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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관련글 목록
나디아님, "김규항은 더위 먹지 않았다." :
http://blog.naver.com/nadiajun/120042108803
노바리님  "김규항 (2) : http://vedder.tistory.com/142


한 명의 저자와 하나의 텍스트에 대해 선의적 해석을 하려는 노력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그 텍스트와 그 저자가 조금이라도 건덕지를 줄 때의 얘기다.

1)
"김규항의 선빵론은 그간 대중들이 평론가의 글들로부터 취향에 대한 멸시를 받았다는 것이고, 그건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문제는 그것이 디워 파동의 기폭제로 작용한 것이 맞느냐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워겔에서 제시한 개티즌들의 폭력일지자료는 논점을 벗어난 것이다."


나디아 님은 이렇게 말한다. 정리해보자.

1) 영화평론가들의 평은 대중의 취향을 무시해왔다. 이것은 사실이다.
2) 김규항은 그것이 디워 파동의 기폭제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선 논의의 여지가 있다.
3) 그러므로 김규항의 논의는 기존의 논의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1)이 정당하다면 이 논의는 인정될 수도 있다. 그러면 애매모호한 1)의 내용을 분석해보자.

영화평론가는 '영화'라는 '텍스트'에 대해 발언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들이 대중의 취향을 무시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영화는 텍스트이고, 대중의 취향은 컨텍스트인데. 굳이 가능한 상황을 따지자면 이런 것이 있을 테다.

가) 대중적으로 흥행한 영화를 영화평론가가 혹평하는 경우
나) 대중적으로 흥행에 실패한 영화를 영화평론가가 호평하는 경우

이런 경우들을 과연 '대중의 취향을 무시'한 것이라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만번 양보하여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쳐보자. 영화평론에 있어 이런 상황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사실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영화평론가들은 개봉직전이나 직후에 대개 평론을 쓴다. 흥행 여부가 확실히 결정되고 나서 글을 쓰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가령 조폭 코메디물에 대해 평론가가 혹평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게 대중의 취향을 무시하는 걸까? 조폭 코메디물이라고 해서 언제나 흥행하는 건 아니다. 비슷비슷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면, 어떤 건 흥행하지만 어떤 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그렇다면 조폭코메디물을 혹평했다고 그가 대중의 취향을 무시했다고 볼 수는 없잖은가? 애초에 평론가가 흥행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평론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그들이 대중의 취향을 무시하는 평론을 해왔다고 우긴다면, 무슨 그들이 미아리 점집이라도 차렸단 말인가?

옛날 영화'를 추천하는 경우에, 평론가들은 종종 대중의 취향과 거리가 먼 영화를 추천한다. 이 경우에도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무시당했다고 여기진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영화들은 평균적인 사람들은 모르는 작품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자기가 모르는 걸 권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자신의 취향을 '무시'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건 일상적인 언어의 용법이 아니다.

이렇게 세심하게 접근해 본다면 "영화평론가들의 평은 대중의 취향을 무시해왔다. 이것은 사실이다."라는 주장이 거의 이데올로기적인 명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규항이 논의한다는 맥락은 '없는 사실'에 '없는 맥락'이다. 자의적으로 상황을 구성하다보니 그는 "대중들은 잘난 그들에게 반감을 갖게 되었고 그 반감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는데(전문가들이 호평하는 영화는 부러 피하는) 결국 <디워>에서 폭발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괄호안만 살펴보자. 대중들은 과연 전문가들이 호평하는 영화를 일부러 피했는가? 그들이 평론가에 대해 가지는 반감이, 과연 평론가들의 글을 꼼꼼히 읽어보고 반대되는 행동에 나설 정도의 정치성을 지니고 있는가?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운동의 원인에 주목해야겠지만, 그런 일은 없다.

평균적인 사람들은 평론가들의 글에 관심이 없다. 평론가들이 호평하는 영화에 관객이 들지 않는 건 애초에 평론가들의 영화를 보는 기준과 대중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왜 다르냐고?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지. 달라야 될 이유가 전혀 없다면 관객수만 따지면 되지 '평론' 자체가 존재할 이유가 없잖은가? 물론 그렇기 때문에 김규항의 글은 일종의 '평론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으로 들린다. 게다가 <디 워>에 대해 평론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이들밖에 없다고 하니. 더 할 말이 없잖은가? (<디 워>가 12세 관람가라고 해서 아이들만 보나?) 그가 블로그에 다시 퍼온 옛글도 이 맥락에 동원되면 그렇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김규항은 애초에 오해(?)를 풀려는 의지도 없다. 종종 김규항의 논지는 애초에 평론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니까 김규항은 나디아님이 정리한 1),2),3)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얘기를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도대체 영화평론이 더 좋아져야 한다는 건지 (어떤 식으로?) 아니면 영화평론이 아예 없어져야 한다든지 김규항은 태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하나의 태도로 입장을 정한다면, 거기에 반대되는 글의 맥락들을 해명하거나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시 한번 단순한 사실을 지적하자면, 논리적으로 볼 때 영화라는 텍스트에 대한 영화평론가의 평가가 특정한 취향에 대한 승인이나 경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치면 문학평론가는 문학이 아닌 모든 소설은 언제나 경멸하고 있는 것일 테다. 하지만 사실을 따져보면 문학평론가의 취향은 개개인이 다 다르다. 이 문제는 별개의 것이다.

구체적으로 <디 워>라는 상황에 대해 말하더라도, 영화 평론가들은 초기에 조심해서, 미적미적 평론했을 뿐이지 흥행 여부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노바리님의 지적처럼 다수 네티즌의 폭력에 희생된 이들은 블로거인 경우도 많았고, 영화기자나 평론가들이 블로거에 가까워지고 있기도 하다. 진중권이 백분토론에 나서기 전에 이미 블로고스피어에선 (평론가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디 워> 비판하면 블로그 문 닫아야 한다는 괴담이 돌고 있었는데, 그럼 악성 덧글이 많이 달리는 블로거는 무조건 평론가란 말인가?

'평론가 vs 대중'의 구도는 쇼박스와 언론에서 흥행을 위해 만들어낸 허구적인 구도다. 평론가들도 김규항처럼 멍청한 글을 써서 <디 워>빠들을 옹호하고, 나같은 블로거는 이렇게 그런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 여기 어디 '평론가 vs 대중'이 있단 말인가? 김규항이 하는 짓을 이해하려면 그가 의미하는 평론가가 오직 진중권 한 사람만을 가리킨다고 봐야 한다. 언제부터 '평론가'가 인간 진중권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었나?

이송희일 감독이나 김조광수 감독 모두 '대중'을 가리킬 때 <디 워>를 보는 대중을 가리킨 것이 아니다. <디 워>에 대한 비판자를 탄압하는 네티즌들을 언급한 것이다. 이때부터 상황은 영화평론의 영역이 아니라 문화평론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이제부터는 텍스트가 아니라 컨텍스트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이 등장하게 된 계기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대중을 경멸하지 말라고? 여기서 '경멸'이란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이버테러가 '대중'의 본질적인 속성인가? 그래서 그거 보고 '꼭지' 돌면 '대중 경멸'인가? 그거야말로 대중이란 단어에 부정적인 수사를 자의적으로 결합시키는 '대중 경멸'은 아닌가?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맺자. 김규항의 전체 논지는 나디아님의 선의적 독법을 존중해도 문제가 많다. 아귀가 맞지 않는 것이다.


