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자전거 할아버지

수필 조회 수 4199 추천 수 0 2011.10.30 00:07:31

다음 로드뷰에서 찾아본 기아공업사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기분이 자꾸 이상하다. 뒤쪽이 휘청휘청 하는 느낌이다. 내려서 바퀴를 잘 살펴보니 수평이 맞지 않는 것이 휠이 휘어버린 것 같았다. 이런 경우 자전거 수리점에 가서 스포크 조정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이동하는 도중이라 가장 가까운 자전거 수리점이 어디인지 생각해 내기가 힘들었다. 한참 생각하다 집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허름한 자전거 가게를 가까스로 떠올렸다. 임시방편이라도 찾을까 하여 방향을 그쪽으로 잡고 조심조심 내달렸다. 15분을 달리니 그 허름한 가게가 보인다. 몇 명의 할아버지들이 가게 앞 의자에 앉아있다.

나는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가게 앞에 세웠지만 그들 중 누가 가게 주인인지를 알 수 없어 잠시 고민했다. 슬쩍 간판을 쳐다보았는데 용접 전문이라고 써있을 뿐 딱히 자전거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게에 있는 물건들이 전부 자전거인 것을 보면 자전거 수리점이 맞긴 한데.. 나는 그 할아버지들을 순차적으로 바라보며 말을 길게 빼보았다.

"어~ 혹시 여기~ 자전거도 봐주나요?"

쭈그리고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일어나서는 말한다.

"그렇소. 어디 봅시다. 왜 그러는 거요?"
"네, 뒷바퀴에 림이 안 맞는거 같아서요."
"뭐가 어쨌다구?"
"림이요.. 리무.. 뒷바퀴가 휜 것 같아서요."

주인 할아버지는 뒷바퀴를 슬슬 돌리면서 어느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 찾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10초만 돌려보면 끝난다. 문제가 있는 바퀴살을 찾아 조정하려는 찰나 갑자기 바퀴살이 뚝 하고 떨어진다. 이게 그냥 휜 정도가 아예 스포크가 부러져 버렸던 것이다.

"이게 부러져 버렸구만!"

주인 할아버지는 별 일을 다 본다는 듯이 외치더니 가게 안으로 쑥 들어가 버린다. 나는 자전거와 함께 너댓명의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뻘쭘한 신세가 됐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사교성이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얘기를 시작했다.

"야~ 이게 어떻게 이렇게 부러져 버리지?"

다른 할아버지가 대답한다.

"그런건 말이야. 인도에 턱 있잖아? 그런데를 넘어갈 때 부딪치면 부러지는 수가 있는거야."
"에이, 자전거로 턱을 수백번 넘어두 이렇게 부러지진 않던데?"

뭐라도 말을 해야겠다 싶어 내가 말을 받았다.

"아유, 타는 사람이 살이 쪄서 그렇지요 뭘."

그 말에 할아버지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아, 그렇지! 그렇고 말고! 내가 사실 그 말을 하려고 했어!"

그런데 가운데 앉아있던 풍채 좋은 할아버지는 그런 분위기가 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내 말에 맞장구를 치던 할아버지를 째려보면서 하는 말.

"뭐야, 이놈아? 사람이 뚱뚱한게 뭐 잘못됐냐?"

사교성이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뭔가 큰 실수를 했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아유 형님, 제가 어떻게 형님을 비난하겠수? 그저 본인이 자기가 뚱뚱하다고 하니까는.."
"이놈아, 사람 몸을 갖고 놀리면 못 써! 뚱뚱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나를 비난하는 것이야!"
"그런게 아니고.."

분위기가 이상해질 무렵 때맞춰 주인 할아버지가 바퀴살을 들고 나타났다. 잘 보니 가게 안에 있던 다른 멀쩡한 바퀴에서 살을 하나 빼온 모양이다. 바퀴를 다 교체해야 한다고 할 줄 알고 현금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속으로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잠시 놀랐다. 주인 할아버지는 끙끙대며 살이 빠진 자리에 막 가져온 새 것을 밀어 넣고 스포크 렌치를 돌려 구부러진 살을 곧게 펴기 시작했다. 그러고 있는 동안 멀리서 또 다른 할아버지가 검은 비닐 봉투를 들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야, 저 놈 오늘도 오네?"

모여있는 할아버지들이 잘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검은 비닐 봉투를 들고 온 할아버지는 모자를 벗어 땀을 닦고는 비닐 봉투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꺼내 다른 할아버지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하나씩 돌리고 나니 두 개가 남는다. 할아버지들은 잠시 눈빛을 교환하고는 하나는 주인 할아버지를 주기로 했는지 뒤에 밀어놓고 남은 하나를 내게 내미는 것이었다.

"이것 좀 드쇼."
"아유, 아닙니다! 저는 자전거를 고치러 온 건데요. 어르신들 드세요!"
"남아서 그러는거요. 아저씨가 이거 먹고 나중에 또 와야 기아공업사도 발전하는 거야."

나는 황송해하면서 메로나를 받아들고 먹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들은 자기들끼리 즐거운 웃음꽃을 피웠다. 그러면서 간간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은 어쨌다느니 저쨌다느니 얘길 하기도 했다. 한 시각장애인 여성이 지나가자 혀를 끌끌 차며 한 할아버지가 말했다.

