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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의 내용이 포함된 글을 읽는 것이 영화 감상에 방해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글을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일 년에 영화를 한 두 편 밖에 보지 않는, 삭막한 문화적 인프라 위에서 살고 있는 내가 며칠 전 그 더운 날 친히 극장까지 걸어가서 영화 '괴물'을 보았다. 언론에서 하도 천만관객, 천만관객, 시끄럽게 떠들어대서 이기도 했지만 그런 거사를 감행한데는 무엇보다도 봉준호 감독이 민주노동당원이라는 사실이 컸다. 선거 때나 되어야 '동지들'에게 안부전화 넣는 시대에 당원이 만든 영화를 깊이 있게 감상해 준다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미덕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훌륭한 핑계였지만 영화를 감상하고 나오자마자 내 입에서는 '봉준호, 지독한 인간..' 이라는 탄식부터 흘러나왔다. 괴물의 첫 인상, 그것은 손에 쥐고 있는 모든 블록 들을 자신의 질서에 맞춰 늘어놓는 천진한 아이의 얼굴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영화 괴물에는 영화의 중심적인 흐름과 큰 관계가 없는(것처럼 보이는) 온갖 '주변적인 것들'로 가득 차있다. 보통 수준의 괴물 영화라면 굳이 묘사하지 않아도 될만한 것들, 예를 들면 괴물에게 가족을 잃고 오열하는 주인공들을 향해 플래시를 터뜨리는 사진기자들과 바이러스란 말에 오버해서 선정적인 기사들을 뽑아내는 언론들의 묘사는 그 독특한 리듬으로 긍정적인 평가의 대상이 된 듯 하다. 그러나 '봉준호식 유머'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이러한 묘사에는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다. 스크린에 들어가면 '유머'가 되는 이 광경들은 사실 일상생활에서 심심치 않게 드러나는 '일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를 조금 더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잠시 '왕의 남자'를 감독했던 이준익 감독의 흥행 실패작 '황산벌'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겠다. 백제와 신라의 운명을 건 결전. 만일 우리가 황산벌 전투의 그 시점으로 되돌아가볼 수 있다면 우리는 흔한 역사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스펙타클한 화면들을 감상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오히려 신라인들과 백제인이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가 현대에서 경험하는 사투리를 보는 것처럼) 다르다는 사실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 다였을까?

영화 '황산벌'은 마치 사투리 개그를 삼국시대에 접목시킨 코미디 영화인 것처럼 평가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그 '코미디 영화'야말로 현실이고 비장미와 진지함으로 포장된 여타의 묘사야말로 '모든 역사는 승리자의 역사'라는 말처럼 '의도'가 함축된 '비현실' 이라는 사실이다.

'봉준호식 유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봉준호의 괴물이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였다면 영화 속의 모든 장치들은 주인공 박강두 외 그의 가족들이 괴물을 만들어 가족을 위기와 혼란으로 몰아넣은 미제의 음모를 쳐부수고 조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는 것에 집중될 것이다. 이런 촌스러운 것에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것을 논의하던 그 옛날에는 '대중에게 역사 발전 법칙의 진실을 알리면 각성해서 혁명에 동참할거야!' 라는 순진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오늘날의 대중은 대부분 그게 그렇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부르주아 질서의 톱니바퀴 역할을 자임하며 순순히 잘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정치적 냉소주의다. (이에 대한 루이 알튀세의 호명 개념과 그것을 지적하는 슬라보예 지젝의 어려운 논의가 있지만 굳이 그런 것들에 대해 알지 않는다 해도 세상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물들지 않은 어떤 것'을 보여주는 작업은 대중에게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물들지 않은 우리의 현실 그 자체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건 웃기지만 원래 현실이 웃긴 거잖아?'라는 기조를 가지고 있는 '봉준호식 유머'는 '봉준호식 리얼리즘'이 될 수 있다. '희화화'는 종종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이제 영화의 내용을 바라보자. '괴물'의 주인공인 박강두와 그의 가족들은 왜 괴물을 스스로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가? 가증스런 미국인의 물음처럼 어째서 박강두와 그의 가족들은 공권력 혹은 인권단체에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가? 그들이 그렇게도 갈망하는 '괴물 잡기'의 가장 훌륭한 방법은 'No virus' 라고 말하면서 방역 약품을 판매하는 미국의 음모를 폭로하고 군대와 경찰로 하여금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한 방역'이 아니라 '괴물의 제거'에 나설 것을 강제하는 것임을, 다시 말하면 '정치적 행위'를 시도하는 것임을 왜 깨닫지 못하는가?

아니, 애초에 '괴물'은 무엇인가? 박강두와 그의 가족은 왜 괴물을 죽여야만 하는가? 여기에 자본주의 사회의 톱니바퀴들이 진실을 은폐하는 매커니즘이 있다. 괴물은 마치 1930년대 파시스트 집권기의 독일에서 유태인과 같다. 그들에게 유태인은 철저한, 이해가 불가능한 외부자다. 그리고 파시스트들은 체제에 쏟아내야 마땅할 분노를 유태인에게 뒤집어씌우며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을 알았다. 사람들은 '유태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라고 물음을 던진 후에 그에 대한 대답으로 온갖 부정적이고 악독한 것들을 가져다 붙였다. 그러나 진실은 애초에 그 질문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다. 보라, 좌파들이여! '유태인' 이라는 '민족'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뭘 원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컬럼바인' 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에도 잘 나타나 있다. 컬럼바인 고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 지배계급과 언론은 공포와 혐오의 상징 록 스타 마릴린 맨슨을 그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끼친 대표적 해악으로 꼽았다. 그러나 마이클 무어는 '총기 소지가 합법' 이라는 미국의 현실이야 말로 진정한 이 사건의 원인이 아니겠냐고 묻는다.