2)
또한 나디아 님은 김규항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만약 김규항의 글 ‘타인의 취향’이 개티즌을 옹호한 것으로 읽혔거나, 개티즌이 ‘김규항은 우리 편’한다면 엄청난 오독이다. 김규항은 글에서 심형래의 장사 방법, 애국주의 마케팅, 네티즌의 집단주의적 행태에 대한 비판을 기본으로 깔고 시작한 거다."

그럼 그게 엄청난 오독인지 알기 위해 다시 한번 김규항의 <타인의 취향>을 주의깊게 읽어보자. 김규항은 '심형래의 장사 방법, 애국주의 마케팅, 네티즌의 집단주의적 행태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기본'으로 깔았던가?

"심형래 씨는 영리하게도 대중들의 그런 반감을 장사에 이용한다. 훌륭한 행동은 아니지만 오늘 한국사회가 그런 행동을 집어내어 준엄하게 질책할 만큼 품위 있는 사회는 아니다. '애국주의 마케팅'이라는 것도 한심스럽긴 하지만 한국에선 이미 특별한 게 아니다. 월드컵 때 텔레비전 화면을 채우던 태극기를 잊었는가? 싸잡아 말할 순 없지만 네티즌의 집단주의적 행태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김규항은 기본적으로 그것들을 '나쁜 것'이라 부르지만,  한국 사회의 풍경에서 바라볼 때 특별히 '더 나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일상적인 일이니까, 따로 지적하기보다는 이번에 더 심하게 불거진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는 게 김규항의 입장이다.

'애국주의 마케팅'에 대해선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만약 쇼박스가 알바를 동원해서 일부러 네거티브 논쟁을 일으킨게 사실이 아니라면, 그들의 마케팅은 평이한 수준이라 말할 수 있다. 원래부터 존재하는 한국 영화의 독과점 구조에 대한 지적을 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사실 더 나아간 논의를 하려면 이런 지적을 해야 할 지도 모르지만, 김규항은 워낙에 훌륭한 좌파라서 자본주의가 시장경제로 돌아가든 독과점 구조로 돌아가든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네티즌의 집단적인 행태는 마케팅을 넘어 범죄수준인데, 여기에 대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며 그냥 지나가는 것이 온당한가? 이런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김규항은 붉은 티셔츠 입은 몇몇 광팬이 자동차 부수고 거기 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데 "애국주의가 하루이틀일이었나."라며 지나칠 사람이다. '좌파' 김규항에게는 '텔레비젼 화면을 채우던 태극기'와 '영화관람을 애국이라 믿으며 그 애국에 동참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이버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도찐개찐으로 보일 게다. 정말이지 '좌파' 정체성을 이렇게 근본주의적으로, 예민하지 않게 뭉뚱그려 발산해도 되나 싶다.

나는 김규항이 태극기 흔드는 대중을 고깝게 보는 '취향'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취향이 지나쳐 태극기 흔드는 대중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이나 테러를 저지르는 이들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이나 별 차이가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건 문제다. 그거야 남의 마음 속이니까 간섭하지 못할 일이겠으나, 그런 감정을 하나의 견해로 표출하기까지 한다면 그건 정말 '큰 문제'다. (사이버테러가 별 것 아니라고?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송희일이나 김조광수에 비하면 그다지 시달리지 않았다 봐도 무방할 심형래 감독도 최근 귀국해서 가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악플은 연예인을 자살시킬 정도로 무서운 것이 아니었냐고 반문하고 있다.)

게다가 이전에 말했듯 그는 분명히 "<디워>를 옹호하는 사람들 역시 타인의 취향에 폭력적이지 않은가, 라는 반문은 맥락을 잃은 이야기다. 그들은 타인의 취향에 폭력적인 게 아니라 제 취향을 경멸하는 재수 없는 인간들에 반발하는 것이다." 위에서 비판한 허구의 논지를 유지하기 위해 상황자체를 거꾸로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 네티즌의 사이버테러는 좋지는 않지만 범상한 일이며, 여기에 먼저 원인을 제공한 것은 평론가라는 그의 논지가 성립한다. 그의 논지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는가? 그래서 <디 워> 사건일지는 그에 대한 반박으로 의미가 있다. 나디아님이 아무리 부인하더라도, 김규항 본인이 '맥락'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규항이 더 나아간 문제제기를 했다는 나디아님의 견해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텍스트를 분석하면 분석할 수록 그가 자신이 평소에 지니고 있던 '평론가관'을 구체적인 상황에 잘못 끌어들였고, 구체적인 상황파악을 하지 못했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그는 더 나아간 문제제기를 한 게 아니라 문제파악을 덜 했을 뿐이다. 비판적인 지성이라면 이와 다른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MW

2007.09.04 16:54:51
*.177.1.44

재미있는 글 잘 읽었고, 언제나 그렇듯이 윤형님의 글의 전반적인 논조는 흥미롭고 공감할 만한 점이 많습니다.

다만 1-(1)의 논증에는 공감반, 회의반입니다. 대중의 취향은 흥행으로 반증되는 걸까요? 혹은 흥행이 대중의 취향으로 빚어지는 걸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답할 수가 없는데, 대중적 취향이라는 것을 흥행적 성공이라는 면과 동일시하는 느낌이 드네요. 물론 <디 워>의 경우, 많은 사람들은 흥행 이후에 한 마디씩 거들고 결국 대중적 취향의 승리처럼 떠들어대기도 했습니다만 이건 흥행영화에서만 우길 수 있는 논리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약간 기이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저는 흥행이 되든 안 되든 평론가는 대중의 취향을 알고 (혹은 자신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서 바탕하여 평론을 한다고 직관적으로 느낍니다. 게다가 거기에 객관적이든 감정적이든 거리를 두려고 하고 있다고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평론의 자세이므로)생각합니다. 원인 제공이라는 적극적인 행위와는 별개로 거리감 조성은 또 다른 차원의 감정(들)을 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항상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또한 평론가가 필요할 까닭도 없죠.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 다른 대중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거니 확대할 수는 없지만 그런 평론의 태도에 대해서 이 사건은 일종의 컨센서스를 어느 정도 획득할 수도 있을 가능성이 있었지요.

그리고 블로거가 직업이 아닌 이상, 평론과 관련있는 일을 하는 블로거는 - 그리고 그 사실이 알려져 있다면- 더 이상 블로거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당위도 실은 없긴 한 것 같습니다. 있으면 좋겠지만. 실제로 그 블로그에 오는 사람들이 그런 점을 배제하고 있지도 않듯이요.

