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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록’은 무엇인가? 나름 록 음악의 리스너를 자칭한지 15년, 어설픈 밴드에서 기타를 친 지 7년이 됐지만 아직도 이 질문에 남들이 알아들을 만큼의 쉬운 대답을 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아마 그 대답에는 ‘저항’, ‘젊음’, ‘열정’과 같은 단어들이 포함될 것 같다. 이것은 록 음악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면서 또 록 음악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족쇄이기도 하다.

 

학창시절에 ‘록을 듣는다’는 것은 록 스타들의 세상에 대한 태도를 이해하고 그것을 지지함을 의미했다. 들국화가 TV 출연을 즐기지 않았다는 것, 시나위의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록 스피릿’을 이야기 하는 것, 그리고 수많은 록커 지망생들이 이를 따라하지 못해 안달이었던 것 등이 좋은 예일 것이다.


어디서 록 좀 한다는 친구들치고 그런 ‘반항’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 하다못해 90년대 댄스음악의 선구자 서태지도 록커를 할 적에는 머리를 기르고 베이스를 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록커들은 머리를 기르는 정도의 반항으로도 주류에 합류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반항아적 삶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서양권의 록커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므로 좀 더 과격하게 반항을 할 수 있었다.


이런 반항아적 록커 이미지의 시초라고 하면 역시 ‘엘비스 프레슬리’다. 어차피 록큰롤은 대중의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으므로 엘비스 프레슬리가 저속한 몸짓으로 다리를 흔들어 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이유는 없다.


60년대에 반항적 록커 엘비스의 유산을 각기 다른 형태로 이어받은 밴드가 두 팀 있다. 첫 번째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믹 재거’로 대표되는 ‘롤링 스톤즈’일 것이다. 이 믹 재거라는 자는 대충 봐도 ‘이 친구는 좀 맛이 갔군!’이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독특한 무대 매너와 매우 시끄러운 사생활로 유명하다.


엘비스의 유산을 물려받은 다른 한 팀은 오늘 이야기의 주된 소재인 ‘비틀즈’다. 이들은 나중에 믹 재거가 취했던 방식과는 달리 머리를 단정히 하고 정장을 입은 채로 무대에 서서 록큰롤을 연주하는 것으로 영국인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몇 개의 앨범을 내자 순식간에 밴드는 유명해지고 그들은 큰돈을 벌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부터 진정한 록 음악의 가치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밴드가 돈이 생기면 맨 처음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건즈 앤 로지즈’의 망나니 보컬 ‘엑슬로즈’라면 술 먹고 사고치는 데에 흥청망청 다 써버려야 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음악적 가치에 조금이라도 욕심이 있는 음악인이라면 당연히 ‘하고 싶은 음악’을 ‘더욱 잘’ 하는 방법을 연구하려고 들 것이다.


비틀즈는 후자의 길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꿈을 꾸는 이상주의자 존 레넌과 세상에서 발을 떼지 않으려 하는 현실주의자 폴 매카트니가 부딪쳤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실이다. 이 두 사람의 불화는 서로 생산적인 영향을 주고받아 현대 음악의 근본을 뒤흔드는 엄청난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1960년대를 관통하면서 비틀즈는 더 이상 록큰롤을 연주하는 예의바른 청년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현대 팝 음악의 거의 모든 형식을 만들어 냈고 지금 활동하는 대중음악가 중 그들의 영향력 아래 놓이지 않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을 정도가 되었다.

 

폴 매카트니는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아 귀족이 되었다.


존 레넌의 이상주의는 상업적인 것보다 지적이고 예술적인 그 무엇을 계속해서 추구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결국 60년대 말의 혼란스런 상황에서 정치적인 행보를 시작하는 것으로 귀결되어 버렸다.


물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예술로 표현하고자 했던 사람이 존 레넌 뿐 만인 것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롤링 스톤즈도 '페인트 잇 블랙' 등의 노래를 통해 반전의식을 노래했다. 상업적이라고 비난받는 폴 매카트니도 종종 정치적인 발언을 하고 그런 내용의 가사를 썼다.


