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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재미있는 트로피코3

게임후기 조회 수 5552 추천 수 0 2010.01.01 11:12:09

 나는 7년 전부터 이 세상에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혁명을 이루려면 정치적 결사체인 당이 있어야 하고, 그 당은 진보정당이어야 하며, 소속 된 당원들의 힘이 보장되는 구조를 갖춰야 함을 늘 잊지 않고 강조해왔다.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혁명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나름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던 셈이다.

 

이 첫 문단을 읽고 피식 웃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오해마시라. 혁명이라는 것은 꼭 총, 칼을 들어야만 이룰 수 있다고 주장 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휘의 문제라면 꼭 혁명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민중들이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결정할 수 있는 나라와 체계를 세우는 일이다. 여기에 이르기 위한 수 백 가지 방법이 있으며 그것은 곧 이 세상의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권력을 장악한 다음에, 그러니까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무엇을 하면 좋단 말인가? 이 물음이야 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물음인데, 여기에는 여전히 많은 불분명한 구석이 존재한다. 누구는 스탈린주의로는 안 된다고 하고 또 누구는 유로코뮤니즘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하며 또 다른 누구는 우고 차베스는 그저 군부 출신의 독재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것은 백 가지 사상을 가지고 논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복잡하고 냉정한 것이어서 그런 말싸움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다. 어느 날 갑자기 카리브 해에 있는 작은 섬에서 대통령이 되는 일이 자신에게 벌어진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이제부터 도대체 무엇을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그걸 단순하게나마 알고 싶다면 이제 컴퓨터를 켜고 트로피코3를 시작하시라.

 

나의 이름은 마크 윌리엄 캘러웨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부터 사회주의 마니아로 살아왔다. 카리브해의 무장투쟁을 주도하여 결국 1950년에 트로피코라는 작은 섬에서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하는 데에 성공했다!


자, 이제부터 여러분의 앞에 유토피아가 펼쳐집니다! 오직 사회주의만이 여러분을 승리의 길로 이끌 것입니다! 이렇게 소리친 것까진 좋았는데 고작 인구 70명의 작은 섬나라에 무슨 유토피아가 있겠는가. 주위를 둘러봐도 다들 옥수수 농사를 지으며 판잣집에 살면서 간신히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꼴을 볼 뿐이다.

 

다들 옥수수 가지를 꺾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잠시 이 작은 섬나라의 정치적 구성을 살펴보면 총 일곱 개의 당파를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영원한 나의 친구 공산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저소득층과 육체노동을 하는 자들을 위한 정책을 주장하며 뭐든지 미국보다는 소련의 것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이론상으로는 자유 시장경제와 사적소유의 확대를 주장할 것 같지만 트로피코에서는 미국을 칭찬하고 고소득자들을 배려해주면 만족하는 집단이 되었다.


세 번째는 민족주의자들인데, 뭔가 정의로운 이미지일 것 같은 이름이지만 트로피코의 민족주의자들은 다른 생각은 별로 없고 오로지 외국인을 모두 쫓아내야겠다는 생각만 하는 자들이다.


네 번째는 기독교도들로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하고 교회와 성당을 많이 지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답답한 사람들이다. 내가 부도덕하게도 항상 술에 취해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저격을 당해 죽는다면, 범인은 이 부류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다섯 번째는 이른바 가방 끈 긴 ‘식자’들인데, 여러 가지 복잡한 얘길 많이 하지만 결국 학교를 많이 세우고 좀 똑똑하게 살자 뭐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여섯 번째는 군국주의자들이다. 부국강병을 외치며 애국심을 불태울 것 같지만 트로피코의 이들은 군인이거나 혹은 군인의 가족인 자들로 군인 월급이나 올려주면 지지를 획득하는 데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녹색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나무를 자르거나 오염원을 배출하는 공장을 짓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늘 아무것도 아닌 일로 투덜대기 일쑤인 인물들이다.

 

대통령이 사회주의자이니 당연히 당파 조직원은 공산주의자가 가장 많다. 하지만 바로 직전에 판잣집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들은 나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시설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나는 매우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나의 정치적 지향을 항상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자들은 날 믿지 못해서 그까짓 허름한 아파트 하나 안 지었다고 비난을 하는 것이다. 아니, 옥수수 농사나 짓는 사람들이 집세 낼 돈이나 있나?

 

게다가 사실 부족한 것은 집뿐만이 아니었다. 병원도 없고 학교도 없다. 무언가를 짓기 위한 국영 건설회사와 운송사가 있을 뿐이다.


노가다와 운짱은 가방끈 짧아도 할 수 있는 일이라 교육시설이 뒷받침 되지 않아도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나는 몇 안 되는 이 행운아들에게 학교와 교회를 지으라고 지시했다. 곧 화물 노동자들이 트럭을 몰고 와 건설 노동자들을 태워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더 이상 공산주의자들이 나를 괴롭히는 일은 없겠지.

