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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anoxia 님 글에 대한 답변

조회 수 3189 추천 수 0 2009.07.03 15:19:30

이택광 : 폴라니, 그리고 인문학의 개입
anoxia : 이택광 비판 1
이택광과 칼 폴라니 논쟁, 그리고 독해의 문제
anoxia : 비판 2


이것이 논쟁의 전체적인 맥락인데, 내가 답변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장 최근에 올린 anoxia 님의 "비판 2"에 대한 답변을 의미한다. 이 논쟁은 새로운 논의로 나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문과계통 학생과 이과계통 학생이 만나서 대화를 할 때에 생기는 문제들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흥미롭다.


anoxia 님의 글을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나는 이택광씨의 의도가 아니라 그의 글에 재료로 포함된 잘못된 논변을 비판했다. (한윤형씨는 그 점을 무시하고 이택광씨의 의도를 설명하면서 이 논쟁을 어렵게 끌고 가고 있다.)

2) 우생학의 정의를 생각해 본다면, 진화심리학은 우생학과 관련이 없음이 분명하다. 박정희의 국민개조 역시 우생학과는 관련이 없다.

3) 한윤형씨가 인용한 김동춘의 글이 '국민 만들기'를 '인종주의'와 접목시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다. 단일민족국가인 한국에서 인종주의와 연결지을만한 현상이라면 호남 차별 정도밖에 없다.

4) 진화심리학적 사회평론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한윤형씨가 언급한 최재천의 사례는 '자연주의적 오류'의 표본이겠지만, 그것은 진화심리학과 무관한 것이다.

5) 그러므로 이택광씨의 논변은 잘못 되었다.


먼저 anoxia 님이 '민족'에 대해 하는 말은 한국사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지만, 이 논쟁에선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까 그냥 넘겨도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의대생일 거라고 추측되는 anoxia 님이 한국사의 민족주의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알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이런 말을 굳이 하는 이유는, 소위 과학도들이 논쟁에 있어 중요한 논점이 아닌 부분에서의 상대방의 과학적 오류를 끄집어내 조소하면서 논쟁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꼴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anoxia 님과 나의 의견은 처음 시작부터 지금까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데, 자세한 맥락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설명을 다 했으니 논점과 관련해서 다음 몇 가지만 지적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첫째, 과학 용어는 분과 학문 내에서는 엄밀한 의미로 사용되어야 겠지만, 일상언어나 다른 학문에서 참조하는 언어로 넘어간다면 꼭 그렇지도 않다. anoxia 님의 논지는 일반적인 과학도들이 인문학에 대해 내뿜는 불만과 마찬가지로 이 점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말이란 게 기본적으로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가령 네크로필리아란 말이 있다. 시체애호증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에리히 프롬이란 학자는 이 말을 확대시켜서 "모든 생명없는 것들에 대한 애착"이란 의미로 사용한다. 그리하여 물질숭배 같은 것들도 다 네크로필리아란 말로 표현된다. anoxia 님의 방식대로라면 우리는 여기서 "에리히 프롬이 말을 잘못 썼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그럴 수는 없는 거다. 내가 인문학적 독해의 방식 운운했던 것은 그런 이유다. 세미나할 때 내가 "여기 에리히 프롬이 말을 잘못 썼네요!!"라고 하면 상대방은 뭐라고 얘기할까? "에리히 프롬은 말을 그렇게 썼으니까 그렇게 이해하고 읽어."라고 답변할 게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친절하게 얘기해주지도 않는다.)

단어의 정의는 명확할 수록 좋다. 문제는 과학의 경우 그 용어가 분과학문 학자들 모두에게 공유되어야 하지만,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으로 넘어오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용어는 엄밀해야 하지만 그건 그 학자의 체계 안에서만 엄밀해도 된다. 에리히 프롬이 네크로필리아를 그런 의미로 썼다면 정확하게 그의 지평에서 엄밀하면 되는 거다. (사실 철학사의 중요한 단어들은 각 학자마다 그 정의가 다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이택광의 말이 나온 제반 맥락을 풀어서 설명해준 것인데, anoxia 님은 이것을 논점일탈이라고 받아들인다. 아예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다른 것이다.

나는 anoxia 님이 그런 식의 용어 사용 자체에 대해 불만을 품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수준의 의견개진을 넘어 "그것은 틀렸다."고 말할 요량이라면, 대화 자체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전공도서만 보는 게 나을 것이다.


둘째, 진화심리학적 사회평론이 존재할 수 없다고 anoxia 님이 이해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진화심리학적 사회평론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이 학자에 의해 이루어지든, 아니면 진화심리학의 상식들을 줏어들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든 그건 마찬가지다. 어쩌면 후자가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택광의 애초의 글은, 읽어보면 누구나 '진화심리학을 활용해서 사회비평을 하는 행위'를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학을 가지고 사회평론하는 것을 객관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례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 사례는 굉장히 많지 않은가?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과학에 입각한 '자연주의 평론'이 다른 평론보다 특별히 더 우월한 구석이 없다는 사실에는 합의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뭔가를 알면 그 지식을 활용해서 사회를 설명해보고 비평하려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태도다. 최재천이 유전자 이론으로 사회평론을 하는 것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최재천의 그런 평론이 다른 평론과는 다른 독특한 권위를 획득하는 것이다.

anoxia 님은 최재천의 자연주의 평론에 반대하면서도 진화심리학이 결국 욕망 등의 문제까지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이건 좀 모순적이다. 진화심리학이 욕망까지 설명하게 되면 '평론에 대한 욕망'을 견딜 수 있을까? 물론 그 평론은 '진화심리학'이란 학문에 포섭되는 것은 아니므로 '진화심리학적 사회평론'이 존재할 수 없다는 anoxia 님의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옳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에 내가 했던 말이기도 하다.

내가 anoxia 님의 최초의 비평을 보고 그것을 논점일탈이라고 느낀 것은 그래서였다. 이택광은 처음부터 진화심리학적 사회평론 얘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 진화심리학은 이렇게 훌륭한 학문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실 논점과 상관없는 자신의 학문의 맥락을 쓸데없이 끌어들이는 쪽은 내가 아니라 anoxia 님인 것이다. 지난번엔 생물학의 개념까지 끌어들였고. 


셋째, 이택광이나 나나 우생학=진화심리학이란 주장을 한 적이 없다. 다만 우생학과 진화심리학이 같은 문맥에 놓이게 되는 지반을 말한 것일 뿐이다. anoxia 님이 지금 하는 말은 "히틀러와 anoxia 님은 눈이 두개라는 점에서 같다."라고 말했는데 죽어도 히틀러 같은 나쁜 놈과 선량한 자신은 같이 엮이면 안 된다고 말하는 식이다. 그 같은 지반이란 것이 '자연주의 평론'을 말한다는 것은 이미 anoxia 님 자신의 반론에서도 고민으로 드러나 있다고 믿는다. 
 

이쯤이면 할 수 있는 말은 다 한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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