허나, 윤형님이 말씀하신 대로 남의 블로그를 폭격하거나 하는 사람들은 대중의 취향을 대변한 사람들은 아니겠지요. 그러니까 위에 말한 대중과 앞에 말한 대중은 공유하는 구석이 있을지언정, 동일한 사람들은 아닌데요. 요지는 이 공유의 부분과 결렬하는 부분, 그 비율을 어떻게 상정하느냐의 차이같습니다. 만약 공유의 부분이 크다면 문제파악이 된 것이고 윤형님이 논증하듯이 결렬하는 부분이 훨씬 크다거나 그 두 집단은 전혀 동일하지 않다고 말하면 문제파악이 덜 된 거겠죠. 즉, 초기에 디워를 옹호해서 사건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취향을 지키기 위해서 평론가에 대한 증오를 만든 거지, 평소에 감정이 많았던 사람들은 아니었을 수도요.

위의 링크된 글에서 재미있는 건 자신은 그들이 아니지만, 공유하는 부분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서도 다른 글은 읽어도 "영화평론"을 관심있게 읽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거란 생각입니다. 거기서 자신은 일반인들과 유리된 입장이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재미있고요. 대중의 취향을 옹호하시는 분들 중에는 대중적 취향과 유리된 분들이 꼭 계시지요. 그러니까 공유하는 건 취향이 아니라 평론가 의심뿐인지도.

결국은 역시 '평론가가 재수있냐 없냐'의 문제가 사건의 선후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가 초점이 된다는 시각에 더 공감합니다. 사람따라 재수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 싫어하는 마음이 있기도 할 수는 있는데, 이런 감정이 누구에게든 공유되어서 <디 워> 사건이 시발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후반부의 지적이 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취향을 생각해주는 건 좋은데 그건 post-hoc 진단이라는 말씀요.

Milkwood

2007.09.04 16:46:17
*.177.1.44

"비밀글입니다."

:

하뉴녕

2007.09.04 17:06:37
*.46.33.161

엇, 이 엄청난 훼이크...^^;; 반갑습니다.:)

...

2007.09.04 20:15:22
*.117.40.6

참고 : 디워 기자시사회 최초반응
http://dvdprime.paran.com/files/upload/200707/20070723213734500.jpg

한분 빼고 (디워를 1억(?)짜리 떡볶이로 비유해서 블로그에 댓글 폭격을 당한 분) 흥행성을 높게 평가.

노지아

2007.09.04 23:36:51
*.40.203.34

오오 선빵규항 오오

걍 지나다가

2007.09.05 07:51:44
*.245.202.138

쉬운 얘기, 누구나 다 알아먹을 법한 얘기에 뭔 분석씩이나 필요한지도 몰겠고, 가령 평론가가 대중의 취향을 무시한다, 혹은 그런 면이 있다고 하면 지나가는 사람 열이면 열 모두 그런 측면이 있다고 알아먹고 공감할 얘기에 왜 이런 긴 사족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네요. 전 규항씨의 글을 보면서 나디아님아랑 동일한 의미에서 그 글이 읽혀지던데, 그리고 비단 규항씨의 글을 중권씨의 글과의 어떤 대척점에 놓고 논의에 이용해 먹고자는 불순한 동기없이 그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디아님과 같은 독해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처럼 보이는데..

짧은 제 생각에 이번 글은 윤형님의 평소 생각이 너무 많아 규항씨의 글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고, 또 논점을 너무 앞서나가 분석하고..암튼 그런 일종의 오바가 아닌가는 생각이 듭니다..

봉구

2007.09.05 08:15:37
*.39.213.114

지나다가/'누구나 다'라는 말, 조중동이나 정치인들이 '우리 국민들' 찾는 거하고 똑같은 참칭입니다. 대중의 취향을 무시했다는 소리 안 들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영화+문사철 공부 때려치고 홍보대행사 차려서 마케팅 수요 예측하고 '출발 비디오여행'풍으로 신~나고 친~절한 글쓰기를 하면 되나요? 사람 수준 덩달아 같이 끌어내리지 말아주시길.
지식인과 대중을, 아니 어쩌면 '공부+생각'과 대중을 이간질하고 그 자리에 자기가 들어앉으려는 풍토는 20세기 초에 파시스트들이 조장하던 것이었는데.. 대중사회를 맞이해서 '한국식'으로 허접하게 그런 얘기를 소위 자신을 '좌파'라고 말하는 사람이 하고 나서다니..
김규항씨가 앞으로도 뭔가 계속 의미있는 존재로 남을 수 있으려면 자기 포지션을 재정립하거나 궤도수정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처음 아동잡지 만든다고 했을 때 가졌던 우려 하나가 현실화되는 것 같아서 안스럽습니다.

걍 지나다가

2007.09.05 09:25:51
*.245.202.138

봉구/댓글 달아논 죄가 있어 잠시 또 들렀다 금방 답글이 올라온 것 보고 잠시 놀라면서, 이렇게 몇자 남겨봅니다.

1. 평론가들이 대중의 취향을 무시한다,아니다는 얘기를 봉구님이 아는 주위 지인분들에게 설문의 형식으로 물어본다면,
십중팔구 그렇다, 혹은 그런 면이 있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이는 전문가 평보고 영화보러 갔다 지루하고 잼없는 영화에 속았다, 돈날렸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번씩은 있는 우리들의 경험과, 영화에 대한 전문가적 평이라는 그 그럴듯한 개념과 수사들의 남발이 직접 영화를 본 관객에게 그 영화에 대한 적절한 평으로 전혀 와닿지 않는 그런 구체적인 경험들로 인한, 대중의 솔직한 판단일 것입니다. 규항씨가 평론가들이 대충의 취향을 무시한다, 그러면서 선빵 운운한 것은 누구나 다 공감하는 이런 맥락을 짚어낸 것 뿐입니다. 무슨 조중동 한나라당이 '우리 국민들' 하는 식의 어법이라는 비난은 별로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2. 평론가들이 대중의 취향에 부합하여 평론을 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평론가들이 자신이 평하는 영화에 최대한의 진정성을 갖고 쓴 글은, 그 글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대중은 쉽게 그 글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식의 평론이 아니라, 평론가 개인의 지적유희나 취향의 배설 차원에서 써갈겨진, 별 내용도 없는 미사여구의 과장으로 영화에 대한 오만하고 독선적인 평을 남기고, 마치 그 영화를 보는 이는 바보인 것 처럼 몰아가는 식의 몰취향한 평론가의 평론일 것입니다. 헌데 문제는 그런 평론들이 영화 시장에 많이 유포되어 있고, 그런 평론에 대중이 많이 속고 기만당해 왔다는 것입니다. 규항씨도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이로써, 이런 행태들을 누구보다 더 많이 봐왔을 테고, '대중을 무시하는 평론가'라는 말도 중권씨를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라, 그런 만연한 평론계의 현실을 꼬집어 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권씨 역시 처음부터 디워를 깔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밝힌 것 처럼 디워에 열광하는 대중들의 집단주의 행태(이송희일 사건)에 대한 반발로, 꼭지가 돌아 논의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 집단주의 행태를 비웃고 조롱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 집단주의가 근거하고 있는 디워영화 차체를 깐거고, 이 과정에서 좀 지나쳤다 싶을만큼의 가혹함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규항씨 말마따나 전후사정을 모르는 대중들은 듣도보다 못한 평론가라는 인간이 나와 도를 넘어서는 비난을 하는 꼴이 못마땅해, 또 그렇게 제 취향을 비웃는 오만한 평론가에 대한 반발로 문제가 이렇게 커진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규항씨의 글을 대중영합주의나 혹은 중권씨에 대한 반격의 글로서 독해하는 것은, 봉구님 말씀따나 규항씨가 이 글을 쓰면서 자처한 포지션에 대한 오해가 아닌가 싶습니다.

