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원작성자 : 김현우 
번역자 :  
게재 : 전진 2006년 정치대회 자료집 
1. 도입

90년대 초반에 <도시 주민 지역운동>이라는 책이 나온 적이 있다. 지금 이런 제목의 책이 있다면 혹할만한 것일 텐데, 당시 “지역운동과 노동운동”이라는 제하에 이야기를 실은 이는 전노운협 의장으로 있던 신철영씨였다. 그 글은 “그동안 노동운동을 부문운동 혹은 계급운동이란 차원에서 많이 생각했는데 막상 지역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을 접근하려니까 상당히 갑갑하더군요” 라고 시작된다.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났지만, 그 책에 실린 문제의식에서 지금 이 논의가 크게 진전된 것은 아니다. 그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진보정당과 산별노조라는 양 날개가 건설되어가는 지금이라면 이제 비로소 구체적인 지역과 노동운동이라는 주제를 논의할 실제 기반이 갖추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선 본 주제와 관련하여 최근의 몇 가지 사례들을 환기해보았으면 한다. 하나는 2003년 서울시 산하기관 장기투쟁사업장 투쟁의 전개 과정이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한성여객, 서울대공원 청소용역 노동조합이 서울시의회 앞에서 몇 달간에 걸친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승리한 싸움도 있고 패배한 싸움도 있지만, 과연 그 투쟁을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던가 하는 의구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또 하나는 몇 년간 계속되어 온 도시철도 청소용역 노동자와 최저임금 쟁취투쟁이다. 최저임금심의위원회 앞의 농성과 투쟁은 획기적인 것이지만, 예컨대 서울시만의 최저임금 조례를 만들 수 있다면 이 동지들이 가장 직접적인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울산 오토밸리 추진 과정에서 ‘노동’ 파트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고, 그 부재가 의아스럽다는 조형제 교수의 최근 언급이다. 그것은 적어도 전략적인 불참은 아니었다. 

한편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는 지방정부의 계약준수제를 통한 비정규직 축소와 노동조건 상향을 내세웠고, 이러한 발상은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다른 한편, 5.31 지방선거 결과는 울산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났듯이 “노동자 조직표 +가족 쪽수 +알파” 라는 산술적 접근이 한계가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2. 지역전략의 필요성과 현실

노동운동은 언제나 자본과 보수언론의 공세에 맞서 싸워 왔지만 투쟁시기에만 반짝하는 ‘언론플레이’로는 이러한 공세를 이기기 어려워졌다. 일상적 시기에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적 의의와 문제의식을 확산시켜 노동운동의 든든한 우군을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지역 전략을 모색하는 이유는 이러한 실용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이나 북미의 사례처럼 대기업 노동조합이 지역사회의 산업발전 역량을 강화하는 산업입지 전략을 사용자의 사회적 책임 활동과 함께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은 학계에서 심심치 않게 있어 왔다. 생활임금, 고용정책, 산업정책, 대중교통 등 지방자치체의 정책과 행정이 노동자의 삶이나 노동운동에 직접 영향을 주는 가능성과 여지가 증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방자치제도가 일정하게 성숙하고, 노동운동 출신의 인사들이 지방의회와 지자체에 진출하면서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은 더욱 제고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식과 요구에 비해 개별 노조의 인식은 아직 매우 미흡하며 대응전략도 거의 부재한 편이다. 지역사회에서 노동조합이 ‘전략적 행위자’가 될 수 있거나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없다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사이 동안 민주노총 일부 산별연맹의 실험적 기획사업과 개별 노조의 활동 속에서 노동조합운동이 지역 이슈와 결합하는 실천의 단초가 발견되고 있다는 것도 지적해야 하겠다. 최근의 금속을 필두로 한 산별전환 움직임과 관련하여 지역 사업, 지역 수준 조직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희망적인 조짐이다. 물론 이에 관한 구체적인 그림이나 사업 방안에 관한 논의는 초보적인 상태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의 민주노동당에서도 지역조직 개편 논의가 잠시나마 전개된 바 있었다. 우선 민주노동당의 지역조직들이 지역 시민사회 내에 조직적 토대 없이 보수정당들과 경쟁한다는 게 순전히 선거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한계가 뻔하다 것, 그리고 당 조직이 인적 자원과 물리적 자원을 활용하여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지역 전진기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고민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지역사회는 노동운동에게 그냥 열려있는 기회의 땅이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지역주의와 성장주의라는 지배 이데올로기와 그에 결탁한 발전주의 카르텔이 수십 년을 지배해 온 장소가 다름 아닌 지역사회다. 한나라당의 유례없는 압승으로 끝난 5.31 전국 동시 지방선거는 이를 재확인해주었다. 이에 반해 아래로부터 지역민의 참여를 촉진할 상징과 정치적/문화적 구심은 부재한 상황이다. 지역의 시민사회는 대단히 분절되어 있고, 계급적 기반의 사회운동이 취약하다는 점은 지역사회 전략의 전망이 쉽지 않음을 알려준다. 

