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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비슷하다. 아무리 봐도 비슷하다. 김해을 재선거와 지난 6월 치러진 경기도지사 선거 얘기다.

4월 6일 아침까지만 해도 김해을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이 난항이라는 기사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민주당 이인영 최고위원은 4월 6일 아침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 중 한 분이 벌써부터 그렇게 독선에 빠지면 안 된다”라고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를 비난했다. 이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언급이야말로 정상적인 협상과정을 통해서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실토하는 것이다.

사실 협상에 있어서는 서로 할 만큼 했다고 말하는 상황이었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거의 다 합의를 이루었지만 마지막에 발목을 잡았던 것은 소위 '동원경선'에 관한 문제였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합의된 안은 50%의 여론조사 결과, 50%의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하자는 것이었는데, 국민참여경선의 선거인단 구성을 두고 양 측의 주장이 갈라섰다. 민주당측 협상대표였던 이인영 최고위원은 “애초에 민주당은 국민경선을 주장했고 국민참여당은 여론조사방식을 주장했는데 이를 절충하여 50 대 50으로 한 것이니 합의안에 담긴 정신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민주당의 국민경선안에 대해 “그것은 그냥 돈으로 동원선거 하는 것”이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민주당이 그 동안 '사실상의 100% 여론조사와 다를 바 없는 안'이라고 주장해온 국민참여당의 '지역, 성별, 연령별 할당을 통한 선거인단 구성'을 받아들이고 대신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곽진업 민주당 후보의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것으로 합의점을 찾았다. 이러한 과정은 지난해 6월 경기도지사 선거 야권 단일화 과정과 매우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당시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어떤 방식을 통해 단일화를 할 것인가를 두고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측이 날카로운 설전을 벌였다. 핵심은 '여론조사 50% + 도민참여경선 50%'룰이 합의된 상황에서 선거인단의 구성과 여론조사 문항에 대한 것이었다. 야권지지성향의 매체들은 유시민 후보와 국민참여당을 비난했었다. 제 3자인 손학규 대표가 나서 문제 해결의 모양새를 만들어 사실상 민주당이 한 발짝 양보한 차원의 합의안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유시민 대표가 이토록 '룰'의 문제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은 후보들과 당내 계파들의 눈뜨고는  볼수 없는 집안싸움으로 얼룩졌다. 유력 후보들은 인기가 떨어진 대통령을 비판하며 자신의 세를 결집시켰고 마지막까지 대통령을 버릴 수 없었던 소위 친노세력이 머뭇거리는 동안 정동영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하고 말았다.

이때 친노세력은 '동원경선', '금권선거'라고 비판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이 사태를 친노세력은 '지역주의에 물든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의 구태정치'로 규정했으며 이 때문에 조직적 동원이 가능할 수 있는 경선 룰에 대해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게 됐다. 그리고 마치 민주노동당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진보신당이 떨어져 나왔던 것처럼, 친노세력 일부 그룹이 현재의 민주당을 이탈해 국민참여당을 창당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는 두 번째 이유는 야권연대의 목표가 오로지 ‘정권교체’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정권교체를 이야기하지만 민주당이 꿈꾸는 세상과 국민참여당이 꿈꾸는 세상,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꿈꾸는 세상은 다르다. 지금의 야권연대는 국민들의 정권교체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권교체만 합의한다면 다른 문제는 나중에 논의해도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정권교체는 기술적인 권력쟁탈전의 문제이지 담론이나 비전, 가치의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기술적인 조건들 이외에 논의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다시 말하자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똑같은 상황이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문제가 되고 있다면 미래에도 똑같이 나타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즉, 국민참여당과 유시민 대표는 선거를 치룰 때마다 이러한 문제를 제기해야 하고 언론이 말하는 ‘벼랑 끝 전술’을 펼쳐야 하며 어떤 유력한 인물의 개입을 통한, 혹은 후보들 간의 극적인 협상 타결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돼야 한다.

그런데 반드시 이런 식으로 해야만 할까? 예를 들어 유시민 대표는 이번 재보선이 2012년 총선과 대선으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점에서 다음과 같은 과정을 밟아나갈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경기도지사 받고, 은평을 주고, 김해을 받고, 총선은 지역구 불출마하고 비례대표 후순위 등록해서 합법적인 대통령 사전선거운동을 하고, 총선 이후 진보정당 소속 의원들과 원내교섭단체 구성하고, 이 동력을 바탕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 협상을 벌여 승리하겠다는 것과 같은, 선거라는 게임에서 덧셈, 뺄셈을 잘해서 끝까지 버텨 권력을 잡는 길 말이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중요한 것은 야권연대의 ‘룰’에 집착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 중요한 것은 국민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유시민 대표는 언젠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의 성과는 대한민국에 넘기고 부채는 우리가 이어받을 생각’이라고 말한 일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참여정부의 성과가 무엇인지, 또 남은 부채는 무엇인지에 대해 각 정치세력과 국민들은 명확한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유시민과 국민참여당이 대한민국에 넘길 참여정부의 성과는 무엇인가? 또, 유시민과 국민참여당이 이어받을 참여정부의 부채는 무엇인가? 수차례의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속 시원히 내놓은 사람은 없었다.

민주당 내 친노인사들은 유시민 대표의 ‘김해을 버티기’를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우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보시절 소수파였던 자신이 불리할 줄 뻔히 알면서 국민참여경선 룰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충분한 감동을 줄 수만 있다면 룰 같은 것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라는 얘기다.

이러한 주장은 적어도 절반은 맞다. 즉, 이들이 이야기하지 않는 나머지 절반이 있다. 당시 국민들이 감동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리한 환경에 처해 있었음에도 역전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승리했기 때문이 아니다.

국민들이 감동한 것은 모두가 민주주의 시장경제, 생산적 복지, 남북화해, 노사협력, 지식기반사회를 말할 때 오직 노무현만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그동안 억눌리고 부당한 대접을 받아왔던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당기고 싸워야만 하는 이유를 가져다 줬다. 자발적으로 나서는 국민들 앞에 ‘동원선거’가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었겠는가?

아직 대통령 선거는 한참이 남았고, 각각의 정치세력에게 지금 누구를 감동시킬 수 없는 그 나름의 프로페셔널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때문에 지금 이러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시기상조일 수 있다. 하지만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연대에 몰입하는 정치세력은 분명하게 깨달아야만 한다. 국민들은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열망하는 것이다. 이 세계에 대한 올바른 답변을 내놓는 정치세력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

*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028

이상한 모자

2011.04.08 09:28:21
*.114.22.71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노무현 지지자들의 반응을 감안하여 톤 조절을 한 것입니다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원래 글은 좀 더 길었는데요. 편집이 좀 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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