끝으로 봉구님의 글에서 느껴지는 좌파의 면모에는 뭔가 지고의 인간애를 말하는 사회주의의 이상을 가슴에 품은 이로서가 아닌(제가 글을 통해 만난 규항님은 이런 분이셨습니다), 이념의 색깔로 현실의 문제를 가볍게 재단하는 다소 경박하고 뿌리깊은 엘리티즘이 그 밑변에 깔려있는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푸할

2007.09.05 09:30:21
*.252.33.190

"지고의 인간애를 말하는 사회주의의 이상을 가슴에 품은"
"지고의 인간애를 말하는 사회주의의 이상을 가슴에 품은"
"지고의 인간애를 말하는 사회주의의 이상을 가슴에 품은"
"지고의 인간애를 말하는 사회주의의 이상을 가슴에 품은"


...

-ㅇ-;;

jiva

2007.09.05 10:05:18
*.95.196.240

논쟁이 계속되는군요.
저도 이전부터 슬쩍 개입해볼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PB

2007.09.05 10:26:09
*.125.118.80

걍 지나다가/ 엘리티즘에 대한 숙고가 깊지 못하신듯 합니다. 평론가의 경계를 설정하는 '권위적 태도'는 오롯이 김규항의 몫이죠. 고다르의 영화가 '작품'인것 처럼 정성일의 영화비평도 '작품'입니다. '생산에 기생하는'같은 권위적 언설이 '작품'과 '비평'의 위계를 구분하려는 지독한 '엘리티즘'이지요.

'평론가들이 대중의 취향을 무시했느냐'를 둘러싼 지루한 설전이 계속되는데, 비평의 속성은 관찰자의 텍스트에 대한 주관적 해석입니다. 주관적인 작품에 대한 평가에 주관적 편향, 자의식을 투사하는 것은 독해자의 무지라고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어둠은

2007.09.05 10:34:13
*.116.197.103

이런 논란을 보는 것 만으로 즐겁습니다.

행인3

2007.09.05 10:44:53
*.112.148.19

"평론가들이 대중의 취향을 무시한다"
난 무시당한 기억이 안나는데...
혹시,,여기,무시 당했던 분 계시면, 한 번 그 기억을(고통스럽겠지만)끄집어 내어 이야기해 주시렵니까? 십중팔구라는데..

이상한 모자

2007.09.05 12:28:54
*.136.138.83

여러분, 진정한 좌파는 접니다. 어디 지금 좌파 얘기를... 여러분, 제가 김규항보다 훨씬 쌔빨갛습니다. 여러분, 저는 현세에 다시 강림한 대머리, 이 시대의 큰 스승입니다, 여러분!!

홍안촌닭

2007.09.05 13:17:07
*.244.221.3

디워 사태가 낳은 성과라면, 디워 떡밥을 통해 여러 블로거들과 평론가들, 진보논객들의 성향과 내공을 드러나게 했다는데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분명히 황우석 때에 비해 한걸음 더 나아간 건 맞는거 같습니다.

걍 지나다가

2007.09.05 13:31:38
*.245.202.138

PB/
1. 두 당사자간, 혹은 두 집단간에 논쟁이 있다면, 자신의 위치에서 논점에 충실한 논리적인 입장개진을 펼치면 됩니다. 자신만이 논점에 부합하는 결론을 쥐고있다는 고자세를 취하거나, 논리적인 문제와 인격적인 문제를 혼동하여 마치 가정교사의 세카즘적 기질을 드러내는 논변을 펼치지 않는다면, 굳이 엘리티즘의 폐해 운운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봉구님의 글속에서 엘리티즘 얘기를 꺼낸 것은, 어린이 잡지를 발행하고 사회의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과 행동에 충실해 왔던 규항씨를 두고, 뭔가 정도에서 벗어난 학생에 대해 안쓰럽고 안타까운 맘을 갖는 선생님의 시선으로 그와 그의 글을 대하고 있는 그 이해할 수 없는 고자세를 문제삼은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소간의 입장의 차이를 갖는 대화의 상대일 수는 있어도, 가르침을 주고 받는 사제의 관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제가 규항씨의 글을 다 읽어본 것이 아니기에, 어떤 맥락에서의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규항씨가 평론가의 경계를 어떤 식으로 규정했다면, 그 규정은 평론가에 대한 사회의 다양한 생각들 중 유용하게 소통되는 여론의 공통분모를 그만의 감수성으로 걸러내어 발언한 것일 겁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평론가라는 전체 숲의 정경을 다 보여주는 진술은 아닐지라도, 그 숲의 일부를 면밀히 보여주는 날선 논리를 품고있는 의미있는 진술일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PB님께서는 그와는 다른 입장에서 이 문제를 보신다면, 그의 생각이 미처 닿지못하는 범위까지, 더 폭넓게 아우르는 논리를 펼쳐보이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PB님의 의견만이 정답이 되는 것도 아니요, 규항씨의 의견이 오답이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과학적 진리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유동하는 세계에 대한 의미있는 진술을 각자의 입장에서, 좀 더 보편성의 맥락에 잇대어 지껄이는 사회적인 행위를 하는 것 뿐입니다. 규항씨 역시 이를 잘 알기에, 그의 의견을 최종적인 진리로 포장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글은, 적어도 제가 보기에 언제나 그의 삶의 자리에서 진정성을 갖고 한 유의미한 발언이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3. 평론은 평론가 고유의 몫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내의 거대한 영화시장에서 평론은 그 영화의 마켓팅의 일부를 담당하는 상업성을 갖습니다. 그리고 평론가의 평은 관객의 주머니를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력을 갖습니다. 이런 상업적 현실은 모든 평론가가 자신의 진정성에 입각해서 평론을 해야한다는 당위보다, 시장성에 부합하는 그럴듯한 평론을 쓰도록 평론가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영화평론은 참 거짓이 분명한 객관적인 진리를 다루는 것이 아니기에,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어물쩍 넘겨쓰면 그렇게 양심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그럴듯한 평론이 탄생하게 됩니다. 실제로 메이저 영화사들은 자본을 제공하여 이런 평론가들의 탄탄한 평을 업고 가는 것을 주요 마켓팅 전략으로 삼고 있고, 많은 평론가들이 그런 시류에 편승하여 자신의 양심을 꺽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는 척박한 우리 문화산업의 토양을 생각할 때, 문화산업종사자들의 밥그릇 문제가 걸려있는, 그래서 비난할 수만도 없는 미묘한 문제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대중은 이러한 현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현실의 폐단을 통찰하여 블로그나 포털에 준엄한 비판을 하기도 하고, 나름 문화산업의 전망이나 비젼에 대한 나름의 의견들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그만큼 대중의 문화적 취향과 문화를 이해하는 눈이 상향평준화 되었다는 얘기인 것이고, 바야흐르 이제는 전문적인 평론가집단과의 경계가 모호할 만큼 전문적인 식견을 두루갖춘 네티즌 평론가들의 수가 많아졌습니다(제가 보기에 이 블로그 주인장 윤형님이나 기타분들도 다 그런 분들 같습니다)그래서 이런 분들의 다양한 취향과 의견을 수렴하지 못하고 한 영화에 대해, 혹은 한 문화적 현상에 대해 자신의 비좁은 틀안에서 논리를 구성하고 독단적인 성급함으로 발표한 글들은, 그 글이 아무리 전문가 집단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비난을 피할 수 없게되었습니다. 그것이 비교적 눈이 높아진(질적인 면보다 양적인 면의 팽창에 치우쳤다 할지라도) 우리네 대중문화의 현실이지요.

