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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호빗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조회 수 1517 추천 수 0 2007.10.06 15:19:14

영국의 반지성주의와 한국의 반지성주의의 차이를 얘기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내 생각엔 영국의 반지성주의는 정치인이나 지식인이 민중을 높이 평가하는 방식인 반면에, 한국의 반지성주의는 민중의 자화자찬인 것 같다. 민중이 스스로를 자화자찬하고, 그것을 일부 좌파적 민중주의자들이 추인하고 있는 것 같다. 인터넷 여기저기서 "너는 나보다 많이 알아. 그렇지만 나는 너보다 훌륭해." 혹은 "너는 나보다 많이 알아. 그래서 나는 너보다 훌륭해."라는 외침이 마치 한 사람의 목소리인 것처럼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다. 아무리 반지성주의의 전통이 있다 한들, 다른 나라 '민중'들도 저런 식으로 말을 할까? 이것이 나의 의문인데,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것도 아니고 문화사에 정통할 만큼 책을 읽지도 않아서 지금은 이 문제에 답을 할 수가 없다.


다만 그래도 내가 약간은 관련도서를 읽은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반지성주의'가 한국인들의 반지성주의와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지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톨킨은 호빗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반지의 제왕> 서문에 보면 그는 반지대전쟁을 현실의 전쟁(2차 세계대전)에 대한 유비로 보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현실의 전쟁에서는 호빗들이 어디서나 노예가 될 뿐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호빗은 전형적인 영국의 농부들이었다. 호빗, 특히 샘의 원형을 톨킨은 1차세계대전 참전 당시 같이 군생활을 했던 유쾌한 당번병들에게서 발견했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었다."라고 톨킨은 회상한다.


엘론드의 회의에서 반지원정대를 결성할 때에, 엘론드와 간달프 등은 사우론에 어떻게 맞서야 할 것인지, 반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끝없는 토론을 벌이고 있다. 우리의 유쾌한 호빗 친구들은 그들이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맴버를 정하는 순간이 되었는데 자신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자 메리와 피핀은 흥분해서 일어선다. 친구(프로도와 샘)가 위험한 길에 가는데 당연히 자신들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간달프는 이 친구들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얼마나 위험한 길에 따라가는지 알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에는 저런 식의 무모한 순진함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할 때도 있다며 그들의 참가를 허락한다.


메리와 피핀은 자신들의 고집을 꺾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엘론드와 간달프가 논하는 '어려운 말'들이 필요없는 짓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호빗들을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 것은 간달프다. 정작 호빗들 자신은 여행 내내 자신들이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쓸모없는 족속이라고 여긴다. 사실 간달프가 호빗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는 그들이 겸손하다는 사실도 포함되어 있을 듯 싶다. 평론가들을 공격하는 한국의 민중들과 톨킨이 좋아하는 호빗의 모습은 이렇게나 확연히 다르다. 자신의 모습을 사랑할 수 없도록 가꾸어놓고 사랑해 달라고 떼를 쓰는 사람들. 사랑에 대한 폭력은 다른 어느 폭력보다도 질척한 것인데.


호빗을 중심으로 <반지의 제왕>을 보는 사람들은 아예 샘을 중심으로 <반지의 제왕>을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샘이야말로 호빗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호빗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변하지 않고 남는다. 그가 마지막에 샤이어에서 시장이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결말을 샘이 주인공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카톨릭 쪽 평자들은 샘이 오로드루인에서 프로도를 업고 가는 장면을 '예수 수난극'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 순간에 샘은 프로도 뿐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인 반지 자체도 업고 간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일견 타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반지의 제왕>의 전부를 구성하지는 못한다. 그렇게만 본다면 왜 샘이 아니라 프로도가 '반지운반자'로 선택받았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은 굉장히 여러가지 요소를 조화롭게 배열한 '세계-텍스트'다. 내가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보다 <반지의 제왕>을 훨씬 좋아하는 이유는, 루이스의 세계가 신교적 세계관에서 시작해 신교적 세계관으로 끝나는 반면, 톨킨의 세계는 존재하는 모든 문화적 조류들을 버무리고 그 바탕에 카톨릭 세계관을 깔아놓기 때문이다.


톨킨은 자기 자신을 종종 프로도에 비유하곤 했는데, 프로도는 호빗 세계의 지식인에 해당한다. 그는 다른 호빗들과는 달리 요정어를 구사할 줄 안다. 요정들은 고귀한 존재이지만, 윤리관으로 보면 오히려 기독교적 윤리관에 가깝다. 반면 인간 귀족들은 자신의 명예를 내세우는 그리스적 윤리관의 소유자들이다. 반지를 포기한 사람들은 요정이거나 요정에 가까운 사람들이고, 반지를 가지고 싶어했던 사람들은 인간 귀족들이다. 요정여왕 갈라드리엘은 반지를 포기했고, 먼 조상에 요정의 피가 섞여있는 고대인의 후손인 아라곤은 반지를 탐내지 않았다. 프로도가 반지를 가지고 떠나도록 허락한 곤도르 섭정 데네소르의 둘째아들 파라미르는 그 핏줄에선 유난히 고대인의 심성을 닮았다고 묘사된다. 그리고 우리의 프로도도 요정어를 할 줄 안다.