 

그러나 세상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학교와 교회를 짓느라 재정이 바닥나버린 것이다. 미국과 소련에서 빚을 지는 수밖에 없었다. 소련 입장에서는 카리브해의 유일한 우방인 트로피코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대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미국 입장에서는 제국의 턱 밑에 반란군 기지가 들어서있는 셈이었다. 여기에 소련이 군사기지라도 설치한다면? 등에 땀이 흐를 일이다. 결국 빌린 돈을 안 갚는다는 핑계를 대고 미국은 트로피코에 해군 함대를 파견하고야 말았다!


미군 소속의 구축함 3척이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트로피코 연안을 돌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옥수수 농사꾼들을 모아놓고 나는 정부가 현명하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갈 것이며 특히 우리의 사회주의는 외세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어쨌든 우선은 돈을 갚는 것이 문제였다. 소련과 미국의 경쟁적인 원조 덕에 잠시 현금 유동성이 수월해진 틈을 타 나는 정부에 외교부를 신설하고 친미적인 외교활동을 벌일 계획을 세웠다. 나는 꼬박 한 달 동안을 외교부 업무를 직접 처리하는데 보냈다. 그러는 와중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일군의 시민들이 시위를 시작했다.


나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미국은 일단 군함을 물렸다. 트로피코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 듯 했으나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은 게릴라화 되어 폭력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나는 경악했다. 나는 직접 총을 들고 나가 몇 명 되지 않는 군인들과 게릴라들을 진압했다. 그 와중에 경미한 상처도 입었다. 어쨌든 큰 사고 없이 게릴라 진압에 성공했으나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결국 답은 수출 주도형 경제 모델에 있었다. 돈이 있어야 공장이라도 지을 것이고 일자리 창출을 할 것이다. 그러자면 작은 것이나마 외국에 내다 팔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옥수수 같은 것은 식량을 조달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값이 싸서 농업의 중점 상품으로는 적절하지 않았다. 나는 파인애플, 바나나와 더불어 담배, 커피 등을 대량으로 재배할 수 있도록 여러 농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선 통조림 공장을 만들어 일자리를 창출하고 통조림을 수출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막상 통조림 공장을 지었더니 여기서 일할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거리에는 실업자들이 넘쳐나는데 대체 왜 통조림 만들 사람만 부족한 것인가? 그건 통조림을 만드는 노동자는 최소한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트로피코에 한 개 있는 고등학교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대졸 학력을 갖춰야 하는 교사가 트로피코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비싼 돈을 주고 교사를 수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고등학교에서 교사에게 통조림 만드는 비법을 배운 주민들은 통조림 공장에 취직을 했고 모처럼 트로피코는 통조림을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광산개발까지 더하니 간신히 재정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경제 규모가 성립되었다.

 

그러나 바로 이 시점에 나에게는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이 대통령에 대한 암살이 시도된 것이다. 내가 국제의사단체의 무료 진료 캠프를 트로피코 해안에 유치한 직후였다. 당연히 의료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있나? 하지만 도대체 누가 그런 사실에 불만을 품고 나를 암살하려고 했단 말인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단 나는 암살의 배후는 미국일 것이며 미국은 이런 위협적인 행위를 그만 두어야 한다고 발표하였다. 애매할 때는 미국을 욕하고 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즉각 동조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예상대로 트로피코에 군함을 파견했다.

 

하지만 내 의심의 눈길은 민족주의자들을 향해 있었다. 국제의사단체의 진료 캠프를 외세의 첨병 정도로 보았던 것이 아닐까? 나는 민족주의자들의 지도자 베로니카를 은밀히 불렀다. 베로니카는 내 생각대로 국제의사단체의 진료 캠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이민국을 신설해서 외국인들의 이주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매우 과격한 언사를 통하여 나에게 전달하였다. 또 그녀는 한사코 암살과의 관련성을 부정하였지만 이미 머리끝까지 화가 난 나는 군인들을 동원하여 백주 대낮에 그녀를 길거리에서 살해했다.

 

나는 나의 행위에 항의하는 엄청난 저항이라도 일어날 줄 알았는데 그녀의 사망 당시를 지켜본 주민 두 명이 게릴라화 된 것을 빼놓고는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나를 밀어낼 정치적 대안으로 항만 노동자 글렌 제이콥스라는 남자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그에 맞추어 일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람들은 민주적인 선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내가 엄청난 사회주의자이지만 하자는 선거를 안 할 재간은 없다. 나는 선거를 받아 들였고 곧이어 현 대통령인 나와 글렌 제이콥스의 가상대결 조사가 보고되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57대 62. 내가 다섯 표 차이로 진다는 것이었다. 내가 트로피코를 이만큼 발전시킬 동안 글렌 제이콥스가 무엇을 했기에 내가 진다는 것인가! 나는 이런 결과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재빨리 선거용 기조연설을 작성했다. 트로피코에는 일자리가 부족하니 앞으로도 계속 일자리를 창출하는 노력을 할 것이고 공산주의자들은 훌륭한 사람들이며 보건소도 늘리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가상대결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59대 60. 아직도 한 표가 부족하다!


