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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프로게이머의 인권

조회 수 11263 추천 수 0 2010.10.23 04:58:58

지난번 칼럼에서 ‘프로게이머 이윤열의 명예’에 관해 썼다. 이윤열의 스타크래프트2 전향에 대한 일각의 어처구니없는 비판을 반박하는 글이었다. 이제 e스포츠팬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유명한 ‘테란의 황제’ 임요환마저 스타크래프트2 리그로 넘어와 맹활약하니, 조금 다른 얘기를 할 때가 되었다.


블리자드의 저작권 협상을 대행하는 그래택(곰TV) 측과 한국e스포츠협회 간의 지적재산권 협상이 점입가경이다. 협상 결렬에도 불구하고 협회 주관의 프로리그가 강행되어, 법적 대응이 예상될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의 언론들은 기본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대기업 스폰서로 구성된 협회 측의 입장을 반영한 기사를 내놓는다. 가령 한겨레21은 이 문제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독소조항으로 알려진 투자자-국가소송제와 결부시켜 기사를 썼다. 한·미 FTA를 찬성하는 입장의 한나라당 의원이 투자자-국가소송을 유발할 수 있는 ‘e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것은 분명 비판받을 만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 문제가 현재의 지적재산권 협상을 설명하는 근본적인 부분은 아닌 것 같다.


공청회에 나온 한 교수는 “스타크래프트는 공공재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주장에 함의가 있다고 보지만, 그는 협회가 그간 그 ‘공공재’의 저작권료를 게임방송국에 요구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블리자드에 대한 협회의 항의는 비유컨대 수도요금을 내고 물장사를 하라고 요구하는 국가에 “왜 대동강물을 파는 내 권리에 시비를 거는가? 물은 공공재가 아닌가?”라고 봉이 김선달이 항의하는 것과 같다. 그래택 측은 협상 결렬 후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공개했는데, 팬들이 보기에 그리 무리한 요구는 아닌 것 같다. 그래택의 요구조건에 따르면 게임방송국들은 협회에 내던 것보다 적은 저작권료를 내고 스타리그 방송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붕괴하는 것은 단지 협회의 e스포츠 시장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다. 게임 개발에도, 리그 탄생에도, 리그 진행에도 기여하지 않고 ‘가짜 저작권’을 요구하던 이 스폰서들의 모임은 이렇게 스타리그에 대한 팬들의 애정을 지렛대 삼아 다른 이들을 겁박하는 중이다.


물론 이들에겐 게임단을 운영하고, 소속 게이머들에게 ‘연봉’을 주는 ‘공로’가 있다. 그리고 게임단의 홍보효과가 운영비만큼도 나오지 않을 때 ‘e스포츠 시장’에서 퇴각하는 것은 그들의 영업 자유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블리자드나 방송국에 큰소리칠 만큼 프로게이머를 대우해왔는지 모르겠다. 현존하는 10여개의 게임단에 소속된 100여명의 ‘1군’ 프로게이머는, 서너 명의 억대 연봉자와 연 500만~1000만원을 수령하는 이들까지 층층상하다.


같은 숙소에서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함께 연습하는 ‘2군’에겐 대개 숙식만 제공될 뿐이다. 연습시간 규정이 철저하고 1년 365일 합숙을 기본으로 하는 이들의 ‘감금노동’을 최저임금으로 환산하면 1년에 2000만원은 족히 나올 것 같은데도 그렇다. 극소수의 스타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지망생의 열정과 미래를 갈취하며 대우도 해주지 않는 한국형 엘리트스포츠의 전형이 여기에도 살아 있다. 협회는 이런 짓을 하면서 정부로부터 e스포츠 육성기금마저 받아 왔다.


그러느니 ‘산업’의 형태는 미진하더라도 ‘취미’로 게임하고 잘 되면 ‘상금 사냥꾼’이 되는 블리자드 방식의 리그가 더 낫지 않을까? 스타2 리그로 건너간 왕년 ‘스타’들의 성공이 새로운 롤모델이 되길 바라는 것은 그래서다. 지적재산권 협상에 대한 언론 보도의 홍수 속에 프로게이머의 인권에 대한 언급이 없는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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