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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메리대구공방전과 20대 백수들

조회 수 1232 추천 수 0 2007.06.21 18:19:16
메리대구공방전의 황메리(이하나)와 강대구(지현우)에게 아무리 감정이입을 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20대 백수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대체로 두 가지 지점에서 그렇다.

첫째는 우리는 아무리 돈이 없어도 그들만큼 뻔뻔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20대 백수들의 고난은 기성세대가 상상하는 극빈층의 고난과는 또 조금 다른 구석이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집에서 부모님이 해준 밥 먹고 다니는 황메리가 굶고 다닌다고 말하긴 뭣하다. 그래도 학교는 그럭저럭 좋은 데를 나와서 자신을 돌봐줄 선배라도 있는 강대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취생들이 밥을 굶는 일은 종종 일어나지만, 그것 자체가 가장 서러운 것은 아니다.

사실 황메리는 강은자의 돈을 빌릴 때 가장 자괴감을 느껴야 한다. 이 부분은 굉장히 현실적인 부분인데, 돈이 그쯤 없으면 별로 안 친한 사람들의 돈은 빌릴 수가 없기 때문에 부모님과 가장 친한 친구 한 두 명 정도의 돈만 빌렸다가 갚고 빌렸다가 갚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은근슬쩍 못 갚는 돈도 생길 수 있고. 자신에게 가장 잘해주는 사람을 가장 적극적으로 착취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 자존심 깎이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짓을 하니 서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황메리나 강대구는 가령 친구들과의 관계에서의 자존심은 애초에 내버린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그것이 비록 보기에는 재미있을 지라도, 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둘째는 우리는 그렇게 돈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만큼 진취적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20대 백수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기성세대는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밥을 굶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모든 경우에 전혀 안 굶는다는 것은 아니고, 기성세대의 어린시절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느라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사실 대부분의 20대 백수들은 꿈도 없다. 메리나 대구처럼 팔아먹을 영혼이 있는 사람들도 우리 세대엔 극소수에 속한다. 대부분의 20대 백수들은 "현실을 위해 꿈을 희생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언제나 직장에 맞춰 그런 것들은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도 불러줄 직장이 없는 이들이다. 그들은 집안에서 썩어 간다. 대개는 취업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투자를 하거나, 하는 척 하거나 하면서. 언젠가는 문이 열리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이들에겐 메리와 대구의 사례는 오히려 매우 특이한 경우일 수가 있다. 메리는 뮤지컬 배우의 꿈을 포기하면 결혼해 주겠다는 교사 남성이 있는 사람이다. 아니 사실 교사 부인이 되도 뮤지컬 배우 지망을 못 할 것도 없다. 다만 지금 드라마의 스토리상 메리의 꿈과 메리가 진짜로 사랑하는 남성을 추구하는 일이 같은 부류의 것으로 엮여 버렸을 뿐. 대구는 무협소설가 때려치고 다시 사법고시 시험을 준비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들은 비난하기 어려울 만큼 열심히는 산다. 메리는 뭔가 레슨장을 기웃거리고 있고, 대구는 하루에 얼마만큼은 글을 쓴다. (분량 상관없이 매일 글을 쓰는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리고 만일 진짜 작가지망생이라면 뭔가를 계속 읽어대고 있을 텐데, 대구는 무협지와 현실을 구별을 못하는 위인이니까 뭔가를 읽는 대신 맨날 운동을 해댄다. 하여간 그것도 노력은 노력이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했고, 그 대가를 치르고 있으며, 그래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았는데도 대가를 치른다. 원래부터 빚이 있었다는 듯이. 만일 여러분이 실제로 메리나 대구의 친구라면, 당신은 그들의 '고민'에 코웃음 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없다.

메리와 대구는 한편으론 너무 뻔뻔하고, 다른 한편으론 너무 윤리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비루함에 웃고, 그 비루함 뒤에 숨겨진 그들의 인간적 가치를 발견하며 감동한다. 그러나 현실세계로 돌아오면 꿈꿀 권리도 없이 아둥바둥대는 20대 청년들이 보일 것이다. 그들은 경멸받아 마땅한 존재일까? 메리와 대구의 사연에 감명받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게다. 다만 너무 현실적인 얘기를 보면 사람들은 불쾌감을 느끼기 마련이기 때문에, 메리와 대구의 싸움은 저런 양상을 띄게 된 것일 게다. 그런 점에서 메리대구공방전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자기 연민은 참으로 기묘하다.

