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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오세훈의 명품도시

 

[문화과학] 2008년 여름호 

 

김현우 (진보신당 정책팀원)

 

 

오세훈의 키워드

 

오세훈 서울시장의 키워드가 있다면 무엇일까? 서울시장 후보 시절부터 취임 2주년이 다가오는 지금까지 그의 발언을 보면 ‘세계 초일류’, ‘품격’, ‘명품’, ‘창의’, ‘경쟁력’, ‘시민고객’ 같은 어휘들이 눈에 띄게 많이 등장한다. 개발의 세월을 지나온 전임 시장들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변화한 시대의 반영일 수도 있고, 오 시장의 개성이 표현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그에게서 상대적으로 부재한 어휘들은 무엇일까? 발언을 뒤져 헤아려볼 일은 아니겠지만, 오 시장이 ‘협의’, ‘소통’, ‘참여’ 같은 어휘를 강조한 것을 본 기억은 별로 없다. 말하자면 이러한 어휘들의 빈발 혹은 부재는 징후적 독해를 해볼만한 일이다.

‘명품도시’는 그러한 독해에 적절한 키워드다. ‘명품’을 대놓고 강조하는 시장은 조금 낯설다. 최근 그에게 명품은 ‘훌륭한 것’의 대명사다. 용산 국제지구도 명품도시, 왕십리 뉴타운도 명품도시, 명품도시로 거듭나는 강북, 세계 디자인 명품도시 방문 등. 그가 말하는 명품은 장인이 만든 공들인 예술품인가, 아니면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사치품(luxury goods)’인가? 오 시장이 생각하는 훌륭한 서울이 무엇인지를 추적해 보면 실마리가 잡힐 것 같다. 오 시장의 취임사는 그의 바램을 잘 보여준다.  

“제가 꿈꾸고 희망하는 서울은, 뉴욕과 같이 경제가 활기찬 도시, 파리와 같은 문화의 도시, 런던과 같은 품격있는 도시, 밀라노와 같은 패션의 도시, 시드니와 같은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있는 도시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한데 이루어져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도시, 서울만의 고유한 것으로 세계무대에 승부하는 특별한 브랜드가 있는 세계도시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사 중, 2006년 6월)

 이 발언에는 세계 유명도시들의 정체성이나 특장점을 희구하면서 동시에 서울만의 특색을 살리고자 하는 욕구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 욕구는 서울을 어떤 브랜드, 즉 문화상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구상으로 전개된다. 경제 CEO 시장을 표방했던 이명박 전 시장과는 확실히 다른 색깔이다. 돌이켜보면 이명박 전 시장이 ‘Hi 서울’이라는 도시 브랜드를 처음 만들기는 했지만 서울시 전체를 문화상품으로서 마케팅하는 차원은 아니었다. 시청앞 광장 조성과 하이서울 페스티벌 개최에서 드러나듯, 이명박 전 시장에게 있어 문화는 서울시 사업의 축하를 위한 잔치와 거기에 필요한 장식을 넘지 못했다.

오세훈 시장이 ‘명품도시’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쓴 것은 취임 1주년에 즈음하여 발표한 ‘도심재창조 프로젝트’ 발표 회견 때 부터로 보인다. 오 시장은 "도심 부활 프로젝트를 통해 2010년이면 서울시 모습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며 "서울을 미래형 명품도시, 다른 도시들이 벤치마킹하고 누구나 찾고 싶어하는 선진ㆍ관광도시,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지는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명품도시’는 ‘문화’와 ‘디자인’이라는 키워드와 결합된다. 최근 들어 이 어휘들은 더욱 잦아진다. 2008년 신년사에서 그는 “창의문화 도시는, 서울의 도시 공간에 디자인을 매개로 문화적 품격을 입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매력적이고 개성 넘치는 브랜드가 서울의 도시 경쟁력이므로, 도시 브랜드를 강화시키기 위해 도시 디자인의 중요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그가 상정하는 명품도시와 도시 브랜드의 성격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전임 시장에 비해 문화 자체의 의미를 높게 평가하고 소프트웨어적으로 접근하는 듯하지만, 오 시장 역시 가시적 성과와 업적이 될 기념물에 집착하고, 고급/전시 문화 중심 사업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평범한 가설이다. 또한 그것이 역사성과 장소성, 맥락성에 대한 고려가 없는 키치적 명품도시를 양산할 수 있으며, 그 폐해는 확대 재생산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잠정적 결론이다.

