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원문주소 : http://j.mp/dhBZvs (댓글을 보려면 클릭)


'반MS(문수) 단일화',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정
- 유시민과 심상정의 대립을 보는 한 진보신당원의 소견
 



나는 진보신당 당원이다. 내가 진보신당원의 입장으로만 이 글을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찝찝할 것 같다. 며칠 전의 딴지일보 야간분만  토론회에서 오간 후보 단일화 논의에 관련하여, 진보신당의 처지와 어려움을 설명하는 것이 이 글의 일차적인 목적이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무현 정신 계승’을 말하는 분들에 게 내가 가지고 있는 의구심도 설명이 될 것이다. 서론은 이만하면 됐다. 



야간분만에 대한 불만


나는 야간분만 토론회를 시청한 6만 명 중의 한사람, 그러니까 6만분의 1이었다. 그 6만분의 1의 평가를 보태자면 토론회는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딴지 스타일’의 질문톤이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이야 기존의 토론회와 구별되는 개성이라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불만스러웠던 근본적인 부분은 이 토론회가 후보자들 간의 ‘차이’를 채 드러내기도 전에 서둘러 ‘ 봉합’하려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는 거다. 토론회의 초반 질문들은 천안함 사태나 독도 문제 등 현 정부의 태도만 비판하면 그렇게 답이 다를 수가 없는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URINARA -(MINUS) MB=100'. MB정권만 빼면 동질적인 공동체인 ‘우리나라’가 유지가능하다는 그런 환상을 강화하려는 질문들인 듯 했다. 토론회를 사실상 주도한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 역 시 그런 논지(혹은 정서)를 강화해 나갔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근본적으로 김문수와는 다르고, 우리끼리는 별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얘기를 하기에 급급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토론회는 별 필요가 없게 된다. 별 차이가 없는 사람들끼리 해야 할 일은 서로의 정견을 맞부딪혀 보는 ‘토론’이 아니다. ‘후보 단일화’다. 그것이야말로 이 토론회 의 진정한 주제였다. 토론회를 열띠게 한 것은 경기도에 대한 정책공약도 아니었고, 자신이 바라는 대한민국에 대한 비전도 아닌, 오직 ‘후보 단일화’ 문제에 관한 갑론을박이었다. 토론이라 면 너무 서글픈 토론이었다.


후보자 간에 ‘차이’가 없다면 후보들이 난립하는 이유는 후보 개인의 ‘이기심’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유시민이 “자신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제가  하고 싶으니까요. 여기 있는 여러분들도 모두 그런 것 아닌가요?”라고 답변한 것은 참으로 탁월하게도 그 지점을 공략한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 어떤 종류의 냉소주의를 흩뿌리면서 그 것을 ‘잘 알고 있는’ 자신의 매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후보가 난립하는 이유가 ‘이기심’ 때문이라면 이제 남는 것은 그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는 ‘도덕성’을 기르는 것일 게다. “포 기할 수 있으십니까?”라는 질문 앞에서 후보들은 자신의 도덕성을 증명해야 했다.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는 그런 틀에 포섭되지 않고 자신의 차이를 말하려고 애썼지만 이 프레임에서는 그것  자체가 본인의 ‘이기심’을 드러내는 행위일 뿐이다. 그녀는 논쟁을 ‘분만’하기 위해 애쓰다 유시민이 냉소적 농담이나 던져서 좌중을 웃기는 분위기 속에서 ‘분위기 모르고 중뿔나게 싸우 려고 설치는 드센 여성’의 이미지만 돌려받았다. 당원의 입장으로도 토론회의 컨셉에 적응하는 심상정의 순발력이 아쉬웠던 부분은 있지만 토론회가 이래서야 될까 싶었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토론회만 봐도 이렇지가 않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려 하고 상대방 후보의 정책을 공박한다. 하물며 이념과 노선이 다르다는 제 야당의 후보들 이 모여 토론을 하는데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MB 싫어’ 이외의 가치들에 대해 논쟁을 하기 싫다는 의미일 게다.


