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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민주노동당 당대회가 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연석회의 최종합의문과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건설 방침의 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제 사람들의 시선은 진보신당에로 쏠리고 있다. 진보신당은 오는 26일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위 최종합의문과 역시 당 대회에 안건으로 올라간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결의안’을 처리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처리한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건설 방침의 건(이하 ‘새통합정당 건설방침’)’에 의문이 많다. 언론은 대부분 민주노동당이 연석회의 최종합의문을 통과시켰다는 점에 주목하지만, 사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민주노동당이 통과시킨 새통합정당 건설방침이다. 아니 오히려 새통합정당 건설방침의 내용으로 인해 연석회의 최종합의문의 가결은 진보정당 통합의 마무리가 아니게 되어 버렸다.
 
새통합정당 건설 방침의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자. 새통합정당 건설 방침은 크게 5개 항으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2항은 “민주노동당은 신설합당 방식으로 진보신당 등 타 정당을 포함한 진보진영과 새로운 통합 진보정당을 건설한다. 단, 신설합당 방식이 불가능할 경우 다른 방식으로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도 뒷 문장인 ‘신설 합당방식이 불가능할 경우 다른 방식으로 이를 추진한다.’가 진보신당이 연석회의 최종합의문을 부결시킬 경우를 대비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정당법에 의하면 신설합당 이외의 합당의 방식은 ‘흡수합당’이 있다. 진보신당이 합의문을 부결시킬 경우 통합에 동의하는 일부 세력을 흡수하겠다는 의미로 읽힐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법적으로는 합당의 방식이 신설합당과 흡수합당뿐이지만 통합정당을 만드는 방식은 이외에도 다양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도 진보신당도 아닌 제3지대에서 당을 만드는 방식이 있을 수도 있고, 민주노동당 일부가 나와 진보신당 일부와 합한 뒤 다시 민주노동당으로 들어가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시나리오야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문장이 신설합당 방식 말고도 다양한 다른 정치적 기획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놨다는 것이다.
 
‘신설합당 방식으로 진보신당 등 타 정당을 포함한 진보진영과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을 건설한다.’는 부분 역시 의심스럽다. 이 부분은 진보신당이 26일 당대회에 상정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결의안’의 해당 부분과 비교하면 그 의미 이해가 보다 쉬워진다. 진보신당의 해당 부분은 ‘진보신당은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의 ‘부속합의서1’을 포함한 최종 합의문을 당내 절차에 따라 승인’하고 합당을 결의하는 정당과 신설합당의 방식으로 합당을 추진한다고 하여, 합당 대상의 전제조건이 ‘합의문 승인’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합의문 승인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지 않고 ‘진보신당 등 타 정당을 포함한 진보진영’과 통합 진보정당을 건설한다고 했다. 합의문 승인이라는 문구를 넣지 않은 것이 실수였든 의도된 것이었든 민주노동당은 합의문과 상관없이 다른 정당 누구와도 통합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게다가 ‘진보신당 등 타 정당을 포함한 진보진영’에서 타 정당이 진보정당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다른 정당을 말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타 정당을 포함한 진보진영’이라고 말하면 그 때의 ‘타 정당’을 반드시 진보정당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3항에도 숨은 의미가 많다. 3항은 “민주노동당은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건설과 관련한 제반 사업을 담당하는 수임기관을 대표, 최고위원” 등등으로 구성하여 운영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때 수임기관의 역할은 ‘통합진보정당 건설과 관련한 제반 사업을 담당’하는 데 있다.
 
