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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친노와 진보신당

조회 수 5880 추천 수 0 2010.05.16 19:24:55

(나를 포함한 소위) 진보들은 노무현이 참여정부 때 펼쳤던 정책들이 서민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고 믿는다). 진보들은 참여정부 시기에 분신하고 자살하고 맞아죽었던 노동자나 농민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노무현은 서민을 위해 노력했으며, 기득권 세력의 방해를 받았고, 주류가 아니었기에 끝내 목숨을 던져야 했던 비극적인 사내다. (이 사건의 비극성에는 나도 동의하는 바다.)


진보들은 한명숙이 국무총리 시절에 했던 일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명숙이 친노라는 것과 최근에 검찰의 부당한 수사를 받았다는 사실만 기억한다. 진보들은 노무현의 매력을 기억하면서도 유시민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노무현의 매력과 노선이 유시민에게로 전이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무현=유시민'이란 점을 생각할 뿐이다.


2008년 촛불시위라는 축제의 탈진과 2009년 전 대통령 서거라는 비극의 화학적 결합 속에서 오늘날 진보를 줄곧 입에 담았던 세력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다. 몇 년 전엔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구호만 나오면 '꼴통 진보' 취급을 하던 사람들이 그 구호를 쓰면서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꼴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진보'나 '좌파'에 되도록 거리를 두려고 했던 이들이 스스로를 진보라고 심지어는 좌파라고 자임하는 꼴을 바라볼 뿐이다.


나쁜 일은 아니다. 일관성이란 것은 학문과 비평과 글쓰기의 미덕일 수는 있어도 정치의 미덕일 수는 없다. 4대강 사업을 일관성있게 추진하는 것이 미덕은 아니듯이 말이다. 세종시 문제 같은 것은 다른 차원이긴 한데, 일관성보다는 절차에 대한 존중의 문제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경우에 친노세력이 과거에 추진하지 않았던 무상급식이나 로컬푸드 등을 입에 담는다고 해서 그걸 규탄하는게 의미있는 일은 아니라는 거다.


할 수 있는 말은 이런 것일 거다. '과거에도 그들은 약속을 하고 당선됐다. 하지만 집권기간 동안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다. 믿어서는 안 된다." 타당한 면이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일관성의 문제는 아니고 진정성과 의지의 문제일 거다. 그런데 친노가 과연 예전과 같은 통치방식을 택할지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있다. (지금은 지방선거고 여전히 대선은 박근혜의 우위가 점쳐지긴 하지만) 만일 친노가 통치한다면 검찰에 대해 참여정부 때와 같은 태도를 취하진 않을 거다. 삼성 문제 역시 그렇다. 2002년이 아니라 2012년에도 그들이 '개혁'의 이미지를 고수하려 한다면 그들은 삼성에 대해서도 조금은 다른 태도를 취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것들은 하나의 추측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의 언술로 보건데 '노동을 배제하는 정치'의 틀을 바꾸지 않을 거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소위) 진보들의 존재근거도 여전히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확실한 것은 '과거의 친노의 행태'를 통해 '지금의 친노의 정체성'을 공격하는 비판 방식이 설득력이 없을 수 있다는 거다. 물론 그들은 공개적으로 참여정부의 통치행위의 그 무엇에 대해서도 반성하는 바가 없다. 하지만 그건 '반성'행위 자체가 참여정부의 개혁적 이미지를 유지시키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실제로 같은 방식으로 통치할 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서민을 내세워 당선되었고, 서민생활을 개선하지 못해 패배했지만, 복지제도와 이전 정권이 만들어낸 모든 체제를 날려버리는 정권을 겪고 그 역풍을 입었으니 다시 집권하면 저번보단 좀 더 과격하게 무언가를 하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


당연히 아닐지도 모른다. 유시민은 선거 때에만 진보들의 정책과 수사를 빨아들여 한나라당과 각을 세운 후, 집권하면 예산이 어쩌니 현실이 어쩌니 운운하면서 한나라당보다 두발자국 정도 왼쪽 걸어가고 밍기적 거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다시 성큼성큼 열걸음 오른쪽으로 걸어갈 지도 모른다. 친노세력이 교조적 진보가 못 되고 현실적이고 상식적이며 얌체같은 보수세력인 탓에 한국 사회는 계속 극우의 길로 치닫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그런 일은 가능성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일어나야 의미가 있다. 그래야 진보세력 자신의 성장이나, 그 성장으로 인한 민주당-친노세력에 대한 좌파적 압박이 필요함을 역설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가능성과는 상관없이 친노벨트란 것들의 승리를 바란다. 지역토호 밖에 안 남은 민주당 내부에선 더 나은 세력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후보 사퇴해달라고? 안 되지... 너희들이 잘 해도 진보는 필요하고 너희들이 사기를 치면 진보는더 필요한데, 한나라당이 집권할 때마다 뿌리를 파서 갖다바치라고 하면 한국 사회는 영원히 이 수준에 머무르냥 얘기냐 그건 안 되지...... 니들이 잘해서 뺏어가야지......


