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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 점도 논의의 여지는 있지만 일단 그들을 극우파라 가정한다면) 극우파의 역사교과서가 출간되었다는 것보다 더욱 쪽팔린 것은 국사 교과서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고 살고 있지만 세상에 그런 나라는 대한민국 외에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우리는 일본인들의 교과서가 왜곡되었다고 무시하지만, 사실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의 역사인식 수준을 비웃을 때 곧잘 하는 말이 국사 교과서가 하나밖에 없는 나라라는 말이다. 국가에서 가르쳐준 것 외에 무엇을 더 아냐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여러 가지 시각의 다양한 역사책이 출간되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은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널리 읽히는 역사책이 국사책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러한 조소를 전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렵다. 국사 교과서가 하나밖에 없는 현실은 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지나친 힘겨루기를 낳기도 한다. 가령 ‘환빠’를 탄생시킨 재야사학자들은 1980년대에 소위 강단사학자들과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신군부에 로비를 하는 쪽을 택했는데, 국사 교과서에만 서술이 포함되면 사실상의 정사(正史)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속셈 때문이었다. 


청소년들이 악영향을 받을 거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단지 역사 교과서 한 권만으로 그들의 역사의식이 결정될 거라는 식의 우려는 지나친 감이 있다. 만일 그런 식의 우려가 정당하다면, ‘국사 교과서 한 권밖에 없는 나라’에 대한 일본인들의 조소 역시 전적으로 정당한 것일 테다. 교과서가 출간되는 것과 그 교과서가 몇 개의 학교에서 채택되느냐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관점이나 해석에 비판적이라면 비판을 하면 될 일이지 출간 자체가 개탄할 일이라는 식의 접근은 인정받기 어렵다.


오히려 다양한 관점의 역사교육이 실시 될 때, 상이한 역사적 해석에 대한 이해를 평가하기 어려운 현행의 학력 평가 방식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실천적인 일이겠다. 그리고 현행 국사 교과서가 ‘좌파’적이라는 뉴라이트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 한다면, 또 다른 관점의 국사교과서를 만드는 일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논의는 그저 원론적인 수준인데, 언론에 소개된 교과서의 대략의 내용을 보니 이 사건을 평가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엔 박정희에 심정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이 꽤 많고, 그 심정적 동의를 이용해 먹는 거대한 정치세력도 있다. 이러한 나라에서 박정희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역사교과서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격렬하게 반대했다고 해서 나는 또 “5.16=혁명 / 4.19=반란”이라 주장하기라도 한 줄 알았다. 그런 것도 아니다. 적어도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문제는 구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가치판단에 반대할 수 있는 다른 사료나 다른 도덕률을 제시하면 될 일이다.


서로의 논쟁을 위해서도 뉴라이트의 주장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쪽이 좋다. 막연한 정서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하나의 역사관이 정립된다면 문제는 다르다. 매우 타당하게도 독재정권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하는 그들은 일제 식민지 시기나 이승만 정권의 역할에 대해서도 재평가하고 있다. 일제엔 이를 벅벅 갈고 이승만은 무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박정희만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어느 소시민의 시각보다는 훨씬 정합적이고, 역사적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물론 논리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하고 박정희 독재정권을 옹호하는데 성공하는 어떤 역사관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일단 여기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만일 박정희를 좋아하면서도 식민지 근대화론은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뉴라이트 역사교과서를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그런 이들의 힘까지 빌려 반대파의 숫자를 불려서 그들을 비난한다면, 나는 오히려 그렇게 운동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이 더 우려스럽다. 대중의 정서가 우리 편일 경우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활용하는 자세는, 당장엔 이득이 될지 몰라도 결국 정치 행위 전체를 수렁으로 빠뜨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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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이후 노회찬 의원과 심상정 의원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좌파정당입니다.) 의 이 사건에 대한 논평자료. 양쪽 다 비판적이나 진보신당 쪽의 논평에 조금 더 내가 말한 문제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노동당 보도자료] 최순영 의원 “뉴라이트 왜곡 교과서, 용납안돼”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뉴라이트 황당 왜곡 역사교과서
최순영 의원, “일제침략, 군사독재 미화 용납해선 안돼”


