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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한미 FTA, 통속심리학, 그리고 무협지

조회 수 1040 추천 수 0 2007.03.25 22:10:46
 

한발 한발 협상 체결이라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한미 FTA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발언한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 협상의 체결이 국민들의 삶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과, 국민들이 그것의 결정과 실행에 대해 끼칠 수 있는 영향력 사이에 존재하는 몇만 광년의 간극 때문에 그렇다. 일이 이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인식에서 분노라는 감정이 발생한다면, 일이 이렇게 될 줄 뻔히 알았다는 인식에서는 짜증만 생긴다. 한미 FTA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뉴스를 볼 때마다 무력한 짜증만 부리기 십상이다. 철학자 대통령의 머릿속에서 저 중요한 조약이 구체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무조건 체결되기로 ‘추상적으로’ 결론이 도출되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머릿속에서는, “한미 FTA가 한국에 득이 아니라 실이 되는 어떤 하한선”이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론은 근소하게 찬성이 앞선다. 찬성이 48%면 반대가 44% 정도라는 식이다. 이 점은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한미 FTA는 참여정부가 최근에 추진한 정책 중에 가장 찬성하는 이가 많은 정책이다. 또한 한미 FTA는 민주노동당 등 좌파들이 최근에 반대한 정책 중에 가장 반대하는 이가 많은 정책이다. 이 찬성과 반대의 절묘한 균형의 이유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참여정부가 압도할 수 있는 반대 집단은 이제 민주노동당 이외엔 없다. 민주노동당이 그나마 거의 찬성여론의 세력에 근접한 반대여론을 결집할 수 있는 상대 집단은 저 철학자 대통령을 추종하는 참여정부가 유일하다. 국민들의 눈으로 볼 땐 ‘덤 앤 더머’의 대결이라는 것이다. 


한미 FTA의 효과에 대한 경제학적인 분석은 우석훈 박사가 이미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에서 다 해놓았다. 한미 FTA를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경제학자의 주장은 본 일이 없다. 적극 반대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회의적일 따름이다. 그러나 저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철학자 대통령이 최장집보다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우석훈보다 경제에 대해서도 많이 안다고 믿는다면, 그 어떤 논변도 요령부득이다. 나머지 FTA 찬성파들은 참여정부보다는 좌파를 더 싫어하는 사람들, 현자 노조를 너무 미워해서 외제차를 사서라도 그들을 망하게 해야 겠다고 믿는 사람들, 혹은 재벌 일반을 너무 미워해서 외국 자본의 힘이라도 빌려야 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가장 경제학적이고 수치에 의해 평가되어야 할 정책결정에 대한 논쟁 지형도가 “당신은 누구를 제일 싫어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같은 인간으로서는, 차라리 그들의 언어를 구성하는 어떤 통속심리학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이 짜증을 인체에 해가 되지 않을 수준에서 억누르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국정홍보처와 노빠들이 한미 FTA를 옹호하는 언어의 파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세계는 개방경제로 가고 있다. 그 흐름에 뒤처지면 우리만 힘들어진다.

2) 과거에도 진보들은 개방을 반대해 왔으나 한국경제는 개방을 통해 성장해 왔다.

3) 한국경제는 잘 해 왔다. 앞으로도 잘할 수 있다.

4) 커다란 시장이 열린다. 한국에 기회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이 모든 논변은 철학자 대통령 본인의 것이기도 하다. 1)에 대해서는 정말 공부 좀 더 하고 오시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세계은행도 2005년에 “미국과의 FTA가 가장 참혹”하다고 했다는데 그 가장 참혹한 FTA를 통해 개방경제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국민경제가 거덜나면 개방경제고 뭐고 없다. 1)을 주장한다는 건 FTA를 특정한 구체적인 문맥에서가 아니라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맥락, 그저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신봉하는 정도의 맥락에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협상에는 언제나 상대라는 것이 있으므로 “양자 모두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였을 때”라는 비교우위론의 가정은 성립하지 않는다. 한-칠레 FTA, 한-중 FTA, 한-일 FTA, 그리고 한-미 FTA가 각각 효과가 다를 수 있다는 견해가 훨씬 상식적이고 게다가 그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다를 것이라는 것도 상식적이다. 이런 것이 경험적이고 구체적인 문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극히 이데올로기적으로 1)을 주장한 후 2)로 넘어간다.