3. 지역사회는 무엇인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신자유주의 질서 하에서 시민과 계급을 끊임없이 분리하면서도 소비자로서 재구성하는 시장주의의 논리와 대결하지 않고서는 ‘노동해방’을 꿈꿀 수 없게 되었다. 지역사회는 바로 이러한 자본의 포섭과 통제, 회유와 그에 대한 순응과 크고 작은 갈등, 저항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각축장이다. 

지역사회는 노동의 재생산과 조직화가 교직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산별전환 및 비정규직 조직화의 문제를 보아도, 과거의 단위사업장 위주의 조직화는 물론이고 업종별 ․ 부문별 조직화로 포괄하지 못하는 새로운 불안정 노동집단을 가장 효과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는 공간도 결국 지역이다. 

또한 지역사회는 거시수준(국가, 또는 지방정부)과 미시수준(개인, 단위사업장)을 매개하는 노동조합의 중위적 운동공간으로서의 측면도 가진다. 지역사회라는 시공간을 통해 노동조합이 전략적 행위자로서 긴 시간을 두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결과물을 획득하는 정치 과정을 다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지역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계급투쟁 공간의 확장으로서의 지역사회다. 계급투쟁과 계급형성은 더 이상 공장 내부에 제한되지 않는다. 재생산 영역, 미디어 등 시민사회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둘째, 대안 권력의 거점으로서의 지역사회의 측면이다. 이는 집권을 전제하든 그러하지 않든 양자 모두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노동당 좌파가 주도하던 70년대 런던광역시의 경우가 시사를 준다. 

셋째, 민중권력의 실험과 훈련 시공간으로서의 지역사회의 측면이다. 과거 노동자에게 ‘파업’이 의식화, 조직화를 위한 노동자의 전형적인 학교였다면, 이러한 학교는 노동자를 포함한 민중들에게는 ‘지역’으로 확장 혹은 개방되었다.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는 이러한 집단적 정치교양의 대표적인 사례다. 

넷째, 이행 플러스 알파를 담지하는 실천 프로그램으로서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역은 ‘비개량적 개혁주의’의 구체적 실현 시공간이다. 단절적이거나 개별적 개혁 쟁취가 아닌 장구한 체제변혁의 계기들을 지역 프로그램으로 시도해 보자는 것이다. 지역통화(LETS), 의료생협, 노동자 자주관리 등 갖가지 실험들이 가능하고 필요하다. 

다섯째, 이러한 고려 속에 노동운동은 지역사회로 확장되고 다차원화된 선전, 선동, 교육, 조직, 동원이라는 조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짚고 갈 것은, 우선 ‘국가’ 권력이나 제도라는 당장 해결 곤란한 문제를 회피하는 탈출구로서 제기되는 지역운동 환원론에는 반대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선거대응 중심의 지역(주민/단체) 조직화 만능주의에도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들은 지역전략을 단기적이고 편의적으로 사고하게 하며, 성급한 기대와 실망만 불러일으키게 할 것이다. 