이와 별개로 진보신당의 지리멸렬함에 대한 비평은 가능하다. 진보신당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선거국면에서 당의 전략/전술이 총체적으로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국위원회에서 독자노선 결의하고 당대표는 진보대연합을 천명한 가운데 당은 5+4연대 테이블에 앉았다. 부산시당은 5+4연대 파탄 후에도 절차적 흠결을 무릅쓰며 민주당 후보 지지를 천명했다. 울산시당에선 선거 협상의 실패로 민주노동당에 고사를 당할 지경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지역 사정에 따라 진보대연합이나 민주대연합을 천명하는 전술적 기동들이 불균질하게 일어났다. 충남도당 후보는 당이 민주대연합과 결별하지 않는 것에 반대한다면서 후보직을 사퇴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다.


구체적으로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첫번째로 5+4 연대에 애초에 들어간 것이 무원칙한 선거 연합 전술의 난립을 부추겼다는 면이 있다. 두번째로 당의 역량에 걸맞지 않게 지나치게 많은 선거구에 출전하려고 했다는 문제가 있다. 나도 5+4 연대 초기에는 이 연대의 구성에 분개하면서도 일단은 협상을 해보고 요구가 무리할 때 나오는 것이 방책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그 생각이 틀렸던 것 같다. 사람들이 단일화를 지고지선한 가치로 상정하고 협상결렬의 책임을 진보신당에게 떠넘겼다는 문제도 있지만, 이 테이블에 참여했기 때문에 진보신당 구성원들도 민주대연합이나 진보대연합을 선택가능한 옵션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무원칙한 선거전술의 난립이었다. 전국위원회의 결의는 실종되었고, 당 지도부는 일관성 있는 선거전술을 위한 통제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두번째 문제 역시 중요하다. 진보신당의 구성원들이 민주대연합이나 진보대연합에 대한 유혹을 느낀 이유는 간단하다. 완주할 돈이 넉넉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도대체 왜 이렇게 무리한 출마계획을 세웠는지가 문제가 된다. 물론 생존을 위해서였을 거다. 일정 기간 내에 어느 정도 입지를 점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 그래서 활동가들과 당원들의 전적인 희생과 결의를 바탕으로 한 무리한 선거계획을 세웠을 거다. 하지만 특히나 앞으로는 그런 희생이 잘 이뤄지지도 않을 거고, 그보다 그런 희생을 바탕으로 해서 선거 결과가 잘 나올 가망도 별로 없다. 진보신당은 앞으로 확장형 생존전략이 아니라 내실형 생존전략을 세워야 할 것 같다. 감당할 수 있을 크기의 일만 벌이는 것이, 어쩌면 이 한정된 당원과 지지도와 재화를 가지고 오래 버틸 수 있는 길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무리한 선거를 벌이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민주노동당과의 관계 문제일 것이다. 매우 잘 되면 민주노동당을 억누르고 진보정당의 대표가 될 수 있고, 적당히 잘 되면 후에 통합하더라도 지분협상에서 유리할 것이며, 선거가 망하면 민주노동당에 흡수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선수'들의 위기의식이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을 흡수병합할 의사도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을 절멸시킬 생각이다. 진보신당 구성원 중 민주노동당에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분당은 잘못된 일이었습니다."라고 무릎을 꿇고 반성문을 쓰면 민주노동당에서 받아줄 일이다. 사실은 민주노동당이 결국 분당된 이유조차도 NL들의 그런 단호함 때문이 아니었던가. 폭력남편은 매맞는 아내가 가출하자 정말로 영혼의 상처를 받았던 모양이다.


진보신당은 이번 선거에서 가장 참혹한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 같다. 당 존립이 불투명할 정도의 참패일 것이고, 당 개편에 대한 여러가지 얘기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만 돌아갈 곳이 없다는 현실인식을 공유하고 당의 존재의의에 대한 원칙을 다시 새기고 그 풍파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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