무슨 분란을 의도적으로 일으키려고 “차이, 차이, 차이!”를 외치는 게 아니다. 갈등은 진보신당의 이기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기본적으로 존재한다. 진보정당 지지자 뿐 아니라  정당정치의 발전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그 갈등이 의회정치 안에 재현되는 것, 그리하여 그 갈등이 좀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철거민이 신나와 쇠구슬을 가지고  망루에 오르지 않더라도, 노동자가 물리적으로 공장을 점거하지 않더라도, 여의도 안에 이쪽 편과 저쪽 편의 대리인들이 있어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그럭저럭한 타협안이 나올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온다면 망루 위의 철거민이 경찰특공대의 무리한 진압 때문에 죽을 이유도, 파업에 냉대한 세상에 절망한 노동자의 가족들이 자살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지금껏  겪어왔던 대선 중에 2002년 대선이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이회창이 ‘엘리트’의 역으로 플레이하고, 노무현이 ‘서민’의 역으로 플레이한 그런 게임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정치란 건 기본적 으로 그런 갈등이 재현되는 게임이라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 시절에도 노동자와 농민은 분신하고 있었다. 물론 참여정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을 수도 있고, 사례별로 따지면 시위대의 주장이 그릇되었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세상은 겨우, 공권력이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 때 교양있는 대통령이 정중하게 사과하는 그러한 세상인가? ‘사과하는 노무현’과 ‘사과하지 않는 이명박’의 대립항  속에서 우리의 정치는 사회에 존재하는 어떠한 갈등도 무시하고 닥치고 대동단결하여 일단 ‘노무현 시대’로의 회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정말로 그게 올바른 길인가? 원칙적으로도 그러 하고, 정치공학적으로도 그러한가? 


유시민은 단일화 논의과 관련해 우리의 정치지형도가 87년 이전으로 복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87년 6월의 민중항쟁이 7-8의 노동자 대투쟁과 결별하게 되면서 자유주의자와 진보진영의  분리가 시작되었다는 그의 통찰은 적절한 것이기는 하다. 문제는 그 분열이 눈만 감으면 지워지는 것이냐는 거다. 유시민은 한미FTA에 찬성하고, 심상정은 한미FTA에 반대하는데, 이것이 눈만  감으면 지워지는 것이냐는 거다. 이명박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는 2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 다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을 말하지만, 참여정부 시절 손배가압류 때문에 자살 하고 정부의 농업정책에 대해 반대시위하다가 맞아 죽은 사람도 있는데, 유시민이 토론회에서 ‘상주’를 자처하는 동안 아무도 그들의 죽음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저 토론회의 화기애애 한 분위기는 이렇게 철저한 망각과 배제 속에서야 완성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무능하다는 것이 민주당에 대해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7년의 민주당은 분명히 국민의 신망을 잃은 집단이었는데, 이제는 그때의 선거 결과에 대해 ‘국민의 잘 못된 판단과 조중동의 세뇌’만 얘기하면 되는 지경이 되었다. MB가 얼마나 특출나게 행동하는지만 말하면 되는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구도로는 2012년 대선도 어렵다. MB를 아무리 욕해 봐야, 그는 어차피 헌법이 정한 임기를 채우면 떠나갈 사람이다. 지금의 정치논쟁 구도로 보면 박근혜가 1) 4대강 원상복구 2) 세종시 원안 추진 딱 두 가지만 들고 나오면 민주당은 절대로 못  이기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민주당이 그것과 다른 것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야 현 정권에 대한 견제론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대선에서도 그것이 통하리라는 보장 이 없다. 이런 고민들을 하고는 있는 걸까?
 


노회찬과 심상정이 기초자치단체장 선거로 못 내려가는 이유는?