물론 이러한 가설 또는 의혹은 단편적으로 제기되어서는 곤란하다. 그의 발언 일부보다는 명품도시를 추구하며 오 시장이 펼치는 주요 사업들을 통해 오세훈표 명품도시의 실체를 살펴본다.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

 

먼저 살펴볼 것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 파크’ 사업이다. 그런데 사실 오 시장이 더 정력을 기울이고 싶어하는 것은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다. “만약 누군가 서울의 상징을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는 한강을 보여주고 싶습니다.”(취임사 중)

서울시장 임기를 한번 더 맡고 싶어하는 이유가 될 정도로 그에게 한강 르네상스 사업은 중요하다. 이명박 전 시장에게 청계천이 있었다면, 오 시장에게는 한강이 더 높은 정치적 목표를 위한 간판이 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한강 르네상스 사업은 그의 첫 임기 중 성과를 보여주기엔 너무 오래 걸린다는 문제가 있다. 반포대교 분수대와 인공섬 조성 같은 사업은 올해 안에 삽을 뜰 것이고 시민들의 관심을 끌겠지만 용산 수변도시와 강변도로 지하화 같은 경우만 해도 기술적 문제, 협의 문제, 교통소통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제법 시일이 걸릴 것이다. 광화문 광장 조성 사업은 전임 시장 때 시작되었던 일이라 그에게는 매력이 떨어진다. 그래서일까,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기념물이 필요했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 파크가 급박히 추진되는 것도 그런 배경이 깔려 있는지 모른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 파크 조성은 운동장터 활용이라는 애초의 논의에서 크게 격상되어, 디자인 중심 도시 구상의 중심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특히 서울시가 2010년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 되면서 동대문 구상은 ‘고품격 디자인 도시’로 비상하는 날개가 되었다. ‘명품도시’의 실체는 이제 명품 건축가의 계획으로 실물화된다. 이에 대한 오세훈 시장의 기대는 엄청나게 크다. “이제 3년 후, 동대문 운동장 일대는 디자인 중심 도시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것입니다. 파리하면 에펠탑이 떠오르고 뉴욕하면 브로드웨이가 떠오르듯이, 서울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로 키워나갈 것입니다.” (오세훈 시장 발언)

서울을 떠오르게 하는 브랜드 상품, 이것이 디자인 플라자 & 파크의 운명이다. 그런데 뉴욕하면 브로드웨이만 떠오를까? 뉴욕의 마천루라면 사라진 WTC부터 고색창연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있고, 도심엔 센트럴파크가 있고, 타임스퀘어가 있고, 월스트리트가 있는가 하면 할렘이 있다. 그것은 단지 만들어진 기념비들이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형성물이 아닌가.

여기서 오세훈식 명품도시와 랜드마크의 성격에 대해 간단히만 짚고 넘어가자. 오 시장에게 도시의 브랜드란 인위적으로 조성되는 기념물에 가깝다. 동대문운동장의 역사와 거기에 얽힌 삶의 기억, 심지어 현재를 단박에 밀어내고 세워지는 랜드마크. 체육계와 시민단체, 문화운동 진영의 반대, 풍물시장 노점상들의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지난 해 대통령선거 전야에 동대문운동장은 포크레인의 삽날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터닦기가 시작된 공사는 오 시장의 임기 중에 화려한 결과물을 드러낼 것이다.

