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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격암 님의 글을 읽고 - 논리주의의 오류?

조회 수 2264 추천 수 0 2012.02.14 19:58:59


http://blog.daum.net/irepublic/7888257


미디어스에 실린 나의 정희준 비판&'나꼼수 코피 논쟁' 비평 글에 대한 격암 님의 글을 읽었다. 격암 님 글의 핵심적 요지는 만사를 어떤 이론적 틀을 동원해 논리적으로 재단하려고 하는 먹물들의 작업이 세상을 올바로 바라보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먹물들에게 노장사상이나 바가바드 기타를 읽어보라고 충고한다.) 그 실례로 그는 내가 정희준을 비판한 부분은 정당하지만 본질적으로 정희준과 동일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정희준이 '진보/보수' 구분을 연역적/논리적으로 적용하여 사태를 재단하려고 했다면 나는 '공/사' 구분을 연역적/논리적으로 적용하여 사태를 재단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내 글의 핵심을 이렇게 요약한다. 


한윤형은 스스로 문제의 핵심은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즉 공인에게 요구되어야 할것이있고 사사로운 개인에게 요구되어야 할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꼼수는 언론상도 받았으며 진보를 대표하는 지명도를 가지게 되었으므로 바로 공인으로 분류되어야 하고 따라서 그들의 언행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이 있다면 유감이다라고 한마디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한윤형이 쓴 글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런 요약은 그가 내 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거나, 띄엄띄엄 읽었다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 내가 뭐라고 했는지 해당구절을 찾아보자.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무언가 명확한 합의에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어렴풋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라 부를만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깨달을 수 있다.


말하자면 나는 나꼼수 코피 논쟁에 맥락초월적으로 개입하여 뜬금없이 공사구분이란 카드를 꺼내든게 아니다. 사람들이 서로 주장하는 바를 들어보면 분명히 이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점을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리고 격암 님이 비평대상으로 삼은 내 글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내가 공사구분에 대한 어떤 외국학자의 이론이나 나 자신의 정의를 주장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나는 나꼼수가 공적 영역이라고 확정짓지도 않았다. 만일 내가 격암 님이 정리한 (정희준과 비슷하다는) 논증구조를 취했다면 글의 분량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아마 댓글란에는 "뭐가 이렇게 길어 짜증나."란 반응보다 "나꼼수는 스스로 해적방송이라 했는데 뭔 개소리냐 빙신아." 같은 반응이 더 많았을 것이다. 



정희준은 처음에 내가 문제삼은 글에서 '진보정치인'은 '정치인'이므로 무언가를 요구해도 되지만, 그냥 '진보'인 사람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했다. 격암 님 역시 생긴 모습을 내버려두어야 화합할 수 있다는 논지를 펼치면서 대통령과 같은 사람은 예외로 둔다. 즉 그들은 명료하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1)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구분이 있고 2)오직 전자에 대해서만 이런 종류의 행위들에 대한 규제를 요구하는 것에 합당한데 3)나꼼수는 전자에 해당하지는 않기 때문에 4)나꼼수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님아들은 문제가 있어 라는 논리구조를 취하고 있다. 격암 님은 자신이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단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고 마치 스스로 논리초월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마냥 글을 썼지만 그래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들과 다른 여러 사람들이 한 얘기를 분석하면서 논점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런 것이 필요없다고 말한다면 얘기를 하지 말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격암 님은 논리는 필요할 때나 사용하는 것이라 말한다. 정말 그렇다. 나는 별로 논리적인 인간이 아니다. 가령 점심 때 짜장면을 먹을지 짬봉을 먹을지를 고민할 때, 나는 구태여 논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친구와 함께 밥을 먹어야 하는데 내가 짜장면을, 그녀석이 짬뽕을 원한다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우리는 각자 원하는 것을 시켜먹거나, 상대방에게 자신이 맛있어 하는 음식을 먹는 것에 동참해 줄 것을 설득하는데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부분엔 논리가 필요없다. 나는 "검토하지 않은 삶은 가치가 없다."는 소크라테스식 주지주의의 신봉자가 아니다. 실제로 살다보면 이성적 사고가 별로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이성과 삶에 대한 내 주관적 느낌을 말하자면, "검토하다 보면 삶이 정말 가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말하기가 필요해지는 지점은 서로의 직관이 다를 때일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판단을 직관적으로 내리는데, 서로의 직관이 다른데 그 사실을 서로 참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인간종족의 행위에 관련된 직관이 거의 동일하다면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무리한 가정이지만) '논리'란 말은 탄생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만일 그런 사회에 논리학이란게 있다면 그건 심리학과 거의 구별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1) 서로 의견이 다르고,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행동하기 위해 행동을 조율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논리란 걸 찾는다. 그런데 1)은 보편적 상황이지만 2)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가 문제가 된다. 즉 공사구분의 문제란 건 좀 더 원초적으로 말하면 "문제가 된 이 상황이 서로의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따로 행동하면 그만인 상황인지, 아니면 어떻게든 합의를 이루어 함께 나아가야 할 상황인지"를 판별해야 하는 문제란 것이다. 



