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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인간 노무현을 애도함 (1)

조회 수 896 추천 수 0 2009.05.29 23:22:22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첫번째는 나랏님이 돌아가셨다는 전근대적인 관념이다. 주로 분향소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여주셨다. 이 분들은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였을 적에도 줄을 서서 추모를 하셨던 분들이다. 사실 나랏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세상이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도둑이 날뛸 것이다. 혼란이 치유되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거기에 정작 나의 의지는 개입할 구멍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저 나랏님의 죽음을 애도할 수 밖에. 이것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두번째는 착한 정치인의 죽음에 대한 애석함이다. 그가 나쁜 정치인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이러한 애석함은 정도를 더한다. 확실히 노무현은 교양있고 착한 정치인이었다. 그의 지적 수준과 인격은 동업자들 사이에서는 물론 소위 친노그룹에 속한 정치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었다. 100년 이내에 이런 대통령은 또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다. 나는 정치학을 잘 모르지만, 어쨌든 정치학 교수들은 수업시간에 종종 politician과 statesman의 구분을 말한다. 전자를 경멸어의 일종으로 본다면, 노무현은 어쨌든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후자에 절대적으로 가까웠을 것이다.

세번째는 죄의식이다. 한국인들은 억압을 많이 당한 때문인지 종종 여러 사건에서 집단적인 죄의식을 표현하곤 한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게 그 대표적인 표현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작년에는 소위 좌파들이 이 정서의 수혜자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도대체 누가 그를 지킬 수 있었단 말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친노그룹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책임을 같이 졌던, 한 배를 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갓 스무살이 된 대딩들은 도대체 무엇을 지킬 수 있었는가?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을 뽑는 것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킬 수 있었을까? 택도 없는 소리!

이 죄의식에는 좀 더 흥미로운 구석이 있는데, 이것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다 보면 결국 우리는 이 죄의식의 '표피'에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가 있다. 노무현을 배신한 '나'는 '이상'을 잊고 '돈'을 택한 '나'라는 것이다. 내 집 값이 오르기를 기대했고 내가 가진 주식의 값이 오르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물론 난 집이고 주식이고 살 돈이 없다) 정의를 택하지 못하고 이런 것을 택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했고 그래서 죽어버렸으니 미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나'는 왜 정의로운 삶보다 돈이 많은 삶을 더 바라게 되어버렸던 것일까? 그리고 '나'의 처지는 돈이 많은 삶을 선택했을때 조금이라도 나아진 구석이 있었을까?

나는 더 이상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똑같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한국의 정당정치에 대한 그것만큼 고약한 문장은 없다. 정치는 훌륭한 사람을 뽑는 컨테스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명박을 지지하는 1% 부자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속이 시커먼 종자들이고 민주당은 그나마 회색빛이며 노무현은 순백으로 빛나는 성인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건 새빨간 핏빛의 깃발이다. 나는 여전히 비정규직악법과 한미FTA를 반대하고 노무현 정권의 실정으로 쓰러져간 수많은 노동자 서민 동료들을 추억한다.

오늘은 단지 여기까지만 하겠다. 세상에 남은 자에게는 할 일이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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