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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탕웨이 “TV 끄면 난 팔 다리 2개씩 있는 보통 사람”
[중앙일보] 입력 2011.02.14 03:00 / 수정 2011.02.14 08:34
현빈과 호흡 맞춘 리메이크 영화 ‘만추’ 개봉에 맞춰 방한
          
탕웨이

'만추'에서 두 배우 탕웨이와 현빈은 언어를 뛰어넘는 교감을 보여준다. 탕웨이는 현빈이 출연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모두 챙겨봤다고 말했다. 현빈은 “탕웨이는 인물 안으로 워낙 깊숙이 빠져드는 열정적인 배우라 아직도 ‘만추’의 여운 속에 있을 것”이라고 칭찬했다. [김태성 기자]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돼있더라’는 표현은 중국 배우 탕웨이(湯唯·탕유·32)에게 딱 맞는 말이다. 탕웨이는 2007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리안(李安·이안) 감독의 ‘색, 계(色, 戒)’로 단번에 신데렐라가 됐다. 친일 괴뢰정부의 첩보장교에게 접근했다 격정에 빠지는 미녀스파이 역이었다. 량차오웨이(梁朝偉·양조위)와의 ‘곡예’에 가까운 정사 장면으로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그의 이미지는 외설보다 여신에 가까웠다. 신인이라고 보기 힘든 몰입도 높은 연기력, 성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기품 있는 외모 때문이었다.

4년 후인 올해, 월드스타 탕웨이는 한국영화와도 인연을 맺었다. 고(故) 이만희(1931~75) 감독의 원작으로 두 번이나 다시 만들어진 전설적 작품 ‘만추(晩秋)’다. 남편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7년간 복역하다 사흘 간의 특별휴가를 받은 애나 역을 맡았다.

애나와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 훈 역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으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 중인 현빈이 연기한다. 연출은 ‘가족의 탄생’‘여고괴담2’로 실력을 인정받은 김태용 감독이다. 개봉(17일)에 맞춰 내한한 탕웨이를 11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공동인터뷰와 시사회 레드카펫 행사 등 끼니를 거를 정도로 바쁜 스케줄에서 어렵사리 함께한 인터뷰였다.

탕웨이는 듣던 그대로였다.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생기가 넘쳤다. 내숭이나 가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슨 질문을 할지 정말 기대된다”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고, 시간이 다 됐다고 홍보담당자가 재촉하자 “좀더 얘기하고 싶다”며 제지하기도 했다. “반갑습니다”라는 한국어 인사를 건네는 것은 물론, 사진촬영 때도 “태성씨” 하면서 사진기자의 이름을 따라 하는 등 장난기가 가득했다.

-‘만추’를 본 사람들이 ‘탕웨이는 죄수복을 입어도, 낡은 버버리 코트를 걸쳐도 다 예쁘다’고 한다.

“(쑥스러워하며) 그런가? 한 번도 나 자신을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배우 되란 얘기 많이 들었겠다.

“(손을 내저으며) 전혀. 예쁜 편에 속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남자아이 같았다. 머리는 짧았고 바지만 입었다. 스커트와 하이힐 모두 배우 되고 나서 입고 신었다. (입고 있는 민소매 블라우스에 흰 스커트를 가리키며) 이런 옷, 아직도 불편하다. 평소엔 청바지와 티셔츠, 단화 차림이다. ‘만추’ 찍을 때도 굽 있는 구두 신느라 애먹었다. 친구들도 ‘넌 안 꾸민 게 낫다’고 한다.”(웃음)

-영화 속에서 맨얼굴이다.

“김태용 감독이 ‘얼굴에 아무 것도 바르지 말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카메라 앞에 서니 얼굴에 있는 유분기가 보이는 거다. 애나는 얼굴에 광택조차 있으면 안됐다. 사랑하던 남자는 변심했고 살인죄로 감옥살이를 하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자니까. 화장품으로 유분기까지 없앴다.”

-연기는 어떻게 하게 됐나.

“감독이 되고 싶어 국영예술학교인 베이징 중앙희극원에서 연출 전공을 했다. 연출 전공자도 연기수업을 받는다. 리안 감독이나 김태용 감독을 비롯해 뛰어난 감독은 뛰어난 배우다. 어느 날 학생처에 갔는데 그곳 선생님이 ‘연기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선생님 애인이 드라마 투자관계자였다. 나중에 한 TV드라마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했는데, 실수연발이었다. 한참 연기하는데 감독이 ‘카메라 밖으로 나갔으니 다시 찍자’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웃음)

탕웨이는 2004년 베이징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대회 최종 결선에 올라간 ‘공인 미인’이다.