고로 전 평론이 영화산업의 일부로 상업화된 현실에서, 또 대중이 그 영화를 자기 돈주고 보는 정당한 소비자라는 관점에서, 왜 평론가를 향한 대중의 쓴소리가 독해자의 무지로 폄하되어야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대중의 목소리가 많은 경우 무지의 편향일 수 있고, 그 반대로 전문가들의 식견이 상업주의의 편승일 수 있으며, 이 양자 모두가 각자의 어그러진 계산속에서 상대의 뒷통수를 치는 행위를 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더욱 대중의 목소리를 발하고, 평론가는 진정성을 갖고 평론에 임하며, 사회(영화시장)는 이 관계가 건전하게 지속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갈때, 우리의 문화산업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행인3/
실제로 디워사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보거나, 포털이나 블로그에 올라온 댓글들을 보면, 내돈주고 내가 보는 영화 니가 뭔데 참견하냐는 식의, 난 잼있게 봤구만 니가 뭔데 헛소리냐는, 그런 류의 비난 글이 많습니다. 이는 평론가 중권씨가 대중의 취향을 무시한데 대한 반발로 인한 것임을 행인님도 부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중권씨는 대중의 영화적 취향을 무시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대중의 고약한 파시즘적 취향을 조롱하기 위해, 더욱 불을 지른 감이 있지만, 그 내막(전체주의의 폐해와 같은 구체적인 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일반 대중들은 내 취향을 무시하는 중권씨의 오만한 태도에 발끈한 것이 디워사태가 커지게 된 더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규항씨가 선빵 얘기를 꺼낸 것도 이 문제의 발단을 중권씨의 그 각본에 있다고 본 것이고, 더나아가 이 문제를 평론계 일반의 식민주의적 풍토나 대중의 취향을 무시하는 평론가 집단의 일방통행과 같은 공감할 수 있는 문제제기로 연결 시킨 것이라 생각합니다. 행인님의 생각이 다르시다면야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적어도 규항씨의 얘기에는 한번쯤 생각해 봄직한 의미있는 논점이 담겨있었다고, 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jiva

2007.09.05 14:06:01
*.95.196.240

확실히 김규항씨의 글에는 트랙백이 되지 않는군요..

zihu

2007.09.05 14:36:41
*.236.121.232

걍지나가다/

별내용도없는 리플을 길네 남겼네요..
다의미없는 말들로 보이지만...
누군가와 토론을 할때 얼핏느껴지는 상대방의 '자세'와 그것으로 미루어 짐작되는
마음가짐을가지고 싸우고 들면 개판이되어버리죠..
이성적인 얘기그만하자는 겁니다. 왜냐하면 님이 상대방의 심리상태를 마음대로 재단하고 남의 태도를
(님말씀데로)훈계하거나 가르칠 자격따위는 없자나요?
키보드워리어끼리의 설전일 뿐이게되는 것이죠...
뭐단지 김규항님을 욕하는 사람과 개싸움하고 싶었다면 할 말없지만...

도데체 봉구님의 리플 어디를 봐서 그런식으로
받아들이는지 전혀 이해가안되는군요..
님이 김규항을 아끼는 맘은 알겠는데
'단지' 김규항을 비판한다고 잘못된 태도니뭐니 억지 핑계를 데면서 반박하는건 눈살을 찌프리게 만드는군요

나디아

2007.09.05 15:23:54
*.176.84.144

Jiva/ 김규항씨 블로그는 트랙백 걸고 좀 지나야 걸린 걸로 뜨더군요.

PB

2007.09.05 16:16:21
*.125.118.80

걍 지나다가/ 김규항과의 인적 친연성, 혹은 인간적 공감대를 드러내시는 것은 '논리'에 치명적 해악을 끼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장하는 글의 곳곳에 긍정적 실천을 통해 '이력'을 만들어온 김규항에 대한 주관적 긍정이 녹아있고, 때때로 이 긍정은 과도한 '옹호'로 보일때가 많습니다.

1.님의 논의에 바탕된 전제는 비평자들이 "대중들의 취향을 무시한다"는 명제를 깔아놓고, 대다수가 이에 동감한다고 예단하고 있습니다. "쉬운 얘기, 누구나 다 알아먹을 법한 얘기에 뭔 분석씩이나 필요한지도 몰겠고, 가령 평론가가 대중의 취향을 무시한다, 혹은 그런 면이 있다고 하면 지나가는 사람 열이면 열 모두 그런 측면이 있다고 알아먹고 공감할 얘기에 왜 이런 긴 사족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네요" 전 '누구나'란 대범주를 상정하고, 대다수를 그 범주안으로 삽입한 성급한 일반화가 문제라 생각됩니다.

2. 또 하나의 주장을 요약하면, "지적유희나 취향의 배설 차원에서 써갈겨진" 평이 난무하고, 그 건너편엔 엘리트주의 평단에 대한 반감을 공유하는 대중들이 놓여 있다. - "지적유희나 취향의 배설 차원에서 써갈겨진"같은 표현은 님의 '영화비평'에 대한 원초적 반감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님은 평단과 대중을 대척점에 세우면서 인위적 대립구도의 경계를 긋고 있습니다. 이시점에서 생산적인 논의는, 평단과 대중을 분리해서 싸움을 붙이는게 아니라, '비평'이란 장르와 그 단순창작활동에 물리적으로 대응하는 폭력적 집단을 구분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님의 글이 끼치는 치명적인 해악은, 읽지도 않는 텍스트를 옹호하는데 분투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규항씨의 글을 다 읽어본 것이 아니기에, 어떤 맥락에서의 말인지는 모르겠으나"같은 진술을 읽다보면 모두에 지적한 김규항에 대한 애증이 끈끈히 느껴집니다.