그날의 토론회가 배제한 것들을 이끌어내기 위해, 나는 이제부터 가정법을 사용하겠다. 딴지일보의 독자들이 대개 내 글에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노무현  시대로의 회귀’가 한국 정치를 위한 길은 아니라는 나의 믿음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정당이 진보신당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할 수 있을 거다.  우리가 그런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실판단의 문제이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정당의 대표적인 정치인이라고 치고, 이런 시국에서 뭘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잠깐이라도 고민해 보시라. ‘이기심’이란 게 없다고 구라치려는 게 아니다. 어떤 ‘신념’이 그 ‘이기심’을 정당화하고, 또한 절박하게 만드는지를 잠깐이라도 보라는 거다. 


어떤 분이 딴지일보에서 그러더라. 노회찬이 노원 구청장으로 내려가고, 심상정이 고양 시장으로 내려가면 어떻겠느냐고. 굳이 기원을 따지자면 이 담론(?)은 2002년 서울시장 지방선거를 두고  펼쳐진 강준만-진중권 논쟁으로 소급된다. 강준만이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 이문옥에게 구청장의 길을 권유하자 진중권은 흥분해서 길길이 날뛰었다.


나는 당시의 진중권과는 달리 그렇게 말한 사람들의 선의는 신뢰하는 편이다. 오히려 문제는 이 방책이 진보신당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뽑을 수가 없는 패라는 데에 있다. 그 사실 자체가 좌파 세력의 무능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 무능을 전제조건으로 하여 출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좌파세력은 지역조직이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선거라는 국면에서 얘기하자면,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사실 한국사회에는, 출신지역을 배경으로  한 두 거대정당의 조직을 제외하면, 지역조직이랄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초자치단체의원들의 인적사항을 보면 ‘학원장’인 경우가 꽤 많다. 돌려 말하면 학원장이 지역에서 학부모나 학생 들과 만나서 쌓는 인맥 이상의 것을 만드는 지역조직이랄 게 없다는 뜻이다. 좌파 활동가들 중에서도 학원장 출신으로 지역에서 기반을 다진 경우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회찬이 노원으로, 심상정이 고양으로 하방하는 책략의 정치적 효과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그곳으로 내려가더라도 두 사람은 낙승을 예상할 수 없다. 조직은 존재하지 않고,  지금 흘러나오는 말이 어떻든 민주당 후보가 알아서 선거를 포기해줄 가능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설령 한나라당 후보와 1대1 구도로 가더라도 지역민이 1번 후보와 저 아래 순번 후보 사이에서  무슨 선택을 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만약에 질 경우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패배한 것보다도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사람들의 인식에서 ‘급’이 떨어지는 치명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진보신당 입장에선 어떠한가. 노회찬이 서울을, 심상정이 경기도를 ‘커버’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진보신당 입장에서는 정당투표 획득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진보신당은 영호남으 로 내려가면 존재감이 희미하고, 그나마 수도권에서나 느슨한 지지층이 있는 정당이다. 진보신당의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는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어떻게든 당의 존재를 각 인시켜 비례대표 시/구의원 한 두명이라도 건지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지역정치를 포기하고 중앙정치의 ‘공중전’을 벌이는게 아니라, 노회찬 심상정이 ‘공중전’이라도 벌여야 지 역정치의 기회를 얻는 거다. 노회찬과 심상정이 기초자치단체로 내려간다는 것은 진보신당으로서는 홍보전력의 95%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다음부터는 아무 대책이 없다.


좌파들에게 노회찬의 노원구청장 행과 심상정의 고양시장 행을 선택할 정도의 지역조직의 기반이 있었다면, 2008년 총선 때 노회찬과 심상정은 패배하지 않고 여의도에 입성했을 것이다. 좌파 들은 한국의 정치인들이 흔하게 가져가는 지역의 아우라를 사용하지 못한다. 사용해서도 안 된다. 울산이나 창원이라는 지역기반은, 노동조합의 것이지 지역주의가 작동한 것은 아니다. 민주노 총이란 조직이 결의했을 때 겨우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이 가능했던 이유도 다른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대기업 정규직 남성’의 한계 안에 갇혀버리자, 좌파들은  그것을 벗어나야 한다 벗어나야 한다 말로는 떠들면서도 아직도 그 바깥의 세상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창당 때부터 ‘진보의 재구성’이란 표어를 내세운  진보신당조차도 그렇다.


