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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결국 한-EU FTA 비준동의안이 한나라당에 의해 일방적으로 처리됐다. 그간 큰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던 이 문제가 며칠 새에 이렇게까지 큰 일이 된 사연은 무엇인가? 애초에 여야정이 합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 문제이다. 시끄러울 일이 새삼스레 무엇이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바로 '야권연대'라는 문제에 있어서다.


   
▲ 4일 밤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토론종결 투표에 민노당 권영길, 강기갑, 이정희,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등이 항의하고 있다. 토론종결 후 한나라당 단독처리로 비준안도 통과됐다.ⓒ연합뉴스

원래 FTA라는 문제를 진보정당에서 사고하는 방식은 민주당과는 다르다. 진보정당에서는 FTA를 추진해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정책의 실패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핵심 산업의 재편 과정에서 피해를 입게 될 수많은 사람들을 염려하고 대변하는 위치에 서있다. 진보정당의 입장에서는 근본적으로 FTA와 이를 통해 구현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 경제 질서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한-EU FTA 때문에 힘들게 통과시킨 SSM관련법 개정안 등이 무력화 되는 상황이다. 진보정당의 입장에서는 그냥 보고 넘어가기 어렵다.

과거, 선거 시기 야권의 정책연대 논의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되었던 것은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이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의 진보정당들은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반대를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적어도 참여정부 시기의 한-미 FTA 협상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몇 차례의 옥신각신 끝에 결국 민주당 내의 지도력 있는 다수가 이명박 정부의 한-미 FTA 재협상 및 비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정도의 입장을 정리해 갈등이 봉합되었었다.

이러한 과거가 있기 때문에 한-EU FTA 문제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당장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민주당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나섰다. '통합은커녕 야권연대가 무너지는 결과가 생길 수밖에 없다', '비준안 합의처리를 강행한다면 앞으로 중대한 결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이정희 대표의 주장이었다. 민주노동당과의 연대라는 고리가 깨지면 민주당 입장에서도 진보정당과의 야권연대를 계속 주장하기는 어려워진다. 때문에 일부 민주당 인사들도 한-EU FTA 합의처리반대를 민주노동당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민주당은 합의 당사자인 박지원 원내대표가 집중포화를 혼자 맞고 당 차원에서는 비준동의안 처리 합의를 깨버리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향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는가? 두 가지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다.

첫 번째는 '당내정치'라는 차원의 문제다. 민주당 내의 인사들 사이에는 FTA에 대한 미묘한 입장차가 존재한다. 정세균계를 비롯한 소위 친노, 486 블럭은 FTA라는 방식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어쨌든 이러한 방식의 신자유주의 개혁조치를 밀어 붙였던 역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동영계를 비롯한 소위 비주류 블럭은 과거 FTA에 대해 큰 문제의식이 없었으나 정동영 의원이 정치행보를 재개하면서 작성한 '반성문'과 천정배계 등의 개혁적 소신 때문에 FTA에 반대하는 입장에 가까워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그간 민주당 내에서도 보수적인 정책에 대한 지지를 나타내왔던 박주선 의원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인터뷰를 통해 한-EU FTA 비준안 통과 반대의견을 표명한 것은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민주당 내 비주류 블럭이 민주노동당의 손을 재빨리 들어준 이유는 물론 야권연대라는 대의를 위해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정세균계를 비롯한 소위 구(舊)주류와 느슨한 연합을 이루고 있는 손학규 대표를 흔들기 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때문에 개인적인 입장으로 FTA라는 방식 자체에 대해서는 큰 반대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손학규 대표가 구(舊)주류와 보다 가까운 관계였던 박지원 원내대표의 독단적(?) 합의를 비난하고 최고위원회 표결에 있어서 기권을 택한 것은 당내정치의 역학관계상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행보로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손학규 대표의 이러한 줄타기 전략은 당권을 향한 정세균 의원과 정동영 의원의 행보가 정리될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전략이 13일로 예정된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야권연대’라는 차원에서의 문제이다. 민주당으로서는 당내정치 상황보다 야권연대에 대한 판단이 한-EU FTA 비준동의안 처리 합의를 깨는 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다. 최소한 2012년 총선까지는 현재의 야권연대 틀을 깨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단은 총선에서 실질적인 양보를 줘야 대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야권연대는 속성상 시한부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첫 번째로 민주당 내의 다수 인사들 및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미쳤던 정책관료들의 철학이 진보정당과 매우 다르다. 이들이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하여 내놓고 있는 미래의 국가에 대한 청사진은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내수 중심의, 공정한 시장경쟁이 보장되는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을 ‘관치’라고 비난한다던지, 정부에 의한 물가 관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던지,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안정화시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던지, 수출 중심의 경제 체질을 내수 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던지 하는 일련의 비판이 다 여기에 해당된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비전은 경제정책에 있어서의 ‘공정성’을 ‘시장’이 보증해준다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의 로드맵으로부터 별로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그리고 소위 진보정당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많은 상처를 입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2012년 총선이 끝나면 민주당 지도부는 본격적으로 ‘잃어버린 600만표’를 되찾아 오기 위한 구체적 실천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600만표’는 당연히 민주당의 좌측이 아닌 우측에, 다시 말하자면 ‘중간층’에 존재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다소 시기상조라고 할 수 있겠으나, 한-EU FTA와 관련한 논란은 그래서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에 맺어진 정책적 연합의 미래를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 이 갈등은 봉합되었을지 모르겠으나 곧 파국적인 형태로 다시 나타나리라는 예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지금 말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이 글은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447

클라시커

2011.05.06 15:48:12
*.163.48.52

"비밀글입니다."

:

이상한 모자

2011.05.06 16:08:29
*.114.22.71

으잉 그러네요. 항상 붙여넣기를 해가지고서리..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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