하나만 지적합니다. '비평가는 생산에 기생하는 사람'으로 상징되는 김규항의 몰취향적 발언에 '여론의 공통분모'란 사회적 대표값을 부과했다는 점에서, 님의 주장은 인간적 공감대를 옆에 낀 맹목적 두둔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소간의 입장의 차이를 갖는 대화의 상대일 수는 있어도, 가르침을 주고 받는 사제의 관계는 아니기 때문"에 김규항이란 아이콘의 사회적 함의와 긍정성을 인정하더라도, 권위적인 발언에 내장된 오류는 걸러낼수 있고, 지적해야 마땅합니다.

"그와는 다른 입장에서 이 문제를 본다면, 그의 생각이 미처 닿지못하는 범위까지, 더 폭넓게 아우르는 논리를 펼쳐보이면 된다" - 논리 밖에 존재하는 외곽지대에 나갈것 없이 김규항의 발언만을 두고 해석해도 명백한 문제가 있습니다. 예술적 장르에 '위계'란 정치적 준거를 삽입한 김규항의 무지가 그것입니다.

"영화가 상업주의 편향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만큼 '비평'또한 체제에 속박될 가능성이 있다"는 상식을 지적하며 "평론가를 향한 대중의 쓴소리"가 "독해자의 무지로 폄하된다"고 하셨습니다. 비평에 대한 비평은 정당합니다. 허나, 소비주체가 비평을 비평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작품이란 생산물을 향한 내외적 비평을 자신들의 취향을 찍어누르는 학대기구로 이용하는 '비정상성'에 대한 사회적 비판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끼어들기

2007.09.05 16:45:14
*.43.54.3

걍 지나가다/

님의 글 : "쉬운 얘기, 누구나 다 알아먹을 법한 얘기에 뭔 분석씩이나 필요한지도 몰겠고, 가령 평론가가 대중의 취향을 무시한다, 혹은 그런 면이 있다고 하면 지나가는 사람 열이면 열 모두 그런 측면이 있다고 알아먹고 공감할 얘기에 왜 이런 긴 사족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네요. 전 규항씨의 글을 보면서 나디아님아랑 동일한 의미에서 그 글이 읽혀지던데, 그리고 비단 규항씨의 글을 중권씨의 글과의 어떤 대척점에 놓고 논의에 이용해 먹고자는 불순한 동기없이 그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디아님과 같은 독해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처럼 보이는데.."


저의 생각 : "쉬운 얘기, 누구나 다 알아먹을 법한 얘기에 뭔 딴지씩이나 필요한지도 몰겠고, 가령 평론가가 대중의 취향을 무시한다고 볼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분석해주면 지나가는 사람 열이면 열 모두 알아먹고 공감할 얘기에 왜 이런 긴 댓글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네요. 전 윤형씨의 글을 보면서 봉구님이나 PB님이랑 동일한 의미에서 그 글이 읽혀지던데, 그리고 비단 윤형씨의 글을 규항씨의 글과의 어떤 대척점에 놓고 논의에 이용해 먹고자는 불순한 동기없이 그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봉구님이나 PB님과 같은 독해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처럼 보이는데.."

걍 지나다가

2007.09.05 23:35:58
*.245.202.138

zihu/
오히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신 것 같습니다. 어떤 글에서든 논리적인 문제와 인격의 문제는 별개입니다. 글속에서 엿보이는 어떤 논리적인 결함이 그 사람의 인격적인 결함에 대한 근거가 되고, 그것이 그 글쓴이의 인격에 대한 비아냥이 될 때, 그리고 그것이 너그럽게 수용되는 분위기가 될 때,저는 그 자리가 파시즘이 싹트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좀 오해되는 면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무슨 규항씨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도 아니고, 혹은 이런 곳에 댓글을 싸질르는 취미를 가진 여유로운 사람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런 불쾌한 흔적을 남기게 된 것은, 규항씨의 블로그의 트랙백으로 윤형님께서 쓰신 글을 보았고, 그 글속에서 구사되는 그 날선 문장들에 다소 불쾌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독해에는 평소 규항씨에 대한 우호적인 제 사감과 전반적인 윤형님의 지성에 대한 저의 몰이해가 개입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욱 논리의 문제와 인격의 문제가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윤형님 글의 묘한 뉘앙스때문이었습니다. 마치 그 글을 보고 있으면, 규항씨는 왜곡된 논리의 전도사요, 타인의 취향은 그 구멍난 논리의 일부를 보여준 것 뿐, 그의 글 전반에 드러나는 부실한 분석과 논리의 부재에 대한 강한 조소가 묻어나는 것 같았습니다.(이는 윤형님의 글에 공감하며 기다렸다는 듯 규항씨의 선의를 비웃는 많은 댓글들을 볼 때, 저 혼자만의 오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봉구님께는, 한편으로 지나친 혐의를 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지만, 이렇게 논리와 인격의 문제가 뒤엉켜 버린 논의의 밑변에는 많은 경우 지적 엘리티즘의 폐해가 깔려있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 봉구님 역시 윤형님의 글에 동조하여 규항씨에 대해 허접하게 그런 얘기를 한다느니, 뭔가 의미있는 존재로 남으려면 포지션을 재정립하라느니, 궤도수정을 하라느니 하는 식의 인격적 비난을 가하셨기에, 저 역시 그런 혐의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 뿐입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하지만, 봉구님 역시도 규항씨에게 죄송한 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B/
제게서 규항씨에 대한 지나친 옹호의 느낌을 받으셨다면, 제가 이 블로그에서 규항씨에 대한 지나친 멸시의 느낌을 받은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제가 옹호하는 김규항은 님들이 비난하는 김규항과 감정의 강도상 정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거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1. 저는 '평론가가 대중의 취향을 무시한다'는 검증되지 않은 전제를 깔아두고, 대다수가 이에 공감한다고 섣불리 예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규항씨가 타인의 취향이라는 글을 이 전제위에서 출발했을 때, 이 전제가 이런 논란을 불러오리라는 생각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타인의 취향이라는 글은, 평론의 정의나 원칙, 혹은 예술 일반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개진한 글이 아닙니다. 디워라는 영화로 인해 촉발된 문화적 사건이 전사회적인 현상으로 까지 비화되는 이 기형성에 대해 그 나름의 감상을 피력한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중권씨의 이성적 논리의 맞은편에 있는, 대중의 폭발할 것 같은 뜨거운 감정의 정체에 대해, 그리고 그 형성의 원인에 대해 일정부분 대중의 취향을 무시하는 평론가의 오만에 그 혐의를 두는 것 뿐입니다. 사실 디워사태는 100분토론에서 영화에 대한 중권씨의 과도한 비난이나, 그후의 네티즌들에 대한 조롱하는 태도가 없었다면 이렇게 크게 붉어질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중권씨가 토론에 나와 차분하게 전후상황을 설명하며, 이송희일씨와 전체주의 문제를 거론하든, 혹은 평론과 취향의 변별점을 섬세하게 구분해 주었다면, 사실 이토록 광분하는 대중도 없었을 것이고, 규항씨의 글도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태가 이토록 급진적으로 돌변한 것은, 분명 100분 토론이후이며, 100분 토론에서 보여준 중권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오만한 태도가 이토록 놀라운 대중의 광기를 낳은 것입니다.(이는 제 말도 규항씨의 말도 아닙니다. 앞서 인용한 것 처럼 포털이나 블로그의 댓글 어디를 봐도 내 취향을 무시하는 중권씨에 대한 반감의 글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물론 중권씨는 그가 밝힌 것 처럼,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토론에 임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번 기회에 대중의 집단주의에 대한(제가 아는 한 그는 모든 류의 파시즘에 대한 가장 격렬한 혐오자인 것 같습니다.)그 나름의 일침을 가하기 위해, 그 스스로 모든 평론가 집단을 대표하여 포화를 맞는 십자가를 자처했을 수도 있습니다. 허나 그의 그런 납득할 만한 계산을 전제해도, 여전히 그의 그런 행동이 대중의 광기를 부채질했다는 비난은 피해갈 수 없다고 봅니다.(규항씨의 선빵론이 겨낭하는 지점입니다) 그가 다르게 대처했다면, 이 문제가 이런 소모적인 정서적 충돌이 아니라 모두가 고민해 봄직한 유의미한 논점들을 던지며 훨씬 깔끔하게 마무리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론가가 대중의 취향을 무시한다', 계속 논란이 되는 규항씨의 이 문장은 우선 검증의 잣대위에 올려져야 할 그의 선언적인 언명이 아닙니다. 디워 사태의 후폭풍을 지켜보며, 어느정도 그 자신의 감상이 결부된, 그리고 셀수 없이 많은 대중들의 증언을 그대로 옮겨온 (일종의)팩트의 기술인 것입니다. 제가 십중팔구 다 알아먹을 얘기라고 한 것도, 이 문장이 디워사태로 인해 댓글로 도배된 게시판들 어디에서나 보여지는 대중의 그 반감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를 다 알고 있지 않냐는 생각에서 한 얘기입니다.

