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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보편적 복지'와 선거연합

정치평론 조회 수 3584 추천 수 0 2011.01.08 03:25:50

당 내 소위 '통합파'의 대표적 인물인 박용진이 수원시를 방문하였을때 재미있는 발언을 한 일이 있다. 당의 결정인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계획을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델라 대통령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원칙 하나만 정하라, 나머지는 다 전술이다. 여러분, 원칙 하나만 정하십시오. 단 한 가지 원칙만 정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다 전술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원칙은 뭡니까? 지금 여러분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 있죠? 그게 바로 우리의 원칙입니다."


왜 그는 우리의 원칙이 무엇인지 대놓고 말하지 않고 이러한 기교로 이 상황을 넘기려고 했던 것인가? 이는 물론 그의 영리함이 돋보인 처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의 충실한 반영이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즉, 우리의 마음 속에는 원칙이 없거나, 아니면 내 원칙이 옆에 있는 사람의 그것과 같은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선거연합'을 논한다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무슨 동업자를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이러한 곤궁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당의 기초 조직과 교육 기관의 정립을 요구하여 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선거연합을 실제로 논의하기 전까지 우리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하나씩 뭘 어떻게 하자는 논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놈의 '원칙'을 새삼스럽게 합의하기도 전에 우리는 폭풍같이 밀어닥치는 선거연합에 대한 요구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선거연합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히 뭘 주고 받고 하는 과정이 있는 것이다. 비록 과거에 정권을 잡았던 개혁적(?) 인사들 중 몇몇은 선거연합이란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진보진영이 일방적으로 항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듯 보이기도 하는데, 그들이 그러한 기만전술을 노골적으로 내보이든 말든 어쨌든 선거연합이라는 것은 선거를 매개로 뭔가를 주고 받는 것이다.


이전에 내가 강조했던 바와 같이 선거연합에 대한 논의가 결국 '참여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하면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한 가지다. 그것은 박용진의 표현대로 하면 '원칙을 정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주고 받는 문제에서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지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한 원칙을 상대방이 받는다고 하면 모양을 잘 만들어서 선거연합이 성사될 수도 있겠지만 안 받는다고 하면 끝까지 마이웨이를 외쳐야 한다. 이게 우리가 선거연합에 대해서 발휘할 수 있는 인내의 최대치이다.


그런데 그간 참으로 수많은 종류의 선거연합에 곁눈질을 하여 온 경험으로 비추어 보면, 이러한 '원칙'은 그 선거에 있어서 되도록 민감하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으며, 상대로 하여금 어떤 큰 결단을 요구하며, 나중에 다른 말을 하기 어려운 주제이지 않으면 안된다. 예를 들어 민주당에게 울산 북구에 친환경음식물쓰레기자원화시설 설치를 요구하면 민주당이 그건 받을 수가 없으니 선거연합을 못하겠다고 말하겠는가? 전혀 아니지. 그런건 100만개 얘기해도 다 해준다고 하고 안되더라도 나중에 뭐가 잘 안됐다고 하면 그만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지금과 같은 여론구도가 총선까지 이어진다고 할때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보편적 복지'에 관한 것일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인생 역전을 위해 천문학적 액수의 자금을 동원하여 여론조사를 돌리고 이를 통해 과학적인 방법으로 정치적 행보의 결론을 내리는 유력한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판단에 대한 신뢰는 더욱 더 굳건해진다. 즉, 다음번 선거의 화두는 보편적 복지이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재빨리 보편적 복지 노선을 당론으로 정했으며 귀엽게도 무상의료의 실제적 실시를 위해 노력할 것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보편적 복지에 대해서 무슨 주장을 해야 할까? 우리는 진보정당이니 당연히 선명한 주장을 해야 한다. 민주당에게 적극적으로 논쟁을 거는 것이다. 그들이 정권을 잡았던 10년 동안 해온 복지정책은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생산적 복지, 즉, 자본주의 착취 시스템에서 낙오된 사람에게 당근을 안겨주어 끝없는 착취의 쳇바퀴에 다시 복귀시키는 작업이었다는 것을 폭로해야 한다. 임금을 돈으로 주지 않고 상품권으로 줘서 문제가 되었던 희망근로가 이명박 정부의 작품이 아니라 민주, 평화, 개혁세력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생산적 복지 노선을 왜 보편적 복지로 바꾸었는지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여야 한다. 국민참여당에게 노무현 정부의 복지에 대한 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민주당에게 김대중 정부가 실제로 시행한 생산적 복지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끝까지 물어야 한다.


물론, 그러한 작업은 매우 공허한 정치적 행위이다. 중요한건 이 다음이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공세적으로 주장해야 하는 것은 보편적 복지라는 개념 자체가 실현 가능한 것이 되려면 한국사회에 전면적인 대수술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다음의 '무상급식 패러디물'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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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이 보잘것 없는 합성물을 보고 불쾌해 하였지만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수많은 질나쁜 소위 패러디 작품들과는 달리 이것은 나름의 진정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의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속 편한 정책을 시행한다면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 즉 이 패러디물에 대한 진지한 반론은 '이것은 거짓이고 우리는 단지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체제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뭘 어떻게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그것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나름의 결론을 내놓은 바 있다. 그것은 바로 '사회연대국가'라는 큰 그림이다. 정규직 임금 깎아서 비정규직 임금 올려준다는 그런 시시한 이야기가 아니다. 보편적 복지와 사회연대국가의 비전은 매우 당연히 노동계급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노동계급에서 이탈한 사람들로 구성된 영세자영업자까지 사회연대국가와 보편적 복지를 매개로 어떤 특정한 의미의 계급연대를 구성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차후 진보정당의 버팀목으로, 주요한 토양으로 삼으려는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공세적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물론 가능성을 말하자면, 이러한 큰 그림 자체를 민주당이 인정하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넌센스일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에 혼을 빼놓고 있는 민주노동당에 있어서도 부담스러운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사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선거연합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이미 끝낸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전망을 책임있는 자리에서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입장을 가지기 위한, 당의 체계를 새로 세우기 위한 시간을 좀 더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상한 모자

2011.01.08 13:30:09
*.208.114.70

여러모로 다소 뒷북같은 얘기입니다만, 그래도 자꾸 이상한 얘기들이 회자되니 상기하자는 차원에서 술을 먹고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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