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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음주와 식사

조회 수 986 추천 수 0 2007.07.04 09:22:26
*위 사진을 긁어온 곳. http://kr.blog.yahoo.com/jclee09/9865

 

스스로 방대한 맥락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술은 음식의 일종이다. 혹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적어도 식사의 맥락에 맞춰서 발달해 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와인이나 맥주 역시 유럽인들에겐 식사와 함께 곁들이는, 물의 신선도를 믿을 수 없던 시절에는 물 대신 음용하던 음료였다.


하지만 주변부에서 저 술들을 받아들이고 나면, 이런 맥락은 사라진다. 와인이나 맥주를 우리들이 흔히 먹는 식사에 곁들여 먹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역시 선진세계의 술들은 선망의 대상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와인이나 맥주는 선진세계를 상징하는 기호가 되면서, 식사와 배제된 독자적인 맥락을 가지기 시작한다. 1930년대의 모던보이들이 농촌에서 노상 밥과 함께 걸치던 막걸리를 술로 인정하지 않고 맥주의 세계로 진입했을 때,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인들이 와인에 대해 유럽인보다 과도한 의미를 투사하는 것도 이런 맥락의 잔영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한국에 비해 술이 식사와 (다시?) 결합해서 발달해 왔던 것 같다. 가령 노자와 히사시의 소설 <연애시대>에서 술꾼으로 나오는 에토 하루-시즈카 자매는 (한국의 드라마에선 손예진과 이하나가 연기했던 그 인물들이다.) 식사와 함께 맥주를 마시다가 사케로 넘어가거나, 혹은 그 반대의 과정을 밟는데, 소주-맥주 조합보다는 훨씬 도수 차이도 크지 않고 식사와 결합된 조합으로 보였다. 일본 라면은 맥주와 함께 먹고, 실제로 우리도 먹어보면 그렇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우리의 라면은 소주 안주로나 삼을 수밖에 없는데, 사실 소주는 자체의 맛이 너무 세서 음식맛을 죽이는 술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일본 라면은 먹을 때 맥주를 함께 곁들일 수 있지만, 한국 라면은 소주와 함께 먹을 경우 소주의 안주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여전히 한국에서 술과 식사가 유리되어 있는 이유는 “그것들이 외국에서 유래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한국인들은 술 소비량이 굉장히 많은 축에 들지만, 엄밀히 말해선 술을 즐긴다기보다는 자기학대의 방편으로 사용한다. 음식맛과 함께 술맛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술과 함께 죽어보려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에로스가 아니라 타나토스다. 이것을 ‘사람탓’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차라리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아직 술을 즐길 처지가 안 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최근 직장인들이 술에 대해 쓰는 돈이 책을 사는데 쓰는 돈보다 다섯 배 이상 많다는 기사가 나왔다. 나 역시 한국인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경제규모에 비해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비교인 것 같다. 직장인들에게 독서가 전적으로 여가에 속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직장인들에게 술이 여가에 속하는 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회식자리를 빼놓고 생각하더라도, 정신머리를 일할 수 있는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신체를 학대하는 음주를 여가로 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음주행위가 여가로 편입하지 못한 맥락에서 술이 식사와 여전히 먼 곳에 있다는 것이 사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인 것 같다. 국민소득이 2만불이든 3만불이든, 직장인들이 집에 와서 한가롭게 저녁을 먹는 일이 일상화되지 않는 이상 술은 여전히 식사와는 별도의 맥락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런 일이 일상화된다면, 원산지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비싼 와인을 사먹으며 ‘술과 식사의 결합’을 하나의 특권으로 소비하는 일의 값어치도 줄어들 것이다. 물론 그런 취미를 경멸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뱀다리 1 : 막걸리를 마실 경우엔 여전히 한국의 거의 모든 음식을 '커버'할 수 있다. 그러나 막걸리의 소비 역시 가령 파전이나 홍탁 같은 특정한 '안주'와 연결되어 이루어져 있다는 느낌이다. 슈퍼나 편의점에서 간단히 살 수 있는 병막걸리 제품 중에서 방부제 맛을 음미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서울 생장수 막걸리"가 거의 유일하다는 점도 이 사실을 증명한다. (이는 내 주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유통기간의 길이만으로도 확인된다.) 하지만 이 제품은 모든 슈퍼나 편의점에 깔려 있지도 않다. 물론 '시골'에 내려가면 수급할 수 있는 양질의 막걸리 제품은 좀 더 많아진다. 이것은 지역민의 연령분포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뱀다리 2 : 다이어트 때문에 술을 당분간 자제하기로 했다. 자제하는 만큼 술에 대한 포스트를 잔뜩 올릴지도 모른다. ㅋㅋ


