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션 멤버들과 처음으로 합주를 해본 날, 그 중 한 명과 함께 종로3가 유진식당에 갔다. 그 동네라고 하면 역시 할아버지들과 탑골공원이다. 그 분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집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책정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내 지론은 가격이 싼 것은 싼 이유가 있다는 것이므로 음식의 질은 장담할 수 없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래도 인터넷 상에서도 유명한 집이라 한 번 찾아가보았다.
외관은 별로 신경 안 쓴다. 입구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전형적인 '시장' 스타일이다.
서울생장수막걸리를 한 잔 시켜서 마셔본다. 전후사정이야 어쨌든 그냥 이게 제일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막걸리인 것 같다. 이제 이 맛에 익숙해져서 다른 막걸리를 먹으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너무 달거나 탄산(?)이 적거나 하다는 느낌이다. 물론 뭐가 전통적인 막걸리의 맛에 더 가까운 지는 잘 모른다. 어릴 때 시골에서 마신 막걸리의 기억은 늘 신 맛이었기 때문이다.
녹두지짐인지 뭔지 이름을 잊어버렸다. 5천원이었던 것 같다. 싼 맛에 먹는다. 그렇다고 큰 흠을 잡을만한 것은 아니었고, 막걸리 안주로 그럭저럭 먹기에 좋았다. 반죽이 좀 두꺼운데 5천원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솔직히 재료가 무엇이 들어갔는 지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냉면이다. 육수 색깔이 기분 나쁘다. 저런 색의 육수를 보면 나쁜 기분이 든다. 고기를 끓여서 국물을 내는 모든 육수들은 투명하거나 뿌옇게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하얀 것도 안 된다. 냉면 육수를 떠먹어보니 저런 색깔의 다른 육수와 비교하자면 좀 밍밍했다. 그리고 메밀면 삶은 맛이 났다. 면수를 첨가하는 것 같았다. 면은 뭐 그럭저럭 이었다. 6천원에 먹는 냉면 중에서는 그래도 먹을만 했다. 역시 싼 맛에 먹는 셈이다.
돼지수육이다. 5천원이다. 획기적인 가격! 다만 어느 부위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앞다리라는 생각도 드는데, 고기가 눌려있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보통 눌러놓은 고기는 편육이라는 단어로 많이 쓰긴 하나 단어의 근본적인 의미를 찾아보면 편육이나 수육이나 똑같은 말이기 때문에 굳이 태클을 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설렁탕 국물을 서비스로 내주시길래 맛을 봤다. 싱겁다. 색깔이 뽀얗게 되어 있는데도 싱거우니 설렁탕 국물로서는 아주 맛이 없는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3천원짜리 설렁탕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퀄리티를 따질 일이 아니다. 대충 소금치고 다대기 풀고 소주 한 병 시켜서 먹으면 딱 맞는 정도다.
싼 음식은 싼 만큼 즐기면 되는 것이다. 싼 음식에 고퀄리티를 요구하는 것은 양심이 없는 행위다. 식당이 컨셉을 그렇게 잡았으면 그 컨셉에 맞게 평가하면 될 일이다. 유진식당은 돈은 없는데 돼지들이 달라 붙어 뭘 사달랄때 가면 좋은 식당이라는 얘기다. 다만 미식의 대상으로는 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