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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김용과 주성치

조회 수 1576 추천 수 0 2007.10.13 15:15:08
김용 무협소설을 가장 잘 스크린에 구현한 사람은 주성치가 아닐까? 그가 스스로 주연한 <녹정기>는 너무 어렸을 때 봐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총을 쏴놓고 은섬지라고 우기던 위소보의 모습만은 각인되어 있다. 주성치가 아닌 그 누가 위소보의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소림축구>나 <쿵푸허슬>의 경우 꽤 많은 자본을 들여서 김용 풍 '쿵푸'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했지만 (재미있는 것은, <쿵푸허슬>의 제작비가 <디 워>의 제작비와 같은 수준이라는 것.) 주성치가 헐리우드에 가기 전에 찍은 <식신>만 봐도 무협소설의 논법이 물씬 풍긴다.


<식신>은 전형적인 홍콩무협이다. 홍콩무협이 대륙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 상실된 전통에 대한 아쉬움과 신비함이 가득 베어난다. 중국요리학원이 소림사 주방장이라는 설정, 그곳을 다녀오면 홍콩 요식계를 주름잡는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는 설정은 얼마나 무협적인가. 십년이나 소림사 주방장에서 썪었던 악역 당우가 한달 만에 백발이 되어 자신보다 우월한 무공(?)을 보유하고 나타난 스티븐을 보며 경악하는 장면도 그렇다. 마지막 순간에 스티븐이 내세우는 필살기(?)가 <신조협려>의 양과가 사용하는 암연소혼장을 패러디한 '암연소혼반'이라는 사실은 김용을 아는 관객을 요절복통하게 만든다. '암연소혼'의 사연도 양과와 비슷하니 허접한 패러디도 아니다.


순수하게 무협소설의 논법으로만 보자면 <소림축구>의 영상적인 성취는 (조미가 보여준) 태극권의 위력을 우스꽝스럽게 시각적으로 표현했다는 데에 있다. 이제 우리는 '유가 강을 제압한다.'는 소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광경을 형상화하는지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대중적인 축구를 경유해 쿵푸를 선전한 <소림축구>의 성공 이후 대놓고 쿵푸를 선전한 <쿵푸허슬>의 경우는 이런 위업들을 손가락으로 세기도 힘들다. 초반에 나오는 세명의 고수는 다른 무협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치더라도, 음공을 펼치는 고수의 모습, 태극권의 문맥을 이어가는 무영권의 유들유들함, 사자후의 위력은 얼마나 무협팬들을 설레게 하는가. 게다가 사자후를 아줌마 고수의 입을 통해 외치게 하는 순간 그 음성은 흡사 나즈굴의 울음소리와 비슷해졌는데, 애초에 피터잭슨이 아내 프랜 월치의 고함소리에서 나즈굴의 소리를 구성(?)해냈다는 뒷얘기와 연결지어 생각하면 너무나 재미있다.


덧붙여서, 반드시 따로 언급해야 할 마지막 킬러의 합마공. 역시 악역 끝왕은 합마공이어야지, 라는 생각으로 끄덕끄덕하게 되니 마지막 주성치의 여래신장이 오히려 빛을 잃을 지경이다.


<쿵푸허슬>이 처음 개봉했을 때 서프라이즈의 김동렬은 우가촌을 민중주의적 환상으로 해석했는데, 주성치가 영화를 그렇게도 보이도록 의도적으로 만든 부분은 있지만, 애초에 무협소설의 논법으로 보면 택도 없는 소리다. 무협소설의 세계에선 고수는 고수이고, 단지 그 고수가 은거하고 있을 뿐이다. 우가촌을 처음 비출 때 등짐꾼, 찐빵장수, 양복점장을 차례로 비추는데, 아시다시피 이들 세 사람은 곧 정체를 드러내게 될 무림고수다. 주성치의 영화에선 비주류를 많이 묘사하지만 무협소설의 논법에서는 그들이 '고수'가 되면서 해피앤딩이 되는 것이지 다른 방도는 없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의 결미처럼 '생활의 달인'들 사이에 고수가 있다는 설정은 386들의 환상일 수는 있어도 무협소설의 환상일 수는 없다. 아마도 한국의 무협소설이 중화권에서처럼 보편적인 대중문화코드가 되지 못하는 데엔 이러한 불협화음도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종종 저녁을 먹으며 맥주를 마실 때,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면 <쿵푸허슬>이나
<식신>을 틀어놓고 멍하니 있을 때가 있다. 정말로 행복한 시간이다.                                                                                                                                                                                                                                                                                                                                     

아큐라

2007.10.13 22:27:50
*.208.209.123

음. 첫 문장을 보고는 김용 소설을 영화화한 여러 감독의 몇 작품을 비교하겠군하고 기대를 했다는```

lust

2007.10.13 23:03:42
*.121.220.138

저도 그생각 했는데 아니라서 좀 아쉽다능```

Cranberry

2007.10.14 03:45:36
*.128.205.116

'식신'은 그야말로 김용의 영웅문 3부작에 나오는 각종 무공들의 향연이었죠. -_- 칼 쓰는 것 하나까지도 의천검법 도룡도법에다가 항룡유희, 구음진경, 말씀하신 암연소혼반, 별별 게 다 나왔지요... 그러고 보니 '소림축구'에서도 독고구검으로 나무를 다듬는 장면 나왔던 것 같고...;;;
어디에선가 실제로 김용이 주성치의 녹정기가 자신의 원작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평했다는 얘기를 본 것도 같은데, 주성치가 온갖 작품에서 김용을 열정적으로 오마쥬하는 걸 보면 틀림없이 김용의 열렬한 팬일 것 같아요. 하하핫. (물론 단순히 김용의 무협이 그만큼 대중적이고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차용했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겠지만요. Orz)

