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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천박함에 대하여

조회 수 949 추천 수 0 2006.06.13 02:27:00
카이만은 상병이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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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사회교리해설서의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대한 평가를 보고 웃었던 적이 있다.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저급한 부분에 대한 가장 고차원적인 분석이다.

어떤 의미에선, 정신분석학을 이보다 더 간결하게 요약하기도 쉽지 않다. 물론 일반적인 견지에서 볼 때 저 명제는 ‘모욕’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을 옹호하려는 사람이라도 이 명제에 발끈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니체, 프로이트, 맑스에게서 해석의 방향은 역전된다. 정신적인 것, 이상적인 것, 심층적인 것, 신비한 것은 물질적인 것, 유치한 것, 표면적인 것, 진부한 것으로 환원된다. (김상환,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 p164)

그렇다면 문제는 ‘천박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천박함’이 ‘고귀함’을 설명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느냐다.

여기 천박한 사람이 있고 고귀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전통적인 형이상학에서는 거기서 천박한 품성과 고귀한 품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고귀한 품성이 더욱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것이기에, 그것이 존재론적으로 더 우월하고 발생론적으로도 더 먼저였다고 논증한다. 반면 대부분의 후기 구조주의자들은 고귀한 사람의 품성이 어떤 천박한 욕망들의 조합으로 구성된 것인지를 설명한다. 이제 순서는 반대가 된다. 적어도 발생론적으로는, 천박함이 고귀함보다 먼저 있었다.

먼저 생겨난 것이 우월한 것이라는 관념은 플라톤에서뿐만 아니라 니체에게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후기 구조주의를 더욱 적극적으로 따른다면, 과연 우리가 그 관념을 지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고귀함이 천박함으로 환원가능하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러한 환원에서 고귀함이 인과론적으로 발생가능하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러한 환원은 내가 욕망의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윤리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가령 반지의 제왕을 생각해 보자. 프로도와 샘, 골룸은 명백히 이성, 기개, 욕망이라는 플라톤식 영혼 구별법에 의해 만들어진 팀이다. 이 셋이 협력하여 반지를 버린다는 행위에 성공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 프로도는 반지를 버리지 못하고, 돌아온 골룸과 프로도의 투쟁, 그 과정에서 골룸과 반지가 함께 오로드루인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결말이 나지 않는가. 이것을 주체 내부의 투쟁이라고 한다면 이제 이 영혼의 구별법은 플라톤을 넘어 정신분석학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윤리적 행동은 없다. 다만 있는 것은 욕망들의 분열과 투쟁, 타협일 뿐이다.”라고 얘기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있는 것이 욕망들뿐일지라도, 우리는 그 분열과 투쟁, 타협을 통해 윤리적 행위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인가. 어찌됐건 프로도는 반지를 버리는 것에 ‘성공’한 것이 아닌가.

우리 시대의 천박함은 (자신의) 천박함 이외의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그러한 천박함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카톨릭을 불쾌하게 하는 저 천박한 이론들은 오히려 고귀함을 옹호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천박함도 하나가 아니요, 그 다수의 천박함 속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다르게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저 환원을 즐기는 천박한 이론들만큼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이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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