노정태

2007.06.21 21:06:13
*.124.55.33

비굴한 행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버하는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나로서는 조금 놀랍다. 자존심을 세울 수 없는 상황이고 거기에 완전히 좌절하고 있다면, 남은 선택지는 그들과 상당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뿐이지. 가령 대학 시절, 술자리에서 돈이 없으면 나는 그때부터 스스로 생각해도 역겨울 정도로 재담을 떨곤 했거든. 자괴감이 느껴진다 해도 그걸 절대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는다는 말이야. 꼴값을 떨거나, 악성 채무자의 자세를 체득해서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고 민폐를 끼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자괴감을 느끼지 않는 건 아냐. 드러내지 않는 것 뿐이지.

게다가 진취적이다 진취적이지 않다 하는 부분도 그래. 글을 쓰겠다느니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느니 하는 '꿈'을 추구하는 이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청년들은 일단 입으로는 '우와' 해주지. 그러면서 '나도 너처럼 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추구할만한 용기가 있으면 좋겠어'라고도 해.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이면에는, 상대방을 철딱서니 없는 인간으로 취급하고 비웃고 있더라. 메리나 대구같은 종류의 인간에게 너는 코웃음치지 않을 수 있겠지.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그래. 나 자신의 경험을 곰곰히 되짚어볼 때 분명히 그렇다.

그래서 현실 세계의 20대들을 '꿈꿀 권리도 없이 아둥바둥한다'고 묘사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워. 그들은 자신이 영웅적 결단을 통해 어린 시절의 소중한 가치를 포기하고 현실 속에서 살아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다는 식으로 스토리를 짜놓거든. 그리고 적당히 직장에 취직한 다음 상사가 쪼거나 하면 '서른 즈음에'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자위를 하는 거지.

메리대구공방전을 응원하는 기저에는,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스크루볼 코미디로서의 미덕을 제하고 본다면, 그래도 매력적이고 지지할만한 캐릭터들이 자신이 못하단 '꿈'을 추구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싶은 심리가 있겠지. 그건 자기 연민이기는 하지만 별로 기묘하지는 않아. 적어도 내 생각은 이렇다는 거야.

하뉴녕

2007.06.21 21:19:22
*.176.49.134

1. '오버'하는 건 맞는데, 오버하고 또 거기에 대해서 쪽팔려 하고, 이런 과정이 이어지는 것인데 그것이 생략되었다고 설명하면 적절할 것 같다. 메리와 대구가 혼자 있는 장면이 드라마에 없는 것도 아니니까 말야.

2. 뭐 나도 코웃음칠 것 같다는 얘기니까 말이야. 코웃음치는 것과 '진취적'이라는 것은 또 별개의 범주로 얘기할 수 있고. 글쎄 내 경험을 통해 볼 때는, '스토리'를 짜놓는지는 잘 모르겠어. 처음엔 스토리를 짜놓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데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도 미션이 없이 살아가는 건 아니라서, 또 이 안에서 미션 세웠다가, 부쉈다가, 고민하다가 그러다보면 자기도 이전의 '스토리' 정도는 잊어버리기 마련이지. 그래서 남의 꿈이 우스워지기 시작하는 거고.

3. '기묘하다'고 말한게 이 작품이 왜 지지받는지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은 아닌데, 대리만족과 감정이입 사이에 묘하게 걸쳐 있어서 그렇게 표현하게 된 것 같아.

시만

2007.06.21 23:23:33
*.197.246.159

1. 썪어 >>> 썩어

2. 원래 남의 글을 썩 잘 이해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글은 유난히 어렵다. 드디어 나도 바닥에 다다른 건가...

