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나는 다른 어떤 부서보다도 국방부가 더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면한 문제가 단순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국방부는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놓고, 그것을 현실태에 맞춰 추진하고 있다.
국방부의 지상과제는 현재의 징병제 군대를 되도록 모병제 군대와 비슷하게 바꿔나가는 것이다. 전쟁 쪽수로 하는 시대는 지났고, 징병제 병사들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예비역이라면 누구나 병기본훈련은 받지 못하고 삽질, 곡괭이질, 낫질을 해야 했던 자신의 군생활을 기억할 것이다. 구타, 가혹행위, 언어폭력 등등을 금지하는 병영생활행동강령이 법으로 규정된 걸 두고 군기가 있어야 전투력이 생긴다고 코멘트했던 몇몇 예비역들을 보면 솔직히 웃음이 나온다. 자신의 군생활을 약간만 솔직하게 돌이켜봐도 그딴 식의 ‘똥군기’와 전투력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90년대 후반의 한국군은 지금에 비하면 말할 수 없을 만큼 구타가 일상적이었지만, 동해 잠수함 침투 사건 때 침투한 북한 특공부대원들 앞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들 대부분은 겁이 나서 소대장(소위다. 육군 병장들이 짬으로도 안 보는 그 소위들...) 뒤에 일렬로 서서 수색에 참여했다. 내가 속한 부대는 철책선을 바라보는 부대는 아니었는데, 그 당시 트랜드가 ‘직할대’를 검열로 조지는 거라서 교육훈련 검열을 특히 많이 나왔다. 덕분에 나는 화생방 상황시 ‘임무형 보호태세’를 주어진 시간 내에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분교대에 가보니 임무형 보호태세는커녕 방독면을 규정된 시간 내에 쓸 수 있는 병장들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참고로 나는 '메이커 부대‘에서 군생활했다. 지금 어느 후방의 듣보잡 부대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이런 건 ‘군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훈련량의 문제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몸으로 하는 일은 정말 못하는 편이다. 그래도 하다보니까 되더라. 다른 부대 사람들은 당연히 평소에 안했으니까 안 되는 거고.
그렇다고 바로 모병제를 시행할 수는 없다. 일단 방만한 사단조직이 정리되어야 하고 - 사단 통폐합 작업은 현재 진행 중이다.- 모병제 하 사병들의 급여 문제도 한번에 해결될 수는 없다. 언젠가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를 두고 아는 형들이랑 토론했는데, 양병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어느 형은 “문제는 양병거가 아니라 징병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거야!”라고 열을 올려 나를 웃겼다. 아니 그게 한번에 폐지되는 건가? 국가 정책이 무슨 혁명하자는 건가? 사실 국방부는 지향도 있거니와 현실태도 알고 있다. 국방부의 ‘개혁’ 정책이 지향하는 바를 단순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1) 간부 숫자를 늘린다. 2) 유급지원병을 늘린다. 3) 사병월급을 올린다. 4) 무급(월급이 올랐지만 무급이라 봐도 무방하다.) 사병의 숫자를 줄인다. 이 네가지 과제를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국방개혁 2020을 나는 나무람없이 지지한다.
사회복무제 역시 지지한다. 단, 사회복무제를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집총하지 않고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준다면 말이다. 솔직히 말해 군대 가서 총쏘는 일보다 조직 자체를 건사하는 막노동이 많은 현실에서, 총 한번 안 쏴보고 일만 하다가 전역하는 평화주의자들이 있다 한들 그게 무슨 해가 된다는 건가? “너는 나와 다른 도덕률을 가질 수 없어. 왜냐하면, 내가 당연히 받아들이는 걸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불쾌하게 하거든.”이라는 식의 소심한 논법을 벗어난다면, (아, 이 얼마나 마초적이지 못한 논법인지!) 사회복무제 혹은 대체복무제의 경제적 타당성을 부인할 논리는 딱히 없다. 논변적 타당성이 아니라 감성적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고백하자면 나는 절대적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심지어 나는 군생활 내내 내가 가진 K2 소총을 사랑했다. 좀 무서워하긴 했지만. (총 안 무서워하는 것들은 정말로 무섭다. 꼭 이런 애들이 사고친다.) 그렇다 해도 자신보다 도덕적인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는 건 인간적인 품위를 지키는 길이다. 나는 육식을 죄책감없이 행하지만, 그렇다고 채식주의자를 ‘꼴통’이라 부를 이유는 없잖은가? 양병거를 향한 악다구니들이 지겨운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사회복무제에 여성이 포함되기로 했다는 논의는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낳는다. 나는 그 조치가 잘못된 것이라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이 조치는 나름대로 고육지책이다. 당연히 이 조치는 군가산점제의 부활에 대한 예고편에 해당한다. 