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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이해가 안 가는 국군 보급의 민영화...

조회 수 996 추천 수 0 2009.02.17 18:39:55


어제 연합뉴스에 "병영생필품 7월부터 병사들이 직접 구매"라는 기사가 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2503905


내용인즉 그간 부대에서 지급하던 세숫비누와 세탁비누, 치약, 칫솔, 구두약, 면도날 등 6개 품목을 직접 구매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육군은 병사들에게 매월 1천380원을 지급, 이 돈으로 필요한 생필품을 구매토록 했으며 해.공군은 현금구매 방안을 아직 확정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보급병으로 군생활한 처지로 저런 기사를 보니 매우 의아하다. 저 품목들은 보급에서 2종에 해당하며 '위생구'라고 불리는 품목들이다. 흔히 우리가 얘기하는 생필품에서 먹거리들을 뺀 품목들을 포괄한다고 볼 수 있겠다. 2종 보급병은 매월 위생구 결산서라는 것을 작성해서 이 품목들의 수요를 상급부대에 제출해야 한다. 그렇지만 1인당 지급 기준이 월별로 정해져 있는지라 보급병이 할 일은 병사 숫자를 파악해서 기입하는 것 정도다. 가령 세숫비누는 매달 나오지만 치약은 세달에 한번 꼴로 나오고 칫솔은 다섯달에 한번 꼴에 나온다는 식이다. 원래 위생구에는 휴지가 포함되지만 기사를 보니 휴지는 현금 구매 품목에 포함되지 않은 모양이다. 


국방부는 "작년 6월 현금구매제도가 현 정부에서 강조하는 예산절감 기조에 역행하고 오히려 예산을 불필요하게 낭비할 수 있다며 육군 측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업체에서 군에 납품하는 단가를 책정하여 병사들에게 현금 지급했으니 군의 입장에서도 예산절감의 효과는 없을 것이고, 한편으로 병사들은 애초 지급받던 위생구의 1/3도 그 금액으로 사기 힘들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건 어느 쪽에도 유리한 정책이 아니다. 


육군은 ""병사들의 기호가 모두 다르고 그간 일괄 지급하다 보니 사용하지 않은 제품이 있는데도 이를 지급받아 낭비되는 측면이 있어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고 정책취지를 설명했다고 한다. 물론 분명 그런 일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더라도 이 정책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부대 특성이나 시간의 차이에 따른 오차가 있을 수 있겠으나, 내 경험 안에서 볼 때 위의 6개 품목 중에서는 남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세탁비누와 세수비누는 확실히 남는 편이다. 병사들은 당연히 손빨래보다는 몇달에 한번씩 지급되는 가루비누를 넣어서 세탁기 빨래를 하기를 원한다. 세수비누의 품질은 그닥 나쁘지는 않지만 병사들이 가능하다면 '사제' 샴푸나 바디클랜져를 사용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보급품에 있어 '사제'의 사용은 원칙적으로는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두 막을 수는 없고 해서, 오히려 짬에 따라 샴푸 사용을 규제하는 내무반 관례가 '내무부조리'라고 국방부에서 적시하는 식의 '혼선'이 있다. 계급에 따라 사제 제품 사용을 규제하는 내무부조리가 사라져 가는 추세이니 세수비누는 내가 군생활 할 때보다 더 많이 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칫솔과 구두약은 남는 일이 별로 없다. 적어도 버리는 경우는 못 봤다. 구두약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보단 좀 많은 듯 하기도 하지만 휴가갈 때 광내고 어쩌구 하다보면 다 쓰기는 쓴다. 칫솔이나 구두약은 (비누류와는 달리) 간부들이 몇 개씩 스리슬쩍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병사들이 툴툴거린다. 치약은 결코 남지 않는 품목이지만 뭐라고 평가하기가 뭐하다. 그중 상당수가 본연의 의도가 아닌 청소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칫솔 대신 옥시싹싹을 보급해 줄 것도 아니라면 이것도 부대에서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거다. 면도날은 잘 모르겠다. 수염이 자라나는 빈도에 따라 남성들의 면도날의 수요는 천지차이라서, 수염이 많이 나는 이들에게 몰아주는 편이다. 그렇더라도 면도날은 쉽게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는 품목이기 때문에 좀 남는다고 생각해야 할지도.  



굳이 군의 예산에 대해 병사의 효용을 극대화시키면서도 자원의 낭비를 막는 방법을 찾는다면, 1) 세탁비누 보급 중지 혹은 축소, 대신 가루비누 보급 확대 2) 세수비누 보급 중지 혹은 축소 정도의 방책이 언급될 수 있을 것 같다. 6개 위생구에 대한 현금 구매 결정은 어떤 식으로든 납득하기가 어렵다. 저 금액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줄 뻔히 알면서도 ""처음에는 한 번에 6가지 품목을 구매하겠지만 여러 달 사용할 수 있는 제품도 있기 때문에 구입품을 줄여나갈 것으로 본다"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무책임하다.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일까. 이참에 2종 보급병의 귀찮은 업무인 위생구 결산을 아예 폐지해 주겠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고마운 일이겠으나 군당국이 행정계원의 업무 하중에 대해 그렇게 신경써 준 적은 없는 것 같다. 결국 충성마트 (PX)의 민영화를 앞두고 민간기업의 예상 매출을 부풀리려고 했던 것이 저 정책의 의도가 아닐까 한다. 설마 저런 얕은 꼼수를 부렸을까라는 느낌도 있지만, 다른 가설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참여정부 시절 국군은 주로 임종인 전 의원의 의견을 받아들여 병사들의 임금을 인상해 왔다. 징병제 사병들의 복지도 이전에 비해선 현저히 나아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병사들에게 월급을 줘놓고 그것을 민간업자들에게 도로 토해내라고 하는 식의 보급민영화 정책을 실시한다면 이전 시대의 성과가 무색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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