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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개조론> 비판 : 2. 한미 FTA

조회 수 1416 추천 수 0 2007.08.20 17:44:31
대한민국 개조론 상세보기
유시민 지음 | 돌베개 펴냄
'대한민국의 실질적 개조'를 위해 유시민 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국민들에게 올리는 상소문! 2006년 2월, 유시민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자 여론은 들끓었다. 시사평론가로 맹활약했던 그에게 보건복지 개혁의 희망을 품기도 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너무 혁명적인 성격이라 보건복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1년 4개월 동안 장관으로 일하고 물러난 유시민이 임기 중 못다 이룬 대한민국 개조의 꿈을
 

이 책에서 한미 FTA 문제를 다룬 부분은 “선진통상국가, 박정희 대통령의 유산”과 “약제비 적정화와 한미 FTA” 정도다. 그중 후자는 보건복지부 업무와 관련된 각론이고 총론은 전자뿐이다. 이 챕터를 통해 한미 FTA의 정당성을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박정희 대통령은 ‘성공한 독재자’이다.

2) 그 성공의 요인은 ‘수출주도형 불균형성장전략’이다.

3) 이 전략의 선택은 대한민국이 통상국가로 가는 운명을 부여했다. 다른 길은 다 봉쇄되었다. 대한민국은 이미 통상국가다.

4) 한미 FTA는 그 운명에 따라 예정되어 있는, 필연적인 선택이다.

5) 세계경제는 WTO 회원국이 150여개이고, 이미 체결된 FTA가 170개를 넘는 등 통합의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6) 내부개혁을 통해 우리의 규범과 제도와 정책이 국제사회의 요구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7) 한미 FTA는 단순히 관세 이하를 통해 한미 간의 무역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진통상국가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8) 대한민국은 밖으로는 선진통상국가 되어야 하고, 안으로는 사회투자국가가 되어야 한다. 



정말 좋은 얘기다. 무슨 얘기냐 하면, 내가 토론해 본 모든 노빠들은 기본적으로 이 틀 위에서 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것만 비판하면 된다. 정태인이 이 책의 서평 제의를 거절한 것도 이해가 간다. 안 이어지는 것들을 추상 수준에서 억지로 붙여놓은 이 논변이 참여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지난 일년간 앵무새처럼 반복해 온 논변이기 때문이다.



첫째, 박정희식의 ‘수출주도형 불균형성장전략’은 ‘한미 FTA'와는 명백히 다른 정책이다. 그리하여 장하준과 같은 사람은 “청와대 386들이 박정희 콤플렉스가 있어 그와 반대로만 하려고 하다보니 FTA같은 걸 하게 되는 거다.”라는 논지로 말을 한 적이 있을 정도다. 박정희식 경제개발 정책은 국가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이 중심이다. 유시민 책에 나온 말을 인용하면, “국내에 축적된 자본이 없는 상황에서 산업화를 시작한 박정희 정부는 원조와 차관 등 해외에서 조달한 투자 재원을 수출 중심의 경공업에 집중 투입한 다음 중화학공업으로 주력 산업을 교체하는 방식의 압축적 산업화를 추진했습니다.” 이런 정책은 FTA가 설파하는 자유무역의 이념과 명백하게 배치된다. 그저 양쪽 다 수출 늘리는 정책이라고 같은 것이 아니다.


박정희가 ‘성공한 독재자’라면, 왜 성공한 그 방법을 따르지 않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 박정희의 전략이 현 시대의 대한민국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왜 한미 FTA가 박정희의 정책에 필연적으로 예정되었던 것이라고 ‘구라’를 치는 것인가? 선진국들은 후진국들에게 언제나 자유무역이 국가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해 왔다. 유시민에게는 논리적으로 두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그 논리가 언제나 보편타당하며, 박정희가 저런 식으로 통제 안 하고 자유무역을 했다면 대한민국이 더 발전했을 거라고 주장하는 것. 둘째는 그 논리가 후진국에는 타당하지 않지만 대한민국 정도 레벨의 국가에는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 그런데 그는 이 두 가지 길을 거부하고 '박정희=한미 FTA'라는 공식을 기입한다. 거짓말이다. 저열한 정치적 책동이다.