“졸업이 다가오는데 일자리를 못 구했다. 학교 게시판에서 미인대회 공고를 봤다. 뭔가 재미나고 새로운 경험 없을까 몸이 근질근질하던 때였다. 강렬한 호기심이 일었다. 대회장에 가서도 장비를 나르면서 무대 세팅을 도울 정도로 모든 게 재미있었다. 최종까지 올라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색, 계’도 그랬다. 1만여 명의 경쟁자를 물리칠 줄이야. 사람 일이 그런 것 같다. 목표를 정해놓고 반드시 저기까지 가야 돼, 이러면 하고 싶은 일은 도망가버린다. 난 눈 앞에 있는 일에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다만 순간을 즐기면서 최선을 다해 멀리 놓인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출세작 ‘색, 계’는 그에게 시련도 줬다. 상하이 친일정부를 미화했다는 이유로 정부가 중국 내 활동을 금지했다. 그는 3년 여의 공백을 “공부하며 지냈다”고 했다. ‘만추’에서 그가 선보인 원어민 수준의 영어는 쉬는 기간 영국에서 배웠다.

그런 이유로 탕웨이는 ‘색, 계’와 관련된 화제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내한 전 인터뷰 일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활동금지와 관련된 질문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조건을 달기도 했다.

-‘색, 계’의 성공으로 잃은 건 없었나.

“(그는 “모든 일이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고통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게 인간사다. 애나도 불공평할 정도로 다 잃은 여자지만 훈 같은 천사를 얻지 않았나”라며 에둘러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색, 계’가 내 삶에 극적인 영향을 미친 건 아니다. 집에서 컴퓨터 끄고 TV 끄고 있는 시간만큼은 난 그냥 팔 2개, 다리 2개 있는 인간 탕웨이다.”

-‘색, 계’는 노출, ‘만추’는 언어 문제가 있었다.

“감독에 대한 믿음이 컸다. 리안 감독과 김태용 감독은 둘 다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하다. 동시에 정직하고 선량하다. 눈빛을 보면 안다.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들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는가. (웃음) 김태용 감독과는 말이 통하지 않다 보니 오히려 더 통하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서로를 이해시키기 위해 가슴 속 깊은 곳부터 온갖 감정을 끌어내다 보니 어느새 짧은 단어 하나로도 의사소통이 되더라.”

-‘색, 계’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만추’의 키스신 한 번은 아무래도 아쉽겠다.

“(이 대목에서 그는 ‘만추’에 나오는 대사였던 “화이(나쁘다)!”라고 웃으며 살짝 눈을 흘겼다) 그건 관객의 기대일 뿐이다. 질문에 대답하기 싫은 게 아니라 할 수가 없다. (얼굴이 다소 상기되며) 애나의 마음으로 답해볼까? 섹스는 사흘 간의 사랑을 거치며 이 여자가 단 한번도 마음에 품지 않은 일일 거다. 이제 내 삶에 사랑은 없다고 생각했던 여자가 하늘이 보내준 선물 같은 남자 덕분에 어렵사리 마음을 다시 열게 됐다. 부디 카페에서 훈을 기다리는 마지막 장면까지 애나의 심정으로, 사랑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봐달라.”

글=기선민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만추=1966년 이만희 감독이 문정숙·신성일 두 배우를 주연으로 만들었다. 모범수 여인과 위조지폐범 용의자가 열차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걸작으로 불리지만 필름이 유실돼 영화를 본 사람들이 거의 없다. 영화인들은 원본 필름이 북한에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75년 김기영 감독이 김지미·이정길 주연 ‘육체의 약속’으로, 82년 김수용 감독이 김혜자·정동환 주연 ‘만추’로 리메이크했다. 김태용 감독의 ‘만추’는 세 번째 리메이크로, 무대를 미국 시애틀로 옮겨 한국 남자와 미국에서 자란 화교여성이 영어로 대화하는 설정이다. 지난해 토론토영화제와 부산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20일 폐막하는 제61회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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