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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자본이 깔아 놓은 잔인한 덫 ‘젊음의 열정’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입력 : 2011-04-22 21:06:37ㅣ수정 : 2011-04-22 21:06:37

ㆍ“배고파도 하고 싶은 일을 하라” 교묘하게 착취 당하는 청춘들



▲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한윤형·최태섭·김정근 | 웅진지식하우스

박카스 광고 이야기부터 등장한다. 좀 느닷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 명의 젊은 공저자들이 보기에, 이 광고야말로 그들이 지적하려는 문제를 함축해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들이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한 청년이 징병 검사장에서 검사관의 질문에 척척 대답하다가 어느 대목에선가 답변이 막힌다. 그러자 “(군대에) 꼭! 가고 싶습니다!”라고 외친다. 또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친 젊은이는 노약자석에 앉기를 거부하며 “우리 자리가 아니잖아!”라고 말한다. 중소기업에 취직한 청년이 “작은 회사예요”라고 말하자, 구멍가게 아저씨가 “크게 키우면 되지”라고 격려한다. 제비뽑기로 당직에 뽑힌 여사원은 “그래, 내가 아니면 회사는 누가 지키냐!”라고 외치고, 영화사의 말단 스태프는 영화가 끝난 후 자막에 자신의 이름이 등장하자 친구들과 환호작약한다. 이럴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마지막 멘트. “젊은날의 열정, 박카스!” 

저자들은 “이 광고들이 주는 불편함의 정체는 뭘까?”라고 묻는다. 그 광고들은 열심히 일하는 젊은이들을 응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의 청년들은 그것으로 결코 위로받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들의 판단이다. 게다가 광고의 소재들은 하나같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이다. 예컨대 병역, 노동 시간, 학벌주의, 성에 대한 보수주의, 불안정 노동 같은 것들이다. 저자들이 보기에, 그 엄중한 사안들은 결코 “힘냅시다 여러분!”으로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저자들은 책의 서두에서부터 “현실의 문제를 은폐하고 봉합하는 언어들”에 칼끝을 들이댄다. “박지성은 평발이었다” “강수진은 연습벌레였다” “안철수는 평범한 의대생이었다”는 카피를 내세운 광고도 마찬가지다. 강렬한 사운드의 음악, 비보이들의 역동적인 춤, 다양한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차례로 등장한다. “용기, 패기, 혈기, 호기, 끈기”가 “젊음의 오(五)기”라는 자막이 따라붙는다. 이어서 “네 꿈을 펼쳐!”라는 외침이 들리고 “꿈꿔라 청춘아, 힘내라 청춘아, 너희의 꿈을 활짝 펼쳐라!”라는 노래가 울려퍼진다. 이 광고의 마침표는 ‘공익광고협의회’라는 일곱 글자다.

저자들은 “이것이 청년 실업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 답변”이라며 “상당히 의미심장하다”고 말한다. 국가가 청년실업을 사회적 맥락보다는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꿈과 열정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판단이다. 배를 곯더라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부추기면서, 꿈을 이루려고 달려드는 청년들을 교묘하게 착취한다는 이야기다. 저자들은 “가치 있는 일에 도전하라”는 자본과 권력의 부추김을 “노동의 미학화”라고 설명한다. 거기에 현혹된 청년들은 스스로를 곧 유명해질 예술가, 혹은 대박을 터뜨릴 사장님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청년들은 당연하게 ‘탈노동자화’된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열정 노동”이라고 부르는 이 부추김과 착취의 구조는 언제 어떻게 생겼는가? 저자들은 그것이 1990년대 후반에 싹을 틔웠다고 바라본다. IMF외환위기, 신자유주의 유입과 궤를 같이한다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김대중 정부가 주도했던 문화산업 육성 정책이 저자들의 도마에 오른다. 1999년 김대중 정부는 ‘문화산업 진흥기본법’을 제정해 강력한 지원책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98년에 168억원에 불과했던 문화산업 부문 예산은 2002년 1958억원으로 증액된다. 특히 정부는 ‘신지식인’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야말로 새로운 지식인이라는 관점”을 널리 퍼뜨렸으며,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3580명을 신지식인으로 선정했다. 이렇게 지식과 문화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시도는 의외로 발빠른 가시적 효과를 불러오기도 했는데, 이른바 ‘한류’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네가 하는 일은 노동이 아니”라는 신자유주의의 속삭임, “세계화 시대를 맞아 진취적인 도전 정신으로 가득찬 인재가 필요하다”는 꼬드김은 자본이 ‘노동 유연화’를 달성하기 위해 펼쳐낸 전략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특히 그것이 한국사회에 ‘주둔한’ IMF의 핵심적 요구사항과 일치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지적이다.