이명박 정부 들어 난데없는 유령이 하나 둘 출몰하고 있다. 그 유령은 이명박 후보의 당선 결과를 두고 국민들이 무분별한 온갖 역주행을 지지했다고 오해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새정부 인수위의 영어몰입교육과 온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던 한나라당 서울시의원들의 학원영업시간 자율화가 그랬다. 또 하나 나타난 역주행 사례가 이른바 뉴라이트 지식인들의 황당한 역사교과서이다.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이 3년여의 준비 끝에 기존 역사서술이나 해석과는 사뭇 다른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대안교과서'를 출간했다. 대안교과서는 이미 그 준비과정에서 역사상식을 뛰어넘는 해석으로 4.19 혁명 관련 단체들과 충돌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관점이 개항과 국제무역 확대 등의 시각으로 표현되고 논란이 뜨거운 식민지시대 한국사회의 성격에 대해서는 ‘일제의 한국지배는 한국인의 정치적 권리를 부정한 폭력적 억압 체제였다’라고 규정하면서도 이 시기에 완전한 의미의 근대적 신분해방과 사유재산제도가 이뤄지고, ‘모던보이’와 같은 근대의 인간군상이 탄생한 시기라는 측면을 강조했다.

또한, 군사정권과 유신체제를 미화하는 등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인식에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발전과 역사발전의 과정에 대한 심각한 왜곡된 진술이 포함되어있다.

역사용어 선택 또한 파격을 시도해 ‘명성황후’는 ‘민왕후’로 격하시키는 등 잘못된 역사인식을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심각한 상황은 ‘교과서 포럼’에서 23일 내놓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의 집필진 12명 중에는 역사학 전공자는 없다는 사실이다.

청소년들이 역사를 배우는 교과서에 암울했던 일제침략시대와 군사독재시대를 미화하고 긍정적인 면을 내세워 강조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숭고한 항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것은 신체를 망가뜨리는 마약을 투입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근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잘못된 역사책이 학교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함께 불매운동을 벌이고 준엄한 꾸짖음에 적극 나서 줄 것을 제안한다. 올바른 역사의식은 가치판단의 잣대이고 우리의 미래를 밝히는 횃불이기 때문이다.

2008년 3월 24일
국회의원 최순영(부천 원미을 국회의원 후보)


[진보신당 논평]
뉴라이트 ‘교과서’와 대통령의 역사인식
역사를 실용주의적으로 보라고 청소년에게 가르칠 수 있나



이영훈 서울대 교수를 주축으로 하는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이 현행 고등학교용 역사 교과서를 ‘좌파적 역사 인식’이라고 비판하며 ‘대안 교과서’를 내놓았다. 소위 ‘대안 교과서’에는 기존 역사 서술과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역사 인식이 담겨 있다고 한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이런 내용의 책이 나오지 못하게 금지할 수는 없다. 또, 이명박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실용주의적 역사 인식이 학술적으로 정리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제 학계에서 실용주의적, 우파적 역사 인식과 정면으로 대결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책이 ‘교과서’용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은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역사학 학술서로 나왔다면 이 정도로 파문을 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교과서의 역사인식은 청소년의 역사관과 국가관, 가치관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현행 교과서가 ‘좌파적 역사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검정을 거친 현행 교과서는 역사학계에서 검증된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인데, 그러면 한국 역사학계에는 좌파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것인가.


우리가 느끼는 위기감은 이단적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한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역사를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일정 이상의 세력을 갖고 있고, 청소년을 상대로 포문을 열었다는 것 때문이다. 하기야 대통령부터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민족주의’를 주문했으니, ‘교과서 포럼’만의 문제는 아니겠다. 대통령의 역사 인식을 묻고 싶은 시점이다.


2008년 3월 24일

진보신당 대변인 송 경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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