2. 제 표현이 그런 오해를 불러왔는지 모르겠지만, 제 그 얘기들은 평론가와 대중을 구분하는 자리에 대한 고민을 하는 대목이 아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비평들 중에는, 어떤 구체적인 평론의 원칙과 기준에 입각한 비평이 아닌, 비평가 본인의 지적 유희를 위한 혹은 취향의 배설을 위한 차원에서 갈겨진 것들이 있고, 이런 감상의 지꺼기들이 평론시장에서 많이 유통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대중들이 이런 비평에 속아온 것도 사실이다, 고로 이런 현실이 대중의 취향을 비웃는 평론가의 오만에 대한 일종의 반감을 형성하기도 한다는 얘기를 한 거였습니다..

3. 읽어보지도 않고 논한다는 질책은 새기겠습니다. 얘기를 시작하면 논점이 옮겨갈 것 같아,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율리시스

2007.09.05 23:56:57
*.74.251.32

김규항의 '정치적 올바름'을 존경과 호감 어느 지점에선가 바라보고 있었는데, <타인의 취향> 이후 그의 '뻘짓'에 당혹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주유소 습견사건>이나 DJ DOC에 대한 뜬금없는 찬양에는 '뭐 어차피 저 양반 전공은 아니니까'라고 관대하게 '넘어갔었는데', 어째 일이 흘러갈수록 이 양반의 심미안 뿐만 아니라 '정치적 올바름'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 드네요. 개인적으로 이번에 올리신 글에서 가장 눈에 밟히는 대목이 '김규항은 워낙에 훌륭한 좌파라서 자본주의가 시장경제로 돌아가든 독과점 구조로 돌아가든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입니다.
이 양반 블로그에서 어느 때부턴가 '예수'가 양과 질 모두에서 마르크스를 압도하기 시작하던 시점부터 저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란게 워낙이 정교하고 보편적인 사상이다보니 그 위에 올라타기만 하면 어지간한 사태나 현상은 본인이 그리 힘쓰지 않아도 저절로 설명되곤 하니까 몇몇 사람들이 엉뚱한 길로 빠지기도 하는데 이 양반이 딱 그런 것 같아요. 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사회주의의 잣대로 예수를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거지, 종교라는 테두리를 떠나서 재기 시작하면 얘기가 아주 많이 달라지거든요.
그전에도 그런 경향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로 대표되는 종교의 논법, 즉 도그마)에 열중하면서부터 자신이 내건 도식적인 전제에 구체적인 현실을 복종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율리시스

2007.09.06 00:55:23
*.74.251.32

아, 그러고 보니 첫 글을 남기면서 인사도 안했네요 ^^ 이름 석자와 쓰신 글들은 종종 접해왔었지만 이렇게 블로그가 있는 줄은 이번 논란을 통해 알게 됐네요.
<타인의 취향>에서는 '어라, 이 양반 봐라'였다가 이어지는 글들에서는 -_- 였었는데 뉴욕펑크의 글을 대변인 삼아 트랙백 건거 보고 포기했습니다. 노무현, 황우석, 심형래는 여러 모로 지식인들을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였었던 것 같네요. 심형래 전까지만 하더라도 심미안까지 개입한 사안은 아니었는데, 이무기 영화 때문에 아주 우스꽝스럽게 커밍아웃하는 사람들 대열에, 그것도 끝자락에 김규항이 고개 빳빳이 쳐들고 있는 모습은 저를 슬프게 합니다. 개인적인 감정도 감정이지만 실천적인 지식인이라는 그의 아이콘적인 위상이 참 아깝거든요.
왜 자신이 가진 가치를 이렇게 쓸모없는 일에 웃음거리로 날려버리는지 모르겠어요. 더군다나 김규항 같은 위상의 지식인이 지닌 가치란 제것만이 아닌, 그가 헌신하고자 하는 '인민'의 것(저는 인민에게 그 소유권을 돌리기보다는 '인민을 위한'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하지만)이기도 하니까요. 노무현, 황우석, 심형래가 없으면 대한민국의 정치와 과학과 영화가 암흑시절로 돌아갈 거라고 믿는 사람들과는 달리 김규항 없이도 진보적 담론과 실천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많이 아쉽습니다.

내 참

2007.09.06 08:57:13
*.240.112.207

걍 지나가다/ 제가 님의 글을 읽고 나서,
"평범한 대중인 내가 알아먹을 수 없는 '논변'이니 '식민주의'니 하는 단어를 써가며 복잡한 논리를 펴고 있는 이 글은 내가 알아듣지 못하므로 진정성이 없는 글이다. 따라서 '지적유희나 취향의 배설 차원에서 써갈겨진 ... 오만하고 독선적인' 글을 쓴 당신은 평론가 그룹의 일원으로 나를 무시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진리는 마땅히 쉬워야 하지 않는가! 그러니 빨리 블로그 주소 까라. 대중의 쓴소리가 전해질 수 있도록."
이라고 하면 님은 납득하시겠어요?

