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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평화로워 '보이는' 핵폭탄
[후쿠시마의 교훈] 체르노빌, 쓰리마일, 후쿠시마 & 한국

일본 핵발전 사고 상황이 쉽사리 안정화되지 않고 있다. 오늘(14일) 오전 11시에 후쿠시마 제1원전의 3호기가 노심 노출에 이어 방출된 것으로 추측되는 수소에 의해서 폭발이 일어났다. 일본 니혼 TV 등을 통해서 생생하게 보도된 폭발 장면은 아직도 놀란 가슴을 뛰게 만든다. 핵물질을 담은 격납고는 이상이 없다는 보도가 다행스럽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진전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평화로워 '보이는' 핵폭탄

오늘 후쿠시마 3호기의 폭발 이전에도 이미 일본의 원전 사고는 1986년에 舊(구) 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 사고나 그 이전에 일어난 미국의 쓰리마일 핵발전소의 사고에 비교되고 있었다. 핵발전소가 핵폭발의 재앙을 나았거나, 그 위험에 직면한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대로 ‘멜트 다운’ 혹은 노심용해가 일어난 것이 원인이다. 이는 원리적으로 히로시마의 핵폭탄과 동일한 과정이다.

노심 용해가 발생한 결과, 비극적이게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방사능 물질을 가두어 두는 밀폐시설의 뚜껑을 날려버렸다. 방사능 물질은 인근 국가뿐만 아니라 멀리 영국까지 퍼져 넓은 지역을 오염시켰으며,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일상의 삶을 파괴했다. 1952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유엔 회의장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 for peace)'를 연설했을 때, 이런 사고는 결코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자력은 평화로워 보이는 핵폭탄이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모습. 

체르노빌 사고에 앞서 일어난 미국의 쓰리마일 핵발전소 사고는 다행스럽게도 노심 융해가 방사능 물질을 외부 대기 중으로 뿜어내는 핵폭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기독교를 믿지 않아서 일본에 지진이 났다고 말하는 조용기 목사의 정신세계와 비슷한 맹목적 반공주의자라면 미국 자본주의의 핵발전소는 역시 안전하다고 감탄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믿고 싶으면 믿으라.

어떤 이들은 비극적인 체르노빌 사건을 설명하면서, 핵반응로를 별도로 격리시키는 다중의 보호 시스템을 가지지 못했다거나, 중성자를 감속하는 재료로서 화재에 취약한 흑연을 사용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멜트다운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별도의 안전장치나 신중한 설계가 있었다면, 쓰리마일 핵발전소처럼 체르노빌과 같은 최악의 비극은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동감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그래서?

우리나라의 대부분 핵발전소와 같이 쓰리마일 핵발전소는 가압경수로 방식이다. 이것은 체르노빌과 다르게 핵반응로에 이상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대기 중으로 방사능 물질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게다가 감속재 역시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체르노빌처럼 1차 폭발 이후에 화재가 확대될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적어도 체르노빌 사고와 비교했을 때, 쓰리마일 핵발전소나 우리나라의 핵발전소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의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방식이 아니다. 아마도 그랬다면 지금의 일본 핵발전소 사고는 사상 최악이 되었을 것이고, 아무리 편서풍이 어떠니 해도 우리나라도 그 비극을 나눠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쓰리마일 핵발전소과도 다른 방식으로 가압경수로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안전성에 취약한 비등경수로 방식이라고 알려져 있다.

핵반응로가 별도의 격납고 안에 있기는 하지만, 핵반응로의 열을 이용하여 터빈을 돌리는 매체의 역할을 하는 물이 별도로 격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서 가압경수로는 핵반응으로 거쳐 나온 물이 격리된 상태에서 열교환기를 통해서 터빈을 돌리는 물을 가열하고 있기 때문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의 후쿠시마 원전에서 원전 폭발을 막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방출된 증기에 대해서 우려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핵반응로를 돌아서 나온 방사능 증기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체르노빌처럼 폭발하지 않았더라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이미 (특정할 수는 없지만) 다량의 방사능 물질을 대기 중에서 노출시킨 ‘핵재앙’이라고 규정해야 할 상황이다. 핵반응로를 담고 있는 격납고가 손상되었는지도 중요하지만, 이미 상당량의 방사능 물질이 대기 중에 빠져 나갔다는 점에서는 이미 쓰리마일 핵발전소 사고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핵발전소 주변의 방사능 측정 장치의 고장, 신뢰할 수 없는 일본 정부의 보고, 핵심을 잘못 짚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언론 매체가 피해를 확산시키지 않을까 두렵다.

