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월간 드라마틱의 조XX 편집장님은 내가 없는 자리에서, "윤형씨는 폭음에 대해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거 참 이상도 하지... 어떻게 자신이 맨날 하는 일에 판타지를 가질 수 있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사실 군 전역 후 내가 한 음주는 과거에 비하면 폭음도 아니었다. 2002년에서 2004년 무렵의 나는 어떤 날엔 13시간씩 술을 먹었다.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먹으면 그렇게 된다. 자리를 옮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6-7차까지 가는 술자리였다. 그 술값이 다 어디서 나왔는지를 생각하면 황망하다. 그렇게 마셔야 나는 '술을 마셨다'고 인지했다. 일주일에 두번 정도는 그렇게 마셨다. 다른 날은 숙취에 괴로워하며 그것보단 조금 마셨다.
그 무렵 나는, 그렇게 폭음하는 나에 대해 죽고 싶어서 그런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엉터리 같았고 진실은 희뿌연 담배연기만도 못했다. 마시다가 죽어버리는 것만이 합당한 일인듯 싶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무렵의 나는 매우 즐거웠던 것 같다. 13시간이나 마셔가며 비슷한 관심사에 대해 떠들어줄 친구들이 있었고, 그렇게 엉터리로 살면서도 대개 연애도 하고 있었다. 물론 여자친구도 술자리에는 언제나 함께였다.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여자와는 사귄 적이 없다.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나날들이었다.
요즈음 생각해 보면 나는 그래도 살아는 보겠다고 꾸역꾸역 술을 쳐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13시간 음주의 추억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고 요즈음의 나는 (물론 다른 이들의 기준으로는 여전히 종종 '폭음'을 하지만) 얌생이처럼 술을 마신다. 식사하면서 막걸리를 곁들이기도 하고 음료수 대신 먹는다는 기분으로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게다가 나이 들어서 술을 못 마실까봐 전전긍긍이다. 술에 시달린 육체를 치유(?)하기 위해 가끔 운동도 한다. 거미줄에 걸린 파리 꼴이 되어 그것조차 없으면 견딜 수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부질없는 짓이다. 얼마 전에 어느 어른이 과메기를 사줬다. 동석한 20대 여성이 "이거 몸에 좋을 것 같네요. 몸에 어떤 작용을 할까요?"라고 묻자 그 어른이 "효능은 무슨. 알코올은 중화시켜주는 것 같다."고 말하길래 "그럼 뭐해요. 그래서 소주를 더 마시는데."라고 대꾸했다. 그렇게 모순적인 짓을 한다. 로저 젤라즈니의 <유니콘 변주곡>에 나오는 유니콘의 뿔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유니콘의 뿔에는 힐링 능력이 있어, 그걸 만지기만 하면 술이 다 깨고 숙취도 사라진다는데.
술을 마시기 힘든 상황이 될 수록 더 교묘하게 소량의 술로 효과적으로 취할 방도를 찾는다. 언젠가 잠깐 들어간 잡지 편집회의가 유난히 길어졌을 때 끝나고 나오면서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아, 술이 깨고 있어. 기분나빠. 빨리 다시 마시러 가야겠어." 숙취에 시달릴 때 한잔씩 마셔주는 그 느낌을 너무 좋아한다. 술이 깰 때는 정말로 몸이 기분 나쁘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한잔 더 마시고 찍 뻗어 자는 편이 낫다. 한잔으로 안 끝날 때가 많다는 것이 참으로 문제이긴 하지만.
술 먹는 짓이 죽음충동보다는 삶의 욕망에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팍팍해진다. 고종석은 어디선가 언제든지 자살해서 삶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삶에 대해 평온함을 가져다 준다고 썼다. 마치 자신은 이 회사를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고 믿는 직원이 상사의 갈굼에 대해 데미지를 덜 받는 것처럼 말이다. 맞는 말인 듯 싶다. 그런데 이젠 그런 생각을 하기가 힘들다. 내가 자살할 수 있는 위인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이제는 아무런 위안도 없이 그저 한 세상을 버텨내야 한다.
Dali
죽음에 대해 결부되든 삶에 대해 결부되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술을 마실 수 있고 좋은 술친구가 있다면. 저로서는 그렇습니다. 가끔 술맛을 모르는 분들이 나서서 '너는 알콜중독이라'고 몰아세우던데, '뭘 몰라서 저러는 거지' 하고 그냥 무시해버리게 됩니다.
ssy
음...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술 잘 못 드신다. 친척 모임에 가면 내가 흑기사 해드려야... 아버지는 물론 여전히 나를 가볍게 제압하시지만... 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싶어하진 않으실듯 하고...ㅡ.,ㅡ;;
어머니가 철수한 자리에 생태찌게, 시래기국, 북어국이 조금씩 남아 있는데 이 녀석들 중 무엇도 안주도 해장국도 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니 빈속에 소주 마셨을 때보다도 더 위장이 아려오는구나.
새 차라...한 SM3 정도? ㅋㅋ (하긴 한 500번은 마셨다는게 내 계산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