나꼼수 코피 논쟁에 대해 나는 해당 글에서 다음과 같은 핵심들을 주장했다. 1) 나꼼수 비판자들을 조중동 알바/꼴페미/진보신당원로 몰지 말고, 그들을 별도의 윤리적 직관을 공유한 (함께 나꼼수를 즐기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 2) 논리적 공방보다는 그들과의 대화에 신경을 쏟을 것, 3) 나꼼수를 공적 대상으로 볼지 사적 대상으로 볼지를 확실히 정하고 일관된 주장을 할 것. 격암 님은 내가 정희준과 같은 도식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사실 정희준과 같은 도식을 가진 것은 위에서 내가 분석한 격암 님의 주장이다. 심지어 나는 그것에 정확하게 반대되는 논증구조를 취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두 개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는게 큰 의미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양 주장의 기저에 깔린 전제들을 검토하며 그 주장들이 어떻게 어긋나는지를 살펴보려고 했다. 



그러므로 내 글의 결론에서 나꼼수의 사과를 요구한 것은 그러므로 논리필연적인 결론은 아니었고, 직관적인 양자택일이었다. 말하자면 내 글의 핵심요지에 따르면 나꼼수가 사과를 안 하는 선택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선택을 옹호하려면 나꼼수를 "듣기 싫은 사람들이 떠나면 되는" 사적인 것에 가까운 것으로 정당하게 위치시켜야 하고, 야권통합이란 대의를 위해 봉사하는 어떤 것으로 거듭 강조해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는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듣기 싫은 사람은 떠나라."고 말한 입으로 삼국카페가 지지철회 성명서를 내자 흥분해서 살생부 투표를 하는 치기만은 벗어던져야 할 것이다. 나꼼수가 다른 윤리적 직관을 가진 이들을 아우르려고 했다면 사과나 그에 준하는 해명을 했어야 하는 문제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떠나는 이들에게 침은 뱉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격암 님은, 본인이 핵심적으로 말하는 대로 믿는다면 오히려 내가 하는 얘기를 적극적으로 옹호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는 문제의 핵심은 공동체의 화합이며 상처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글 말미에서 굳이 '사과'를 요구하는 양자택일을 권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나꼼수와 그 지지자들에겐 일관된 선택을 한다고 볼 경우 택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생각이 다른 이들을 떠나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이 다른 이들을 품기 위해서 한발 물러서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상처를 줄이기 위해 나꼼수가 후자를 택하는 편이 낫다고 보았다. 그런데 격암 님은 사과를 하든 안하든 상처는 남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격암 님의 세계관에선 사람들이 상처를 안 받기 위해서는 나꼼수 발언에 상처를 받은 이들이 문제제기를 안하는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파업을 일으키기 전에는 사회문제는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보는 전경련의 세계인식을 보는 느낌이다. 



