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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권영길

조회 수 1320 추천 수 0 2011.06.22 22:3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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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그가 정말 진보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20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96, 97년 총파업은 그것이 불러온 사회적 파장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패배의 이유를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이 없었다는 것에서 찾았다. 그리고 97년 대선에서 독자후보를 출마시키기로 결의했고 결국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던 권영길이 출마했다. 파업을 접을때에는 합리적인 노동운동 지도자라며 추켜세운 보수언론 덕에 인지도가 꽤 높아졌지만 대선 국면에 이르자 이미 그걸 다 까먹고 인지도는 0에 가까워져 있었다. 권영길은 국민후보가 됐다가 노동자 후보로서 삭발을 했다가 갈팡질팡했고 그 와중에 자주파 주류는 국민승리21을 이탈해 김대중을 지지했다. 선거운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금의 사회당이 이탈했고 선거운동이 진행되면서 선거운동 방법과 노선의 차이로 지금의 사노위 세력도 이탈했기 때문에 권영길로서는 꽤 어렵고 외로운 선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저조한 득표. 선거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친정'을 찾아 뿔뿔히 흩어졌지만 권영길은 민주노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소위 상근자들에게 일주일에 3만원을 지급하던 '삼선교' 시절을 권영길은 아직도 추억한다. 2년간 고난의 행군을 끝내고 민주노동당이 창당됐고 곧 자주파 일부가 집단 입당을 했다. 이들 중 일부는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또다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선언했다. 그때까지도 권영길은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민주노동당의 희망이었다. 진보정치 내부에 있으면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수정치에 투항하는 사람들로부터 지켜줘야 하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후보였다. 어디에 가든 당당하게 "민주노동당 권영길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대통령 후보였다.


그때는 단병호가 단위원장이었던 것처럼, 권영길을 권대표라고 불렀다. 노회찬은 노총장이었다. 권대표 노총장은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당원들의 마음을 썩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들이 우리를 대표하고 있다는 그런 권위가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의견을 100% 수용해주는 사람들도 아니었지만 특정 정파의 대변인도 아니었다. 모두가 그들을 불만스러워 했지만 그들을 내쫓는 방법을 고민한 것은 아니었다.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던 2004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10명의 국회의원이 나란히 서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횡단보도를 건너 국회로 들어가 의사당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단병호 의원이 무언가 발언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데 50년이 걸렸습니다." 이것은 권영길 의원의 말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해부터 자주파들의 본격적인 당권투쟁이 시작되었다.


어쨌든. 그랬던 권영길이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고, 어려울 때 당을 배신하려고 했던 그 세력의 조직적 지지를 등에 업었다고 말할 때 우리는 파국을 예견해야만 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 다시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선언했을때도 그것을 반대한 사람들에게 "노욕"이라는 말을 듣는 상황이 이어졌다.


당시 소위 선도탈당파가 오로지 권영길 때문에 분당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으나 최소한 권영길이 노회찬, 심상정과 같은 후배들에게 길을 내주었더라면 단언하건대 분당까지 가는 상황은 오지 않았다. 정파간의 갈등과 매너리즘으로 무기력한 침체기를 지나던 그 시기에 나는 지역위원회에서 상근을 하고 있었다. 단 한번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던 사람들이 오로지 노회찬, 심상정에 관심을 보이며 사무실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졌다. 내 직관으로, 밑바닥은 이미 술렁이고 있었다. 노회찬, 심상정 둘 중 한 사람이 대선후보가 되었었더라면, 그것이 아주 잠깐 뿐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당은 분명히 활력을 되찾았을 것이다.


모든 것이 파탄난 이후에 칠십노인이 되어 사과하는 권영길을 보면서 가슴이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진다. 그를 비난하고 조소를 보낸 일은 있으나 진정으로 미워한 일은 없었다. 아마 그에게는 이렇게라도 사과를 하는 것이 마지막 사명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리라. 정치적 술수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가 말한 내용의 상당 부분은 진심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분당 이후의 상황들은 분명히 그에게도 고통과 후회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사과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보지는 않는다. 2007년의 상황에 대해 정말로 사과를 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도 다 끝난 것이 아니다. 독자노선이냐 통합노선이냐를 떠나서, 그 방법이 무엇이든 우리가 여전히 새로운 운동의 기풍과 바람직한 정당정치의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그냥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많이 늦었지만, 권영길 의원의 용기와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


고생하셨습니다

2011.06.22 23:39:08
*.124.87.198

권 대표의 회견문을 읽으면서 다른 감정보다는 이제 이 시기가 또 지나가는구나, 세대가 또 변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왠지 이 분도 이제 어르신이 되어 버린 느낌이랄까요. 그냥 잘 모르겠습니다. 착찹하다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정말 착찹하네요. 어떤 평가가 나오든 간에 10년 후에도 많은 이들에게 진보의 얼굴로 기억될 분일 것 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nuovo21

2011.06.23 01:16:31
*.170.122.39

그땐 모두들 젊었구료. 그러나, I was so much older then, I'm younger than that now.

http://www.youtube.com/watch?v=S4UcaLHaabY&feature=related

이상한 모자

2011.06.23 09:18:13
*.114.22.71

김위원장님! 젊은 시절 모실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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