하뉴녕

2007.06.22 00:59:05
*.176.49.134

1. ㅎㅎㅎ 요새 맞춤법이 영...^^;

2. 어렵다기보다는...;; 불친절한 글이긴 하죠. ;;

trotzky

2007.06.21 23:45:49
*.232.157.225

1. 심판부에 10년을 부대낀 상급자가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온갖 투정 끝에 빌려주니 한 달 약속이 어느 사이에 1년이 되고 서로 눈흘기는 나날의 계속이다 보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2. 저 역시 대학 졸업 후 약 7개월(98년 2월~9월), 그리고 11개월(2001년 11월~2002년 10월)에 걸쳐 주중백수 - 토요일 및 일요일에는 심판일이라도 했으니 밥값과 교통비는 해결할 수 있었기에 - 로 지내 보았기에 그 당시 제 자신에게 무엇이 있었나 생각해 보게 되네요.

결론?> 결국 드라마를 거의 안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위의 글에는 십분 공감이 간다는 뜻이라고...;;;;;;

안드레아

2007.06.22 06:20:51
*.176.44.54

메대공을 본 적이 있는데요, 메리는 정말 민폐형 여주인공이지 않나요? 그 뻔뻔함이란게 비굴함의 양 극단을 오가야 수긍이 될텐데 말이죠.

00년대 백수는 꿈이 있고 그래서 노력하는 백수가 아니라, 놀랄 정도로 체제순응적이고 체제편입적인 백수들이지 않나요.. 그래서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메리와 대구의 '딜레마'와 '백수'라는 위치에 저 자신은 납득이 잘 되지 않더라구요.

또 메대공과 쩐의 전쟁이 같은 시간대에 방영된다는 점도 재미있구요. 하지만, 저는 경성스캔들을 본다는..

넙치

2007.06.22 10:45:51
*.107.0.74

지나가다 들렸습니다. 지나간던 주제에 감히 글을 남깁니다.

일단, 주인장님께서 20대 백수 경험이 없으신것 같기는 합니다. 특히, 꿈을 위해 더 나은 생활을 포기해보신 경험은 없으신것 같습니다만, 제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메리대구가 그리 특이한 케이스일 정도까지는 아닌것 같다는 것이지요. 20대백수가 꿈이 없다니요? 20대에 꿈없으면 언제 꿈있습니까? 30대 백수가 꿈이 없다면 이해가 가는데.. 20대 백수가 꿈이 없다? 이건 정말 아닌듯 싶네요.. 주위를 살펴보시면 아주 많습니다. 단지, 인구 대비 퍼센티지로 굳이 따지자면 몇 프로 안될수도 있겠군요.

제 주위에는 나름 간간히 백수생활하는 프리랜서들이 꽤 많거든요. 민폐형도 꽤되고 대부분은 뻔뻔하지만 애교있는 뻔뻔이지~ 악의있는 뻔뻔이나 조폭형 뻔뻔은 아닙니다.
일단, 한 친구는 디자이너인데요, 꽤 실력이 있지만 상업적인 디자인보다는 자신의 창의력을 살릴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파 프리랜서를 하고 있습니다.. 프리랜서라는 게 말이 프리랜서이지.. 백수거든여~ 두세달 자기작업하다가~ 돈 떨어지면 한 2~300 받고 한달 정도 남일 해주고.. 또 두세달 자기작업하는...
또 한놈은 화가지요.. 이놈은 더 독한 놈입니다. 상업적인 미술은 예술정신에 위배된다하여 아르바이트도 미술과 관련없는 편의점 알바만 뜁니다.
한 친구 더 말씀드리자면 피아노치는 애거든여~ 국제 콩쿨 3위까지 했지만 1위 못하면 대가는 어차피 긇른 거라며 졸업후 4년째 피아노연습만 하고~ 매년 콩쿨에 나갑니다. 부모님이 IMF때 망하셔서 돈 없으시고.. 가끔 백화점에서 피아노쳐서 간간히 살아갑니다.
한놈만 더 할께요~ 이 놈은 2년전에 창업해서 아직까지 매출 제로입니다. 나름, 외국에서 알아주는 대학원 석사 출신입니다. 맨날 저에게 얘기하져.. 형 이번년엔 진짜 대박이야.. 근데 밥좀 사줘~

연예인 지망생 중 90%가 한달에 60만원도 못받는 저소득층이라는 군여~ 외국 대학원 진학키 위해 GRE, GMAT공부하는 사람들보면 멀쩡히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1년내내 백수 생활하며 밤새공부 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물론, 꿈이 없어도, 체재순응적인데도 불구하고 수 많은 백수들이 양산되는 현실이 안타깝긴 합니다.