영화에서 박강두와 그 가족들은 '괴물이 박강두의 딸 현서를 잡아갔기 때문에' 괴물과 싸운다. 그런데 괴물에게 그러한 구체적 욕망이 있을 리 만무하다. 괴물은 단지 잡아먹고 뛰어다닐 뿐이다. 괴물은 그저 예측할 수 없을 때에 찾아오는 홍수나 혹은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참사와 같은 '사고'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강두와 가족들이 가지는 진지한 가족애에 의해 괴물의 존재와 괴물을 둘러싼 여러가지 진실들은 계속적으로 은폐되고 만다. 자신들의 주장을 믿어주지 않는 공권력을 뒤로 하고 가족을 구하기 위해 전 재산을 털어 장비를 마련하고 한강의 깊고 깊은 하수구로 뛰어드는 이 휴머니즘!

성수대교 혹은 대구지하철 참사에 대해 '아침을 먹고 조금 늦게 갔더라면..'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박강두의 가족들이 현서를 구하기 위해 무모하게 취하는 행동 혹은 괴물에게 납치된 강두의 딸 현서가 그 하수구에서 자신보다 약한 존재인 세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바로 그 주제넘은 휴머니즘과 어떻게 다른가? 성수대교 붕괴와 대구지하철 참사는 건설 산업의 근본적 문제와 관료제적 태만이 원인이 된 구조적인 문제였다. (성수대교 붕괴 이후에 '시공참여자'라는 제도가 등장한 것을 보라!) 애초에 괴물을 만든 것은 용산의 미군이 저지른 맥팔랜드 사건이고 박강두가 사랑하는 딸 현서를 잃은 것은 그 자신이 거기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인생으로 한강에서 튀어나온 괴물이라는 재앙에 노출될 경우 죽을 수밖에 없는 계급적 현실에 처해있기 때문이었다. 괴물이, 현서를 죽였는가? 괴물은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다.

때문에 영화의 결말에서 우리는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봉준호 감독은 마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싸인'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가족이 서로 그렇게 운명 지워진 끈으로 묶여있었던 것인 양 힘을 합쳐 괴물을 잡는 장면을 묘사한다. 괴물이라는 위기를 극복하면서 가족들의 대다수는 일종의 성장과정을 겪는다. 박강두는 괴물을 죽이고 그 속에서 현서의 시체와 세주를 꺼냄으로서 진정한 아버지로 성장한다. 박남주는 머뭇거리는 버릇을 극복하고 괴물에게 적절한 타이밍의 화살을 날림으로서 이후에 약점을 극복하고 훌륭한 양궁선수로 거듭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박강두의 아버지 박희봉은 그 훨씬 이전에 가족 모두에게 '도망가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으로서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회복한다. 오직 왕년의 민주화 운동권 박남일 만이 성장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하다.

박남일이 괴물에게 과거 민주화 세력이 독재정권에 항거했던 것처럼 화염병을 던지는 장면. 괴물은 단 한 병의 화염병도 정통으로 맞지 않는다. 박남일이 마지막에 결정적으로 던지려 했던 화염병은 손에서 미끄러져 땅에 떨어지고 만다. 박남주가 화살에 그 불을 붙임으로서 박남일의 욕망은 해소될 수 있었지만 박남일이 그럼으로 인해 자신이 위기의 순간 되찾을 수밖에 없었던 '운동권' 이라는 정체성을, 다른 가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괴물을 죽임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위치에 설 수 있었던 다른 가족들에 비해, 괴물을 죽이는데 일조했다는 사실로 박남일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괴물을 죽이고 박남일이 '민족해방의 투사' 혹은 '민중해방의 전사'로 거듭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박남일은 괴물이 한강에서 뛰쳐나오는 이 사태가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단 한 줄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남일은 영원히 '80년대 민주화세력'의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그 때문에 이 위기에서도 박남일은 아무것도 극복하지 못한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아무것도 극복하지 못한 '80년대 민주화세력'은 부지기수로 많다.

결국 박남일의 존재적 절망은 현실에 존재하는 정치적, 역사적 좌절에 관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 '정치적 냉소주의' 라는 딱지를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봉준호의 리얼리즘'에 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모든 '존재하는' 정치적 냉소주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 자체는 정치적 냉소주의에 대한 폭로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들에게 되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앞에 오늘날 주어진 위기의 정체는 무엇인가? 아니 그 이전에, 당신은 한강에 괴물이 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미안하지만 한강에는 진짜로 괴물이 산다.

hannwip

2012.02.16 12:52:54
*.246.69.11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현실을 담아내는 재주가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현실 묘사나 문제제기가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영화에 녹아들어 있다는 게 참, 대단합니다. 언급하신 '화염병이 끝내 한 발도 안 맞는' 장면, 저도 상당히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영화 초반에 한강다리에서 자살하는 사람을 괴물이 잡아먹고 커 왔다는 암시를 주는 장면도 의미심장했죠.

저는 '살인의 추억'을 더 재미있게 봤지만, 훗날 '괴물'이야말로 (시대를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우리시대의 고전이라고 불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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