노정태

2007.07.04 16:14:40
*.124.55.33

소주의 맛이 너무 세서 음식을 죽인다면, 회랑 먹을 수 있는 이유가 뭔지 설명이 잘 안 되는데. 물론 사케랑 먹으면 아주 끝내주긴 하지만 소주를 못 곁들일 건 또 아니거든. 소주가 아니면 영 안 어울리는 음식이 있기도 하고. 한국 음식이 전반적으로 강하다고 전제하고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강한 술을 먹게 되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뉴녕

2007.07.04 17:30:49
*.176.49.134

소주가 취할 수 있는 안주 중에 회가 제일 맛있고, 회가 취할 수 있는 안주 중에 (한국에서는) 그나마 소주가 잘 어울리고 구하기 쉽다는 비교우위일 뿐이지, 음식 맛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소주가 아니면 영 안 어울리는 음식'이 뭔지는 모르겠다. 그런게 있나? 사실 삼겹살과 소주도 잘 어울린다고는 볼 수 없어. 처음엔 가격 대 가격으로 붙어서 나오다가, 어느 순간부터 습관적으로 많이 먹게 된거지. 그 소주 위로 둥둥 뜨는 삼겹살 기름...

이상한 모자

2007.07.04 17:33:47
*.98.177.215

고기엔 역시 맥주지. 모든 고기엔 전부 다 맥주야. 이건 육식주의자가 하는 말이니까 틀림없는 사실이야.

노정태

2007.07.04 19:45:26
*.124.55.33

이곳은 노지아님이 리플을 썼다가 지운 자리입니다.

이택광

2007.07.05 14:08:05
*.207.37.1

소주가 한국음식과 어울리지 않는 술이라는 건 '맛칼럼니스트'들이 대개 동의하고 있는 것 같더군. 소주 자체가 원래 중국 술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충분히 일리가 있는 것 같은데, 내 경험상 한국 밥상하고 잘 어울리는 술 중 하나가 단연 맥주인 것 같아. 물론 그럼으로써 불어나는 뱃살은 감당하기 어렵겠지만...그리고 한국은 김치나 절임 같은 발효된 밑반찬들이 있어서 굳이 와인 같은 걸 함께 마실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밥과 술을 함께 마시는 풍속이 별로 없었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막걸리는 밥을 대신하는 노동주 개념이었지), 일부 양조전문가들 중에는, 한국의 양조기술이 덜 발달해서(쌀을 주식으로 하다보니) 위스키나 와인 같은 높은 주정의 술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더구만. 그래서 안동소주 같은 경우도 정말 '약주'로 만들어서 신분 높은 집에서나 조금씩 맛 보는 정도였다는데, 여하튼 이 주제도 한번 탐구해볼 만하네.

시만

2007.07.05 22:41:15
*.197.246.159

난 화랑을 추천할 수 있을 뿐(먼산~)

지나가다

2007.07.17 15:12:45
*.139.107.46

오호. 드러내놓고 막걸리를 좋다하시는 분을 알게되니 반갑습니다. 제 주위엔, 저는 그렇지 않지만, 막걸리를 기피하다못해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천시'하는 사람마저
'아직'있는지라. 뭐 다 자기 복이지요. 그렇게 맛있는 막걸리 그것도 서울 장수 생막걸리의 맛을 보르고 살다니. 아 게다가 서울 장수 생막걸리에 방부제가 들어가지않는다는 주장을 접하니 더더욱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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