탄식은 언제나 사고 이후에 터진다

그러나 체르노빌, 쓰리마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건을 상세히 비교하고자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일본의 핵발전 사고를 보면서 한국 사회의 일부에서는 우리의 핵발전소가 후쿠시마의 것과도 다르고 체르노빌의 것과도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핵발전소 안전에 우려를 표하는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그런 지적들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과거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과 비교해보았을 때, 우리의 핵발전소가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통해서 얻어야 할 교훈은 그런 상대적 안전성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다. 또한 그로부터 얻는 값싼 안심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벌어진 이유와 대처하고 있는 상황들에 있다. 이미 잘 알고 있다시피 이번 사고는 지진과 그에 뒤따른 쓰나미에 의한 것이다. 누군가는 이 사고를 자연 앞에 오만한 인간에 대한 심판이라고 일갈하고 있다. 이에 동의하지만 보다 교훈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지진에 견딜 수 있는, 즉 내진 설계기준이 리히터 규모 7.9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듯이 이번 지진의 규모는 처음에 리히터 8.8, 나중에 조정된 것으로는 9.0이다. 내진 설계 기준이 너무 낮았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지만, 사실 사고가 터지면 언제나 나올 탄식일 뿐이다.

설계 당시의 책임자에게 물으면 그렇게 큰 지진이 올 확률이 너무 낮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답할 것이다. 그를 비난할 수 있나. 핵발전소를 짓자고 하면, 그런 정도의 확률 도박은 다 하게 마련이다. 안전과 비용을 견주어 그 정도면 됐다는 합리적 판단으로 포장되는 도박.

그런 합리성의 눈으로 보면 정말 믿기지 못할 일들이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는 여럿 일어났다. 그 중에 하나는 어떻게 핵반응로를 냉각시키는 복수의 시스템이 한꺼번에 모두 작동이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합리적 판단인가, 도박인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진에 의한 피해와 이어서 들이닥친 쓰나미에 의해서 비상시 전력을 공급해야 할 디젤 발전기들이 모두 한꺼번에 고장이 나버린 것이다. 사실 원전 설계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경우는 좀처럼 상상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경우일 텐데, 이 또한 합리적 설계 수준을 넘어선 사고다.

한국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은 우리 핵발전소의 내진 설계가 6.5에 맞춰져 있다든가, 아니면 비상 전원 공급 장치가 해수면에서 10m 이상에 위치에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당연히 핵발전소 인근에 발생하는 지진이 6.5 이하에 속하며 쓰나미가 오더라도 10m 이하의 것이면 합리적 수준에서 안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가정은 일본 원전에서도 충분히 있었던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합리적 설계의 기준을 넘어선 일이 벌어진 것이고, 일본 국민과 우리를 비롯하여 전세계가 이 우려스러운 사고를 애를 태우면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그야 말로 임기응변적인 것이다. 합리적으로 설계된 모든 수단이 무용지물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그 어떤 대응 매뉴얼에도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해수를 직접 핵반응로 안에 퍼붓어 냉각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해수에 포함된 다양한 물질들이 또다른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지만, 지금 일본 정부에게 중요한 것은 과열되어 녹기 시작한 노심을 어떻게든 냉각시키는 것뿐이다. 그 일이 비록 수조원에 달하는 원자로를 통째로 버리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그 해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하는 질문은 한가로운 것이다.

우리의 선택은?

다시 강조하자면 이번 일본 핵발전소의 사고는 일본 정부가 정상적으로 진행한 합리적인 설계를 뛰어넘는 자연적 원인에 의한 것이고, 이에 대한 대응도 기존의 합리적인 대응 매뉴얼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핵재앙이라고 불러야 할 방사능의 (의도적) 방출이 이루어진 점을 잠시 제쳐놓자. 이제는 체르노빌과 같은 대재앙이 일어나지 않기를 천운에 바라고 있을 뿐이다. 이 정도면 합리적인 관료는 모두 은퇴시키고 신관을 모셔다가 사령실에 앉아 놓아도 무방할지 모른다.

합리적인 판단과 설계를 뛰어 넘는 일은 언젠가는 일어나게 된다. 문제는 그런 악운이 위험천만한 핵재앙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재앙을 내재한 핵발전소 수십기를 전국에 건설, 운영하는 일본과 한국은 이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요행으로 더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끝난다고 해서, 우리는 모른 척하고 다시 그런 도박 게임을 지속할 수 있을까.

1979년 쓰리마일 핵발전소 사고 후에 미국은 더 이상의 핵발전 건설을 중단했고,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후에 유럽은 핵발전소 폐쇄하는 대장정에 들어섰다. 이것은 선택이다. 그들에게도 경제성장이 그리고 에너지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재생에너지로는 어림없다는 비판도 있고, 야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선택했다.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2011년 03월 14일 (월) 16:36:45
한재각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이상한 모자

2011.03.15 00:38:04
*.208.114.70

뭐.. 그렇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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