하지만 존 레넌은 그들과 차별화되는 일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존 레넌은 오노 요코와 신혼여행을 가서는 침대를 밖에 꺼내놓고 하루 종일 침대 안에서 침묵시위를 하기까지 했다. '이매진'이나 ‘파워 투 더 피플'같은 노래는 특히 노골적으로 ’좌파‘다운 것이다. 그의 이런 기묘한 행보는 그가 죽던 해인 1980년까지 계속됐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어쨌든 ‘비틀즈’의 존재는 그 이전의 록큰롤 문화에 비해 훨씬 진보적이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록큰롤에서 이어진 반항적인 자유주의는 비틀즈를 지나 존 레넌에 이르러 ‘나는 선(禪)-마르크스주의자’라는 선언으로 변화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비틀즈의 멤버들이 영국 북부의 리버풀이라는 노동자 도시 출신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노동자들의 정서와 문화가 가득한 도시에서 자란 경험이 나중에 정치적인 이슈를 접했을 때 노동계급의 일원으로서 자신들의 계급성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러한 계급성이 그 도시의 주민들에게도 음악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파되고 표출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2006년 3월에 자칭 비틀즈의 팬이라는 콘돌리자 라이스가 리버풀을 방문했다. 당시 미국의 전쟁으로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세계적인 밴드인 비틀즈를 배출했다는 자부심을 안고 있는 리버풀의 주민들은 공항에서 ‘이매진’을 불러 콘돌리자 라이스를 당황하게 했다. 여기에 그녀가 참석하는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기로 했던 성악가 ‘제니퍼 존’도 공연 중에 ‘이매진’을 불러주겠다고 해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통쾌하게 했다. 이는 어쨌든 비틀즈가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사실 나와 같은 운동권들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좌파적인 노래를 부르면서 실제로 그 노래에 맞는 정치적 행동을 하는 이런 광경을 늘 꿈꿔왔다. 그래서 몇몇 운동권 작곡가들은 이것을 이루기 위해 정치성이 강한 가사를 쓰고 사람들이 쉽게 외울만한 멜로디를 만들어 보급을 했다. 그게 오늘날 거리에서 여러 사람들을 골치 아프게 하는 ‘민중가요’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 소련에서 유행하였던 이 생각은 예술이 노동계급을 하나로 묶고 그들 자신의 손으로 일어서게 하려면 그들은 하나의 계급이며, 지배계급에게 착취당하고 있으며, 세상을 바꿀 유일한 계급이라는 점을 직접 말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련의 관료들은 예술을 검열해서 자기들이 세운 기준에 맞지 않는 것들을 골라내어 ‘타락했다’는 표식을 붙여 폐기했다. 왜 대중들에게 혁명적 사상을 심어주지는 못할망정 사상적인 혼란만 끼치느냐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모두 부르주아적이고 반혁명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그들은 그런 타락한 예술을 만들어 내는 사람을 막 잡아가기까지 했다.


여기서 성찰해보아야 하는 것은 과연 그런 시도가, 노동계급이 세상을 바꾸는 대의에 도움이 되었냐는 것이다. 소련에서는 많은 예술 작품들이 단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로 전락했다.


한국에서의 민중가요는, 물론 조직된 노동자들의 전의를 고취시키는 데에는 기능적으로 도움이 되었지만, 애초에 의도한 대로 어떤 혁명적인 상황을 만들어 내는 데에 기여하거나 정치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은 그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었던 존 레넌의 ‘이매진’을 데려다가 정치 광고를 만들어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현대에 한국의 소위 운동가들이 만든 민중가요의 위력이 20년 전 영국 사람이 만든 묘한 노래만큼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영국 리버풀 주민들이 ‘이매진’을 부르듯 한국의 울산 시민들에게 ‘철의 노동자’를 부르게 할 수 있을까? 이 의문에 대답하려면 일단 리버풀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인지를 다시 한 번 짚어보아야 한다.

 

리버풀에는 항만 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영국은 산업혁명을 맨 처음 이룬 곳이며 세계에서 가장 먼저 노동조합을 만든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다.


영국의 항만 노동자들은 그 일의 특성상 다른 나라의 항만 노동자들과 손을 잡고 싸우는 국제주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1889년에 리버풀의 항만 노동자들이 최초의 파업을 했을 때 다른 나라의 항만 노동자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으므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한 점을 잘 기억한 리버풀의 항만 노동자들은 1949년에 캐나다 선박에 대한 작업을 거부하는 파업을 시작했다. 당시 캐나다 선원노조가 파업을 하고 있었으므로 이것을 지원하기 위해 파업을 벌였던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쌍용자동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는 것과 똑같은 모양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파업은 우리나라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불법이다. 당시의 영국도 비슷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노동조합 상급단체의 지도부는 리버풀 항만 노동자들의 파업을 말렸다. 이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이 새로운 조직을 꾸렸다. 양자 사이에 격렬한 내부 투쟁이 있었다. 영국 정부는 1967년에 이 상황에 개입하고 나름의 정리를 하려고 했다. 비틀즈의 어린 소년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 일상화되어 있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던 것이다.