 

 

[사진] 철거전 동대문운동장 모습

 

 

[그림] 동대문디자인파크 설계공모 당선작, “환유의 풍경” (자하 하디드)

 

 

이 당선작이 갖는 문제점, 특히 도시 맥락성과 역사성의 훼손은 치명적이다. 여기서 디자인의 독창성, 예산 증액, 주변경관과의 조화 등,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 파크의 계획에 대해 지적된 문제들에 대해 시시콜콜히 논의할 바는 못된다. 그러나 자하 하디드의 당선작이 “서울이라는 역사도시가 가진 공간적 딜레마, 즉 역사적 기억의 보존과 도시 공간의 효율적 재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설계안”(이경훈, 한겨레, 2007.10.29)이라는 평이 그냥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는 납득하기 어렵다.

사실 왜 동대문운동장터에 디자인 플라자 & 파크가 필요한 것인지, 여전히 서울시민의 유력한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 형편이다. 유통되는 담론은 ‘우리도 멋진 건축물을 가질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정도를 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업은 그 제목부터 모순적이다. 디자인 플라자와 파크 모두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그야말로 전시관도 아니고 공원도 아닌, 멋진 랜드마크 말고는 쓰임새과 분명치 않은 구조물이 될 공산이 크다. 과연 산업 기능으로서 디자인 플라자가 필요한 것인지, 도시민의 커뮤니케이션과 어매니티를 위해 ‘파크’가 필요한 것인지 사회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었다. 사람을 위한 최선의 공공영역은 지면(ground)이고, 주변 조건과 사람의 동선을 고려해보아도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넓찍한 평면 공간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서울시 신청사 건립 사업

 

서울시 신청사는 서울시의 숙원사업이었고, 그 바통이 이제 오세훈 시장에게 넘어왔다. 서울시 신청사의 설계안은 미디어에 보도된 대로 수차례 바뀌어왔는데, 여기서도 오세훈식 명품도시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고 본다.

서울시 신청사는 낡고 협소한 현 청사의 문제점 때문에 계획되었고, 업무를 수행할 충분한 공간과 시민 접근성을 충족함과 함께, 서울시를 대표할 상징성이 요구되었다. 이명박 전 시장 시절 발주된 설계 용역은 컨소시엄 구성에 의한 턴키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그림에서 보듯 네 차례나 선정과 퇴짜를 반복했다. 인근 고궁과의 조화와 고도 및 사선 제한을 유지하면서 충분한 내부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너무 평범하거나 너무 생뚱맞거나 주변을 짓누르는 안이 이어졌다.

턴키 방식으로 진행된 연유로 애초에 공공의 의견이 끼어들기는 어려웠고, 서울시민들은 신문에 발표되는 사진을 보고 좋고 나쁨을 표출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설계안이 계속 바뀐 이유는 문화재청과 전문가 집단의 비판적 의견도 있었지만, 결국 오 시장의 눈높이에 설계안들이 흡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부지와 요구 조건에서는 그가 보기에 충분히 품격있는, 혹은 장중한 계획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림] 계속 바뀐 서울시 신청사 설계안 (순서대로)

 

 

결국 오 시장은 2007년 11월, 신청사 디자인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것을 지시한다. 부지를 현 청사의 뒤편 전체로 확장하고 시민 이용 공간을 확대한다는 조건으로 설계경기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확정된 설계안은 층고를 줄이는 대신 현 청사 뒤를 가득 채우고 치마처럼 유리벽 구조를 드리우는 모양을 하게 되었다. 역시 오 시장이 가장 점수를 준 부분은 ‘탁월한 디자인’에 있다. 