님의 글을 보며 참 슬프다고 생각했어요~ 20대만 꿈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극히 드물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20대를 지나봐야 사람들이 꿈을 갖기 시작한다는 건가여?

전 메리 대구를 보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느껴지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생각보다 많을거라고 생각되는데..

하뉴녕

2007.06.22 11:25:05
*.176.49.134

좋은 덧글들 잘 읽었습니다.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

하뉴녕

2007.06.22 11:43:03
*.176.49.134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제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꿈을 위해 현실을 포기하다."는 말이 의미를 가지고 성립하려면, 가령 일본처럼 대졸 취업자의 90% 정도는 취직을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순간에 기회비용으로 두 개가 비교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슨 말이냐면, 그래야 일반적인 취업의 길을 포기하고 자기 하고 싶은 것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걸 때려치면 다른데 어디서라도 월급받으며 일하고 있을 텐데, 라는 말이 그리 어긋나지 않게 성립하지요.

하지만 실정이 한국쯤 되면, 고시를 치는 사람들도 다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취업시험 준비하는 사람들도 다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되어버립니다. 투입하는 시간이 그쯤 되는데 그게 '꿈'없이 될 일이냔 말이죠. 여기선 꿈 자체가 세속화되어 버리고, 사실 꿈이니 현실이니 하는 잣대가 무의미해집니다. 사람 머릿속에 들어가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라고 검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요.

그럼 다시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로 돌아와서,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나름대로 꿈을 위해 노력했다고 칩시다. 그때에 그들에겐 대개는 돌아갈 '현실'이 사라지게 됩니다. 뮤지컬배우가 되기 위해, 무협소설가가 되기 위해 몇년 노력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다시 취업전선으로 돌아가는 건 또 엄청난 위험부담을 가지고 가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만일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건 새로운 도전이 되는 것이지, '꿈을 버리고 현실로 도피한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 일이죠. 메리대구공방전에서는 황제 슈퍼 알바 선발시의 에피소드 등에서는 시대상을 풍자했지만, 이부분은 생략했다고 보는 거죠.

그게 아니고 먼 옛날 어느 시점인가의 선택을 토대로, 그때의 기회비용을 계산해서 '꿈'과 '현실'을 구별한다면, 그 말이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습니다. 그럼 제가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어느 시점 때 고시는 보지 않기로 생각했을 때에 대해 투정부려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건 상식적으로나 직관적으로나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지요.

노정태

2007.06.22 15:50:03
*.124.55.33

"하지만 실정이 한국쯤 되면, 고시를 치는 사람들도 다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취업시험 준비하는 사람들도 다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되어버립니다. 투입하는 시간이 그쯤 되는데 그게 '꿈'없이 될 일이냔 말이죠. 여기선 꿈 자체가 세속화되어 버리고, 사실 꿈이니 현실이니 하는 잣대가 무의미해집니다."

이 부분의 논리 전개에 문제가 있는 거야. 많은 고시생들은 자신이 꿈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특히 유명 대학 법대에 들어간 아이들은, 남들이 하는 대로 그냥 따라갈 뿐이지. 투입되는 시간이 크다고 해서 자신이 청운의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먹고 살기 위해 따로 할 일이 없다고 푸념하면서 법서를 넘기지. 그래서 많은 고시생들은 내가 법학이나 통상적인 취업 외의 다른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와 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거고.

"만일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건 새로운 도전이 되는 것이지, '꿈을 버리고 현실로 도피한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말도 그래. 현실로 도피할 수 있지. 다만 그 현실이, 예전부터 꿈을 쫓지 않으면 얻을 수 있었던 현실1보다 훨씬 초라한 것일 가능성이 높을 뿐. 아무튼 도피는 도피야. 초라해진다고 해서, 즉 자신이 투여한 시간으로 인해 어떤 댓가를 치르게 된다고 해서, 그걸 추구하다가 그만 두는 걸 도피라고 하지 말아야 할까.