2)는 진보는 이상적이고 무능하다는 것이다. 이상적이라는 말은 어떤 이가 구체적인 문맥보다는 자신의 내적 논리에 과도하게 집착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1)에 대한 분석에서 나는 구체적인 문맥보다 “FTA가 이득이다.”라는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것이 누구인지를 이미 밝혔다. 하지만 FTA 찬성론자들은 반대론자들이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386들이 젊었을 때 잘못된 이론을 신봉했다 하여 우리보고 잘못한다고 타박하는 꼴이다. 마치 뉴라이트로 넘어간 주사파들이 우리보고 북한 인권 문제에 무심하다며 ‘친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과 꼭 같다. 왜 자신의 내적 모순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일까?


과도한 외자 유치가 한국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 거라는 박현채의 주장이 사실상 그릇된 것으로 판명된 것에 대해서는 경제학적인 분석이 있을 수 있다. 가령 장하준처럼 그때는 외자는 많이 들어왔지만 (대한민국이 주주자본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경영권을 간섭당한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 경우 문민정부의 세계화 이후, 특히 국민의 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외국자본은 박현채가 우려했던 바로 나라를 거덜낼 수 있는 외자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논쟁을 진행하는 방법은 이 모든 상황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은 이 섬세한 논쟁을 저 투박한 한마디로 요약하고 상대방의 입을 막은 후 한국 경제의 성장이나 건전한 순환을 위한 어떠한 논의도 없이 원하던 정책을 밀어붙이려 든다.


그런 다음 마침내 그들은 3)과 4), 이른바 “자신감” 혹은 “의지” 논증에 이른다. 철학자 대통령께서도 친히 영화배우 이준기에게 스크린 쿼터 관련해서 “그렇게 자신감이 없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감이나 굳은 의지는 제다이나 아라곤, 주몽과 같은 이들이 가지고 있으면 뭔가 스토리 해결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물건이다. 이 통속심리학의 개념이 실제로 인간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 나는 어떤 합리적인 논변도 들은 바가 없다. “자신감이 부족해서” “의지가 없어서”라는 분석은 대개 다른 합리적인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변명의 고백일 따름이다. 자신감으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면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정말로 미제에게 무자비한 징벌을 한 후 백악관을 정복하고 와인 파티를 벌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더 황당한 건 철학자 대통령의 다른 말을 들어보면 그가 저 통상적인 논변의 과정과는 달리 한국 경제에 대해 전혀 자신감이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그의 발언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의 머릿속에서 이미 한국 제조업은 중국에게 ‘발린’ 상태다. 앞으로 십년에서 이십년 사이에 그는 한국 제조업이 파탄나고 그 결과 한국 경제가 파탄날 수 있기 때문에 미국과의 경쟁으로 서비스업의 체질을 개선해야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런 것이 과연 ‘자신감’ 논증일까. 나같은 범인은 미국과의 FTA에서 한국이 이득을 거둘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은 없는 반면, 한국이 당장 중국 때문에 망하리라는 걱정도 안 든다. FTA로 국민 경제가 파탄나면 그리 될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의 머릿속 논리는 무협지 주인공의 내공을 3갑자로 한방에 증진시키려는 소설가들의 음험한 의도와 닮았다. 독을 쳐먹고 그 독이 울렁울렁 어쩌다가 내공으로 화(化)하는 기연을 통해 내공을 증진시키는 바로 그 방식 말이다.


하지만 그게 인간 세상에서 가능한 방식인가. 그건 결코 일반적인 판단이 아니기 때문에, 무협지 주인공이 독을 먹기 까지는 개연성을 위한 여러 가지 장치가 있다. 독인 줄 모르고 먹었다고 우기는 무지의 복선도 있고, 뭔가 괴팍한 성격의 케릭터가 나와 이상한 짓을 하다가 주인공에게 독을 먹이는 캐릭터의 복선도 가능하며, 차라리 이 독이라도 먹으면 살 확률이 1%는 되겠지만 그게 아니면 죽는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차근차근히 복선을 깔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나는 한국 경제가 한미 FTA라는 독이라도 먹지 않으면 죽어버릴 거라는 대통령의 일방적인 판단에 동의할 수 없다. 그런 판단을 내리고 싶다면 경제학자들에게도 폭넓게 자문을 구하고 각 산업단체들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께서는 그런 의미의 ‘민주주의’를 하기보다는, 나 말고는 이걸 할 사람이 없으니까, 내 임기까지 이 짓을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신다.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한미 FTA 무협지’는 “뭔가 괴팍한 성격의 케릭터가 나와 이상한 짓을 하다가 주인공에게 독을 먹이는 케릭터의 복선”이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를 말릴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곤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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