정당법은 19조에서 정당이 새로운 당명으로 합당할 때에는 합당을 하는 정당들의 대의기관이나 그 수임기관의 합동회의의 결의로써 합당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19조와 20조에서는 합동회의의 결의가 있은 날부터 2주 이내에 회의록 사본을 첨부하여 중앙선관위에 당명, 당헌, 강령 등을 등록하면 합당이 성립된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정당법에 정한 ‘수임기관’은 대의원 대회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기관이다. 수임기관을 두지 않고 합당을 원하는 당들의 당대회를 합동으로 열 수도 있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수임기관 간 합동회의를 대신 여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법의 취지다. 따라서 수임기관은 상대 당 수임기관과 합동회의를 열어 당명, 당헌, 강령 등을 정하면 그 이후 별도의 절차 없이 선관위에 등록하고 합당절차를 마무리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당대회는 위 3항에서 보는 것처럼 수임기관을 ‘통합관련 제반 사업을 담당’하는 것으로 그 위상을 낮춰 놨다. 명칭은 권한을 위임 받았다는 의미에서 수임기관이지만 실제로는 수임기관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민주노동당이 통과시킨 수임기관이 법적인 의미에서 수임기관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어지는 4항을 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4항은 “민주노동당은 ‘수임기관’이 제출하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의 당명, 강령, 당헌 등을 포함한 합의안을 8월 안에 개최되는 임시당대회에서 승인한다”고 하여 수임기관이 권한을 위임받은 기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권한은 수임기관이 아니라 8월에 열리는 임시당대회가 가지고 있다. 수임기관은 그 이름과 달리 진보신당과 남은 쟁점을 협상하는 협상기구에 불과하다.
 
이 점 역시 진보신당의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결의안’의 해당 부분과 비교해보자. 진보신당은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결의안 3번째 항에서 “정당법 19조(합당), 20조(합당된 경우의 등록신청)와 당헌 34조(합당과 해산, 청산)에 따른 수임기관”이라는 설명으로 진보신당이 구성하는 수임기관이 명확히 정당법상에 따른 기관이며 따라서 대의원 대회의 권한을 수임한 기관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수임기관의 위상이 이렇기 때문에 진보신당은 수임기관이 만든 당명·강령・당헌・당규 등을 따로 승인 받는 절차를 마련해 두고 있지 않다.
 
결론적으로, 민주노동당은 최종합의문 승인으로 진보정당 대통합의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한 것으로 비춰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민주노동당은 이름은 수임기관이지만 실제로는 수임기관이 아닌 협상기구를 만들어 놓고, 그 결과를 승인하는 또 하나의 과정을 둬서 진보정당 통합 협상의 2라운드를 열어 놓은 것이다. 진정으로 민주노동당이 통합을 원한다면 법적 수임기관을 명확히 두고, 8월 임시 당대회 승인 부분은 넣지 말았어야 했다.
 
민주노동당 당권파가 진보신당 보다는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선호한다는 언론의 보도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가지 사실관계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다. 진보신당 당원 가운데에는 이번 민주노동당 당대회 결과 역시 이러한 의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은 이번 당 대회에서 강령의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 계승 발전’ 부분을 삭제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대안 사회의 상으로 명시하였다. 그런데 진보적 민주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친노 세력 등 자유주의 세력들이 언급한 관심사이기도 했다. 진보대통합을 코앞에 둔 시기에 민주노동당이 굳이 강령을 바꾼 것이 대통합시 민주노동당의 강령 기준안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설명이지만 그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기가 쉽지 않다.
 
어찌됐든, 어떤 이유에서인지 짐작을 다 하긴 어렵지만 민주노동당은 최종합의문 가결의 정치적 의미는 살리면서, 실질적으로는 합의문이 최종 결과가 아니게끔 하는 제도적 장치를 둠으로서 합의문의 정치적 위상을 격하시키는 결정을 했다. 합의문만 통과시키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뭔가 하나를 더 만들어 놔서 합의문 자체와 합의문을 통과시키는 행위의 의미를 아주 축소시켜버렸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런 식으로 진보대통합 국면에서 공을 진보신당에게 넘겼다. 진보신당이 과연 어떤 결정을 할 것인지 주목된다. 당원들의 총의가 하나로 모아져 현명한 판단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 원문 : http://www.newjinbo.org/xe/bd_member_gossip/1499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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