(딱 하나, 반지를 탐내지 않은 이들 중에서 요정과 별 상관없는 위인이 있다. 소설 독자들만 아는 톰 봄바딜이 그인데, 그는 예외적인 존재라서 얘기하려면 모든 얘기를 새로 다시 해야 한다. <반지의 제왕> 안엔 이처럼 -약간의 오버를 허락한다면-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반지를 탐했던 사람들, 곤도르 섭정 데네소르, 그의 첫째아들 보로미르는 용맹한 귀족-전사 윤리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반지와는 엮이지 않았지만 로한의 세오덴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그리스적 윤리관은 반지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톨킨이 이들을 마냥 비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겐 이들의 역할이 있다. 반지 앞에 타락한 보로미르에게, 수십 마리 오크에게서 메리와 피핀을 지켜내면서 죽어갈 기회를 준 톨킨의 시선은 따뜻하다. 보로미르의 죽음은 매우 장엄하다. 메리와 피핀은 호빗들 중에서 이들의 전사 윤리를 배우는 이들이다. 메리는 로한의 기사가 되고 피핀은 곤도르의 기사가 된다. 그리고 피핀은 (그땐 아직 곤도르의 기사가 되기 전이긴 하지만) '팔란티르의 돌'을 한번 만진다.


그리고 그 밑에 샘과 같은 선량한 농부들, 호빗이 있다. 여기서 위-아래는 우열을 말하는 건 아니다. 이들은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소박하게 선량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기독교적인 윤리와 쉽게 만난다. 이렇게 설명하면 프로도 - 메리/피핀 - 샘이 호빗들 중에서도 각기 다른 위치를 대변하는 인물들이 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프로도는 더욱 더 요정에 가까워져 있고, 메리/피핀은 귀족 윤리의 대변자가 된다. 샘만이 이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는다. 그가 프로도를 위해 발휘하는 용기는 호빗들에게 고유한 용기다. 이렇게 해서 여행에서 돌아온 그들은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샤이어 전투'라는 것을 치르게 되는데, 사실 이게 이 소설의 백미다.


사루만이 호빗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 똘마니들을 시켜 샤이어를 통치하고 멋대로 자연경관을 훼손하고 있었는데, 커다란 말을 타고 곤도르와 로한의 갑옷과 무기로 무장하고 마을로 돌아온 메리와 피핀의 눈엔 기도 안 차는 일이다. 그들은 억눌려 있던 호빗들을 선동하여 봉기한다. 샤이어 전투는 전투 자체로만 보면 메리와 피핀의 공로가 가장 크다. 프로도는 약간 떨어진 위치에서 쌍방의 사상자가 너무 많아지지 않도록 통제하고 있었는데, 다른 호빗들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거짓 왕을 몰아낸 후 시장이 되는 것은 여전히 호빗으로 남아있는 샘이다. 정말 환상적인 팀이다.


말하자면 여행을 마치고 네 명의 호빗들이 고향이 돌아왔을 때, 톨킨은 그들에게 세계의 질서를 심어놓았다. 여행의 결과 네 명의 호빗들은 자신들의 팀 안에 조화로운 세계의 질서를 품었다. 요정들의 겸손한 기독교적 윤리와, (니체가 그렇게 좋아한) 전사들의 명예로운 그리스적 윤리, 그리고 소박하게 선량한 이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조화롭게 사는 세상. 이게 톨킨이 샤이어에 그려놓은 세상이고, 그가 호빗을 좋아한다는 얘기도 그런 맥락에서다. "너는 나보다 많이 알아. 그렇지만 나는 너보다 훌륭해." "너는 나보다 많이 알아. 그래서 나는 너보다 훌륭해." 미안하지만 호빗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정통고품격서비스

2007.10.06 17:36:40
*.216.114.61

어머나아~ 질척거리네열.

하뉴녕

2007.10.06 19:12:42
*.176.49.134

어머나아~ ^^

hyun

2007.10.06 22:32:51
*.99.83.104

으음.. 반지의 제왕을 읽지도 보지도 않았는데 언제 시간 내서 읽어야 겠어요.

저는 동생에게서 "그래봤자 빵 사먹을 돈도 없으면서..." 이런 소리를 들었답니당.
(으윽, 모욕!)