4. 지역사회의 정치적 자원과 기회구조

지역사회에서 노동운동은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데 자원동원론과 정치적 기회구조 이론이 유용하다. 

자원동원론(resource mobilization theory)은 사회운동 일반을 사회조직의 산물로 인식함으로써 집합행동을 제도화된 행동의 확장으로 규정하고, 논의의 초점을 개인이나 사회체계의 차원에서 집합적 행위자로서의 조직의 차원으로 옮겨 놓았다. 자원동원론의 기본 가정은 사회운동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불만이나 변동을 지향하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어느 사회에나 항상 존재하며, 따라서 사회운동의 발생과 전개과정은 축적된 사회적 불만의 양보다는 자원동원의 가능성 여부와 그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용자의 전횡이나 탄압, 정부의 억압적 노동정책 등 집합적 행동의 동인은 매우 다양하게 편재하는 가운데, 변화하는 노조운동의 환경 속에서 새로운 연대주의적 노조운동의 돌파구 찾는 것이 보다 관건인 상황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조직화된 대기업 중심 노동운동이 주도해 온 소위 ‘87년 체제’가 규정하는 노조운동 조직 환경 속에서 지역사회 개입 전략을 바라 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구체적으로 정치적 자원이 동원되는 과정은 특정집단이 집합적 행위를 위해 필요로 하는 자원에 대해 집합적 통제를 가능케 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원의 종류로는 도구적 자원과 기반자원, 권력자원과 동원자원으로 구분되기도 하고, 자원의 목록을 열거하는 형식으로, 예컨대 토지, 노동, 자본, 기술적 전문지식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은 노동조합 조직과 지역사회에서 동원 가능한 자원 성격과 리스트, 그리고 동원 과정에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정치적 기회구조’란 집단들이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 정치체제를 얼마나 쉽게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정도를 말한다. 운동의 진행상황과 운명은 주로 그 운동의 주체 세력에게 주어진 정치적 기회들(제도 및 이데올로기)에 달려있다. 사회운동은 기회구조가 유연할 때, 그리고 배제되었던 저항 집단의 침투에 대한 기존 시스템의 방어력이 취약할 때 발생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지역사회 개입 전략의 실행은 운동의 갑작스러운 발생이나 폭발적 전개와는 다른 양상을 띠지만, 본 논의에서 정치적 기회구조의 문제는 지역사회의 확장 및 노동운동의 제도화에 따른 정치적 기회구조의 개방과 전개 과정을 통해서 유사한 맥락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정치적 자원동원론에서 동원구조란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집합행동에 동원해내고 참여케 하는,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인 집합적 전달수단”이라고 정의된다. 이는 중위수준의 집단, 조직, 비공식적 네트워크 등을 중시하는 개념이다. 

지역사회는 거시수준(국가, 또는 지방정부)과 미시수준(개인, 단위사업장)을 매개하는 노동조합의 중위적 운동공간으로서의 측면도 갖는다. 이는 지역사회라는 시공간을 통해 노동조합이 전략적 행위자로서 긴 시간을 두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결과물을 획득하는 정치 과정을 다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는 의미다. 

[그림] 지역사회에서의 자원동원과 정치적 기회구조

k1.GIF

5. ‘지역사회 노조주의’라는 모형

우리가 투쟁과 실천을 전개함에 있어 반드시 어떤 이론이나 모델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제안과 운동은 사례를 나열하기 보다는 일정한 준거 내지 이념형을 상정하는 것은 방향을 잡고 성과를 점검하는데 도움을 준다. 

지역사회-노동운동의 결합과 관련하여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노동운동 연구를 해 온 아만다 타터솔(Amanda Tattersall)의 구분이 유용한듯하여 간단히 소개한다. 타터솔이 제시하는 첫째 모형은 ‘도구적 노동조합-지역사회의 관계’ 모형으로, 한국에서라면 무슨 무슨 ‘공대위’와 같은 단기적 연대체의 형태들로 나타난 것들이다. 

