한 능력 때문에 열린우리당 행을 택했는지, 아니면 똑똑한 사람들 특유의 이기심 때문에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그후 벌어진 사건들을 통해 '개혁당 독자생존'이 불가능했던 건 바로 그런 사람들이 모두 열린우리당 행을 택했기 때문이며, 그런 그들조차 몇년 후에 열린우리당 안에서 패퇴했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4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한 정당의 마지막 순간을 보고 있는 지금,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인터뷰한 시점은 개혁당의 열린우리당으로의 합류가 결정된지 4년, 그후에도 잠시 법적으로 존속했던 개혁당이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후로는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그는 그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처럼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의 성찬을 벌이며 한 정당의 마지막 순간을 장식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오늘날 현실사회주의 체제의 몰락 이후 남한 사회에서 진행된 합법적이고 대중적인 진보정당 운동의 명맥이 끊겨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 지금의 진보신당은 당시의 개혁당보다도 작은 정당이지만, 개혁당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던 역사의 두께가 1년 남짓이라면, 진보신당의 어떤 구성원들은 10년 이상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심지어 '촛불당원'이라 하더라도 3년이다.)


그러나 그 애상이 어쨌든, 일이 잘 안 되어서 패퇴하는 거라면 그냥 하다가 안 되어서 접었다고 말할 일이지 이제는 이게 진보라고 주장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주장하려면 본인들이 노무현-유시민에게 했던 그 많은 '욕'들은 주워담고 수습하고 떠나야 할 것이다. 이건 국참당이 노무현을 계승하고 있다는 수준의 단순한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2003년에서 2004년 무렵 노무현 지지자들이 말했던 바로 그 방식을 어떤 사람들이 답습하고 있다는 수준에서 하는 말이다. 개혁당이 망할 때 그냥 떠나버린 사람들은 그후 참여정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나, 함께 열린우리당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본인들의 부채감 때문이라도 그후의 경로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냥 손털고 일어나면 뒷 사람들이 무언가 할 가능성이라도 존재하지만, 지금의 경로는 뒷 사람들이 뭔가를 시작하더라도 이제 다른 길을 택한 앞 사람들이 '그건 진보가 아니'라며 방해할 가능성이 큰 길이다. 이른바 유시민의 길.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문성근의 말이 옳다. 국참당과 함께 할 수 있는데 민주당으로의 합류는 왜 생각할 수 없는가?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냥 국참당의 사이즈가 작다는 정치공학적 이유 밖에는. 요즘 나오는 말만 따진다면 유럽식 복지국가의 길에는 국참당보다 차라리 민주당이 더 적극적인 것 같지 않은가?

빅텐트론이나 야권단일정당을 말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제3지대론자들보다 훨씬 제대로 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참당은 민주당 내부에 존재해야 할 세력이 바깥으로 나와 정치판을 어지럽히고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굳이 국참당의 존립근거를 따진다면, '호남 배제' 정서까지도 느껴지는 허구적인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구호와, 진보정당들의 생존엔 필수적이지만 민주당과 같은 거대정당들에게선 작동할지 의심스러운 '진성당원제'라는 제도의 함의 밖에 없다. 전자는 열린우리당에서 실패했고 후자는 그들이 개혁당 해산과 열린우리당 내 기간당원제 철패를 통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던져버린 것들이다. 민주당과 왜 따로 존재하는지 설명하지도 못하는 정당과의 통합에 무슨 희망이 있나. 차라리 민주당에 그냥 투항하는 쪽이 낫겠다.


물론 '사이즈'도 연합대상을 선정하는 논거가 될 수는 있겠으나, 결국 사이즈로 대상을 선정하는 건 그렇게 셋이 모여 사이즈를 불린 다음 이제는 민주당과 대등한 협상이 가능하니 민주당에 합류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라도 해야 조금 말이 되지, 그렇게 셋이 합쳐서 민주당과 맞서겠다는 건 그냥 명분이 없는 권력투쟁일 수밖에 없다. 나는 빅텐트론 자체가 죽일 짓이라 말할 생각은 없다. 그건 선택가능한 하나의 옵션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제3지대론이 갈 수밖에 없는 다음 길이라면, 그 주장이나 선택의 함의를 다 드러내지 않고 가려두는 것은 치사하거나 게으른 일이다. 특히 제3지대론이 빅텐트론보다 뭔가 더 진보적이고 진보정당 운동이 존속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옵션이라고 믿는 태도는 더욱 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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