“우리가 반드시 구현해내고자 했던 디자인의 상징성과 역사성이 상당부분 퇴색해 버렸고, 결국 저는 작년 11월, 신청사 디자인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 “이웃한 덕수궁을 비롯해 서울의 역사문화와 조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탁월한 디자인을 탄생시키는 과정” (오세훈, 서울시 신청사 설계경기 당선작 발표 연설, 2008. 2. 18)

이 설계안에 대한 평가 역시 세세한 평은 전문가들의 몫이다. 그러나 구청사와 신청사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해명되지 않아 안타깝다. 주변과의 조화 역시 제대로 확보될지 미지수다. 그런데 이 최종안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그것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은 환기하자. 오 시장은 취임 첫 해에 이미 현 청사의 뒷 건물을 부수고 펜스를 쳤고, 열린 공간이나 공원으로 통하게 두고 신청사는 다른 부지나 건물을 활용하자는 여론은 묵살했다. 한국에서는 펜스 치고 삽을 대는 순간 돌이키기 어렵다고 인식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오 시장은 조용하지만 역시 불도저였던 셈이다.

서울시 신청사는 과연 현 청사 건물 뒷마당에 꼭 그렇게 웅크리고 들어가야 했던 것일까? 임기 내의 랜드마크가 긴요한 게 아니었다면, 그렇게 부수고 담장을 두르고 설계안을 짜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했던 것일까? 최종 설계안대로 건물이 완성될지도 두고 볼 일이지만, 품격있는 디자인 수도의 성격과 관련해서도 서울시 신청사의 사례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림] 서울시 신청사 최종 설계안

 

 

랜드마크 강박증, 깨끗한 엘리트 시장

 

서울시장에 국한해서 주요 사업을 보면 명품도시의 실체란 결국 랜드마크 강박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대체 서울의 랜드마크란 무엇일까? 오세훈 시장으로부터 ‘랜드마크’로 언급된 것들을 보면 서울시 신청사,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한강(여의도, 난지, 뚝섬, 반포), 용산 수변도시, 잠실 제2롯데월드 등 거의 모든 지역의 규모있는 건조물을 다 포함한다. 그러나 랜드마크가 곧 멋지고 거대한 건조물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이방인들이, 또 거주민들이 그 도시의 장소성과 방향성, 상징성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랜드마크의 의미라고 한다면, 오 시장이 언급한 랜드마크들만 해도 ‘너무 많다’. 에펠탑과 몽빠르나쓰 타워라는 단 두 개의 랜드마크를 가진 파리가 정반대의 경우겠지만, 서울의 이정표가 될 구조물이 과연 그렇게 부족한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러한 랜드마크를 공공의 사업으로 다수 건설하는 나라도 많지는 않다. 게다가 이러한 공공사업으로 만들어지는 랜드마크들이 이미 서울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담고 그렇게 이방인과 거주민들의 기억과 시선 속에 자리잡고 있는 4대문과 내사산, 외곽의 높은 산등성이, 시장통, 골목길 같은 원초적 랜드마크들을 가리고 죽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랜드마크 강박증은 짝퉁과 키치의 남발을 낳는다. 서울만의 브랜드를 추구한 결과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유사한 건축물과 구조물을 양산하는 것이다. 그것도 서울의 원초적 씨줄과 날줄을 끊고 도시의 기억을 덮으면서 말이다. 1천만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오세훈 시장이지만, 그런 고만고만한 도시를 구경하러 오라고 주문하는 꼴이다. 도시의 역사성과 맥락성의 유지와 확대야말로 품격있는 도시를 만드는 제 일의 철학이다.

명품도시에 밀려나는 서민들의 삶과 도시민의 기억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서울역, 동대문운동장 사업에서 노숙인, 노점상과 충돌한 서울시를 보면서 오세훈 시장으로부터 읽을 수 있는 생각은 이렇다.

