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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레디앙에서 모두 민주노동당의 진통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종이신문들조차 이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보도하고 있다고 한다. 민주노동당 당권을 장악한 자주파(NL)와 그들을 변호하는 사람들은 현상유지 및 대동단결을 호소하고, 그들을 비난하는 이들은 당 쇄신 및 분당 불사까지 외치는 형국이다. 나는 이 문제를 살펴봄에 있어 어느 쪽 입장이 옳냐는 가치판단에 앞서 당면한 현실을 짚어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 민주노동당의 문제는 무엇인가?



레디앙에서 좌파신당을 요구하는 논자들이 이미 적절하게 정리했으니 긴 말은 하지 않겠다. 좌파 정체성을 지닌 사람과 시민사회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요구는 대개 이렇다.



1) ‘북한 편향’을 벗어나라.
2) 민주노총 중심성을 탈피하여 비정규직을 좀 더 적극적으로 대변할 방법을 찾아라.



그리고 한국 사회 평균보다 훨씬 진보적인 사람들이라면, 여기에 덧붙여



3) 여러 종류의 소수자 운동에 대한 감수성을 갖추고, 좀 더 적극적으로 연대하라.



정도를 주문할 수 있을 것이다. 



2. 왜 민주노동당은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가?



첫째, 일차적으로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자주파가 당권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민주노동당 내에서 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그들을 거리낌없이 종북주의자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자주파의 전부를 종북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여하간 그런 이들이 당권을 잡고 있는데 1)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둘째, 자주파 뿐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이끌어온 모든 운동세력들이 노동조합을 벗어나서 사고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원인에 대해 말하는 것은 너무 복잡한 분석을 요구하므로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셋째, 둘째 문제는 이념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유물론적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의 지지기반을 벗어나서 존립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3. 그래서 분당론자들의 주장은 무엇인가?



약한 입장 : 자주파의 득세가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훼손시키고, 결과적으로 이번 대선 참패의 흐름까지 이끌어 내었다. 이 사실에 대해 그들이 뼈저리게 반성하고 제일선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분당조차 검토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 내 ‘전진’ 정파의 입장?)



강한 입장 : 군사왕조 북한을 옹호하는 종북주의자들은 진보라고 볼 수 없다. 서구 사회에서도 민족주의는 더 이상 좌파 이념과 결합하고 있지 않다. 지향이 달라진 만큼 분당은 불가피하다. (진중권, 홍세화 등의 지식인과 당내에선 이재영, 어쩌면 조승수?)



4. 분당론의 문제는 무엇인가?



가) 명분이 떳떳하지 못하다



‘약한 입장’의 논리적 난점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우리는 자주파와의 권력분점에 실패했어요. 그래서 탈당하려고요.” 정당정치의 관점에서 올바르지 않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면 민주노동당 내 좌파는 너무나도 억울하다.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답변할 것이다. “저들은 당내 민주주의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어요. 당원 위장 전입 등을 일삼았거든요.” 맞는 말이지만 이것은 그동안 민주노동당이 사실상 ‘정당’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 해당 행위에 대해 공당의 입장에서 어떠한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같은 페이퍼 당원은 물론 알고야 있었지만, 지금 모든 국민들 앞에 민주노동당의 당직자들은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자주파 뿐 아니라 분당을 불사하겠다는 좌파들 역시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한다.



‘강한 입장’의 논리적 난점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진보가 아닌 정치세력과 진보정당을 꾸리고 있었어요.” 탄핵 당시, 민주당 의원 누군가가 노무현 대통령의 덫에 걸렸다고 주장하자 손석희가 했다는 반문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알면서 왜 그러셨습니까.” 예상답변. “그전엔 저 정도인줄 몰랐어요.” 전혀 설득력이 없는 말은 아니지만, 국민승리21부터 치면 물경 십년이 넘어가는 정당조직의 변명치곤 궁색하다.



왜 애초에 민주노동당은 자주파와 좌파의 연대를 통해 출발했는가? 분열이 지긋지긋해서. 통일운동에 열의를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정도로 북한을 추종하는 줄은 몰랐기 때문에. 활동력은 정말 끝내주기 때문에 그냥 눈 딱감고. 등등 여러 가지 답변이 가능하겠지만, 이렇게 분당을 하겠다고 말할 정도면 그들과 협력한 자기 자신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종북주의를 말하려면 그런 종북주의가 있는 당에게 표를 달라고 요구한 자신들 스스로 유권자들에게 사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과를 한다고 해서 약한 명분을 보강할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나) 분당하려는 주체의 실체가 묘연하다



민주노동당의 정파싸움을 자주파(NL)와 평등파(PD)의 싸움으로 요약하는 것은 일종의 언어적인 착시현상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자주파의 반대파는 자주파만큼 조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주파는 세 개의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연합들이 거의 모든 구성원들을 포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좌파들은 정파가 있다고 해도 핵심적인 이론가들과 활동가들만이 소속이 분명할 뿐 나머지 당원들은 거기에 별다른 소속감을 느끼지 않는다. 게다가 2004년 이후 자주파를 싫어하는 성향의 당원들은 계속해서 탈당하고 그 자리를 자주파가 동원한 당원들이 채우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평등파가 자주파와 이혼하여 딴 살림을 차리면 된다고 정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소위 좌파들 중에서도 자주파와의 권력분점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에 뒤가 구린 사람들이 있고, 당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큰 관심이 없는 당원들도 있다. 게시판 분위기만으로 분당에 찬성하는 이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 점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노회찬이나 심상정 등 비례대표 국회의원들도 사실상 분당논의에서 이탈하고 있다.



