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학점 제한 없는 곳이 대부분
입사 시험에서 토익점수의 하한선을 둔 기업(7곳)보다 두지 않은 기업(14곳)이 갑절로 많았다. 커트라인을 두는 기업 중 가장 높은 점수대는 800점(포스코)이었고, 대부분은 700~750점대였다. B기업 관계자는 "토익이 700점이냐, 800점이냐를 두고 당락을 좌우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좋다"면서 "다만 다들 워낙 높은 토익점수를 제출하고 있으니, 일부 합격생의 토익점수만 따지면 '토익 고득점=합격'이란 착시현상이 나타날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에 입사한 김모(28)씨는 "나보다 토익 점수 높은 친구 중 불합격생도 많았고, 토익점수 낮은 친구 중 합격생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특이한 점은 토익 점수 대신 토익 말하기 시험 점수를 요구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채용시 토익 스피킹(혹은 OPIc) 점수를 요구하는 기업은 삼성전자·삼성생명·엘지디스플레이 등 5곳, 입사 면접 때 원어민 영어면접 등 영어말하기 평가가 있는 곳은 현대자동차·에쓰오일 등 10곳으로 나타났다.
'세탁'된 학점에 대한 기업의 불신도 상당했다. 지난해 KT는 100명을 선발하는데, A학점 이상이 500명 이상 몰렸다. KT 인사팀은 "요즘 대학들이 워낙 학점을 후하게 주고 있어 기업 입장에서 학점은 인재 판별의 기준이 못 된다"면서 "최하위 학점인 경우만 지원자의 성실성에 문제가 있다는 정도로 참조할 뿐"이라고 말했다.
취업 컨설팅업체 이우곤HR연구소의 이우곤 소장은 "요즘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번듯한 수치로 가득한 스펙 채우느라 대학 4년을 소모한 자기소개서에 비우호적"이라며 "휴학 기간에 어학점수 높이기 외에 다른 활동은 안 보이고, 학점도 전공과목 등 특정 분야에 푹 빠졌던 흔적이 없는 평범한 자료들은 서류심사부터 탈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층면접과 전공 면접 중시
이달 초 GS칼텍스에 입사한 김재범(29)씨는 "최종 합격한 동료들끼리 모임을 가져보니 '인간성 테스트'로 뽑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면서 "합격자들은 합숙 등의 과정에서 동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면접에서 '대학 때 어떤 친구를 많이 사귀었나' 등을 묻는가 하면, 아주 구체적인 비즈니스 실무현안을 던져주고 직접 해결해보라는 등 전공지식도 강도 높게 테스트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30대 기업 조사에서도 김씨와 같은 맥락의 결과가 나왔다. '채용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격증이나 영어실력"이라고 답한 기업은 3 곳이었고, 나머지 기업들은 ▲면접을 통한 인성 ▲회사에 대한 열정 ▲도전정신과 창의성 ▲사회봉사활동 등 다양한 경험 등을 중시한다고 밝혔다.
해외연수를 다녀와 지난달 우리은행에 입사한 김모(26)씨 역시 "후배들에게 취업 노하우를 말한다면 신문이나 책을 열심히 읽고 인턴활동에 열심히 나서라고 얘기할 것"이라며 "면접 등을 해보면 결국 생각하는 힘을 평가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면접에서 전공실력 여부를 묻는 기업도 많았는데, 한국씨티은행 등 10개 이상이 그렇게 답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공이나 인성면접을 중시하는 이유는 토익 등 기존 스펙으로만 우수 사원을 뽑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절감했기 때문"이라며 "대학생 상당수가 입학하자마자 4년 내내 스펙 쌓기에만 집중해, 폭넓은 교양 쌓기나 팀워크 경험 등 정작 기업이 원하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 스펙(spec·요구 조건)
제품 만들 때 요구되는 기준이란 뜻의 ‘specification’을 줄인 말. 취업에 필요한 기준이란 의미로 통용된다. 원래는 학력·학점·토익 점수를 지칭했는데,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인턴십, 자격증, 봉사활동 등으로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