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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1) 신자유주의적 주체의 형성

조회 수 5013 추천 수 0 2008.02.27 03:47:12

이명박의 당선은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개혁 교향곡의 2악장 맨 마지막 마디였다. 1악장의 마무리가 노무현의 당선 이라는 다소 들뜬 분위기의 서정적인 멜로디였다면 2악장의 마무리는 음울하고 불안한 불협화음의, 전위적인 실험으로 이루어졌다.

이전 대선까지의 핵심 의제로만 보아도 어떤가? 김대중 당선은 '정권교체'였다. 노무현 당선은 '정치개혁', 이명박의 당선은? '경제'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고 선거 기간 동안에도 수 차례 언론에서 다루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 세 가지 의제의 구체성이 서로 상이하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에서 '정권교체'와 '정치개혁'은 비슷한 정도의 층위에 놓여져 있다. 반면 '경제', 혹은 '먹고 사는 문제'는 단지 추상적인 표현일 뿐이다. 일부러 이명박 측이 그러한 표현을 쓴 이유도 있지만, 이 선거의 핵심 의제를 단지 '경제'로만 표현하는 것은 누구나 뻔히 알지만 드러내고 싶지 않은 노골적인 욕망을 오히려 은폐하는 것이다.

'정권교체', '정치개혁', '경제' 의 세 가지 표현에서 마지막 '경제'를 앞선 두 가지 표현과 같은 층위로 고치려면 어떻게 고쳐야 할까? 이명박의 공약과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욕망에 비추어 가장 정확한 표현은 '경기부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의 '토건 사업을 통한' 경기부양 정책을 비판하였지만 오히려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관심사는 뒤쪽에 있었다. 토건사업이든 청계천이든 대운하든 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경기만 부양 시키면 아무래도 좋다는 것이다.

'경제만 살리면 되지..' 라는 패러디는 이런 매커니즘으로 성립된다. '이명박의 공약 중 가장 기대되는 공약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없다'는 답변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사람들은 '이명박' 그 자체에게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유권자라고 표현하는, 한국 정치의 주체들은 어떻게 변화한 것인가? 정권교체, 정치개혁과 같은, 정치적으로 윤리적인 명제들이 지배했었던 대선은 어째서 '경기부양' 이라는 속물적인 욕망에 시작부터 끝까지 지배당했던 것인가?

많은 진보적 인사들이 이에 대해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IMF 이전에 한나라당에 실망해서 반대 세력에게 기대를 걸었었지만, 노무현이라는, 그 대안 세력의 정수에게도 실망해서 어떤 대단한 공작(?)에도 선거 판이 흔들리가 없었다 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는 진보적 인사들이야 말로 자기들이 사랑한다는 민중들에게 호되게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된다. 자기들이 열심히 뭔가 해보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이 노무현 당선이라는 '비교적 좋은 일'도 가능케 했고, 시간이 지나 노무현에게도 실망한 사람들이 이번에는 자기들을 지지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람들이 노무현을 너무 싫어서 그러지 않았다는 주장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능했는지를 고백하는 것 외의 어떤 기능도 하지 못한다.
 
어떤가? 자기들이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 '민중'들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라는, 이전의 기득권과는 구분되는 신자유주의의 노골적인 집행관들을 선택함으로서 오히려 아주 착실하게 신자유주의적 개혁 조치를 진행해 오지 않았던가? 그러니, 문제는 진보적 인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았다는데에 있었던 것이다.

김대중 당선 이후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의 얼개'를 체득했고,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냉소와 회의의 사용법'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이명박이 당선될 즈음엔 한국 정치의 진정한 당사자들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이는 마치 '신자유주의적 주체'에 대한 성장 영화를 보는것 같다.

진보정치의 담론들은 이 영화에서는 엑스트라급 조연에 불과했는데, 이들은 꽤 박한 출연료가 통장에 차곡 차곡 쌓이는 것을 보며 스스로를 이 영화의 주연급 조연으로 생각했다는 데에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는 비극이 있다.

무릎팍 도사는 무엇을 예고했는가?

문화 현상은 언제나 사회적인 무언가를 어떤 방식으로든 반영하게 마련인데, 진보정치의 전도사들은 '무한도전', '무릎팍 도사' 혹은 '주몽'이나 '태왕사신기'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사실 보지도 않았다. 이들이 간과하고 넘어갔지만 이런 일련의 인기있는 프로그램들은 이전 시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고 무언가 서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전 시대에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해도 되는 것'으로 추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무한도전'이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공중파의 토크쇼, 버라이어티쇼 등의 포맷을 완전히 뒤바꾸어 버렸는데, 그들끼리의 표현으로 '대한민국의 평균에서 모자란 사람들'이 방송 3사의 모든 간판 프로그램에 중요한 입지를 가진 캐릭터로 등장하게 되는 기이한 현상을 만든 것이다.

이 알쏭달쏭한 캐릭터들은 프로그램의 포맷이나 제작, 연출과 관련된 절차 등을 압도한다. 사람들은 옛날처럼 프로그램 그 자체의 완성된 틀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캐릭터들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본다.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인기는 '대한민국 평균에서 모자란 사람들도 공중파를 독점해도 된다'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그러한 종류의 '솔직함'이 대중적 인기의 비결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한다. 잠깐! '솔직함'이라고 했다. 단어를 기억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보자.

'무릎팍 도사'는 어떤가?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이 최초에 보였던 반응은 '이래도 되나?' 였고 출연자들이 가장 많이 보였던 반응은 '아직 촬영 안 끝났어요?' 였다. 그들이 가졌던 당황스러움의 근저에도 역시 '솔직함'이 존재한다. '라디오스타'는 아예 '무릎팍 도사'가 가지고 있었던 최소한의 전통 마저도 무너뜨렸다. 이들이 '우리가 이렇게 솔직해도 됩니까?' 라고 물었을때, 대중들은 그저 환호로 대답했다.

'주몽', '태왕사신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의 제작자가 가졌던 깨달음은 10여년 전 일본에서 안노 히데야키라는 SF 애니메이션 감독이 가졌던 깨달음과 일치한다. SF 애니메이션을 통해 대중이 얻기를 원했던 것은 좀 더 현실적인 설정물들, 방대한 세계관, 판타지 안에서 가능한한 최대의 합리적 구성이 아니라 메카닉-로봇, 아름다운 소녀 캐릭터, 뭔가 있어 보이고 그럴듯한 배배꼬인 스토리 였다는 그 속물적인 깨달음을 한국의 드라마 제작자들은 사극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에서 발견한다. 그들은 그런 대중의 '솔직함'에 승부를 걸었고 드라마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이 '솔직한 코드'는 문화 현상 뿐이 아니지 않은가? 노무현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솔직해 보였던 사람은 노무현 바로 그 자신이다. '대통령이 저래도 되나?' 라는 정치에 대한 물음은 공중파 TV의 오락물에서도 똑같이 이어졌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노무현의 솔직함과 문화산업의 솔직함은 다른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이 둘이 일종의 유비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시 논의의 방향을 제자리로 바로 잡아서,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솔직함'이라는 가치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현실화 되는가? 노무현의 솔직함, 무릎팍 도사의 솔직함은 자본주의의 대전제, '무엇이든 팔아도 되지 않습니까?' 라는, 자본주의의 가장 궁극적인 솔직함, 그 상징질서를 추인해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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