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경향신문] 진보정당, 활동가의 종언

조회 수 2276 추천 수 0 2010.01.16 09:21:03

경향신문 '2030콘서트' 원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1151804305&code=990000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대연합, 진보대연합, 덧붙여 진보양당 통합논의를 바라보는 진보정당 지지자의 입장은 편치 않다. ‘통합’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 이전의 얘기다.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권영길이 대선에 나왔을 때 열성적인 당원들은 전세금 빼고 셋방으로 옮기면서 돈을 부었다. 당의 ‘상근자’들은 열악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불평하지 않았다. 온 동네에 노조를 만들라고 중뿔나게 간섭하는 이 당의 상근자 노조는 창당한지 몇 년 지난 다음에야 간신히 만들어졌다. 원내진출한 의원들의 보좌관 월급을 노동자 평균 월급(당시 180여만원)만 남기고 당에서 환수해 갔다. 부조리했다. 민주노동당은 그런 부조리의 기반 위에 서 있는 정당이었다. 


분당 사태는 이러한 ‘활동가 신화’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자기희생의 쾌감은 그것이 결국엔 역사적 의미가 있을 거라는 달콤한 환상 속에서나 가능했다. 민주노동당의 정체와 분당은 활동가의 헌신이 무의미한 짓거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헌신을 ‘리셋’하고, 두 개의 정당이 새로 출범했다. 분당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으므로 우리에겐 통합이 필요한가? 아니다. 문제는 분당 그 자체가 아니라 분당에 이르게 한 일련의 과정이었다. 통합논의는 또 한 번의 리셋을 말한다. 오랜 당원들은 두려워한다. 내 헌신과 활동이 몇몇 정치인들의 탁상잡론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말이다. 그런 두려움을 품고 있는 그들에게 누가 더 이상의 헌신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지도부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당신들과의 협의 없이 이 당이 끝나는 일은 없다고 못박고 흔들리는 활동가들을 다잡아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몇몇 활동가의 자기희생이 아니라, 다수 당원들의 자발적이고 소소한 참여를 꿰매어 조직을 굴리는 방법을 체계화해야 한다. 전자가 운동권 방식이고 후자가 당원 민주주의 방식일 거다. 그런데 전자는 붕괴하고 후자는 만들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총체적 난국이다. 


‘활동가 신화’는 사라져야만 한다. 진보정당이 활동가의 벽 안에 들어가 있을 때 노무현은 그 벽을 뛰어넘었더랬다. 장인이 빨치산이 아니냐는 공세에 부당함을 말하지 않고 “그래서 나더러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일갈했다. 초연한 척 하지 않고 자신의 아픔을 그대로 표현하며 공감을 산 것이다. 민중의 아픔만을 얘기한 궁핍한 활동가가 은근한 도덕적 우월감으로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만든 것과는 달랐다. 부담스러운 활동가가 생활인의 감각을 잃어버릴 때 운동은 결코 사회에 착근할 수 없었다. 활동가가 아닌 나 같은 진보정당 지지자는 그 사실을 지난 몇 년간 뼈저리게 깨달았다. 


 
하지만 활동가 선배들이 제 삶을 학대하며 쌓아온 성취는 사회에 계승되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한 번의 ‘무의미’와 ‘허무’를 가슴깊이 끌어안게 되리라. 90년대 내내 온 국민에게 욕을 먹은 스트라이커 황선홍은 2002년 월드컵 폴란드전의 한 골로 자신의 모든 과거를 보상받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일이다. 운동권들에게 그런 행복한 기회는 없겠지만, 골을 넣는 순간에 어시스트라도, 피지컬트레이너라도, 아니 물 당번이라도 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활동가는 사라질 테지만, 그냥 사라져서는 안 된다. 통합논의를 하는 민주노총과 양당 지도부가 지쳐 떠나가는 활동가의 문제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는지 궁금하다. 진보정당이 가능하려면 저 활동가들이 더 이상 활동가가 존재할 수 없는 시대의 젊은이들과 만나고 어울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대중은 스스로 즐기는 자를 즐기는 법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 [고황] 야권연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24] 하뉴녕 2011-06-21 25079
22 [경향신문] 표만 훔쳐가지 말고 정책도 훔쳐가라 [6] 하뉴녕 2010-05-22 4269
» [경향신문] 진보정당, 활동가의 종언 [6] 하뉴녕 2010-01-16 2276
20 허경영의 콜 미, 그리고 콘서트 file [9] [1] 하뉴녕 2009-09-09 1386
19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 헛 힘 그만 쓰세요... [15] [1] 하뉴녕 2009-04-25 1167
18 [딴지일보] '노무현 시대' 이후에도 진보정치는 가능할까? [15] [2] 하뉴녕 2009-04-21 4704
17 주대환 논쟁 다듬어 보기 [1] 하뉴녕 2008-09-10 1816
16 진보신당 왜 생겨났나? [16] 하뉴녕 2008-03-29 1249
15 민주노동당과 나 [15] 하뉴녕 2008-02-16 1613
14 [펌] 딴지일보 주대환 인터뷰 [2] 하뉴녕 2008-01-19 1106
13 [서울대저널] 냉소주의의 위협과 제국의 역습 - 2007년 대선의 정치극장 [7] 하뉴녕 2007-12-06 887
12 [프레시안] '코리아 연방제'?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4] 하뉴녕 2007-11-27 916
11 그래도 권영길을 찍기로 결정했다. [3] 하뉴녕 2007-11-24 859
10 아이센가드 [3] 하뉴녕 2007-11-22 1028
9 [프레시안] "바야흐로 '구렁이들의 전쟁'이 도래했다." [29] 하뉴녕 2007-10-08 1657
8 대선 정국에 관한 잡담 [14] [2] 하뉴녕 2007-09-17 1108
7 진보담론과 개혁담론의 화해를 위해 하뉴녕 2005-01-05 2311
6 권영길 대표님, 결단을 내리십시오. 하뉴녕 2004-05-05 927
5 노통의 지지자 "두번" 배반하기. 하뉴녕 2003-06-11 1015
4 [이대교지] 조선일보 -수구세력의 탁월한 선동가 하뉴녕 2003-02-14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