PB

2007.09.06 09:57:18
*.125.118.80

걍 지나다가/ 님은 디워파동이 촉발된 시점을 진중권 이후로 보고있습니다. 파행의 책임을 그에게 전가하려면, 내적비평에 테러를 가한 파쇼적 집단의 폭력에 대한 선행적 해석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대중의 광기'운운 하려거든, MBC토론 이전에 이미 온라인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한 '입장'이 있어야 합니다. 본질은 축소한채 싸움을 부추긴 죄로 진중권을 포박하려는 것은 지극히 사후적 방안이며, 방향을 잃은 분노라고 밖에는 안보입니다.

지속해서 김규항이란 콘텍스트 안에서 텍스트(그의 발언)을 읽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실천적 행보를 통해 '진보'를 고민한 '김규항'이란 선의의 맥락에서 해석된 '발언'은 지극히 소소하고, 그가 취했던 정치적 포지션안에 들어올 여지가 충분한 지적으로 받아들여 질수 밖에 없단 점에서, 출발점이 잘못된 논의와의 충돌은 여기서 갈음하겠습니다.

zihu

2007.09.06 10:44:43
*.104.149.164

걍 지나가다//

김규항만큼이나 답답한 분이네요.ㅎㅎ

그러니까 논리를 비웃을 일이지 태도를 비웃진말라구요
비웃는게 문제가아니라 뭐에대해 이야기하냐는거죠...

거듭말하는데 님은 중언부언하고 계십니다...

덧붙여 님이 하신말씀 되돌려드리면...
님이 김규항 ''좋아하는 만큼'' ''정당한 비판자들''이 이유없는 게다가...무례한 김규항 까로 보일겁니다.

걍 지나다가

2007.09.06 13:49:12
*.245.202.138

zihu/
별로 글올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군요. ㅋㅋ 논리로 말하라. 그럼 제가 뭘 비논리적으로 말한 겁니까? 디워가 디워'사태'의 사회적 현상으로 비화된 일차원인은 님들의 분석처럼 복잡한 맥락을 따르지 않습니다.(님들의 분석은 디워가 사회현상으로 비화되기 전, 일부 네티즌들의 이송희일씨에 대한 집단폭력에 대해서는 정당한 비판이 되겠죠. 하지만 디워가 사회적으로 여론화 되고, 연일 포털의 검색순위 일위를 내달리는 사회현상이 된 것에는 '분명' 100분 토론이라는 방송이 있었고, 그 방송에서 진중권이라는 평론가의 과격한 평론이 있었습니다. 설마 이것을 아니라고 하시는 겁니까?)그럼 뭐냐? 단순합니다. 수많은 네티즌의 댓글의 표출해서 처럼 내 취향을 비웃는 중권씨에 대한 얄미움이, 디워사태의 일차적인 원인입니다. 이를 대중의 광기로만 몰아갈 수 없는 것은, 분명 이런 사태를 예견했다는 중권씨의 발언에서 처럼, 그가 상당부분 대중의 광기를 선동한 면이 있기때문입니다. 그가 토론에서 그런 식의 공격적인 태도를 지양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임을 님 역시 공감한다면, 일을 이렇게 몰고간 중권씨에게도 절반의 책임이 있는 것 역시 당연한, 님의 말마따나 논리적인 결론 아닙니까?(신기한 것은 님들의 그 많은 논의들 중 어느 것 하나도 이 부분을 얘기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입이 아플지경이지만, 규항씨의 글은 단지 이 상식에서 출발한, 디워사태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감상의 피력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출발한 글의 일부를 전혀 새로운 논점에서 출발하는(가령 전문적인 예술비평의 문제를 다루는) 자신의 논의속에 오려붙여 해체하고, 뭔가 핀트에 안맞는 반박을 서로 공유해가며, 그를 씹어대는 모양새가..하도 불쾌해서 이 글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아직도 뭔 얘기하는지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이렇게 자신있게 그의 입장을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실은 처음 윤형님의 글이 트랙백으로 올라온 연후, 그날 저녁쯤이었나. 규항씨가 타인의 취향(대중의 입장에서 평론가의 태도를 문제삼은..)은 디워사태 분석의 전편이요, 그 후속편으로 대중론(지식인 혹은 평론가의 입장에서 대중의 광기를 다루는..)를 다음 주에 쓸 예정이라는 글을 올리신 걸 제가 봤기 때문입니다. 헌데 윤형님의 글의 공격적인 뉘앙스로 인해 흠집내기 식의 소모적인 논쟁이 될까봐 그랬는지, 그 글을 자진 삭제하셨더군여.

암튼 저도 자격은 없지만, 뭔가 이건 좀 아니다 싶습니다. 적어도 디워 문제를 둘러싸고 대중의 광기, 파시즘, 전체주의와 같은 정신의 폭력성을 얘기하고, 또 그토록 혐오의 시선으로 그런 집단과 문제를 성토하면서 왜 님들의 글에서 동일하게 드러나는 그 선명한 정신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그토록 너그러울 수 있는 건지..규항씨의 글을 핀트에 안맞게 오려붙여 자신의 논의속에서 해체하고, (물론 모든 분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분들이 많고 그런 분위기가 쉽게 공유되는..) 댓글을 통해 낄낄거리며 서로 까대는 모습을 보며, 뭐 님들이 비판하는 대중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논리로 말하라~ 마치 논리만 갖춰지면 그 어떤 무례한 언사도 다 통용되는 것이 이 동네의 룰인지는 모르겠지만, 님이 숭상하는 그 논리에 목내는 거 별로 건강한 삶의 태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요, 삶은 푸른생명나무라는 괴테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삶과 세계를 설명하는 로지컬 랭귀지가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으며, 그러한 회의속에서 더 매혹적인, 더 고귀한 삶의 가치들을 우리가 추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류의 지성들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진정한 지성의 향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불청객으로 등장해 여러 사람의 심기를 어지럽힌 거 죄송하게 생각하고, 늦었지만 10만번 히트, 주인장님께 축하의 글 남깁니다. 늘 건승하십시요~

coala

2007.09.06 15:35:27
*.236.121.232

"규항씨의 글을 핀트에 안맞게 오려붙여 자신의 논의속에서 해체하고, (물론 모든 분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분들이 많고 그런 분위기가 쉽게 공유되는..) 댓글을 통해 낄낄거리며 서로 까대는 모습을 보며"
뭐 이정도면 '김빠'라고 불러도되지 않을까?
님이 김규항을 좋아하니까 김규항에대한 비판이 김규항에대한 공격으로 보이는 겁니다. 그리고 누가 낄낄댔다는거죠?^^
또.. 핀트가 안맞은 건 당신입니다...정신좀 차리세요

님같은 분이 많으니까 황우석사태니 디워사태니...하는게 일어나는 거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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