둘째는 ‘노동조합과 지역사회 결속(Union-Community Coalitions)’ 모형이다. 여기서는 노조 이외의 지역사회 연대 단위들도 그 의의를 공감하고 공동의 이해관계를 인식하는 이슈가 추구되며, 노동조합은 이슈에 대해 간부 등 주요 역량을 투입하여 노조운동이 바라는 방향으로 연합을 끌고 가고자 한다. 2000년 인천의 대우자동차 공대위의 사례가 이러한 성격을 가졌다고 하겠다. 

셋째는 ‘지역사회 노동조합주의(Community Unionism)’ 모형으로, 노조의 체질과 활동전략까지 상당히 변화함을 의미하는 높은 수준의 모형이다. 이 모형에서 노동운동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넘어서는 지역사회 발전 구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조합 주요 활동가뿐 아니라 평조합원들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광범위하게 참여한다. 하지만 여기서 선택되는 이슈는 대중성을 갖는 모든 것이 아니라, ‘근로인민의 사회적 비전’으로 틀 지워지면서도 참여 조직들의 상호 이해를 그 속에 소화해내는, 한마디로 당파적인 이슈들이다. 

[표] 노동조합-지역사회 연계모형

k2.GIF

‘지역사회 노조주의’는 그 수위가 무척 높고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지향점을 이모형에 두고 지역사회 개입전략의 매개와 방식을 살펴본다. 아래 그림은 정치적 자원동원 이론의 틀을 지역사회 노조주의라는 지향과 결합하여 재구성해 본 것이다. 

이 그림에서 노동조합의 지역사회 개입전략이 ‘사회공공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지역 이슈를 매개로 현실에서 나타나며, 그 수단에는 지역사회의 제도 및 각종 기구, 장치들이 포함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은 각 개별 노조의 특성과 부문의 특성을 반영한 나름의 ‘지역성’과 ‘공공성’을 갖게 된다. 

개입전략이 지향하는 결과는 가급적 노조가 주도하는 지속적 구조를 갖는 전략적, 체계적 연합이며, 개입프로그램은 크게 지역 노동시장과 관련한 것과 지역 노동력 재생산 영역인 생활세계에 관련된 것으로 대별할 수 있다. 

[그림] 노동운동과 지역사회 개입전략의 관계

k3.GIF

6. 지역사회 개입의 내용과 방향

노동운동의 지역전략은 여러 차원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대표적으로 지역 노동시장에 대한 개입 차원이다. 한국은 지역별로 실업, 이직, 노동이동, 일자리 창출의 양상이 크게 다르게 나타난다. 지역별 특성에 근거한 노동시장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정책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좀 더 지역 특화된 노동시장 정책과 고용서비스 기능이 요구되는데, 이에 대해 노동조합도 입장과 전략을 가지고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지역 경제운영을 위한 지역 파트너쉽 기구의 활용 문제를 고려할 수 있다. 중앙 노사정위원회와 참여 문제와 별개로 지역 노사정협의체는 지역 노동운동의 역량과 개입에 따라 상당한 활용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지방자치체의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개입 차원이다. 고용이나 노사관계 같은 이슈나 정책과 관련해서도 지방정부의 권한이나 작용이 확대되고 있으나 노동운동은 이에 매우 둔감한 편이다. 

넷째, 사회공공성 담론에 기반하여 지역 이슈에 접근하는 것이다. 사회공공성 담론이 주민 또는 시민에게 경험되는 공간도 지역사회고, 사회공공성을 실현하는 정책이나 제도의 자원을 갖고 있는 것도 지역사회다. 