노회찬 심상정과 함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던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경우는 행복한 경우다. 그는 농민회 출신이고,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며 활동했던 기반이 있다. 그리하여 그는 비 례대표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경남 사천에서 농민들을 대상으로 수천 번 공청회를 개최했고 그 결과 2008년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었던 것이다. (물론 친박연대의 도움도 있었다.)  2008년의 노회찬과 심상정은, 냉소적으로 말하면 선거에 임박해서 ‘만만해 보이는’ 지역구를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심상정은 그나마 출신지에 가까운 지역구를 골랐고 노회찬은 연고가 전혀  없는 곳에 가서 “내 아버지는 노씨이며 어머니는 원씨이기 때문에 나는 노원의 아들”이라는 궤변(?)으로 겨우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 모두 지금은 지역에 연구소를 설립하여 지역사회 활동 을 한다. 처음 지역구를 고를 땐 ‘선택’이었겠지만 이제는 이미 그 지역이 ‘너는 내 운명’이 되었다. 두 사람의 정치적 시계는 아마도 2012년 그 지역구에서 여의도로 복귀하는 것에 맞춰 져 있을 것이다. 그런 계획은 두 사람의 이익에도 부합하지만, 진보신당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이런 다급한 플랜 속에서 두 사람의 하방운동이란 것은 설 자리가 전혀 없는 얘기인 것이 다.


가정법이라고 서두에 깔았지만 이쯤이면 여러분들의 입이 근질근질할 것 같다. “너희들이 안 망하고 살아남는 것이 뭐 그렇게 중요한 일이냐.”라고, “너희들의 생존이 한국 사회나 정치의  발달과 상관이 있을 거라고 정말로 그렇게 믿느냐.”라고, 묻고 싶을 것 같다.


나는 오히려 반대로 묻고 싶다. 단일화 자체를 윤리적 명제로 이해하고, 그것을 거부하거나 유보하는 이들에 대한 윤리적 평결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분들은, 당장 내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 당이 해체하는 한국 사회가 지금의 한국 사회보다 바람직하다고 믿는 것인가? 저 규탄의 내용을 따지자면 결국 그런 신념이 없으면 성립을 하지 않을 것 같아 하는 말이다.


물론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선(先) 한나라당 척결, 후(後) 좌우 경쟁”의 정치공학적 단계론을 염불 외듯이 반복한다. 하지만 순전히 정치공학적으로만 봐도 , 민주당의 경쟁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민들이 한나라당을 ‘척결’ 수준으로 몰락시키는 투표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당제 하에서는 분명 그렇다. ‘견제론’은 2004년 탄핵 정 국에서도 한나라당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유지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지금의 민주당이 저토록 지리멸렬하면서도 지방선거에서 좋은 구도를 만들어가는 것도 결국 ‘견제론’ 때문이다. 사람들 이 민주당에게 260석을 밀어준 다음에야 비로소 분화가 시작되고 좌우경쟁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민주당이 홀로 한나라당을 패퇴시키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혼자서는 ‘견제론’을 이겨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좌파정당의 강령이 자기 생각에 비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도, 민주당과 좌파정당 사이에 전선이 형성되는 정치와,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서 전선이 형성되는 정치 중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지를 판단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사라진다는 것은 일종의 ‘기적’이다. 그리고 그 기적은 보수정당과 함께 그 대항마인 진보정당이 함께 성장할 때에야 일어날 수  있는 종류의 기적인 것이다.


