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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손석춘의 칼럼 “자주와 평등은 ‘진보 수레’의 두 바퀴”는 NL 운동권에 대한 감상주의적 시선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미국 문제가 남아 있는 한 NL의 시선을 종북주의로 몰아붙이는 것은 올바르지 않고, 신자유주의 반대와 남북공동선언 실천이 한국 사회에서 똑같이 중요한 진보적 의제이기 때문에 자주파와 평등파가 여전히 손을 잡고 당을 꾸려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분당을 원하거나, 분당까지는 아니더라도 NL에게 학을 떼고 있는 좌파들이라면 손석춘의 말에 대해 “종북주의보다 패권주의가 더 문제였다.”고 말할 것이다. 말인즉슨 자주와 평등이 ‘진보 수레’의 두 바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당을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한 것은 바로 NL 운동권의 패권주의였다는 것이다. 이 역시 타당한 지적이 되겠지만, 나는 종북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그것이 이미 패권주의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어떤 이가 민족 애호적인 입장을 가지고, 단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좀더 북한에 우호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면 그런 이와는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미국 공화당 정부와 한국의 한나라당 정권의 조합이 가져올 파괴력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도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사실 이번 대선에서 정동영에게 투표한 많은 사람들은 대강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손석춘은 이런 사람들을 종북주의라는 이름으로 단죄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를 종북주의자라고 칭할 때는 그러한 해석의 관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북한 군사왕조의 대남 전략에 협조하거나 과잉 충성하는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행위하는 일군의 정치세력의 행태를 의미한다.



손석춘은 북한 핵을 옹호할 수도 있는 거라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이를테면 북한은 약자의 입장에서 미국과의 약속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게임이론 상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온정론이 있을 수 있겠다. 그렇기에 북한 정권이 절대악은 아니라는 식의. 하지만 이 경우에도 그들의 ‘게임’은 민족에 대한 게임도, 북한 인민에 대한 게임도 아닌 집권세력 자신들의 안위를 위한 게임이기 때문에 그걸 보고 ‘잘했다’거나 ‘현명하다’고 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북한의 외교술은 남한의 그것보다는 탁월한 듯하지만 그 탁월함의 수혜자는 김정일 정권이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그들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는 할지라도 그들이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도록 설득해야 한다. 여하간 그런 식의 관점에서 북핵을 옹호하는 사람들과도 어느 정도의 대화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NL 운동권들의 입장은 그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일부 NL 운동권들은 민주노동당의 회의석상에서 “북한의 선군정치가 우리 민족의 이익에 도움이 되었음을” 주장했다고 한다. 이런 시선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북한 위정자의 안위와 민족의 안위를 동일시하는 발상이 아닌가?



그리하여 민주노동당의 다수파가 된 그들은 대선을 어떻게 치뤄냈던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번 대선에서 서민들은 그네들의 생활을 악화시킨 참여정부를 심판하기로 결심했다. 거기다 대고 민주노동당은 이렇게 말한다. "생활의 악화? 음 그거, 사실은 니가 몰라서 그렇지 다 통일을 안 해서 생긴 문제야. 통일을 안 하면 그 문제는 풀릴 수가 없어. 그러니까 코리아연방공화국을 하면 된다구. 아, 그래도 분노가 있다고? 그럼 일단 100만 민중대회에 나와봐." 이런 게 성공했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문제에 현실적으로 접근하여 어떤 계층의 국민을 대변할 생각이 없고, 단지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적 강령을 선전할 생각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선거는 그런 짓을 하라고 주어진 공간이었다. 이것이 자주와 평등을 진보수레의 두 바퀴로 생각하는 이들의 행동양태인가? 그들은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을 도외시하며 북한에서 만들어진 가장 한심한 형태의 이념을 소유한 근본주의자들이다. '종북주의자'라는 말은 바로 그러한 행태를 지칭하는 것이다.  


어떻게 아직도 그런 이들이 존재할 수가 있을까? 심지어 그들의 존재는 위협적이지조차 않다. 북한이 남한을 흡수통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오직 전쟁뿐인데, 그들의 입방아질이 전쟁의 발발 여부에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전쟁은 틀림없이 무수한 인명피해와 북한 정권의 붕괴, 남한의 산업 기반시설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전쟁을 빼놓고 생각한다면,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가 국민소득이 2만불을 상회하는 선진공업국을 이념적으로 교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악어새가 그 큰 입을 찢어져라 벌려서 악어를 삼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게 차라리 덜 우스울 것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에 바글바글한 종북주의자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소수의 김정일 매니아를 양성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오옴진리교가 공화국 일본을 접수할 수가 없듯이 그들은 대한민국을 접수할 수가 없다. 나는 가끔 한국 좌파 진영의 대표가 말 안통하는 NL은 제껴두고 그래도 정권 보위에 대해선 짱돌을 열심히 굴릴 조선 노동당의 핵심인사들을 직접 만나 제발 저런 자아도취적 효과밖에 없는 대남 사업은 작파해 주셨으면 한다고 ‘쇼부’를 봐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공상을 한다. 그들의 존재는 이런 공상을 떠올리게 할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실존한다.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이땅에 실존하고 있듯이 말이다. 국가보안법은 희극적인 비극이다. 인권을 제한한다는 면에서는 비극이고, 체제에 위협도 되지 않을 이들을 잡아가둔다는 점에선 희극적이다. 반면 종북주의자들은 비극적인 희극이다. 존재 자체는 말도 안 되게 웃기지만, 결국 그들 때문에 남한의 진보운동이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이런 구체적인 현실을 도외시한 지식인의 사회참여 글쓰기가 무슨 효력을 미칠지 걱정이다. 이미 내가 민주노동당 : 이건 분당이 아니라 파당이다에서 지적했듯이, 민주노동당의 움직임은 돌이킬 수 없고 따라서 손석춘의 글이 현재의 사태를 악화시키는데 기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지금까지 내가 언급한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않고 양측의 글만 본 이들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저 텍스트만 봐서는 누가 옳은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잘못된 접근방식의 참여보다는, 차라리 상아탑에 갇힌 지식인의 이론이 낫다. 상아탑의 이론은 언제든지 현실에 적용되어 검증의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엉뚱한 곳에 서서 자신이 최전선에 서 있는 양 말하는 글쟁이의 사회참여는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의 정당성뿐만 아니라 정치평론 자체의 정당성을 의심스럽게 만든다. 나는 이전에도 얘기했듯이 분당이 그것 자체로 정답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오히려 손석춘과 같은 지식인이 좀 더 세심한 비평으로 이 상황에 염증을 느끼거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른 길을 제시해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의 글은 나처럼 시니컬한 인간의 글과는 다른 레벨의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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