시만

2007.10.14 12:44:12
*.197.246.159

1. 소림축구에서... 주성치가 조미에게 "태극권이냐?"라고 물어보니까 조미는 "아니, 음양팔반장이다."라고 대답한 것 같은데...?
(음양팔반장, 이란 게 실제로든 무협소설 내용 중에서든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제는 내 기억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

2. 아라한장풍대작전(이랑 386의 환상)에 대한 언급은 그다지 적확한 지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두 영화가 고수(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고수) 내지는 은거기인에 대한 두 문화권에서의 의미 차이를 보여준다고 보는 것이 더 온당한 분석이 아닐지.
아울러 "'생활의 달인'들 사이에 고수가 있다는 설정"이 (나쁜 의미에서의)환상이라든가, 386들의 환상, 이라고 굳이 평가할 까닭이 있는 것인지?
(그리고 정말 사소하지만 그 '설정'을 보여주는 장면은 영화의 결미라기 보다는 영화 중반 내지 그보다 조금 앞 장면일 것임. 구두 닦는 아저씨가 한 손에 구두 수십 켤레를 들고 간다든지 하는 모습을 가리키면서 윤소이가 류승범에게 설명하는 부분을 말하는 게 맞다면 말이지만;;;)

3. 중국요리학원이 소림사 주방장 >> 이건 뭐야;;

4. 김용 소설 중에 여래신장이 등장하는 작품이??;;; 혹시 아시는 분?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대한 의문 가운데 최대의 의문임다)

5. Cranberry / 실례지만, 항룡유희가 아니라 항룡유회일 듯.. 그리고 항룡유회 자체는 무공명이 아니라 강룡십팔장의 첫번째 초식일 겁니다만..

Cranberry

2007.10.14 14:56:44
*.128.205.116

어이쿠, 항상 항룡유회, 항룡유희, 강룡18장, 항룡18장 헷갈리더니 결국에는 ^^ (뒤에 두 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듯 하지만...) 여하튼 '식신'에서는 십팔장을 다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항룡유회 하나만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그것만 언급한 것입니다. ^^;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여래신장은 김용의 소설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다른 소설가의 무협 제목일 걸요. 소오강호의 방증대사가 '천수여래신장'은 사용하지만 다른 것일 듯 하네요.
소림축구에서도 주성치가 조미에게 물어봤던 건 태극권의 초식에 대한 것이었던 듯 합니다. 태극권의 이 초식이냐? 아니다, 이 거다 - 정확한 용어는 기억나지 않지만 - 라는 식으로. 태극권이 맞기는 맞습니다.

N.

2007.10.15 14:14:52
*.129.25.159

386의 환상 얘기와 <아라한장풍대작전>이 나와서 말인데, 사실 류승완은 전통적인 386으로 넣기엔 꽤 무리가 있는 사람이죠. 일단 나이 자체도 오히려 X-세대에 속하고, "대학에서 80년대에 최루탄깨나 마신" 사람들을 묶는, 대졸자 위주의 논의하곤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고요.

<아라한장풍대작전> 말인데, 전 그 영화가 "어른들 걱정하는 '요즘 애들', 그래도 건강하고 예쁘고 잘 크고 있고 멋지게 우리 사회의 미래를 떠받을 사람들이라고요!"라고 항변하는 영화로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그 영화를, 류승완의 다른 영화들과 좀 다른 방식으로 좋아하기도 하고요.)

물론 386의 환상을 (386으로 묶기 어려운) 류승완도 공유했다, 라고 하면 할 말 없겠으나... 그런데 이전 자리에서도 잠깐 얘기가 오갔지만, 저도 엄청 매력을 느끼고 있는 그 "알고보니 옆집 아저씨 고수였다네"나,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고 웃긴 누구누구 알고보니 고수였지" 설정이 과연 정말로 386의 환상의 영향 및 공유인가에 대해선, 물음표가 지워지지 않아요. 그건 오히려 "음침한 심야만화방 정서" 더 나아가 "대본소 무협만화의 정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 문제는 내가 그 정서를 잘 몰라서. (그러고보니 데모하다 쫓기던 사람들이 심야만화방으로 많이 숨어들긴 했지요. 흐흐)

사실 평범해 보이는 저 사람 알고보니 고수, 는, 약간 다른 형태긴 하지만 <스타워즈 5 : 제국의 역습>에서 요다한테서도 나타나죠. 성룡의 '취권'도 그 계보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이른낚였4

2007.10.21 06:00:02
*.233.253.40

거런데 이글 걸이라고 쓔냐? 호29, 제목에 낚였네. 1윤향아 공부 마니해야dog多
이룬 걸 쑤면 시곤 온 아꿉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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