그 기적을 위해 노회찬과 심상정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말기로 하자. 1) ‘국민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2) ‘당장 국민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그러니까 진보 정당의 성장과 당장의 ‘반MB 연대’의 요구 속에서, 이 상충될 수 있는 원칙들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도 말하지 말기로 하자. 냉소적으로 접근하더라도 협상이란 상대방 이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줄 때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지금껏 내가 얘기한 진보신당의 사정을 감안한다면, 작금의 상황에서 노회찬이나 심상정의 사퇴는 선거전이 어느 정도 전개된 다음에 야 극적으로 가능할까 말까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홍보’라면, 선거전이 가열되고 그 ‘홍보’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다음에야, ‘선거 완주 포기’를 설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 순간의  후보 지지율의 관계 등에 따라 정치적 협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제 심상정이 ‘선(先) 정책경쟁 후(後) 단일화’를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를 리는 없다. 그런데도 유시민은 ‘차이 ’를 말하지 않고 ‘경쟁’이 없는 ‘맹목적 단일화’가 국민의 요구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나의 경우 뭐가 국민의 요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로 단일화되든 김문수가 쉽지 않은 상대라는  것만을 알 뿐이다. 심상정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진보신당과 그녀의 처지를 고려해야 했듯이, 유시민의 견해도 냉철한 정치평론의 발로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심상정에게 심상정의  입장이 있듯 유시민에게도 유시민의 입장이 있다. 유시민의 곤란함은 스스로 ‘김진표와의 차이’를 당당하게 말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유시민과 김진표는 뭐가 어떻게 다른가?


설령 같은 당 내부에서 벌어진 경선이라 해도 후보자 간의 노선 및 정책공방은 치열하게 전개된다. 2002년 민주당 국민경선 당시를 돌이켜보자. 당시 정동영 후보는 노무현 후보를 ‘극좌’라 고 공박했다. 반면 노무현 후보는 이인제 후보에 대해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더 어울릴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정동영 후보의 발언은 얼척없긴 하지만, 경선을 하면 이 정도 일이 벌어져야  정상이다.


유시민이 경기도지사 선거에 뛰어들기 전, 민주당 내부경선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민주당 비주류측의 주자로 나온 이종걸은 김진표를 거세게 공박했다. 폴리뉴스 인터뷰 내용의 일부를 옮겨보 자면 다음과 같다.


“지금 떠오르고 있는 나의 상대후보(김진표)의 경우 개혁진보세력에는 굉장히 거부감이 강한 분”이라며 “부총리를 두 번 하셨다. 참여정부 초대 부총리를 하고 경제부총리를 하시면서 ‘참 여정부가 개혁경제정책은 포기했구나’라는 사인을 우리한테 줬던 장본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의원은 이어, 김진표 의원에 대해 “사회정책이나 기타 통일정책은 개혁적인 요소들을 했는데, 유독 경제정책만은 대통령 당선될 때부터 실은 포기된 것이구나 하는 사인을 받았다”며 “시 장만능주의적인 입장에서 시장을 바라보려는 생각들, 그리고 대기업들이 요구하고 있는 법인세 인하, 출자총액제도 완화 등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이 의원은 “그런 인상이 깊기 때문에 김문수 지사와 도저히 각이 안 선다”며 “한나라당과 도저히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어렵다는 얘기들이 만연돼 있기 때문에 진보세력으로부터는  완전히 비토를 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렇게 민주당 내부에도 보수파와 개혁파가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논쟁이 이렇게 전개되면 스스로의 정치적 포지션이 드러나게 된다. 김문수와 김진표가 도대체 왜 각이 안 나오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이것과 유시민의 김진표 비판을 비교해보자. 유시민의 발언이다.


"김진표 민주당 최고위원의 여러 정책공약은 지금까지 물질 숭배 쪽으로 일관해 온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정책공약과 차별성이 없다." / "김 최고위원은 교육부총리를 지내기도 했지만 경제부총 리를 했던 전형적인 경제관료 출신으로 살아온 이력도 그렇고 사고방식도 그렇다."