"저 여자 오늘도 지나가네. 아마 마사지 하고 집에 가는 것이지?"
"응? 마사지 말이여?"
"이놈아, 그 마사지 말고! 장님들한테 나라에서 하게 해주는거 있잖아!"
"아니 누가 뭐랬나, 왜 소리를 지르쇼!"

자전거 뒷바퀴 수리가 다 끝나자 주인 할아버지는 브레이크 조정과 기름칠도 해주는 서비스 정신을 발휘했다. 나는 아이스크림도 얻어 먹었고 하니 에누리 없는 제 값을 지불하리라 마음먹고 수리비로 얼마를 내야 하는지 물었다. 주인 할아버지가 3초 정도 뜸을 들이더니 대답한다.

"5천원!"

적정한 가격인지를 떠나서, 이런 수리를 하고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별로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 같은 투였다. 앉아있던 다른 할아버지들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한 마디씩 던지기 시작했다.

"야~ 싸다!"
"야, 빵꾸 때워도 5천원이고 이렇게 해도 5천원인데, 그럼 빵꾸나는게 더 손해 아니냐?"
"손님한테는 이게 이득이지 이득!" 

나는 또 웃으면서 꾸벅 인사를 했다.

"아유, 감사합니다. 잘 고쳐졌네요. 그리고 아이스크림도 잘 먹었습니다!"
"감사는 이 사람한테 혀! 이 사람이 아이스크림 사왔으니까.."
"어~ 내가 여기 아이스크림 담당이오!" 

할아버지들의 유쾌한 반응에 따라 웃고 나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다음에 또 올게요!"

의례적인 인사를 남기고 페달을 밟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저렇게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할아버지들이 결국 참희망버스를 타고 태극기를 흔드는 것일 텐데... 진보신당 전 당직자란 걸 밝혔다면 큰일이 났겠군! 거 참 지역정치 하기 힘들구만!

!!호옹이

2012.03.14 10:24:22
*.214.43.14

사실 마음 좋으신 제 고모님도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돌변하시지요. 사람의 성정과 이념의 간극, 그리고 생존과 보살핌의 경계 등등 현실 정치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될 부분이 참 많아 보입니다. 전 이번에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수 캐릭터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수

정치평론 [경기비정규연대회의/2006. 5. 19] 프랑스 CPE 저지 투쟁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1]

  • 이상한모자
  • 2015-02-06
  • 조회 수 592

정치평론 [전진/2007. 10.] 진보대연합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2]

  • 이상한 모자
  • 2011-12-05
  • 조회 수 4346

정치평론 [작가세계/2010. 3.] 6월 지방선거에서의 선거연합에 대하여

  • 이상한 모자
  • 2011-12-05
  • 조회 수 2856

영화감상 2005년에 쓴 킬러콘돔 감상문

  • 이상한 모자
  • 2011-10-30
  • 조회 수 3926

영화감상 2006년 3월에 쓴 브로크백마운틴 감상문

  • 이상한 모자
  • 2011-10-30
  • 조회 수 4316

영화감상 2006년 8월에 쓴 영화 괴물 감상문 [1]

  • 이상한 모자
  • 2011-10-30
  • 조회 수 5082

수필 자전거 할아버지 [1]

  • 이상한 모자
  • 2011-10-30
  • 조회 수 4199

정치평론 2007년 12월 13일에 쓴 '분당론' [1]

  • 이상한 모자
  • 2011-06-21
  • 조회 수 4524

정치평론 '메가뱅크' 논란과 김진표의 '관치금융' 비판

  • 이상한 모자
  • 2011-05-23
  • 조회 수 3777

코미디 2004년에 쓴 혁명적 지하철 30문 30답 [2]

  • 이상한 모자
  • 2011-05-19
  • 조회 수 2947

정치평론 MB 이후 어떤 경제체제를 만들 것인가? [8]

  • 이상한 모자
  • 2011-05-16
  • 조회 수 3963

정치평론 이상이 교수 인터뷰에 대한 짧은 감상 file [12] [1]

  • 이상한모자
  • 2011-01-11
  • 조회 수 4353

정치평론 '보편적 복지'와 선거연합 file [1]

  • 이상한 모자
  • 2011-01-08
  • 조회 수 3584

정치평론 국민참여당을 포괄하는 진보대통합 주장에 대하여 file [11] [1]

  • 이상한 모자
  • 2010-12-28
  • 조회 수 4663

게임후기 폴아웃3를 플레이 하고 나서 [3]

  • 이상한 모자
  • 2010-11-30
  • 조회 수 4655

코미디 홍진호의 등장을 기다리며 file [9]

  • 이상한 모자
  • 2010-10-20
  • 조회 수 2828

영화감상 다크나이트 대 인셉션 file [7]

  • 이상한모자
  • 2010-08-01
  • 조회 수 5776

정치평론 다시 보는 김대중의 눈물

  • 이상한 모자
  • 2010-03-19
  • 조회 수 7186

수필 나무 이야기

  • 이상한 모자
  • 2010-01-25
  • 조회 수 1916

수필 비틀즈에 대한 운동권의 횡설수설 [8]

  • 이상한 모자
  • 2010-01-01
  • 조회 수 4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