결국 선거가 끝날 때 까지 모자란 한 표는 채워지지 않았다. 진 것이다. 나는 한숨을 쉬고 죽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짐을 싸려고 했다. 하지만 나의 유능한 참모들은 정말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꾀를 내었다. 사람들이 아직 선거에 익숙하지 못해 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서투를 수밖에 없으므로 대통령이 나서서 교정해줘야 한다는 얘기였다. 즉, 내가 얻은 59표에 20표 정도를 더해서 선거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을 더욱 정확히 반영한다는 얘기였다.


사실… 그렇다! 다들 처음이라 서툴렀겠지. 아무래도 선거는 복잡하고 어려우니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79대 60으로 현 대통령이 재선되었음을 선포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글렌 제이콥스는 아깝게 졌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친구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물에 빠져죽지나 말게.

 

이 선거를 통해 나는 본격적으로 나의 이미지 관리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그간 모은 재정으로 대통령궁 길 건너편 레스토랑에 비밀경찰국을 신설했다. 또 외진 곳에 치안을 향상 시킨다는 핑계로 교도소를 설치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음 선거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 지를 알아보았다. 특히 다음번에는 꼭 글렌 제이콥스를 찍어서 정권 교체를 해야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폈다. 베로니카의 뒤를 이어 민족주의자들의 지도자가 된 곤잘레스가 이런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도대체 이 자들은 전생에 나와 어떤 악연을 맺었던 것이 길래……. 한탄만 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나는 무고한 곤잘레스를 체포하여 감옥에 처넣었다.


곤잘레스에게 교도소에서 강제로 바느질이라도 하게 해서 돈을 벌게 하는 것도 좋았겠지만 사회주의자인 나는 교도소란 범죄자들을 재교육하고 사회에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곤잘레스에게 적당한 교육 과정을 제시하여 곤잘레스가 정치적으로 나를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도록 할 것을 명령했다. 온갖 다양한 교육(?) 과정을 끝마친 곤잘레스는 나의 가장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그러나 지도자가 살해되고 투옥된 것에 흥분한 민족주의자들은 거의 글렌 제이콥스를 지지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격분해서 군부에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숙청을 명령했다. 군인들이 출동했고 길거리에서 민족주의자 당파의 소속원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무차별적으로 제거되었다.


이런 다양한 이미지 관리 작업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선거에서 내가 다시 당선될 확률은 매우 낮아 보였다. 글렌 제이콥스에 대한 지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나는 정계은퇴를 각오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났다. 내 생에 두 번째 암살위기가 닥친 것이었다. 이번에는 누가 나를 암살하려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계엄령을 선포했다. 당연히 예정되어 있던 선거는 중단되었다. 계엄령은 경제적으로도 많은 악영향을 가져오지만 지금 그런 것이 문제겠는가? 결국 계엄령은 5년이나 계속 되었다.

 

그 5년 동안 나는 트로피코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담배 공장, 커피 공장을 새로 짓고 보건소의 수도 몇 배로 늘렸다. 대학교를 짓고 성당을 지었다. 트로피코는 이제야 좀 사람이 살만한 도시 같은 느낌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당연히 나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율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친다.


이쯤에서 나는 계엄령을 해제하고 조기 선거 실시를 선포했다. 또다시 상대로는 글렌 제이콥스가 등장했다. 가상대결 조사 결과는 127대 62. 더블 스코어다. 나는 여유 있게 다시 당선되었다. 시민들의 분위기는 내가 종신 대통령을 한다고 해도 좋을 분위기였다. 나는 흡족한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 비밀경찰에 글렌 제이콥스에 대한 암살을 명령했다.


아마 내가 최초로 베로니카를 죽였을 때, 민족주의자들을 학살했을 때, 그리고 선거 결과를 조작했을 때 광범위한 저항이 조직되고 내가 위기에 내몰리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분명 글렌 제이콥스의 운명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내일 아침 항구에서 익사한 시체로 발견 될 것이다. 그리고 트로피코는 유능한 대통령인 나의 영도 아래에서 세상이 끝장 날 때까지 발전할 것이다. 트로피코에 영광 있으라! 비바 라 라싸!

 

 

* 이 원고는 아주대학교 교지 '아주문화'에 스크린샷과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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