정리하자면, 한국어에서 '꿈을 추구하다'라는 언어의 용법은 혼탁해지지 않았어. 물론 일부 얼간이들이 물타기를 하기 위해 내키지도 않는 고시공부를 하면서, 아니면 기껏해야 연봉 얼마를 받기 위해 입사시험 준비를 하면서, 자신이 그 거창한 무엇을 추구하고 있다고 둘러대긴 하지.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진정 뭔가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올바른 언어의 용법이 망가졌다고 볼 수는 없는 거야. 그에 따라, '꿈'을 추구하다가 돌아가야 할 '현실'의 안정성도 흐트러진다는 너의 구도도 성립하기 어려워지지. 위에 넙치 님이 드신 예에서도 나와있지만, 한달에 적어도 2~300씩 벌 수 있는 돈을 포기하면서 자기 디자인을 하겠다는 사람도 있잖아. 그건 엄청난 위험부담은 커녕 짭짤한 소득을 포기하는 것일 뿐이지. 새로운 도전? 아니, 말 그대로 안주하는 거잖아.

"그렇다면 만일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건 새로운 도전이 되는 것이지, '꿈을 버리고 현실로 도피한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 일이죠"라는 건 그래서 좀 그래. 애초에 꿈을 추구한다고 떠벌일 정도가 되려면 뭔가 확실하게 다른 지점을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닐까. 안정된 밥상을 가지고 있고 언제건 철회한 다음 다시 그걸 찾아 먹을 수 있는 상태는 사실 존재하지도 않잖아. 대학 졸업자의 90%가 취업을 한다는 일본의 경우에 대해 일종의 판타지를 투영해서, 그렇다고 가정하지 않는다면 말야.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다고.

하뉴녕

2007.06.22 17:20:23
*.176.49.134

그렇다면 우선 '꿈'이라는 용어는 애초에 소수의 사람만이 전유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그것이 혼탁해졌다고 볼 근거는 달리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겠다.

이제 남는 문제는 이거지. 그렇다면 "꿈의 추구와 그로 인한 현실의 포기"라는 것은 어느 사회, 어느 세대에나 있는 보편적인 문제가 될 터인데, 메리와 대구의 궁상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게 된 배경엔 분명 높은 청년실업률로 대변되는 사회적인 문제도 있을 거거든. (이 전제가 틀렸다면, 메리대구공방전을 작품 외적으로 평론하는 건 거의 불필요한 일이 되는 것이고. 나는 그런 시선이 옳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꿈을 추구하지 않는 이들도 백수가 되는 시대에 꿈을 추구하는 백수들이 추앙받고 있다는 원래의 문제의식을 다시 한번 제기할 수 있겠지.

노정태

2007.06.22 18:49:36
*.124.55.33

'눈높이를 낮추면 당장이라도 어디에든 취직할 수 있다'는 말은 대부분 진실이지만, 그런 소리를 하면서 '청년실업'이라는 말에 대꾸하는 건 싸가지 없는 짓이지.

꿈이라는 단어를 두 개로 나눠보자고. 메리와 대구처럼 뭔가 창조적인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싶어서 현실의 이익을 도외시하게 만드는 꿈과, 더 높은 연봉 및 사회적 지위를 노리고 현재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포기하게 만드는 꿈. 그리고 '높은 청년실업률'에 시달리는 고학력 청년들은 대부분 후자의 '꿈'을 추구하지.

그러니 그들은 자신들의 과정이 고단하면 고단할수록 전자의 꿈을 꾸는 사람들을 추앙할 수밖에 없어. 그게 대체 왜 문제의식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나로서는 좀 이해가 안 간다. 전자의 꿈을 추구하는 메리와 대구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그려내고 있다고 해서, 후자의 꿈을 추구하는 다른 이들도 그렇게 반드시 다루어줘야만 하는 걸까? 그런 드라마를 쓸 수 있다면 그건 참 대단한 일이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작품에 그런 문제제기를 하는 건 왠지 청구서를 잘못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하뉴녕

2007.06.22 20:28:04
*.180.10.137

>> 그러니 그들은 자신들의 과정이 고단하면 고단할수록 전자의 꿈을 꾸는 사람들을 추앙할 수밖에 없어.

