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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그러니까 고등학교 3년 동안 나는 출판되는 대부분의 한국 판타지 소설을 빌려 읽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읽으면서도 나는 언제나 유행에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창작 판타지의 중심은 PC통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달짜리 하이텔 무료아이디를 써본 일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PC통신을 사용해 본적이 없었다. 덕분에 인터넷 게시판 문화를 좀 더 빨리 받아들이게 되긴 했지만, 그때까지 인터넷은 창작 연재소설의 중심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많은 독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창작자가 되고 싶었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전혀 가망성이 없는 일도 아니었다. 가령 2000년이 되자 나와 동갑인 1983년생들이 쓴 판타지 소설들이 출판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네들의 책을 빌려 명백한 비문을 수정하면서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건 저자의 잘못이 아니라 편집자의 잘못이었구나.) 좌절된 꿈을 위로하고  울분을 달랬다. 지금처럼 공급과잉이 아니라, 일단 출판되기만 하면 대여점에서 일만부 가까이 소화해주던 시대였다. 하지만 PC통신도 안 하고, RPG게임에도 취향이 없다가 갑자기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게 된 내가 창작자가 되려면?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나는 ‘문어체 소년’답게 판타지 소설을 쓰려면 그 배경이 되는 도서를 탐독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먼저 집어든 건 당시 들녘 출판사에서 나왔던 ‘판타지 라이브러리’ 시리즈였다. 여전히 내 책장엔 그 시리즈에 해당하는 <판타지의 주인공들 1>, <천사>, <환수 드래곤> 따위의 책들이 꽂혀 있다. 시리즈의 목록을 훑어보니 아쉬움이 든다. <판타지 무기사전>이나 <무기와 방어구 -서양편>을 탐독했다면 좀더 디테일이 돋보이는 소설을 쓸 수 있었을 텐데. 사실 내가 고등학교 때 끄적이던 소설은 그야말로 ‘판협지’였다.

그러나 나는 디테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나 보다. ‘판타지 라이브러리’를 통해 판타지의 세계관이 각국의 신화나 전설에서 연유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내 관심은 신화학으로 기울어졌다. 신화학을 알지 못하면 그럴듯한 판타지 소설의 세계관을 그려낼 수 없었을 것 같았다. 그때 읽었던 책들이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이미지와 상징>, 조셉 켐벨의 <신화의 세계>,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 책은 당시 <세계의 영웅신화>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있었다.)등이다. 당시의 내가 이 책들을 잘 이해했다고는 볼 수 없다. 특히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읽고 나서도 뭘 읽었는지 기억해 낼 수 없을 만큼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세권의 책을 읽고 나서 단 한가지 확실해진 것이 있었다. 이들 신화학자들은 칼 구스타프 융 얘기만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리고 열광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신분석학의 논의를 빌려오려고 했지만, 성욕(性慾)의 역할을 강조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와는 어울릴 수 없었고, 신화와 오컬트에 심취해 범성욕설(汎性慾說)을 거부하고 스승을 떠난 융과 궁합이 맞았다. 특히 켐벨의 책을 읽다보면, 아예 대놓고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대립을 융이 통합했다는 식으로 설명한 구절도 발견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융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엔 융 기본 저작집도 출판되기 전이었다. 물론 그때 출판되었다 하더라도 고등학생이 읽기엔 너무 어려웠을 테지만. 그래서 내가 읽은 건 <인간과 상징>이나 <무의식의 분석>같은 대중적인 저서들이었다. 도대체가 판타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원래의 목적에서 너무 먼 곳까지 와버린 것이다. 그 점을 자각한 나는 신화의 구조에 대한 탐구를 멈추고 ‘다른 세계’의 부족들을 설득력 있게 기술하기 위해 문화인류학으로 돌입했다. 뭘 읽어야 할지 몰라서 가장 이런 저런 내용이 풍부한 것처럼 보였던 <문화인류학의 명저 50>이란 책을 읽었다.

판타지 소설가가 되기 위한 나의 문화적 표류는 적어도 목적에 대해서는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옛날에 썼던 것은 다 잃어버렸고, 지금 쓰고 있는 건 몇년 전부터 진도가 안 나간다. 하지만 이 표류의 결과 나는 자연스럽게 인문학도가 되었다. 프로이트와 라캉을 접하게 된 몇 년 후, 그때 읽었던 책들 중 몇 권을 다시 읽어보았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려운 책에 덤벼들었던 그 시절에 경의를! -한윤형 (드라마틱 26호,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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