다) 능력이 없다



애초에 제기했던 민주노동당의 문제들을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해결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분당론이 제기되었다고 (억지로, 애써, 논리를 세우기 위해) 이해해 볼 때, 분당론이 용인되려면 분당된 정당이 그 문제들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 그런 희망은 근거가 없다.



물론 ‘종북주의자들’을 떨쳐내고 나온 정당인만큼 (만일 실제로 창당이 된다면 말이지만) 북한 편향의 문제는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 민주노총 지도부가 자주파에 가까운 만큼 민주노총이 신당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확실하게 끊어버린다면 민주노총과 아예 단절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민주노동당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회당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일에 가깝다. 많은 좌파 활동가들은 노동조합 운동을 통해 성장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벗어나서 사유하기가 힘들다. ‘전진’의 김종철이 연대할 수 있는 바깥의 좌파들이라고 상정하는 사회당이나 ‘노동자의 힘’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아주 소수만 제기하는 논쟁이지만 ‘사민주의’ 논쟁이 있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민주의라는 것은 이념이라기보다는 정책적 지향이기 때문에, 이 논쟁은 전혀 생산성이 없다. 굳이 자신이 사민주의자임을 천명하지 않더라도 대중적 의회정당을 지향하는 좌파정당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한계 안에 그어진다. 그럼에도 이런 논쟁이 정리되고 있지 않는 것은, 그것도 자칭 사민주의자들에게 수세적인 형국으로 남아있는 것은, 민주노동당 내 좌파들 간에도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이 지극히 적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민주노동당은 자주파와 좌파들 사이에서만 소통이 없었던 정당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파연합당이었다. 당장 분당이 합의된다 치더라도, 그 분당의 구호를 무엇으로 만들지에 대해서도, 좌파들이 어떠한 종류의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만일 도출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금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레디앙에 글을 쓰는 필진들의 의도와는 다소 먼 방향에서, 엉뚱한 구호를 통해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



요약하자면, 민주노동당 내 좌파들은, ‘분당’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질서 정연한 퇴각’을 실현시킬 명분도 능력도 없다는 것.



5. 민주노동당 현상유지론의 문제는 무엇인가?



A) 유지가 안 된다



2004년부터 비-자주파 당원들은 슬금슬금 탈당하기 시작했으며, 이번 대선에서의 실망감을 계기로 이탈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비록 야합이라 하더라도, 자주파와의 권력분점이 가능한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남을 것은 자주파만 남을 정당일 뿐이다.



손석춘은 진중권의 ‘기생충’ 비유가 심하다고 규탄하는데, 물론 그 비유는 좀 맞지 않는 감이 있다. 자주파는 지금 기생충이라기보다는 에일리언의 형상을 하고 있다. 여러분은 조금 있으면 사람 안에서 웬 괴물 한 마리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좌파 정치인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왜 저 기생충은 숙주를 죽음에 몰아넣을 정도까지 성장했던 것이냐고. 그런 의문은 나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주파 중에서 가장 권력지향적인 (이 말은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신념을 지닌 확신범보다는 탐욕스러운 이기주의자 쪽이 더 다루기 쉽다.) 김창현조차 어떠한 양보도 거부하는 현실을 보건대, 저들은 확실히 숙주의 목숨을 지탱할 능력이 없음이 틀림없다.



B) 선거에서 자주파를 이길 능력이 없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주파의 3개 연합이 분열하지 않는 한, (중요하지 않은 선거에선 가끔 분열할 때도 있었다.) 좌파들은 그들을 이기지 못했다. 이것은 좌파들의 무능인가? 물론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치면 민주노동당의 몰락은 좌파정당이 필요함에도 여기에 입당하지 않고 80년대 운동권들에게만 맡겨둔 시민사회의 탓인가? 조직적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한탄하기 시작하면 정치가 산으로 간다. 하여간 지금 좌파들에게 그런 능력이 없는 건 사실이다.



6. 그러므로, 지금의 상황은?



질서 정연한 퇴각은 불가능하지만,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누구는 개인적으로, 어떤 누구는 몇몇이 뭉쳐서, 어떤 이들은 당을 새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어떤 이들은 신물을 내며 정치에 관심을 끊겠다는 각오로 민주노동당을 나오게 될 것이다. 그냥 그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분당’이라기보다는 ‘파당’이라고 불러야 한다. 이 ‘파당’은 지금까지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반면, 지금부터는 더 급속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앞에 던져진 정치적 선택지가 아니라 그저 닥쳐올 현실이다. 현상유지냐, 분당이냐, 이렇게 묻는 것은 야바위다. 이 파당 정국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할 것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분당론의 의의가 있다면, 민주노동당의 역사를 제로베이스로 되돌릴 이 파당정국에서 민주노동당에 결집되었던 긍정적인 에너지를 되도록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하나쯤은 제시한다는 것이다. 또한 분당론의 폐해가 있다면, 스스로 자기들이 내세운 언어적 착시현상에 갇혀 마치 자기들이 지금 당을 깰지 안 깰지를 결정할 수 있는 캐스팅 보트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는 데에 있다. 물론 자주파 밑에서 ‘파당’의 현실을 감추고 숨죽이면서 몇 년을 더 버티는 것이 가능은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당원들은 술술 빠져나갈 것이다. 결국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무질서한 퇴각의 정국에서, 나가야 할 올바른 출구를 제시하는 정파가 있다면 몇 명 정도는 더 건지게 될 것이다. 더 슬픈 것은 그렇다고 해서 그 정파가 민주노동당의 ‘이름’을 (문자 그대로의 이름이 아니라 정치적인 계승의 의미에서의) 건네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소 비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내가 바라본 민주노동당의 현실이다. 이 현실을 인지하고 힘든 길을 택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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