-> 여기에 동의할 수 없는 거지. 다시 '백수'의 문제로 돌아와야 할텐데, '꿈'꾼다 해서 다 백수는 아니란 거야. 전자의 '꿈'을 꾸면서 심지어 '백수'이기도 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추앙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넙치님이 말씀하신 사례나 지금 네가 말하고 있는 사례에서 '꿈'을 꾸는 사람도 백수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잠깐 직업이 없다고 해서 백수는 아니니까. 그러니까 넙치님은 나에게 "백수였던 적이 없군요."가 아니라 "꿈꿔본 적이 없군요."라고 말씀하셨어야 했던 거겠지.

후자의 꿈을 꾸는 사람들을 사랑스럽게 다루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물론 그런게 있다면 '그건 참 대단한 일'이란 점에도 동의하고) 메리 대구가 '20대 백수'를 대변하고 있지 않으며, 거기서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는 거지. 자기 처지에 대한 정립없이 자기 연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야.

노정태

2007.06.22 22:56:16
*.124.55.33

추앙이라는 단어가 너무 거창하게 들린다면, '은근한 동경'정도로 바꿔도 내 논지는 고스란히 남겠어. 뭐 물론 돈이 애초부터 많거나 타고난 재주가 좋아서 경제적인 곤란을 그리 심하게 겪지는 않는다고 쳐보자. 그래도 자신이 '건실한 사회'에 속하지 못하는 잉여인간이라는 자의식은 고스란히 남지. 넙치 님이 말한 디자이너의 경우도 그래. 그렇게 아르바이트만 하면 커리어가 쌓이지 않거든. 나는 네가 '백수'라는 단어를 약간 이상할 정도로 '대학에 나온 후 취업 준비하는 과정에서 길어야 한 두해 정도 눈치밥을 먹는 청년'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느끼는데. 물론 뭔가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들만이 그 자랑스러운 '백수'라는 이름을 독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 생각에 너는 '꿈도 없고 돈도 없는', 대단히 빡빡하게 규정되어야 할 일군의 청년들을 상정한 다음, 그다지 내키지는 않지만 도덕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옹호한다는 투로 그들을 변호하고 있는 것 같다.

메리나 대구를 보면서 자기 이입을 하는 사람들 중에 그 얼마가 글쓰기나 발성 연습을 하겠느냐, 이런 관점을 택하고 있다면, 아까도 말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어느 순간 조금이라도 '최초의 동경'비슷한 걸 느끼더라도 그걸 그냥 묻어버리고, 끝까지 이상을 물고 늘어지는 인간들을 비하하면서 동시에 은근히 동경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해야겠다. 자기 연민은 오히려 자신과 꼭 닮은 대상을 보면서는 할 수 없는 일 아닐까? '나도 저랬으면, (반드시 좋지는 않겠지만), 좋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주는 것이 자기 연민을 끌어내는 지름길이라고 나는 알고 있는데.

하뉴녕

2007.06.23 09:49:27
*.180.10.137

댓글 쓰다보니 본문의 의도가 더 생각이 났는데, 이를테면 내가 메리와 대구가 사실 노력하는 중이라고 쓴거 말야. 대개는 청자들이 메리와 대구가 자기보다 더 한심한 처지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한 말이거든. 메리와 대구에게 선택의 여지가 생긴 건 선도진과 이소란 때문인데, 이건 뭐 '신데렐라' 상황이랑 비슷한 거고.

말하자면 니 말대로 일반적인 백수 혹은 백수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느꼈던 사람들이 꿈을 추구하는 메리와 대구에게 은근한 동경을 느끼고 이 극을 응원했다면 사태는 단순하겠지만, 사실은 그들을 내리보거나 비슷한 처지로 보면서 자신들을 변호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는 거야. 그것 자체도 나쁜 것은 아닌데 사태인식은 잘못 되어 있지 않는가라는 느낌이 든다는 거지. 그 점을 전제에 깔고 메리와 대구가 어떤 면에선 더 비루하지만 어떤 면에선 윤리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면, '기묘한 자기연민'이란 논지가 더 그럴듯하게 드러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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