여기에선 격암 님이 '먹물'들을 질타하기 위해 끄집어 낸 '논리vs직관'의 구도가 허물어진다. 나꼼수를 듣고 낄낄대는 것도, 상처입는 것도 모두 직관의 영역이다. 그리고 상처입은 사람들이 행동에 나섰을 때 김어준이나 나꼼수 팬덤은 다음과 같은 논리적인(?!) 말을 한다. "네 기준으로 치면 지금까지도 용납못할 게 많았을텐데? 이제와서 화내는 건 비일관적이잖아?"(격암님 식으로 정리한다면, 존나 먹물적인 반응이다.) "내가 이번에 사과하면 앞으로 넌 분명히 또 계속 사과를 요구할텐데? 그럼 난 영원히 사과만 하다가 방송접어야겠네?"(이건 논리학에서 흔히 말하는 '미끄러진 비탈길 논증'이다. 상황에 따라 맞는 말일 수도 틀린 말일 수도 있는데 노동조합이 파업을 했을 때 기업이 어떠한 손해를 입더라도 결코 요구조건을 들어줘선 안되겠다고 믿을 때 흔히 가지는 느낌이 이런 거다. 나꼼수 사례의 경우도 그들이 이번에 사과요구를 처음 받는데 이런 믿음을 가진단 건 과도한 우려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윤리적 직관을 가지고 상처입은 사람들을 이렇게 논리적으로 비판한 후, 다른 생각을 가진 그들이 떠나갈 권리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물론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떠나갈 수 있단 점에서 이게 '위헌적 책동'은 아니지만) 그들이 문화적으로 후져빠졌다고 비웃는다. 물론 이건 나꼼수 팬덤만 그러는게 아니고, 이 사태에 관해 진보진영이나 페미니스트들도 상대편에게 취하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쓴 글의 첫부분에서부터 이 지점을 비평했다. 대체 내가 언제 환원주의를, 연역논리를 사용했으며 직관의 소중함을 무시했단 말인가? 



정리하자면, 이렇다. 1) 나는 연역논리&환원론을 동원하기는커녕 논란 당사자들의 상이한 직관으로부터 문제를 파악하려고 하였다. 2) 그리하여 나는 나꼼수측이 주도적으로 내세우는 성해방담론이란 '윤리'와, 페미니즘측이 주도적으로 내세우는 '윤리' 사이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았고, 이 다른 생각들이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만을 말하려고 했다. 3) 공사구분이란 개념은 바로 2)의 작업을 하기 위해 동원된 것이며, 내가 느닷없이 끌어낸게 아니라 논란에 동참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사용하고 있던 것이다. (정희준이 동원한 '마돈나' 사례, 그리고 사람들이 나꼼수를 옹호하기 위해 동원한 해적방송/잡놈/B급 문화 등등의 어휘를 고려하면 그렇다.)



우습게도 한국 사회에서 정치사회문제에 대해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나하나 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런 이를 비판하면서 먹물 일반이나 논리적 접근 일반에 대한 정형화된 비판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쨌든 나는 나꼼수의 '사과하지 않을 선택'을 존중하지만 그것이 존중받으려면 삼국카페의 지지철회 성명서에 대해서도 "이렇게 싸우느니 차라리 그게 더 나은 일인 것 같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지자들 모아놓고 '주키니' '주추행' '김변태'를 연호시키면서 상대방을 우스운 존재로 만들려는 김어준의 선택이 격암 님의 '윤리적 직관'에 부합한다면, 격암 님이 자신의 글에서 늘어놓은 그 미사여구들은 맥락을 잃게 될 것 같다. 김어준이 떠나는 사람들을 '다르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틀렸다'고 생각하는게 명백하고 그 점을 공표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굳이 노장사상이나 바가바드 기타를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평범한 인간들의 의사소통에 대한 관념 안에서의 '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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