첫째, 노점과 노숙인은 지저분하고 성가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동안 불법적으로 난립해 온 노점은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거리를 더 지저분하게 한다는 시민 고객들의 비판으로부터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오세훈, 서울시 노점거리 확대 기자설명회, 2008. 1. 16)

한 시민운동가가 지적했듯이 “1200만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서울을 ‘명품도시’로 변모시키려는 오 시장의 계획에서 서울의 서민들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보이기엔 ‘창피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는 2009년까지 서울시내 가판, 구두수선대, 교통카드판매대 등을 ‘도시미화’를 위해 없애기로 하지 않았는가. 서울시는 누구를 위한 곳인가. 서울시민인가 외국인인가. 오 시장은 ‘명품도시’, ‘국제도시’를 원하는가. 시민들은 ‘살기 좋은 도시’를 원한다. ‘명품’ 좋아하는 오 시장에게 서울시의 서민은 정녕 창피한 존재, 보이지 말아야 할 존재일 뿐인가” (정희준, 동대문운동장과 ‘명품중독’ 시장, 한겨레 2007.10.17)

둘째, 하위 집단은 배제되어야할 ‘소수 이익’이며 ‘성숙한’ 의식을 가진 ‘지성인’ 중심으로 시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도시 환경 속에서는 소수 이익도 무시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보다 ‘절대다수의 시민 의사’를 확인하고 존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에 기초해 좋은 제도와 공평한 질서, 그리고 성숙한 시민 의식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러한 일을 하는데 있어서, 저는 이 시대 지성인들의 역할에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오세훈, 대한건축학회지, 1007. 4.10)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엘리트 시장은 자신의 명품 욕구에 부합하는 이들을 ‘지성인’으로 명명하고 ‘절대 다수의 시민 의사’를 대변해 주길 바란다. 소수의 비정상화와 다수의 동원을 통한 일면적 대변구조 구축, 그것은 파시즘의 중요한 측면이다. 오 시장의 행정 스타일을 ‘녹색 파시즘’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명품도시의 해악은 끝나지 않았다

 

오세훈표 명품도시의 문제점은 서울로 끝나지 않는다. 서울시의 사업과 행정을 몇 년의 사이에 두고 복사해 쓰는 한국 지방정치의 풍토가 지방으로 ‘수출’되는 명품도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해부터 지자체의 사업 기획과 광고에는 ‘명품도시’라는 말이 서울시 보다 많이 쓰이고 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인천은 ‘2009년 인천세계도시엑스포’ 개최를 준비하면서 역시 ‘명품도시’를 캐치프레이즈로 사고, 인천시청 현관부터 곳곳에 ‘명품도시 건설’ 운운하는 문구를 부착했다. 반면에 인천 배다리시장 주변 거리 지키기는 힘겹게 지속되고 있다.

구체적인 사업 역시 판박이로 유포된다. 지방의 각 지천마다 사업 방식과 설계도면까지 유사하게 청계천 공원화 따라하기가 진행되어 왔다. 이제는 랜드마크와 디자인도시 바람이 퍼지고 있다.

이 와중에서 조금은 반성적이어야 할 ‘명품 신드롬’이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서울에서 지방도시까지 도시민들에게 ‘명품 이데올로기’가 생활화된다. 서울발 명품도시는 나라 전체를 명품 대한민국으로 포장하는 낯간지러운 풍경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확실히 신개발주의, 녹색파시즘과 오세훈 시장의 개인적 취향이 한데 어우러져 낳은 풍경이다. 그런데 실은 이러한 분위기가 앞으로 몇 년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더 우려된다. 오세훈 시장의 대통령 만들기와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더 오래, 더 크게 전개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 시민적 대항세력과 대항담론의 취약하다는 것이 더 걱정이다.

지난 2년 간 오세훈 시장의 일방통행 명품도시 사업에 대해 전문인들이 어떠한 비평이나 대응을 전개했던가? 대중매체에서는 흔한 인상비평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문화 비평이 전반적으로 퇴조한 요즈음이긴 하지만, 도시설계와 건축계의 실명 비판 풍토 자체의 부재가 한 몫을 한 게 아닌가 싶다. 개인들의 노력을 촉구할 수는 있겠지만 대중 담론을 동원하면서도 일방적 건설 사업에 매진하는 행정을 이기기는 어렵다. 전문인들과 비판적 시민들이 함께 만나고 실천적, 대안적 비평 작업을 전개할 방도를 찾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전망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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