군가산점제의 문제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같은 사람은 단적으로 그 정책의 문제점을 ‘기회비용을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즉, 여성(+장애인들)이 군가산점을 포기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라는 문제에서, 우리는 아무런 대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여남 개병제? 일단 이건 말이 안 된다. 첫째, 앞서 내가 언급했던 국방부의 군발전방향에 어긋난다. 여자를 우르르 군대에 몰아넣는다 해서 전투력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둘째, 설령 전투력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여성들을 몰아넣을 수 있는 막사를 짓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된다. 그보다는 모병제로 전환하는게 차라리 비용이 덜 들 것이다. 셋째, 과연 남자들이 원하는 것이 여자들을 군대에 몰아넣는 일일까? 그것이 파생하는 효과를 안다면?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나는 보급병이었는데, 후임들이 여자들도 군대와야 한다 얘기할 때마다 다음과 같은 말같잖은 논리로 찍어눌렀다. “너 지금 나보고 생리대도 배달하라고?” (참고로 군대에선 모든 위생구들이 보급품이다.) 솔직히 말하면 여성 일반이 군대에 간다는 상상은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부분이 있다. 이건 좀 다르게 표현하면 너무 전복적인 상상력이다. 한국 여성들은 무의식적으로나마 세상에서 가장 심각하게 남성들에게 어필하려고 노력하는 집단일 텐데, 군역은 이 노력을 아예 무화시켜 버린다. 남자들이여-. 군대에서 만난 여군들을 기억하고 있겠지? 물론 그때는 하악하악했을 지도 모르지만. 한국 남자들이 20대 초반 여성들의 성적 매력을 대충 2년 동안 그렇게 철저하게 까부수는 걸 원할까? 나는 그들이 그 결과를 알고 있는 다음에야,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들이 실제로 원하는 건 (뭘 말하고 있건 간에) 여자들이 군대에 가는 게 아니라 군대 갔다 온 자신을 떠받들어 주는 거다. 자신의 주장의 결과를 모르고 늘어놓는 인간을 보면 우습다. 그런 이들의 맹점을 파고드는 악마들의 전설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내가 원하던 것은 이게 아니야-” 제 말이 초래하는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던, 악마에게 당하는 인간들의 고전적인 외침이다.
그래서 여자더러 ‘너도 군대 가’라는 얘기는 전혀 말이 안 된다. 설령 내가 ‘여자가 왜 군대 가?’라고 중얼거리는 마초가 아닐지라도. (나는 마초라서, 이스라엘 남자들을 좀 우습게 본다.) 하지만 사회복무제에 여성이 포함될 수 있다는 얘기는 이제 다른 차원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군가산점제를 산출할 수 있는 기회비용으로 계산하고 있지 않은가? 이 제도가 시행되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려는 여성은 두 개의 선택지를 지니게 된다. 22개월의 사회복무를 이행하고 가산점을 받든가, 아니면 22개월의 노력이 군가산점을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고 판단하든가. 정말 군가산점을 옹호하기 위한 탁월한 제도다.
여기서 나는 딜레마에 빠진다. 먼저 두 가지의 팩트를 지적하자. 첫째, ‘국방의 의무’라는 측면에서 (물론 이것이 바로 ‘군복무의 의무’와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남성들은 한국 여성들에 비해 과도한 의무수행을 해 왔다. 그러므로 사회복무제가 되었든 돈으로 내는 국방세가 되었든 이 부분을 교정하자면 여성들이 지금까지보다 추가적인 희생을 약속해야 마땅하다. 둘째, 그렇지만 전체적인 삶의 맥락에서 볼 때, 여전히 한국 여성들이 한국 남성들에 비해 누리는 삶의 질은 열악하다. 공부할 수 있는 권리, 직장에서 받는 처우, 출산과 육아의 의무가 온전히 그들에게만 떨어지고 그 피해가 직장생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점 등이 모두 그러하다. 그들에게 특정한 문제에서 더한 희생을 요구하려면, 적어도 다른 부문에서의 혁신적인 진보(...도 아니고 공평한 처우)를 약속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총괄적인 시각이고, 어쨌든 그 문제와 논리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국방부의 정책이 국방부로서는 최선의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그러한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한 명의 남성으로서는 그들의 정책에 찬성할 수 없다고 여긴다. 사회복무제에 여성을 포함시켜 군가산점제를 옹호하자는 야바위는, 적어도 현재의 한국의 여남관계 수준에서는 ‘치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판단을 온전히 옳은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점에 내 고민이 있다.
지나가다
지나가다
마지막에는 '군가산점제'가 여성이 정치, 외교, 군사 부문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구요.
'군대문화'가 여성으로 인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진지하게 쓰고 싶었는데;;; 그 놈의 전화 때문에;;;
음, 이것도 국민투표를 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