둘째, WTO와 FTA는 궤가 다른 문제다. 다자간 무역협상인 WTO가 완전히 시행된다면 양자간 무역협상인 FTA는 존재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니까 WTO 운운하며 개방이 대세라는 건 역시 개념을 대충 꿰어맞춘 ‘거짓말’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체결된 170개의 FTA'에 대해 말하자면, 그 중에서 한미 FTA만큼 덩치가 큰 FTA는 하나도 없었다. ‘통합의 가속페달’, 아니 FTA의 가속페달을 밟은 것은 세계경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참여정부다. 그러니까 진취적인 선택이라고 자랑하는 게 아닌가? 아니 어디서는 필연적이라고 강변하고 어디서는 진취적이라고 자랑하면 그게 말이 될 소리인가? 제발 주어와 술어는 명확하게 연결하자.



셋째, 그는 FTA가 단순히 무역 더 하자는 조약이 아니라 선진통상국가를 위한 내부개혁을 위한 조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장의 의미를 명확히 하자면, 대한민국 정부는 통상국가를 위한 개혁을 할 능력이 없으니 미국자본을 끌어들여 글로벌 스탠다드로 제도가 재편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글로벌 스탠다드’란 ‘미국식 체제’를 의미한다. 이익집단들의 반발이 두려워 개혁을 외국 자본의 힘으로 추진하겠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리고 미국 자본에 의한 개혁이 반드시 국익에 합치할 거라는 확신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피부색 노란 미국인 변호사가 던져준 프리젠테이션 자료에서? 


이런 정책이야 말로 국민투표감인데 그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동의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얼버무린다. 국민의 여론수렴없이 국회만 동의받으면 된다는 식의 절차적 민주주의자라면, 왜 탄핵 때는 그렇게 울부짖으면서 끌려나갔을까? 절차적으로 볼 때, 당시의 탄핵은 ‘국민의 선택’이 아닌가? 물론 당시 국회의 선택은 곧 전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왔지만, 탄핵이 가결되던 당시에는 그걸 알 수 없었다. 미리 알고 울었다면 미아리에 점집이나 차릴 일이고. 또한 지금은 왜 책을 내면서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 읍소하고 있을까? 그저 국회에 읍소하면 될 일 아닌가? 국회가 생까면 그것을 국민의 뜻으로 알면 될 일이고. 자기 편할 땐 국민의 말을 들어야 되고 자기 불편할 땐 국회 비준만 통과하면 된다는 이런 정신세계를 가진 분이 얼마나 낯짝이 두꺼운지 ‘민주적 리더십’ 운운한다. 가소로운 일이다. 



넷째, 미국 자본의 힘으로 개혁하여 선진통상국가로 가겠다고 주장했으면 적어도 “대한민국은 밖으로는 선진통상국가 되어야 하고, 안으로는 사회투자국가가 되어야 한다.” 따위의 거짓말은 늘어놓지 말아야 한다. 이 문장은 한미 FTA가 ‘단순한 통상조약’일 경우에야 겨우 의미를 지닐 수 있는 문장이다. 한미 FTA 반대론자들, 그리고 세계은행의 권고는 미국과의 FTA는 ‘단순한 통상조약’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몇몇 경제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이 협정으로 인해 시장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능력이 아예 사라지게 될 거라는 것이다. ‘투자자-직접소송제’는 뻘로 있나? 그런 제도들을 다 받아들여놨으면서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 정부는 FTA 협상시 한국의 법과 제도를 자기들 무역하기 편하게 바꾸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는데, ‘안으로는 사회투자국가’가 되겠다니, 무슨 수로? 그리고 만일 그런 압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선전했던 ‘개혁’의 효과는 어디로 가는가? 둘 중 하나만 선택하지 않고 좋은 건 둘 다 가지려는 이 독특한 심보에 ‘유시민 심보’라는 이름을 붙일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은 모두 비전2030이 언론과 진보세력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억울해한다. (정말 이놈의 정부는 억울해하라고 뽑아준 모양이다.) 설령 그게 쓸모있는 정책이라 해도 턱밑에 한미 FTA라는 이슈가 있는데 이슈화될리도 없거니와, 한미 FTA 이후에 그 정책들이 실행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답변한 적이 있는지? 한미 FTA가 단순한 통상협정인지, 아니면 단순한 통상협정이 아니라면 국가의 시장통제력은 어느 정도 남게 되는지, 그 통제력 안에서 적합한 정책은 무엇인지를 설명한 적이 있는가? 그런 설명이 없다면 저 논변은 공중에 붕뜬 논변일 뿐이다. 그저 오늘은 낚시하고 내일은 농사짓겠다는 식의, ‘좋은 게 좋은 거지.’ 수준의 변명이다.    