다섯째, 보다 본질적인 차원으로 지역 발전전략이나 성장기획에 참여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역 혁신, 산학협 네트워크 같은 기획을 가지고 지역발전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데, 노조는 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묵시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하지만 노조가 지역과 지역 노동자 전체의 재생산에 관심을 갖고 이를 진보적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섯째, 지역주민과 유대 강화 차원이다. 하지만 또한 지역주민과의 유대 강화는 지역사회와 결합하는 노동운동의 첫 출발이자, 전반적 노력의 최종적 결과물이기도 하므로 이 자체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

[표] 한국에서 노동운동의 지역사회 이슈 예시

k4.GIF

필자는 지난해에 참여한 연구를 통해 노동운동의 지역전략에 일정한 성과나 시사를 보여준 사례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궤도/운수 노조의 사회공공성 투쟁, 과기노조의 지역사업, 보건의료노조의 지역 공공병원 확보 투쟁, 공무원노조의 부패감시 운동,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서울시 비정규직 실태조사 사업, 경기도노동조합의 지자체 민간위탁 저지 투쟁 등이다. 물론 이 사례들은 부족함도 많고 단발성인 경우도 많았다. 지역사회 노조주의와 같은 체계적 조망과 결합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역사회에 대한 노동운동의 전략적인 결합은 막연한 당위가 아니라 운동 속에서 요구되고 또 이미 진행 중인 과제임을 알려준다. 지역사회에 대한 개입 방식은 지역과 부문, 그리고 개별 노동조합의 자원과 특성을 최대한 살려야 하며, 사회 변혁의 주도 세력으로서 노동계급의 조망을 담지하는 내용과 이슈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야 유의미성과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보여주었다. 

7. 결론을 대신하여

이 글 역시 노동운동의 지역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시론적 접근에 불과하거니와, 몇 가지 잠정적 결론과 과제를 정리하면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선 지역전략과 노동운동 개입의 레퍼토리로 보자면, 앞으로 중심적으로 고민을 진전시켜야 할 주요 테마는 지역 노동시장 정책에 대한 개입과 사회공공성을 중심으로 한 노동력 재생산 영역에 대한 개입 부분일 것이다. 

다음으로, 산별 조직의 경우에도 노동시장 시스템과 사회복지 영역에 대한 산별 차원의 개입이 유력하지만 연맹마다 매우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므로 일반화는 곤란할 것이다. 예컨대 공공산별은 지자체와 지방행정 공공성 문제가 클 것이고 금속산별이라면 지역 산업 구조와 고용 네트워크에 대한 개입이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지역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양대 축인 당과 노조 조직은 노동부문 할당제와 같은 형식적 결합을 줄이고 대신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결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노조 지역본부/시협과 당 지역조직이 사무실과 인력 같은 자원을 과감히 공유할 필요가 있다. 지역위원회 조직을 비정규직상담조직센터 개편하자는 논의도 다시 본격화할 가치가 있다. 

한편 ‘지역사회 노조주의’라는 지향을 갖더라도 그것이 당과 노조 조직이 지역에서 배타적 대표성이나 선험적 정당성을 주장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운동조직들을 예컨대 지역별로 단일전선체로 묶는 것이 아니라 대신, 지역에서 예비적 대안권력을 만들어갈 씨를 뿌리는 작업이다. 노동조합과 당 조직이 지역에서 민중권력을 실험하고 습득하여 주체화되는 장기적 과정의 초입에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산별 전환을 추진하는 노동 조직의 입장에서는 지역사회 결합, 지역 사업의 가능성 내지 필요성을 너무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또한 미조직 부문 조직화 및 노조 사업을 위한 지역 자원의 동원 문제와 지역사회 운동의 일 주체로서의 노조운동 차원은 일정하게 분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끝으로, 조직원들, 당원들, 그리고 이들이 포진한 노동조합의 활동 무대이자 결합지점으로서의 지역 활동을 위한 적절한 조직의 편재와 자원의 배치, 활동의 방점, 그리고 발전의 경로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원작성자 글쓴이 날짜 조회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