아니 김문수와 별 차별성이 없는 사람을 엊그제 토론회에서는 ‘우리끼리는 별로 다른 게 없다’고 평했던 말인가?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경제관료” 출신이면 김문수와 비슷하게 “물질 숭 배 쪽으로 일관”하게 되나? 상식적으로 따져볼 때 한나라당 경제관료와 민주당 경제관료는 경제철학도 다르고 운용방식도 달라야 민주당의 정체성이 사는 게 아닌가? 경제관료라서 한나라당  비슷한 정체성이라니, 유시민이 이런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운동권(?) 같은 말을 했단 말인가.


김진표는 ‘민주정부 10년’의 경제정책을 대변하는 사람이다. 김진표를 비판한다는 것은 그 10년의 경제정책의 보수성을 성찰한다는 것과 비슷하다. 유시민은 그 지점을 대면하지 않고 에둘러  피해가려 한다. 스스로 책을 내어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옹호했던 유시민은 실은 김진표를 비판할 입장에 있지 않다. 김진표의 경제정책은 비판할 수 없는데, 김진표가 아니라 자신이 적임자 라고 주장하려다 보니 경제관료라서 안 된다는 이상한 얘기도 나오고 우리끼리는 다르지 않다는 얘기도 나오는 것이다. MB비판과 김문수와의 정책토론만을 원하고 내부(?)와의 정책토론을 피한 다는 것은 결국 이 문제를 ‘봉합’하고 넘어가겠다는 의미다.


더 확장해서 말하자면 이는 유시민 뿐만 아니라 참여당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참여당은 ‘노무현 정신 계승’을 천명한다. 그걸 이유로 창당을 한다는 말인즉슨 민주당에선 ‘노무현 정신 계승 ’이 잘 안 되고, 참여당에선 그게 가능하다는 얘기일 거다. 그건 참여당에 참여하고 동의하는 인사들이 민주당 사람들보다 더 개혁적이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할 거다.


정말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유시민이 김진표에 대해 비판할 것이 없다면 참여당이 민주당과 달리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시민이 굳이 대구에서 올라온 이유는 2012년에 더 큰 일을  하려는 계획이 있어서일 거라고 추정되고, 서울이 아닌 경기도를 택한 것은 ‘친노인사’로 분류되는 한명숙을 피해가기 위해서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한명숙을 친노로 만들고 김진표는 친노 가 아니게 만드는 그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고인과의 친분관계라면, 그런 기준 따위는 사라지는 것이 옳다. 고인과 친했던 친노인사들은 삼성과 덜 친했으며, 고인과 덜 친했던 민주당 인사들 은 삼성과 더 친했단 말인가. 따져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친노’니 ‘친노가 아니’니 하는 건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다.


심상정이 ‘참여정부의 공과를 구별하여 계승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현실은 얼마나 웃긴가. 많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진보세력이란 것들도 노무현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노무현의 죽음에 대 해 책임이 있다고 굳게 믿는 현실에서, (사실을 말하면 참여정부가 노동계나 시민사회단체와 갈등을 겪는 그 문제에 대해 조중동이 대통령이나 행정부를 비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들은 언 제나 그 점에 있어선 정부를 옹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망상 속에서 조중동과 좌파는 굳건한 동맹군이 된다.) 자신의 통치기간에 대한 성찰을 하는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난 대통 령 한 사람 뿐이라는 것은 얼마나 슬픈가. <진보의 미래>에는 사실 절절한 구절들이 적혀 있다.


“김대중 ․ 노무현이 진보주의를 배신했다면 배신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었던 것 아니냐”(124쪽) "제일 아픈 게 어디냐 하면 노동의 유연성입니다(211~212쪽)." "우리가 진짜 무너진 건,  그 핵심은 노동이에요. 핵심적으로 아주 중요한 벽이 무너진 것은 노동의 유연성을, 우리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것이에요(232쪽)." "빈부 격차의 원인을 우리나라에서 얘기하면 노동의 유연화 라는 게 굉장히 크게 작용하고 있거든요(249쪽)." “금융이라는 것이 경제에 대한 지배력이 원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운영하는 게 낫다. 투기보다 안 낫겠나? 정부가 운영해라”(243쪽).


