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글 수 1,361
yes24에 올렸던 서평. 반지의 제왕을 가지고는 책 한권 분량의 글을 썼던 적도 있지만, 출판되지 않았다. 이 글은 그것과는 상관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리뷰다.
--------------------------------------------------------------------------------------------
톨킨의 향기를 느끼다.
2003-02-10 | 상품내용 | 상품상태
국내에 <반지의 제왕>을 <반지전쟁>(예문)이란 이름으로 처음 소개했던 세명의 번역자가 새로운 판본을 내놓았다. 성과는 기대이상으로, 이전 예문판이나 황금가지판에 비해 원전의 향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같다. "해당언어의 고어형"을 선호한 톨킨의 번역지침에 충실한 결과, "프로도 배긴스"는 "골목쟁이네 프로도씨" "메리아독 브렌디벅"은 "강노루에 메리"가 되었다. 그리고 몇몇 단어 ("가운데땅", "서끝말" 등)는 한국의 톨키니스트들이 만든 조어를 그대로 따왔다. 앞으로도 반지매니아들의 지적을 수용해서, 개정증보할 계획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개인적으로 건의하고 싶은 것은 One Ring에 대한 번역인데, 기존의 "절대반지"보다는 차라리 일부 네티즌들이 사용하는 "한반지"가 더 원어의 어감을 살린다고 생각한다. 내가 선호하는 번역은 "하나반지"이다. 최초의 싯구절에서 One Ring은, "하나의 반지"라는 보통명사의 어감과 "사우론이 만든 바로 이 반지"라는 고유명사의 어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반지를 알게 된 팬들은, 영화의 묘사의 근거가 된 소설 구절들을 꼼꼼히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반지원정대>의 경우 간달프의 불꽃놀이, 그리고 반지악령 나즈굴의 울음소리에 대한 묘사가 돋보인다. 소설을 읽을 때는 그저 지나가기 쉬운 이런 부분들이, 영화에서는 관객을 압도하게 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리고 신경써서 읽어야 할 부분은 <반지의 제왕>의 반지가 차지하는 역할이다.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소설에서, "반지"는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의 대상으로 설정된다. "반지의 제왕"인 악의 군주 사우론은 분명 적이지만, 그를 무찌르기 위해 반지를 사용하려는 세력들 역시 경계해야 할 적이다. 사우론을 무찌른 그 정의의 용사는 반지를 자신의 손에 끼고 결국 사우론의 자리에 올라설 것이기 때문이다. 반지는 이용할 수 없으며, 파괴해야만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을 살상하는 미국인은 민간인도 죽여도 된다고 믿는 탈레반이나, 테러범들을 응징하기 위해선 수많은 민간인을 희생하는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믿는 미국인들은 사실 거울 속의 쌍둥이를 쳐다보며 적개심을 내뿜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을 반대하면 테러리즘을 옹호하는 것이 되고, 탈레반을 반대하면 친미세력이 되는 이 "편가르기"의 세계에서, 호빗은 어느 곳에서도 있을 수 없으며 단지 노예가 될 뿐이다. 저자 톨킨 역시 서문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현실 속의 전쟁은 전설 속에 진행되고 있던 전쟁이나 그 결말과는 닮은 점이 없었다. 만약 그것이 전설의 전개에 암시를 주고 지침을 제시했다면, 반지는 분명히 탈취되어 사우론에 맞서 사용되었을 것이다. 사우론도 멸망당하지 않고 포로가 되었을 것이며, 바랏두르도 파괴되지 않고 점령당했을 것이다. 반지를 차지하는데 실패한 사루만은 당대의 혼란과 배신 속에 모르도르에서 자신의 반지학 연구에서 빠져 있던 연결고리를 발견했을 것이며, 자칭 가운데땅의 지배자에 도전할 수 있는 자신의 위대한 반지를 곧 만들었을 것이다. 전쟁의 와중에 양측은 모두 호빗들을 증오와 멸시로 대했을 것이며, 호빗들은 노예로도 오래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반지는 반드시 파괴되어야 하며, 그것도 만든 곳에서 파괴되어야 한다는 상징의 암시를 명료하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것 때문에 이 작품이 "개인이 만든 신화 규모의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톨킨이 소설 안에 이렇게 커다란 주제의식만을 담으려 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소설은 너무 진부해졌을 것이다. 반지가 은유하는 것에 신경쓰지 않더라도, 이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다. 반지를 얻기 위해 친구를 죽인 골룸과, 반지를 얻으면서도 골룸을 불쌍히 여겨 살려준 빌보의 운명의 대비, 그리고 반지를 탐하는 마법사 사루만과 샤이어를 사랑하는 마법사 간달프의 대립 등 인물의 구성과 엮임도 박진감이 넘친다. 무엇보다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호빗들의 삶에 대한 저자 톨킨의 따뜻한 시선이다.