Cranberry

2007.10.06 23:26:59
*.128.205.116

반지만큼 수많은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는 텍스트도 흔치 않은 것 같아요. 우리 나라에서는 영화로 먼저 대중화되어버리긴 했지만, 역시 진국은 소설이지요. 요즘 아는 친구들과 함께 북미섭에서 반지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있는데, 톰 봄바딜을 눈 앞에 두고도 동료들 중에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무척 슬펐답니다. 지나가던 외국인과 함께 유난을 떨며 기뻐했지요...;;

곰삼촌

2007.10.06 23:35:03
*.177.38.139

반지의 제왕 소설은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너는 나보다 많이 알아. 그렇지만 나는 너보다 훌륭해." "너는 나보다 많이 알아. 그래서 나는 너보다 훌륭해."이라고 말하는 행위들에 대한 염증은 저도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습니다. 블로그에는 주장과 겸허, 연대와 모색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없어 보입니다. 물론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 안에서야 "유아독존"이지만 블로그끼리 연결되는 세계에서는 존중과 수용, 주장과 고민들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비연랑

2007.10.07 03:56:02
*.5.229.237

반지성주의에 가까운 사상을 가졌지만 무척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지성과 반지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조금 만 더 겸손해지고 조금만 더 상대를 존중한다면 싸울일이 없지 않을까 싶지만, 이상론이겠죠??^^;;

한국은 사회의 시스템 전반에 걸쳐서 "표면적인 지성"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이라는 타이틀이 너무 많은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 처럼요. 그래서 한국의 반지성주의가 유독 거친 것 아닐까요.

ps.마땅히 생각나는 단어가 없어 "표면적인 지성"이라고 표현했는데, 잘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

-_-

2007.10.07 13:45:50
*.128.155.131

푸른 하늘 흰 구름 위에 떠다니는 그 고상하고 고고한 '동양의 고유한 사상'도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요. 최고의 가르침은 문자에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선불교라든가.. 도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건 진정한 도가 아니라고 하는 도교라든가..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강조하면서 단순무식을 예찬하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과거 존경받는 정치학자에서 주역 도사로 변신한 신바람 황박사님의 저서로 공부하고 있는데 아주 죽겠습니다. 졸업하려면 듣긴 들어야 되는데 책을 필 때마다 열불이 터져서 하루에도 열두번씩 불태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압권인 부분을 뽑아보자면

"그러나 전근대적 역대 국가는 아직 주술에서 깨어나지 못했을지라도, 아니 차라리 주술적 성격 덕택에 과학적 근대국가보다 더 겸손하고 윤리적으로 더 책임있는 국가였던 셈이다."

"개인과 공동체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정보의 총량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과학이론과 거리가 먼 비과학적 경험주의이다. 과학적 지식의 비중은 소량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 소량은 초능력, 종교, 주술로 인간의 무의식과 DNA속에 비장된 무한대의 정보와 지혜에서 한 조각씩 떼어내는 초월적 지식이 채우고 있다."

지성의 상아탑이라는 곳에서 쓰는 정치학 교재의 내용입니다.
반지성주의, 국민만 탓할 것은 아니겠죠..

하뉴녕

2007.10.07 17:23:53
*.176.49.134

동양사상이 반드시 반지성주의를 조장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서양철학에서도 논리로 시작하지만 체계의 마지막은 반드시 완벽한 논리성을 담보할 수가 없는 것이니, 선불교나 도교가 말하는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거든요. 다만, 충분히 말할 수 있는 부분에서도 말할 수 없다고 우긴다면 그건 문제가 되겠죠. 동양사상을 빙자해 그런 일을 벌이는 사람은 꽤 많죠. 사실, '겸손'이란 덕목을 가지고 그런 일을 벌이는 사람도 많구요. 소크라테스를 들먹이며 이성을 기만하는 사람들은 오죽 많습니까.

말씀하신대로 국민만 탓할 일은 아니지요. 인용하신 문장은 정말 ㅎㄷㄷ 이네요. ;;

hyun

2007.10.07 19:52:22
*.99.83.104

한윤형/ 네 맞습니다. 동양사상이 반지성을 반드시 조장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그쪽 맛을 좀 본 사람들이 할 말 없으면 충분히 말 할 수 있는 부분을 말할 수 없다고 우기는데다가 또한 각각은 고민 없이 도피처로 삼기 일쑤입니다. 그러면서 무슨 도사처럼 아무때나 들이대서 미치겠다는 거 아닙니까.
대강 이런 생각의 바탕에서 전에 제가 법정 스님의 책이 전국민의 필독서가 되는 현상을 언급했던 것이구요, 개인적으로 그 분과 관계가 있으면서도 마냥 좋아라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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