 

즉, 리버풀의 노동계급과 비틀즈는 정치적인 이슈를 노래로 만들고 이것을 소비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광경은 한국의 록커 신해철이 영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에 ‘블랙 새버스’라는 이름의 술집에서 겪었던 일을 회상하며 말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름이 블랙 새버스라서 들어갔는데 모두들 블랙 새버스 음악을 듣고 있지 뭐예요? 그래서 저는 아, 영국은 역시 블랙 새버스가 노동자의 음악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한 쪽 구석에서 아저씨가 일어나서 맥주잔을 들고 ‘새버스!’라고 외치자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맥주잔을 들면서 ‘새버스!’라고 화답을 하는 거예요!”

 

사실 위의 구절은 내가 우연히 접한 신해철의 발언을 기억에 의존해서 복원한 것이므로 구체적인 문장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신해철은 일종의 ‘노동계급 공동체’에서 ‘록 음악’이 소비되는 광경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노동계급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을 경험한 것이다.


그런데 블랙 새버스 음악이 ‘정치적’이냐면 별로 그렇지도 않다. 그들의 음울한 멜로디는 그냥 저냥 무언가 반사회적인 정서를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정도이지, 그걸 듣고 갑자기 노동계급이 단결해야 하고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진 않는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영국의 노동자들은 이들의 음악을 자신들의 문화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죽 이야기해보면 이제부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록 음악은 피지배계급의 음악이며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기득권에 저항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노래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록 음악을 자기 동네에서 열심히 하여 노동계급이 하나의 정서를 공유하고 자기 자신의 계급적 위치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공동체를 만들자’라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라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술집이 됐든, 클럽이 됐든, 노동자 회관이 됐든 상관없이 사람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웃고 떠들고 즐길 수 있는 그런 공동체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이런 것이 없기 때문에 록 음악의 도전적인 저항 정신은 머리를 기르고 술을 마시고 무언가를 때려 부수는 것으로 하룻밤 사이에 공중에 사라지고야 마는 것 아니겠는가?


‘이매진’을 만든 존 레넌이 함께했으며 혁명과 반전과 평화를 노래했던 ‘비틀즈’라는 20세기의 위대한 밴드가 전설로 남게 된 시작은, 노동자 도시 리버풀의 소년들이 창고에서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노래하고 연주하며 함께 즐기던 것이었음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 이 원고는 ... 하여튼 어디엔가 게재되었습니다.


이상한 모자

2010.01.01 14:22:32
*.146.143.41

훈련소에 가기 전날 새벽에 시간에 쫓겨 마구 쓴 글인데 지금 읽어보니 ... 좀 괴상하다.

마론

2013.01.04 10:39:30
*.37.123.2

잘 읽었습니다. 이 글 저는 정말 좋은데요._<

말그대로 지나가다

2010.01.02 03:41:41
*.254.136.244

근데 블랙사바스는 미쿡밴드 아니던가요?

이상한 모자

2010.01.02 09:03:46
*.146.143.41

영국밴드로 봐야죠. 창단 멤버인 오지 오스본과 토니 아이오미, 기저 버틀러, 빌 워드가 다 영국사람이고 데뷔도 영국 버밍엄에서 했으니까요.

놀이네트

2010.01.02 21:36:31
*.39.120.69

한국에서는 왕년의 롹커들이 다 기러기아빠들이 되던데요?

한윤형

2010.01.02 22:45:07
*.51.255.26

으헝헝 ㅠㅠ

처절한기타맨

2010.02.02 13:04:11
*.231.53.11

공연 연상 기타 소리도 안나오고 그건 좀 사기...이건 첫 댓글인듯...책사서 잘 읽었어요. 모임방 이야기에서 쓰러짐.

이상한 모자

2010.02.03 00:44:13
*.146.143.41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책을 사셨다니 매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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