--------------------------------------------------------------------------------------------
톨킨의 향기를 느끼다.
2003-02-10 | 상품내용 | 상품상태
국내에 <반지의 제왕>을 <반지전쟁>(예문)이란 이름으로 처음 소개했던 세명의 번역자가 새로운 판본을 내놓았다. 성과는 기대이상으로, 이전 예문판이나 황금가지판에 비해 원전의 향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같다. "해당언어의 고어형"을 선호한 톨킨의 번역지침에 충실한 결과, "프로도 배긴스"는 "골목쟁이네 프로도씨" "메리아독 브렌디벅"은 "강노루에 메리"가 되었다. 그리고 몇몇 단어 ("가운데땅", "서끝말" 등)는 한국의 톨키니스트들이 만든 조어를 그대로 따왔다. 앞으로도 반지매니아들의 지적을 수용해서, 개정증보할 계획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개인적으로 건의하고 싶은 것은 One Ring에 대한 번역인데, 기존의 "절대반지"보다는 차라리 일부 네티즌들이 사용하는 "한반지"가 더 원어의 어감을 살린다고 생각한다. 내가 선호하는 번역은 "하나반지"이다. 최초의 싯구절에서 One Ring은, "하나의 반지"라는 보통명사의 어감과 "사우론이 만든 바로 이 반지"라는 고유명사의 어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반지를 알게 된 팬들은, 영화의 묘사의 근거가 된 소설 구절들을 꼼꼼히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반지원정대>의 경우 간달프의 불꽃놀이, 그리고 반지악령 나즈굴의 울음소리에 대한 묘사가 돋보인다. 소설을 읽을 때는 그저 지나가기 쉬운 이런 부분들이, 영화에서는 관객을 압도하게 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리고 신경써서 읽어야 할 부분은 <반지의 제왕>의 반지가 차지하는 역할이다.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소설에서, "반지"는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의 대상으로 설정된다. "반지의 제왕"인 악의 군주 사우론은 분명 적이지만, 그를 무찌르기 위해 반지를 사용하려는 세력들 역시 경계해야 할 적이다. 사우론을 무찌른 그 정의의 용사는 반지를 자신의 손에 끼고 결국 사우론의 자리에 올라설 것이기 때문이다. 반지는 이용할 수 없으며, 파괴해야만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을 살상하는 미국인은 민간인도 죽여도 된다고 믿는 탈레반이나, 테러범들을 응징하기 위해선 수많은 민간인을 희생하는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믿는 미국인들은 사실 거울 속의 쌍둥이를 쳐다보며 적개심을 내뿜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을 반대하면 테러리즘을 옹호하는 것이 되고, 탈레반을 반대하면 친미세력이 되는 이 "편가르기"의 세계에서, 호빗은 어느 곳에서도 있을 수 없으며 단지 노예가 될 뿐이다. 저자 톨킨 역시 서문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현실 속의 전쟁은 전설 속에 진행되고 있던 전쟁이나 그 결말과는 닮은 점이 없었다. 만약 그것이 전설의 전개에 암시를 주고 지침을 제시했다면, 반지는 분명히 탈취되어 사우론에 맞서 사용되었을 것이다. 사우론도 멸망당하지 않고 포로가 되었을 것이며, 바랏두르도 파괴되지 않고 점령당했을 것이다. 반지를 차지하는데 실패한 사루만은 당대의 혼란과 배신 속에 모르도르에서 자신의 반지학 연구에서 빠져 있던 연결고리를 발견했을 것이며, 자칭 가운데땅의 지배자에 도전할 수 있는 자신의 위대한 반지를 곧 만들었을 것이다. 전쟁의 와중에 양측은 모두 호빗들을 증오와 멸시로 대했을 것이며, 호빗들은 노예로도 오래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반지는 반드시 파괴되어야 하며, 그것도 만든 곳에서 파괴되어야 한다는 상징의 암시를 명료하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것 때문에 이 작품이 "개인이 만든 신화 규모의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톨킨이 소설 안에 이렇게 커다란 주제의식만을 담으려 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소설은 너무 진부해졌을 것이다. 반지가 은유하는 것에 신경쓰지 않더라도, 이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다. 반지를 얻기 위해 친구를 죽인 골룸과, 반지를 얻으면서도 골룸을 불쌍히 여겨 살려준 빌보의 운명의 대비, 그리고 반지를 탐하는 마법사 사루만과 샤이어를 사랑하는 마법사 간달프의 대립 등 인물의 구성과 엮임도 박진감이 넘친다. 무엇보다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호빗들의 삶에 대한 저자 톨킨의 따뜻한 시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