각종 미디어가 ‘젊은이들의 열정’을 부추겼음은 물론이다. IMF 이후 각종 자기계발 도서들이 쏟아졌다. 교보문고의 최근 11년간 누적 판매에서 1위를 차지한 책은 <시크릿>이었다. “청년들은 뻔한 내용인 줄 알면서도 자기계발 도서들을 읽으며 동기를 부여받았다”는 것이 저자들의 설명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 <커피 프린스 1호점> <제빵왕 김탁구> 같은 드라마를 비롯해 <신의 물방울> 같은 만화들도 젊은이들의 환상을 부채질하긴 마찬가지였다. 저자들은 ‘열정 노동의 전도사들’이 지금도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한다고 주장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김난도는 “청춘들에게 먼 미래를 내다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조언”하며, 소설가 김영하는 “신춘문예에 당선되지 않고도 소설은 쓸 수 있다”며 “‘작가적 자의식’으로 곤궁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청춘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열정적으로 도전한 젊은이들은 어떻게 됐는가? ‘열정 노동’이라는 개념이 확산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일(직업)로 선택하려는 젊은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지만, 그 결과는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됐다는 것이 저자들의 지적이다. “벤처의 꿈은 좌절됐고, 노동 강도는 한층 높아졌으며 처우는 형편없는” 현실을 감내하는 것만이 청춘들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주장이다. 또 그 젊은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네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라는 답변뿐이라는 것이다 

책에는 ‘열정 노동’의 틀에 갇힌 다양한 청년들과의 인터뷰도 수록돼 있다. 프로게이머, 운동선수, 노예 계약에 휘둘리는 연예인,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젊은이들, 파티시에, 소믈리에, 네일 아티스트 같은 직종의 청년들이 숱하게 등장한다. 그들은 “드라마가 보여주는 판타지와는 완전히 다른” 현실을 토로한다. 그들의 고백은 저자들의 주장에 적잖은 설득력을 부여한다. 커리어를 쌓아준다는 명분으로 쥐꼬리만 한 인건비를 겨우 받거나, 아예 떼이는 일도 다반사다. 퇴근을 반납하고 열정을 불태우는 IT업계 사무실은 “월급 90만원이면 20대들이 몰려드는 곳”일 뿐이다. 저자들은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시나리오 작가 최고운이 “시나리오 작업을 다섯 번이나 계약했지만 한 번도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은 현실”에 대해 “5타수 무안타”라는 말로 자조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책의 말미에 이르자, 저자들은 “열정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자고 주장한다. “열정의 착취로 인해 생긴 이 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새로운 열정’을 불러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다. 그들은 “정치를 통한 변혁은 지금의 우리에게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혼자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튀니지의 작은 도시에서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한다. 노점상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단속 경찰에게 매를 맞고 손수레와 과일을 빼앗겼던 ‘작은 사건’이 수많은 청년들을 일어서게 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다. 공저자 중 한윤형은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진보의 재탄생> 등에 저자로 참여했던 사회비평가며, 최태섭은 성공회대 사회학과 대학원에 재학하면서 문화비평과 문화이론을 공부하는 청년이다. 김정근은 e스포츠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모두 ‘열정’적인 청년들이다. 1만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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