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9일, 진보신당은 울산 북구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조승수 후보를 내세워 한나라당 후보를 꺾는 승리를 거뒀다. 창당 직후 치러진 2008년 총선에서 의석 한 석 건지지 못했을 때는 지도부나 당원 누구도 이렇게 빨리 원내정당이 될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필 울산 북구에서 재보궐 선거가 실시되었고, 하필 진보신당에 그 지역에서 시의원, 구청장, 그리고 (민주노동당 시절) 지역구 당선 등의 이력을 가진 조승수가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승리의 요인은 또 있다. 이른바 ‘단일화’가 그것이다. 그것은 조승수의 당선을 위한 마법의 언어였다. 민주당 김태선 후보가 사퇴했고,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가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후보 조승수’에 승복했다. 49.3%의 득표로 당선된 조승수 후보는 41%의 박대동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렸지만, 단일화가 없었다면 사실상 승리는 없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마법의 언어는 뜯어보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기 어렵다. 민주당 후보에게 단일화는 ‘반MB 단일화’였을 테고,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에게 단일화는 ‘진보 단일화’에 가까웠을 거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많은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이 왜 분당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 명확하게 정체성이 다른 당이다. 더구나 민주당과 두 당의 차이는 훨씬 더 현격하다. 대부분의 진보신당원들은 ‘반MB 정서’를 정치의식으로 인정할 수 없을 테고, ‘진보대연합’이란 정치공학이 진보신당의 존재의의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할 거다. 저 마법의 언어는 이번에는 우리를 도와줬지만 다음에는 진보신당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는 정치공학 안에서 작동할 거다. 그렇다면 울산 북구의 단일화는 승리를 위해 정당정치의 원칙을 벌이는 야합에 불과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른 측면도 있다. 단일화를 요구했던 민심을 뜯어보면, 나이브한 ‘반MB 정서’로만 볼 수 없는 뭔가가 존재한다. 이번에 울산 북구의 유권자들은 진보양당에게 단일화를 성사시켜야 당신들을 믿을 수 있겠노라고 말했다. 유권자들에게 한나라당과 경쟁할 수 있는 ‘정치적 책임을 지닌’ 정치세력으로 인정받는 조건이 단일화였던 셈이다. 한나라당은 단일화를 야합이라고 비난했지만, 유권자들은 두 당이 모두 후보를 내는 것을 책임의식이 없는 것으로 보았다.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도적인 문제와 정치현실 역시 무시할 수 없다. 1위와 2위가 다시 맞붙는 결선투표제만 있다면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후보가 당선되는 것’ vs ‘싫어하는 사람이 적은 후보가 당선되는 것’ 중 무엇이 더 민의를 대변하는지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행 선거제도가 신규진입의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확실하다. 게다가 양당제의 한 축으로서의 민주당의 지지층이 상당부분 붕괴한 지금, 한나라당에 맞설 후보가 난립한다는 건 사실상 언제나 한나라당에게 승리를 내줘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 당을 싫어하는 이가 몇 프로인지와는 상관없이. 2008년을 돌아보라. 진보신당 심상정이 나온 고양 덕양갑에서는 민주당 후보는 물론이고 유시민 전 의원의 보좌관까지 “노무현 팔아 국회 가겠습니다!”라는 표어로 나와서 그녀의 표를 깎아 먹었다. 여론조사 전승을 기록하던 노원 병의 노회찬의 아쉬운 패배 역시 선거 막판 “저희가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했습니다!”라고 소리질러 지지율을 여론조사 평균 4%에서 10% 이상으로 끌어올린 민주당 후보와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 부당한 일일까?
나는 ‘단일화’란 말은 여전히 실체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심판’ 등으로 그 명분을 애써 구성하는 것도 모든 지역구에서의 모든 단일화를 의무로 요구하는 목소리를 용인하는 패착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행했고 실행할 가능성이 있는 단일화를 유권자들의 요구에 따른 예비선거 정도로 이해할 수는 있지 않을까. 제도적인 결선투표가 없는 사회에서 제 정치세력이 자율적으로 결선투표에 준하는 것을 조직하기 위한 예비선거로 말이다. 이렇게 볼 때엔 사안별로 ‘단일화’가 지지될 수도 거부될 수도 있다는 점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한 번 조승수 후보의 당선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