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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강남엄마 따라잡기 : 황금 vs 아우라

조회 수 1021 추천 수 0 2007.08.27 09:09:00

<강남엄마 따라잡기>가 보여주는 허영심은 단순히 황금에 대한 허영심이 아닌, 여러 종류의 가치들에 대한 허영심이다.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거대한 욕망의 환율 중계소다.


한국 사회에서 돈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뭔가 있을 수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대개 드라마에선 돈보다 중요한 어떤 정신적인 가치를 말한다. <쩐의 전쟁>에서 주희(박진희)는 돈보다 더 중요한 자신의 양심을 챙긴다. <메리대구 공방전>에서 메리(이하나)와 대구(강대구)는 돈과 명성의 유혹 앞에서도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신현모양처>에서 국희(강성연)는 자신의 남편을 뺏어간 돈많은 태란(김태연)에게 “너에게 없는 것은 진심”이라고 강조한다. 이들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은 ‘현실’과 대비되는 정신적인 가치의 승리의 현장을 훈훈하게 챙길 수 있다.


하지만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마치 르포와 같은 현장의식에서 출발한다. 강남엄마들은 아이들의 학습매니저이며, 철두철미하게 아이에게 얽매인 사람들이며, 아이의 성적에 따라 자신들의 지위를 결정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정의 부유함보다 자식의 성적을 자랑하며, 주로 그것을 기준으로 남을 깔본다.


그들의 노력은 부유함을 자식에게 되물림하려는 노력이므로, 결국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결론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진 않다. 강남엄마와, 강남엄마를 경원시하면서도 따라잡기를 원하는 강북엄마들의 가치관은 남편의 부․남편의 학력․자식의 성적 등 여러 가지 기준을 혼합한 복합적인 성격의 것이다. 가난하지만 강북 전교1등이었던 아들을 강남으로 전학시킨 민주(하희라), 부유했으나 강북 전교꼴지였던 아들을 강남으로 전학시킨 미경(정선경), 강남에 집 한채 가지고 있는 정도의 부유함에 아이들을 위해 끝없는 뒷바라지를 하는 도도한 수미(임성민) 등 여러 종류의 캐릭터가 각각의 우월감과 열등감을 드러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지점을 더 극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은 서상원 선생님(유준상)이다. 그는 신춘문예에 등단한 시인으로써, 엉터리 같은 시집에 추천사를 써주며 촌지를 받으면서도 논술학원 강사가 되어볼 생각이 없냐는 선배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때에 그의 내면은 ‘정신적 가치 vs 황금’의 이분법으로 판별할 수 없다. 그는 그가 지닌 시인으로써의 정체성을 논술강사와 맞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비도덕적인 촌지시인은 어쨌든 시인이지만, 논술강사는 시인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그는 비도덕적 행위의 결과로 시인협회에서 제명되었을 때 곧바로 다시 선배를 찾아간다. 여기서 그가 지키려는 것은 정신적 가치가 아니라 어떤 ‘가오’다. 그 가오가 무너졌을 때 그는 사립학교 기간제 선생님이란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흔히 대한민국 부르주아들은 돈만 밝히지 교양이 없다고들 말한다. 여기서 교양이란 황금과 구별되는 어떤 특수한 가치일 것이다. 예술의 경우엔 이것을 작품에 대한 아우라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이 아우라에 대한 관심이 황금에 대한 관심이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황금과 구별되는 가치를 인정해야만 예술을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예술적 영역에서 발생한 아우라에 대한 숭배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황금에 대한 숭배와 유사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 부르주아들이 돈만 밝히고 교양이 없다고 말할게 아니라, 교양 대신 다른 상징가치들(넓은 의미의 아우라)을 탐닉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강남엄마 따라잡기>가 보여주는 허영심은 단순한 황금에 대한 허영심이 아닌, 여러 종류의 가치들에 대한 허영심이다.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거대한 욕망의 환율중계소다. 이곳에서는 학벌과 황금의 교환율, 시인의 무게와 황금의 교환율이 논의된다. 그것이 이 드라마가 노골적으로 현실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재단의 비리에 맞서 싸우고 재단 이사장의 딸 수진(김성은) 대신 민주를 추구하는 서상원을 통해 또 한번 모종의 도덕성을 교훈적으로 전달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나로서는 되도록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윤형 (드라마틱 25호,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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