다섯째, 한미 FTA처럼 사회 각 분야에 파급효과를 일으키는 이슈에 대해 논하려면 적어도 각 부문별로 분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저 느슨한 총론에는 그런 ‘개념’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정말이지 한심한 일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반대론자들과 논쟁을 하겠다는 건가?


유일하게 존재하는 각론은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에 약제비 적정화를 위해 자신이 뭔가 좋은 일을 했다는 변명뿐이다. 그냥 FTA하면 약제비가 치솟을 수 있었는데 자신이 직전에 제도개혁해서 막아냈단다. 그 말이 맞다고 치자. 그러면 미국자본이 와서 개혁을 해줄 거라는 그 잘난 믿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개혁’은 FTA와는 또 다른 문제라는 걸, 미처 개혁이 안 된 상황에서 개방이 되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유시민의 ‘잘난 척’은 무의식적으로 발설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일이 있었다면 다른 분야에서는 해야 할 법제화를 제대로 추진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최소한 영장류의 두뇌를 소유한 자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 “보건복지부는 미리 법제화를 해서 피해를 최소화했다. 내가 잘났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에 대해선 말 안한다. 하지만 FTA는 좋은 거다. 미국자본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이걸 지금 뭐라고 불러줘야 하나? 논증? 말? 거짓말? 괴성? 허튼 소리? 어린이 옹알이? 비문? 명명하기도 귀찮으니 읽는 사람이 알아서 선택하셨으면 한다. 



또한 FTA 반대론자에 대한 비판을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a) 박정희 경제체제의 대안으로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 있었다.

b) 박정희의 선택으로 인해, 그 대안은 ‘이론적 모색’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제 와서 그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

c) 박현채의 제자들은 ‘수출주도형 불균형성장전략’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운동세력이 되었다. 그들이 ‘민주화 세력’이다.

d) 지금의 실정에서 FTA 반대는 ‘민족경제론’과 같은, 실현될 수 없는 안티세력에 불과하다.

e) 그들은 자신이 무조건적인 개방반대론자가 아니지만, 한미 FTA뿐만 아니라 모든 FTA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개방반대론자가 맞다. 

f) 박현채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한미 FTA에 찬성했을 것이다.



a에서 c까지는 동의하지만 d,e,f는 궤변이다. 첫째, 한국 정도로 개방화가 진척화된 사회에서 ‘무조건적인 개방반대론자’하려면 적어도 WTO 탈퇴정도는 주장해야 한다. 그런 사람 대한민국에 없다. 지금이 대원군 시대인가? ‘쇄국주의자’라고 몰아붙이게. 둘째, 박현채의 제자들이 주장한 ‘외채망국론’이 들어맞지 않았던 것은 한국의 외자도입은 한국정부가 주도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한미 FTA는 (김영삼 정권 때의 무분별한 단기 외채도입과 마찬가지로) 그 모든 의사결정을 미국 자본에게 넘기겠다는 건데, 그 발상은 외채망국론이 잘 들어맞을 법한 나라를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겠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참여정부만큼 박현채를 사랑하는 집단도 없는가 보다. 입으로는 박정희가 맞고 박현채가 틀렸다고 하면서, 행동으로는 박정희가 틀렸고 박현채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이쯤되면 정신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나, 그들의 음험한 정신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상식인의 건전한 욕망이 그 위험한 시도를 가로막는다.


요약하자면 유시민의 한미 FTA 옹호론은 무식함을 드러내고, 독창적이지 않으며, 기본적인개념들의 사용이 옳지 않다. 이런 주장에도 국운을 걸 수 있다는 게 한국 사회가 지금 처한 곤경의 본질이다. 그렇지만 저런 말을 글로도 떳떳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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