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내가 어떤 식으로든 참여했던 다큐멘터리 <참여정치의 추억>이 오늘 KBS 스폐셜에서 방영되었다. ‘어떤 식으로든’이라고 쓴 건, 이것저것 잡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기획회의도 같이 하고, 촬영도 같이 가고, 내가 안 나오는 장면이라도 혹시 모르니까 따라가서 촬영보조를 했다. 가장 기억나는 건 어느 사람 집에 가서 인터뷰를 할 때, 강아지 두 마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내가 옆방에 가서 그것(!)들을 꼭 끌어안고 있었던 일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 강아지들이 거실로 나와 방방 뛰자 사람들이 “우와, 사람을 이렇게 좋아하다니, 정말로 귀여운 강아지다!^^”라는 반응을 보이는데, 물론 그때 내 심정은 ‘참 퍽이나 귀엽겠다...’라는 것이었다. 사소한 일도 하고 좀 중요한 일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조직적으로 하는 일이 늘 그렇듯 결과물이 내 취향에 썩 맞는 것은 아니다. 사실 취향으로만 치면 전혀 안 맞는다고도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라는 건 ‘진짜’의 영역도 아니고 ‘가짜’의 영역도 아닌 곳에 속해있는 것 같다. 단순히 다큐멘터리 만드는데 따라다니기만 한 것도 아니고, 도중에 인터넷에 올릴 UCC 두 개를 사실상 미니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물론 영화과를 다니는 친구인 KSW의 프로페셔널한 솜씨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UCC는 KBS와 상관없이 우리 둘이 만들었는데, 초반에 나는 그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영상언어에 대한 내 이해는 더 깊어진 것 같다. 2달이라는 짧은 참여기간에 비하면 말이다. 그래서 방송을 보는 내내 내가 거슬렸던 것은 대사가 아니라 음악이었다. 이전의 나였다면 음악이나 편집의 효과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괜히 기분이 나쁘네...’라고 했겠지만 오늘의 나는 ‘이거 굉장히 몽롱한 음악을 틀어주는군...^^’이라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방송은 개혁국민정당에 참여한 개미당원들에 대한 온정적인 시선에 기초해 있다. 개혁당에 대해서는 나도 높이 평가하는 편이지만, 그렇기에 열린우리당으로의 성급한 이행을 결정했던 유시민류의 정치인을 비판적으로 보는 쪽이고, 덧붙여 결국엔 통상적인 개혁당원들의 정치참여 방식도 그런 식의 실패를 예정한 것이었다는 생각도 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쓴 글이 여기 많이 있으니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방송에 나오는 나를 화자로 지정한 나레이션은, ‘거짓말’은 아니지만 내 생각의 일부분이다. 어차피 이 방송이 나를 보여주는데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니까, 상관은 없다. 문제는 방송의 온정적인 시선이 구체적인 비판대상을 적시하지 않는 모호함과 음악의 몽롱함 때문에, 한때의 참여정부 지지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 그런 위안도 어느 정도는 필요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청소감 게시판을 가보니 이제는 노무현이 아니라 노사모에게까지 책임을 묻고 싶어 하는 정치적 반대파들과, ‘감동받은 이’들이 싸우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방송은 결국 한국정치의 소모적인 프레임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못하는 셈이다. 시청률이 어떻게 나올는지는 내일 두고 봐야 알겠지만.
다만 한 가지 의의가 있다면 지금까지 개혁당은 열린우리당의 전신으로만 알려져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개혁당을 독립된 주체로 부각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정도일 게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판단이 잘 안 선다. 그게 ‘성공’이라면, 내 취향에 안 맞는 몽롱한 음악도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 줄 수도 있으련만.
소회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그렇게까지 쿨한 척 하는 사람이 못 된다. 공부 열심히 하고, 새 알바 구하고, (나는 돈 받고 일했다. 후급이라 아직 받지는 못했지만.) 일하다가 친해진 분들이랑 마지막으로 술 푸는 걸로 이 허전함을 달래는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