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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판타스틱에 히가시노 게이고 책 리뷰를 보내면서 못 다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글이다.



아내를 사랑한 여자 상세보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창해 펴냄
2006년 나오키 상 수상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짝사랑>을 제목을 바꾸어 새롭게 출간한 책.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은 왜 반드시 남자 혹은 여자여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대학시절 미식축구부의 명 쿼터백이었던 데쓰로. 그는 10년 만에 당시 여자 매니저였던 미쓰키와 재회한다. 미쓰키는 그에게 자신의 신체는 여자지만 마음은 남자인 성정체성 장애를 갖고 있으며, 며칠 전에는 함께


 

<아내를 사랑한 여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히 옮김, 창해(2002)


원제는 <짝사랑>. 확실히 주의를 끌기에는 바뀐 제목이 괜찮다. 이 소설이 성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대놓고 광고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원래 원제로 번역을 했다가 다시 이 제목으로 개정판을 냈으니, 이 쪽이 더 상업성이 있는가 보다. 그래도 소설의 가치를 고려한다면 원제가 더 제목에 걸맞다. 이 소설은 일부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이 소설의 가치이기도 하고. 내가 본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이 많지는 않지만, 그 중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다.


마지막 리그전으로부터 13년이 지난 한 대학 미식축구부의 동기 모임에서 얘기는 시작된다. 주인공 데쓰로는 대학시절의 쿼터백(Quarterback, 팀의 리더로 모든 플레이의 작전을 지시하고 조정한다)으로 두 명의 여자매니저 중 하나였던 리사코와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다른 여자매니저였던 미쓰키가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녀(‘그녀’라고 표기하는 건 데쓰로의 입장에서 쓰기 때문이다. 어쨌든 데쓰로에게 미쓰키는 여자였다.)는 자신이 줄곧 남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어지는 두 번째 고백은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며, 세 번째 고백은 실은 옛날부터 남자의 마음으로 리사코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후 미쓰키가 사라지자 데쓰로는 모든 사건의 전말을 추적하게 된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식축구 장에 있는 것 같다. 쿼터백, 러닝백, 라인맨, 리시버, 타이트앤드 등의 포지션이 케릭터의 성격과 결부되어 나온다. 그것이 이 소설을 매우 흥미로운 장르물로 만든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미쓰키는 처음부터 끝까지 데쓰로를 QB(쿼터백의 줄임말)라 칭한다. 미쓰키가 자신의 성정체성이 남과 다르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그것이 이야기의 중심도 못 되는 것 같다. 미식축구부 맴버들의 겉으로 보이는 끈끈함과 그 이면에 있는 고립의식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게다가 데쓰로와 리사코는 미쓰키를 두고 부부갈등의 대리전을 펼친다. 


그러나 결국 별도의 것으로 보이던 두 가지 이야기는 하나로 수렴된다. 미쓰키의 미스터리를 해명하기 위해 성정체성이 남과 다른 여러 사람을 추적할 수밖에 없었던 데쓰로는 ‘만일 여자의 몸에 동성애자 남성의 마음이 들어 있다면 사회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기묘한 느낌에 빠지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듯이 보이는 이들에게서 남녀 관계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것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추적의 과정에서 데쓰로는 심지어 자신의 비밀마저 발견하게 되는데, 그 비밀을 미식축구부의 몇몇 이들이 이미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성정체성의 이야기는 흔히 ‘성정체성 장애’라 불리는 평균을 벗어난 이들에게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결국엔 데쓰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남성성이 얇은 껍질로 이루어진 갑옷과 같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지각한다.

동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사고를 감추고, 그 때문에 패배해도 변명하지 않는다……. 자기 혼자 그런 허세에 취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료들에게 어리광을 부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 허세에 도취되어 있는 자신을 많은 동료들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리사코가 ‘남자의 세계’라는 말을 혐오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철저한 자기애自己愛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아내를 사랑한 여자>, p594-595) 


그러한 전도는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의 결말에서 로버트 네빌이 ‘정상’과 ‘이상’의 개념을 바꾸는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그것처럼 한번의 논리적 전도로 도달하는 결론이 아니라 소설 내내 뫼비우스 띠 안을 헤매다가 도달하는 결론이라는 점이 훨씬 현실적이며 흥미롭다. 소설 내에 다른 추리소설처럼 '사건'이 없고 '추리'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세계 자체의 미스터리함을 내내 추적하는 부분이 흥미롭다면 당신은 이 소설에서 엄청난 쾌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700여 페이지를 넘는 분량이 합당하다고 느껴질 만큼.


또한 데쓰로는 미스터리한 세계 속에서 헤매면서 고뇌하지만, 거기에 맞서 부딪히는 우리의 시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모든 사건을 정리한 데쓰로의 회상씬에서, 아내인, 혹은 아내였던 리사코는 자신의 꿈을 찾아 아프리카로 떠나간다. 그녀는 왕년의 미식축구부 매니저답게 '터치다운'을 빼았아 오겠다고 말하며 데쓰로에게 '나를 믿어 QB...'라고 말하는데, 이 장면은 (미쓰키와는 달리) 리사코가 처음으로 데쓰로를 QB라고 부르는 장면이다. 미식축구부라는 공간은 리사코와 미쓰코에게 훗날 사회에서 받게 될 여남차별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게 했던, 어떤 즐거운 공간으로 기억된다. 그녀가 데쓰로를 QB라고 부르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성정체성에 의한 역할 관계를 넘어서는 우정이 복원되었음을 - 결혼생활은 끝났을지 모르겠지만- 의미한다. 이 회상씬이 소설의 앤딩에 해당하는데, 모종의 해방감마저 선사하고 있다.



연애편지

2007.06.19 13:24:57
*.188.216.118

사람마다 여러 감정이 있지만.. 인연이라는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친구 같은 사람. 연인같은 사람.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 언제나 함께 있고 싶은 사람.. 등등..

윤형님은 소중한 사람이 있나요?

하뉴녕

2007.06.19 14:26:53
*.111.244.169

...하나도 없다면 그것도 인터뷰 감이겠죠? 그 정도로 특이한 인간은 아닙니다. ㅋㅋ

정통고품격서비스

2007.06.19 21:53:37
*.216.114.61

안녕하세요. 윤형이의 소중한 사람입니다.

연애편지

2007.06.20 15:16:16
*.188.216.118

ㅋㄷㅋㄷ 젤 웃기당. ^^

연애편지

2007.06.20 15:17:15
*.188.216.118

웃으려고 안하는데... 자꾸 웃음이...T.T
정통님 센스있다..

Ratatosk

2008.01.22 03:39:03
*.128.177.42

후반부 리사코의 대사가 의미하는 바가 뭔지 헷갈렸는데 이 글을 읽으니 이해가 바로 됐네요.^^
좋은 리뷰 감사해요.

하뉴녕

2008.01.22 08:17:20
*.180.10.143

음, 도움이 되셨다니 저도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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