만약 노무현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의 통치가 좌파들이 원하는 그런 통치는 아니더라도, 참여정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어떤 것일 거라고 상상하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정신 계승’이란 것은 아마도 고인의 고민이 있었던 그 지점에서부터 다시 시작되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고인의 고민이 아니라 아우라만 승계하여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려는 욕망 에 급급한 이들이 즐비한 세상에서 그런 귀찮은 일은 잊혀질 것이다. 그렇게 ‘참여정부 시기’는 누구나 언급하지만 아무도 논의하지 않는 허망한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중이다. 노무현의  ‘상주’라는 분이 그런 일에 앞장서서 되겠는가? 나는 유시민 후보가 김진표 후보와 자신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명확히 밝히고,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아니라 참 여당이 존립해야 하고 경기도에서 당선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토론을 통해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시민이 그걸 두려워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사실인즉, 그런 과정이 없다면  2012년 대선정국 혹은 그 이후까지 참여당이 존속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보여진다. 현재의 높은 여론조사 지지율을 핑계로 갈등을 피해가는 것은 ‘노무현의 길’이라기보단 ‘이인제의  길’이다. 2002년의 이인제 대세론이 얼마나 허망하게 종말을 맞았는지를 유시민은 기억해야 할 것 같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81 [경향신문] 표만 훔쳐가지 말고 정책도 훔쳐가라 [6] 하뉴녕 2010-05-22 4267
1180 [한겨레 hook] 박용성과 김예슬의 ‘그 대학’에 관한 망상 [5] 하뉴녕 2010-05-22 19486
1179 [레디앙] 심상정, 리사 심슨을 넘어서라 [5] 하뉴녕 2010-05-21 3970
1178 [펌] 어느 진보신당 후보와 유빠 친구와의 대화 [6] 하뉴녕 2010-05-20 2534
1177 [딴지일보] M을 보내며 [7] [2] 하뉴녕 2010-05-20 2072
1176 [프레시안] '승부 조작' 프로게이머 욕하기 전, '현실'을 봐라 [28] [1] 하뉴녕 2010-05-18 5296
1175 친노와 진보신당 [27] 하뉴녕 2010-05-16 5880
1174 [레디앙] 미안하다, 조선일보! 우리가 무능해서... [9] [2] 하뉴녕 2010-05-14 8094
1173 [펌] 열정 / pain (스타리그 관련 글) [18] [1] 하뉴녕 2010-05-13 2681
1172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 개소식 연설 [4] 하뉴녕 2010-05-11 3405
1171 파리 쫓는 기계 file [21] 하뉴녕 2010-05-10 5845
1170 "방 있어요?" 행사 포스터 file [9] 하뉴녕 2010-04-30 4867
1169 도대체 어떻게 ‘진보’하란 말인가? [32] [4] 하뉴녕 2010-04-30 8152
1168 구대성의 쩌는 위엄 [6] 하뉴녕 2010-04-28 2749
1167 4월 부동산 동향 보고서‏ (김대영) 하뉴녕 2010-04-28 2743
1166 꼴지도 행복한 교실 : 독일 교육을 거울로 들여다보는 한국 교육 [30] [2] 하뉴녕 2010-04-26 5125
1165 민주세력의 음란한 판타지 [17] [1] 하뉴녕 2010-04-24 5676
1164 [딴지일보] 야권연대 파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9] [2] 하뉴녕 2010-04-22 3674
» [딴지일보] '반MS단일화',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정 [37] [1] 하뉴녕 2010-04-19 6047
1162 홍콩여행 20100304-20100308 (중) file [4] 하뉴녕 2010-04-19 3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